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적인 사랑을 하라 (신명기 29장 10-13절) <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 >
사람이 차별을 통해 자기를 부각시키려는 심리는 태초부터 있었다. 그런 심리를 나쁜 리더가 정치적으로 이용해서 많은 사회 갈등이 표출되고 증폭된다. 그런 문제의식을 느끼면 불의한 차별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자기 마음과 정신을 잘 붙잡으라. 성경을 보면 예수님의 대적들은 예수님도 차별 감정을 이용해 매도했다. 차별로 자기를 부각시키려는 시도는 보편적인 성향이다.
예수님의 베들레헴에서 출생했지만 실질적인 고향은 갈릴리 나사렛이었다. 갈릴리 나사렛은 갈릴리 호수 남서쪽, 해발 433미터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었다. 예수님은 종교, 행정, 문화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멀리 떨어진 갈릴리 나사렛에서 성장하셨다. 갈릴리는 ‘이방의 갈릴리’로 불릴 정도로 소외되고 천대받는 땅이었다. 예수님은 소외된 어둠의 땅 갈릴리를 초기 사역지로 선택하고 갈릴리의 중심도시인 가버나움을 전도의 본거지로 삼았다. 예루살렘이 아닌 소외된 갈릴리에서 큰 빛이 비친 것이다.
요한복음 1장을 보면 빌립이 친구 나다나엘에게 말했다. “내가 메시야를 만났어. 나사렛 예수란 분이야.” 나다나엘이 대답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어?” 오늘날 말로 이런 말이다. “아무렴 아오지 탄광에서 인물이 날까?” 그러자 빌립이 말했다. “와 보라!” 그래서 예수님께 갔다가 나다나엘이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이스라엘의 왕입니다.”라고 고백했다. 편견으로 메시야를 놓칠 뻔한 것이다.
차별의식으로 진리와 좋은 인물을 놓치고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자초할 때도 얼마나 많은가? 불의한 차별의식을 버리라. 구세주 예수님이 소외된 땅 갈릴리 나사렛 출신이란 사실이 주는 도전은 차별하지 말라는 것이다. 통전적 믿음을 가진 통전적 인간상을 갖추고 사람의 차이는 인정하되 사람을 불의하게 차별하지는 말라. 불의한 차별이 없어야 공동체가 힘 있는 복된 공동체가 된다.
이스라엘에서 인구조사 때는 전쟁터에서 싸울 20세 이상의 남자만 계수했지만 모압 평지에서의 언약 갱신 때는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을 참여시켰다(10-11절). 하나님과의 언약이 남녀노소, 신분, 계급, 민족, 혈통 등에 관계없이 모든 공동체 구성원에게 유효했다는 사실은 신약시대에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 일에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차별이 없다는 복음의 진리를 예표한다.
< 언약적인 사랑을 하라 >
모세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하고 하나님이 오늘 하시는 맹세에 참여하라고 했다(12절).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하라는 명령과 하나님이 하시는 맹세에 참여하라는 명령은 비슷한 말로서 하나님과의 약속을 깨뜨리면 안 된다는 강조가 담긴 명령이다. 하나님은 일찍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세워 자기 백성을 삼으시고 친히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겠다고 맹세하셨다(13절). 하나님은 축복을 약속하고 더 나아가 맹세까지 하신다. 그런 사랑과 축복의 하나님과의 언약과 맹세에 적극 참여해 하나님을 배반하지 말라는 명령이다.
사람에게 첫 사랑은 큰 의미가 있다. 그때는 모든 것이 좋게 보인다. 키가 크면 훤칠해서 좋고 키가 작으면 깜찍해서 좋다. 성격이 약간 불같아도 적극적이고 용기 있는 태도로 보인다. 단점도 장점으로 보고 나쁜 것에서 좋은 점을 찾아 이해하려고 한다. 바라는 것이 많지도 않다. 받으려는 마음보다 주려는 마음이 강하고 알아달라는 마음보다 알아주려는 마음이 많다. 자기 우상화와 허위의식도 없기에 원망과 불평도 거의 없다.
첫 사랑을 할 때는 늘 같이 있고 싶어 한다. 열렬하고 달콤한 사랑 때문에 헤어지기 싫고 헤어져도 금방 보고 싶다. 그러나 첫 사랑의 감정은 오래 가지 못한다. 첫 사랑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변하지 않는 언약적인 사랑이다. 첫 사랑은 언약적인 사랑으로 발전해야 한다. 왜 결혼하는가? 늘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 발전해서 영원히 헤어지지 말고 살자고 결혼하는 것이다. 그처럼 하나님께서 언약과 맹세에 참여하라고 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언약적인 사랑이 변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변하지 않는 언약적인 사랑이 되게 하라. 언약적인 사랑은 순정적인 사랑이다. 요즘은 순정이 더 이상 미덕이 아닌 것처럼 여겨지지만 사회를 아름답게 지켜주는 소중한 초석이 순정이다. 세 종류의 사랑이 있다. ‘만약에’라는 조건적인 사랑과 ‘때문에’라는 계산적인 사랑과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순정적인 사랑이다. 하나님은 어떤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순정적인 사랑을 원하신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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