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직업윤리 (에베소서 6장 5-7절)
1. 성실한 마음으로 일하라
본문 5절에 언급된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라는 표현은 일이 잘못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뜻한다. 일과 직업에 대한 태도를 보면 신앙과 인격의 깊이를 대략 알 수 있다. 왜 성도는 맡은 일에 성실해야 하는가? 성도의 일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일종의 봉사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은 어떻게든지 남에게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매일 식사할 수 있는 것은 농부가 땀을 흘렸고 그 외에 수많은 사람들이 일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내 일이 중요하기에 내가 맡은 일에 성실하게 임하고 최선을 다하라.
스스로 성실하지 못하면 정신이 왜소해지면서 남을 살피는 여백도 점차 줄어들고 창조성과 탁월성과 효율성도 잃는다. 일할 때 탁월한 존재가 되겠다는 강박관념을 버리라. 중요한 것은 성실성이 후퇴하지 않는 것이다. 촛불이 계속 타오를 수 있 것은 초가 자기를 녹이며 끊임없이 기화된 가스를 공급하기 때문이다. 일터에서 성실성으로 꾸준히 자기를 어떤 일에 드리면 그곳에서 꾸준히 타오를 수 있다. 그 빛을 하나님도 보시지만 사람도 본다. 그 빛이 언젠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유익을 주는 찬란한 빛이 될 것이다.
믿음의 삶이란 일상의 삶이나 일터의 삶과 분리된 것이 아니다. 믿음은 일터에서의 성실함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 성실함이 기화된 가스가 되어 자기 인생을 타오르게 할 것이다.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살기 위해서 특별성과 탁월성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인맥이 있어야 인물이 되는 것도 아니다. 성실성이 특별성이나 탁월성이나 인맥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다주고 더 확실한 길을 열어준다. 심오한 진리는 일상의 성실한 삶을 통해 더 깨달아진다. 성실성의 바탕이 없는 진리는 거짓으로 판명되고 허무한 결말을 낳는다.
2. 최대한 순종하며 일하라
사도 바울은 종들에게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고 권면했다(5절). 당시 로마 제국에는 약 6백만 명 이상의 노예가 있었다. 그들은 사람이 아닌 물건 취급을 당했고 때로는 주인으로부터 잔인한 학대를 당했다. 그래도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노예들에게 예수님께 순종하듯이 주인에게도 순종하라고 권면했다. 사람이 성공적인 삶을 사는 가장 확실하고 바른 길 중의 하나가 윗사람에게 잘 순종하며 섬기는 자세다.
어떤 일을 하든지 윗사람과 주인에게 최대한 순종하라. 주인이 어떤 일을 시킬 때 순종하기 힘들고 자존심 상할 때도 있다. 그때도 “예수님께 순종한다.”고 생각하고 순종하라. 성격이 더럽고 포악한 상전에게도 순종해야 하는가? 그래도 순종하려고 하라. 의로운 하나님께서 그 장면을 생생하게 보시고 보상과 보응의 손길을 펼쳐주실 것이다. 일터에서 늘 “주님께 하듯 한다.”는 자세로 하라. 상전이 제사를 지내고 점치는 불신자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래도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 순종하라.
바벨론에 끌려간 다니엘은 거기서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면서 느부갓네살 왕도 섬김으로 왕의 인정을 받는 신실한 신하가 되었다. 얼마 후 바벨론이 바사의 다리오 왕에게 정복되자 다니엘은 신앙을 지키면서도 맡은 일에 충성해 다리오 왕의 인정도 받았다. 결국 그를 질투한 사람들의 모략으로 사자 굴에 빠지지만 거기서도 하나님의 보호로 더 인정받는 존재가 되었다. 다니엘이 이방인 왕에게 충성했던 것처럼 불신자 상전 앞에서도 충성하라.
3. 자발적으로 기쁘게 일하라
사람들이 볼 때만 일하는 척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맡은 일을 기쁘게 자발적으로 하라(6-7절). 어떤 일을 할 때 늘 하나님의 사역자로서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자세로 하라. 목회만 거룩한 일이 아니라 성도가 하는 모든 일은 거룩한 일이고 성도가 일하는 모든 곳이 선교지다.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은 하나님이 보내주신 사람으로 여기고 힘써 섬겨주면서 맡은 바 책임을 다하라. 성도가 자발적으로 기쁘게 일하는 태도는 간접적인 훌륭한 전도 통로가 될 수 있다. 그런 태도를 통해 감동 가운데 이뤄지는 전도가 가장 전도다운 전도다.
일터를 예배하고 찬송하는 장소로 만들 수도 있고 따분하고 고통스런 장소로 만들 수도 있다. 일터를 따분하게 여기는 사람에게 가장 좋은 날은 금요일이고 가장 싫은 날은 월요일이다. 이런 영어 표현이 있다. “Monday morning is Monday moaning(월요일 아침은 신음하는 월요일이다).” 하나님은 일터를 따분한 곳이 아닌 기쁨이 넘치는 곳으로 만들기를 원하신다.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거기서 그 일을 통해 누군가가 하나님을 발견하고 느끼게 하라.
어떤 사람은 상전이 볼 때만 일을 하는 척 하고 일이 끝나기만 바라며 시계를 자주 쳐다보다가 퇴근 시간이 되면 일의 마무리도 없이 즉시 일어선다. 그렇게 살기보다 항상 더 많이 일해주고 섬겨주려는 마음을 가지고 일터에서 모범이 되라. 남의 눈치를 보며 일하지 말라. 사람이 보지 않아도 하나님이 보신다고 여기고 일하라. 예수님을 주로 영접하겠다는 고백은 사람의 눈치를 보기보다 하나님의 눈치를 보며 살겠다는 고백이다. 일터 문제와 관련해서 투 잡은 뛰어도 두 마음은 가지지 말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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