참 빛을 증거하라 (요한복음 1장 4-8절)
>< 빛이신 예수님 >
요한복음 1장은 ‘예수님의 인격성’을 잘 보여주는 요한복음의 핵심 장이다.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의 특성을 잘 나타내는 위대한 3대 용어가 있다. 그것은 영어로 ‘3L’입니다. 3L이란 ‘Life(생명), Light(빛), 사랑(Love)’이다. 이 3L은 예수님의 인격성을 잘 설명해주는 기본 개념이고 요한복음 1장은 이 개념을 잘 요약하고 있다.
일전에 말씀을 준비하는데 잘 준비가 안 되고 피곤했다. 그때 밤늦게 귀가하면서 입으로 다음과 같은 말씀을 수백 번 중얼거렸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그 말씀이 그렇게 감동이 되어서 집에서 누워서도 계속 중얼거렸다. 그 말씀에 특별하고 기발한 의미나 해석은 따로 없지만 그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소화하면 심령 속에 엄청난 힘이 솟아오름을 느낀다.
아침에 신선한 빛을 뿌리는 햇빛을 보면 가끔 이런 감탄이 나온다. “오늘도 새 날이 되었구나.” 그처럼 아침 햇빛을 보면 뭔가 새로운 생기가 느껴지지만 그 생기를 느끼면서 동시에 예수님이 참 빛임을 기억하라. 예수님이 참 빛이란 사실은 동트는 새 날에 대한 찬란한 약속이 담겨있다. 대낮에 강렬한 빛을 봐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때도 예수님이 참 빛임을 기억하라. 또한 저녁노을에 지는 태양빛을 보면서도 주님이 참 빛임을 기억하라.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성도의 삶에 희망이 넘치는 것은 예수님이 참 빛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예수님의 빛과 세상 빛은 차원이 다르다. 그 사실을 창세기 1장도 암시한다. 창조 첫 날에 하나님은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다. 창조 첫 날에 창조된 빛은 물리적인 빛이 아니고 ‘참 빛’을 암시한다. 현재 사람들이 인식하는 물리적인 빛은 햇빛과 달빛과 별빛에서 유래하는데 하나님은 창조 넷째 날에 해와 달과 별을 창조했기 때문이다. ‘참 빛’과 ‘물리적인 빛’의 차이를 인식하며 늘 예수님이 참 빛임을 기억하라.
예수님이 빛이라고 할 때 또 기억해야 할 사실은 빛이 비친다고 해서 어두움이 금방 물러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본문 5절을 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이 구절에서 “어둠이 깨닫지 못했다.”는 말씀은 원어적인 의미로는 “어두움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말씀이다. 빛이 비취면 어두움은 자연히 물러간다고 생각하지만 밝은 빛이 있을 때 그 빛을 막는 물체가 있으면 그 물체 뒤의 그림자는 오히려 더 뚜렷해진다. 그 뚜렷한 그림자로 인해 너무 당황하지 말라.
< 참 빛을 증거하라 >
예수님이 생명과 빛이 됨을 알았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세례 요한처럼 최선을 다해 그 사실을 증거해야 한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 당시에 엄청난 빛을 발해서 당시 유대인들은 세례 요한을 그들이 그렇게 고대하던 메시야인줄 알았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빛이 아니고 참 빛이신 예수님을 증거하러 왔다(7-8절). 빛과 같은 깨달음을 얻을 때나 빛나는 존재가 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세례 요한처럼 자신을 감추고 참 빛이신 삶과 언어로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이다.
바둑 광들이 한참 바둑에 빠질 때는 누우면 천정이 바둑판으로 느껴지고 그날 두었던 바둑이 머리속에서 복기된다. 야구광들은 좋아하는 선수들의 타율, 홈런 수, 안타 수까지 다 꿰뚫고 알고 야구에 대해서는 무엇이든지 말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처럼 예수님을 열정적으로 추구하고 예수님의 뜻을 생각하고 어떻게 예수님을 잘 증거할 것인가를 생각하라.
가끔 캄캄한 밤을 걷는 것 같은 상황에서도 계속 믿음으로 기도하면 결국 길은 열린다. 예수님이 빛이 되시기 때문이다. 왜 사람들이 불행해지는가? 자신이 빛인 줄 알기 때문이다. 언제 가장 행복해질 수 있는가? 예수님만이 빛임을 인정하고 그 빛을 반사하며 살 때다. 자신을 드러내면 진리와 축복의 빛은 점차 희미해지지만 자신을 감추고 참 빛이신 예수님을 드러내고 증거하면 진리와 축복의 빛은 점차 뚜렷해지고 편견과 미움은 사라지고 용서와 사랑이 넘치게 된다.
예수님의 빛이 있는 곳에는 아집과 편견은 사라진다. 교단적인 차이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서로 언제든지 소통할 수 있는 선교마인드를 갖추는 것이다. 자기 교단을 소중히 여기는 만큼 이단이 아니라면 남의 교단도 소중히 여기라. 평화를 추구할 때 예수님의 빛이 강렬해지고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은혜와 축복과 평안을 주시고 결국 그런 사람들이 어둔 세상에 희망을 주는 인물 성도로 쓰임 받는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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