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 (잠언 18장 17-24절)
1. 다툼을 그치게 하는 자
본문 17절을 보라. “송사에서는 먼저 온 사람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의 상대자가 와서 밝히느니라.” 송사에서 먼저 온 사람은 원고를 뜻하고 그의 상대자는 피고를 뜻한다. 원고가 하는 말이 바른 말 같아도 피고의 말까지 들으라는 뜻이다. 두 사람 말을 다 들어야 할 진실 공방에서 한 사람 말만 듣고 같이 욕부터 하면 사탄에게 미혹되기 쉽다. 다 듣고 법과 양심에 따라 의롭게 판결하거나 판단해야 다툼과 미혹됨을 줄일 수 있다.
판결하기 힘들면 어떻게 하는가? 본문 18절을 보라. “제비 뽑는 것은 다툼을 그치게 하여 강한 자 사이에 해결하게 하느니라.” 구약시대에는 제비뽑기가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행위로 인정되었다, 특히 강자를 위한 불의한 판결이 없도록 허락되었지만 신약시대에는 제비뽑기보다 말씀을 바탕으로 성령충만한 리더가 정당하게 판결하고 선택하는 것이 성경적이다. 그렇게 잘 판결해도 다툼을 없앨 수는 없다. 특히 형제간의 소송은 더 해결이 힘들다(19절). 그런 소통과 다툼을 줄이려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성령충만이다.
성령충만의 핵심 증거는 온유와 겸손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1장 29절에서 말씀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성령충만이란 예수님 마음이 충만한 것이기에 죽었다가 살아난 기적을 체험하고 성령의 9가지 은사가 있고 신비한 언어로 방언도 하고 신비한 몸짓으로 방무를 해도 예수님의 2대 성품인 온유와 겸손이 없으면 헛된 성령충만이다.
영성을 자랑하는 사람은 이렇게 묻는다. “성령 체험을 했습니까?” 그렇게 묻는 사람은 넘어지든지, 깔깔대든지, 괴성을 내든지 하는 자기가 생각하는 어떤 개념의 은사가 있어야 성령 체험이라고 생각한다. 편협한 생각이다. 또한 과거에 성령 체험 한번 하면 평생 최고의 신앙과 영성을 계속 가지는 줄 안다. 엄청난 오해다. 사실 그렇게 오만하게 질문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성령이 사라진 증거다. 성령 체험은 한번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성령님과 동행하며 삶에서 나타내야 한다. 성령충만과 가장 상극되는 것은 영적 교만이다.
성령충만하면 “당신 성령 체험 했소?”라고 교만하게 묻기보다 예수님처럼 낮은 곳에 내려가 남을 힘써 성겨주며 늘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산다. 간절한 소원이 이뤄지지 않아도 감사하는 것이 진짜 성령충만이다. 과거에 몇 번 어떤 체험을 했다고 영성을 은근히 자랑하면 안 된다. 그것은 영성이 아니라 미성숙이다. “성도님! 제가 기도하고 있어요.”라는 말도 주의하라. “내가 기도하는 사람이에요.”라는 말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후일에 영적인 산전수전을 다 겪은 후에 돌아보면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나는 84년 은혜를 체험한 후 몇 년간 영적 교만에 빠져 영성이 깊은 척 했던 것이 얼마나 큰 죄와 수치와 허물이 되는지를 나중에 깨달았다. 믿음과 영성 자랑은 영혼의 치명적인 암이고 성령충만과 참된 축복을 가장 막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일상에서 묵묵히 헌신하고 성령의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그런 성령충만한 사람이 어디에 가든지 다툼을 그치게 하고 화목하게 만들어서 결국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다.
2. 입술이 지혜로운 자
본문 20절을 보라.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입과 입술을 잘 사용해 좋은 말을 하면 그 말대로 되어 배부르고 만족하게 된다는 뜻이다. 본문 21절을 보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혀는 생사도 좌우한다. 더 나아가 입술의 신앙고백은 영생도 좌우하고 하나님의 보상과 보응도 좌우한다.
부드러운 말을 훈련하라. 대개 은혜가 사라지면 말이 거칠어지고 은혜를 받으면 말이 부드러워진다. 말이 부드러워지면 행동도 부드러워지고 병의 면역력도 강해진다. 보약을 멀리서 찾지 말라. 건강한 언어가 보약이다. 죽고 사는 것이 혀에 달렸다고 했다. 긍정적이고 부드러운 말은 죽어가던 세포도 살려 건강 가능성을 크게 높여준다.
입술에 교만도 없게 하라. 회의할 때 발언이 너무 많은 사람은 가급적 멀리하라. 그는 아주 잘난 사람일 것이다. 진짜 잘난 것은 좋지만 잘난 척하는 것은 좋지 않다. 교만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 교만한 사람과 어울리면 실패 가능성과 하나님의 목적 있는 시련 가능서도 크게 높아진다. 늘 겸손하게 기쁨을 주는 말 훈련을 하라.
어느 날 아이젠하워 장군이 장병들 앞에서 연설하고 강단을 내려오다가 빗물에 미끄러져 진흙탕에서 뒹굴었다. 참모들은 주변 청소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무서운 질책이 있을 줄 알고 불안해했다. 그때 아이젠하워가 별일 아니라는 듯이 다시 강단에 올라가 말했다. “여러분! 재미있었나요? 그러면 한 번 더 넘어질까요?” 그 말에 그곳 분위기가 밝아졌고 군의 사기도 높아졌다. 아마 그 에피소드가 군인들을 통해 일반인에게 전해지면서 그가 나중에 대통령이 되는 데에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어떤 행사를 하면 계획대로 안 될 때도 있다. 날씨가 받쳐주지 않고, 교통 체증으로 짜증이 나고, 무도한 사람을 만나 속상한 일을 당하고, 행사가 기대에 못 미치고, 심지어는 큰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 그래서 행사 주관자가 노심초사하고 미안해할 때 사고 당사자나 짜증을 낼만한 당사자가 별일 아니라는 듯이 이렇게 말해보라.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지요. 그래도 감사할 일이 더 많아서 감사해요.” 그 말은 행사 주관자의 마음을 상쾌하게 만들 것이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귓전을 울려 인물 되는 삶에 크게 반영될 것이다.
성공하려면 입술부터 성공하라. 말로 남을 기쁘고 편하게 해주라. 좋은 말과 안색과 행동으로 서로 화답하고 힘써 격려해주는 공동체에 하나님의 은혜도 넘친다. 혀가 감정이 아닌 말씀에 사로잡히게 하라. 초대교회에 성령이 임할 때 가장 먼저 혀가 하나님께 붙잡혔다.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충만은 부드럽고 지혜로운 말을 낳는다. 한 유명한 저술가 교수는 학생들의 리포트를 보면서 지적하고 싶은 것이 많아도 지적은 줄이고 격려는 늘인다. 자기가 다 바꾸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글과 말을 지혜롭고 겸손하게 표현하는 사려 깊은 성도에게 은총을 내리신다.
3. 사람의 마음을 얻는 자
본문 22절을 보라.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 결혼한 남자가 복 받은 자라는 뜻이 아니다. 이 구절의 ‘아내’는 ‘좋은 아내’를 뜻한다. 좋은 배우자를 얻는 것이 복이다. 더 나아가 이 구절에서 ‘아내’는 ‘좋은 사람’의 뜻도 된다. 누구든지 좋은 사람을 얻는 자는 복된 자이고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자다.
좋은 사람을 얻으려면 수동적으로 하나님이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하시는 은혜만 바라보지 말고 능동적으로 좋은 사람을 만날 준비도 하라. 자신의 사람됨을 인정받아 사람의 마음을 얻을 때 좋은 사람도 얻고 좋은 대답도 얻는다. 반면에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좋은 대답은커녕 엄한 대답만 얻는다.
본문 23절을 보라. “가난한 자는 간절한 말로 구하여도 부자는 엄한 말로 대답하느니라.” 재물 유무에 따라 사회적 대우가 달라지기도 하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빈자의 간절한 말을 모든 부자가 엄한 말로 대답하지는 않는다. 부자가 빈자를 존경할 때도 있다. 목회자는 대개 가난한 편이지만 부자 친구들이나 교인들의 존경을 받을 때가 많다. 존경받지 못하는 이유는 대개 인격과 사람됨의 문제 때문이다.
가난해도 간절히 달라고만 하지 말라. 부자는 달라는 말에 많이 시달려서 인격적인 부자도 나중에는 엄한 말로 대답할 때가 많다. 그것을 무조건 탓하지 말라. 계산적으로 달라는 사람이 너무 찾아오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인정해주라. 인격적인 부자는 비계산적인 좋은 사람에게 자기 것을 나눠주고 싶을 것이다. 스스로를 비하하지 말고 간절한 말로 구하기보다 넉넉한 말로 베풀면 가난해도 천시 받지 않고 오히려 존경받는다.
부자는 빈자가 간절히 무엇을 구할 때 겉으로는 엄한 말로 대답할 수 있다. 그래도 속으로는 늘 빈자를 생각하고 은밀하게 최선을 다해 돕는 삶을 펼쳐야 한다. 그 모습을 사람은 보지 못해도 하나님은 다 보고 갚아주신다. 외적인 모습으로 남을 평가하거나 나를 저울질하지 말고 사람의 마음을 얻는 믿음의 능력을 키우라. 그런 사람이 인간적인 매력도 풍기면서 좋은 사람도 만나고 하나님의 은총도 넘치게 받는다.
4. 좋은 친구를 가진 자
본문 24절을 보라. “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되거니와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 친구가 많으면 오히려 해가 된다. 형제보다 친밀한 소수의 친구를 가지는 것이 복이다. 그런 친구를 얻으려면 분별력이 필요하다. 친구 하자고 다가오는 사람 중에는 계산적인 사람도 많다. 그와 엮이면 자기도 함께 추락한다. 그래서 물질과 권세가 있는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를 지지한다는 사람도 함부로 친구 삼지 않는다. 그들 중에 섞여 들어온 계산적인 한 사람이 자기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지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을 무조건 받아들이지 말라. 물론 사람을 외적인 모습만 보고 거절하고 무시하면 안 된다. 그러나 사람의 형상 뒤에서 함께 잠입해 들어오는 계산과 청탁과 욕심의 영은 잘 분별해 걸러내야 한다. 꽤 오랜 기간 검증된 믿음과 인격과 사람됨과 비계산적인 마음을 보고 친구의 자리를 허락해야 사탄의 구덩이에 빠질 가능성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그래서 진실한 친구는 소수일 수밖에 없다.
왜 유명인이 의외로 고독한가? 사방에서 친구 하자고 계산적인 사람들이 달려드는 것을 느끼고 사람에 대해 실망한 경험이 많기 때문이다. 계산적인 사람은 유명인의 지위와 이름을 이용해 “내가 그를 잘 알아.”라고 하면서 자기 사업과 청탁에 활용한다. 그런 가짜 친구와 가짜 후원자를 멀리하지 않으면 이번 주에 자기를 던진 의원처럼 될 수 있다. 그 의원이 유서에서 말했다.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계산적인 의도를 가진 사람이 찾아와 후원해주고 도와주고 기도해주겠다는 것을 잘 물리치지 못하면 인생의 공든 탑을 다 무너뜨릴 수 있다. 특히 기도해주고 낫게 해주고 천국의 한 자리를 확실히 보장해주겠다는 이단 교주에게 넘어가는 것은 인생 최대의 불행이다. 높아지면 사람을 더 조심해서 만나라. 겸손한 모습으로 만남을 지혜롭게 거절하지 않으면 돈 벌어주겠다는 사람이나 후원하겠다는 사람과 엮여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
저희 <월새기(월간새벽기도) 사역도 커지니까 가끔 화려한 약속으로 <월새기>를 이용해 청탁 작업이나 다단계 작업에 활용하려는 의도로 접근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더 주의하는 편이다. 오래 사역하다 보니까 진짜 신실한 후원자는 말없이 실제로 후원하지 화려하게 약속부터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임을 알게 되었다.
남의 이름을 사칭해 사람을 미혹하고 또한 지지하겠다면서 자기 뜻을 이루려는 사람이 도처에 많다. 그런 사람은 힘써 멀리하라. 교회에서도 청탁문화는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사랑이 없다는 소리를 들어도 어쩔 수 없다. 사실상 그런 태도가 진짜 사랑이다. 거짓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교회의 순수한 사랑을 이용하는 사람에게 “교회니까 사랑으로 봐주어야지.”라고 하면서 이용당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과 교회를 망치는 것이다.
계산적인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친구인 척 하고 후원자인 척 하는 블랙 친구를 잘 걸러낼 줄 알아야 비극적인 추락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혼자서도 죄를 이기기 힘든데 다른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는 사람과 엮이면 죄의 유혹을 이기기가 훨씬 힘들어지고 결국은 추락한다. 겉으로 좋게 보이는 제안도 금방 덥석 물지 말라. 친구를 사칭하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으면 반드시 피해를 입고 결국 추락해서 하나님의 영광까지 가린다.
참된 친구는 주는 친구다. 친구를 사귈 때는 무엇을 얻을까를 생각하지 말고 무엇을 줄까를 생각하라. 친구가 많은 것과 발이 넓은 것을 자랑하지 말라. 짧은 인생을 살면서 깊게도 사귀지 못할 사람을 넓게 사귀면 유익도 없고 오래 지속도 안 된다. 아무나 친구 삼지 말고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는 사람을 잘 분별해서 걸러내라. 어떻게 잘 분별하는가? 쉽지 않지만 대개 욕심을 버리면 분별력도 커진다. 욕심을 버리고 화려한 유혹을 거절하면서 잘 섬기면 언젠가 좋은 친구를 얻는다. 그런 좋은 친구와 함께 하나님의 사명도 감당하고 하나님의 은총도 받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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