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기록하라 (신명기 27장 1-5절) < 기록된 말씀의 중요성 >
아이큐가 150 넘는 사람이 적는 사람을 따르지 못한다. 기억이 기록을 따를 수 없기 때문이다.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기발한 생각을 적어두면 반영구적으로 남지만 적지 않으면 몇 시간도 남지 않는다. 필자는 아침에 새벽기도 할 때 많은 깨달음을 얻는다. 그러면 기도 후에 즉시 기록해 놓는다. 몇 시간 후에 새벽에 기도할 때 깨달은 것을 생각해내려고 하면 생각나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기억을 앞세워 사는 사람이 기록을 앞세워 사는 사람을 이길 수가 없다.
사람은 언제 가장 행복해지는가? 진리를 깨달을 때다. 그 행복을 키우고 지속시키려면 그 깨달은 진리를 기록해 놓으라. 그러면서 자기 성찰도 하고 미래의 비전도 다듬으라. 자기가 한 일을 금방 잊어버리는 증상을 치매라고 한다. 기억에만 의지하면 결국 누구나 치매가 된다. 그러나 기록해놓으면 치매를 염려할 필요가 없다. 적는 습관은 인생을 성공적으로 만들고 은혜를 지속시키게 하는 최상의 습관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경에서 무수히 “기록하라!”고 말씀했고 결국 기록된 말씀인 성경이 있게 된 것이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수많은 음성들이 들린다. 그 음성들의 준거 틀이 되는 것이 바로 기록된 말씀(Written Word)이다. 기록된 말씀을 로고스(Logos)라고 한다. 로고스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로고스는 기록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기록이 없다면 지나온 삶은 의미를 잃는다. 또한 소중한 의미를 후대로 전달하기도 힘들다. 은혜를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은혜를 기록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기록된 말씀이 있기에 이단과 사이비와 사기꾼으로부터 영혼을 지킬 수 있다.
기록된 말씀은 어떤 신비한 환상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찬란한 비전은 늘 말씀에 바탕을 둔다. 어린이 책은 그림이 많지만 어른 책은 글자가 많다. 어른이 되어도 만화만 좋아하면 안 된다. 만화 같은 환상과 기적만 좋아하면서 글로 기록된 말씀을 외면하는 것은 미성숙의 표시다. 왜 성경에는 말씀을 기록하라는 명령이 많이 나오는가? 그래야 은혜를 잊지 않고 말씀 중심적으로 살면서 내일의 축복을 예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문도 기록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 말씀을 돌에 기록하라 >
신명기는 모세의 3편의 고별설교로 이뤄진 책이다. 본문에서 모세는 3차 고별설교를 하면서 백성들에게 오늘 내리는 명령을 다 지키라고 한 후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큰 돌들을 세우고 석회를 바르라고 했다(2절). 고대에는 책이 없었기에 큰 돌에 기념비적인 사건이나 법을 기록해 많은 사람들을 보게 했다. 왜 돌들에 석회를 바르라고 했는가? 쉽게 글자를 새기고 새긴 글자가 잘 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돌들에 석회를 바른 후 그 위에 율법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면 약속한 대로 가나안 땅에 들이시겠다고 했다(3절). 말씀중심적인 삶에 공동체의 성패가 달려 있다는 뜻이다. 특히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그 율법이 기록된 돌비를 에발 산에 세우라고 했다(4절). 에발 산은 저주를 선포하도록 선택된 산이다. 돌비를 그 산에 세우라고 한 것은 말씀에 불순종해서 저주받는 길로 가지 말라는 뜻이다.
세상에서 가장 복된 삶 중의 하나는 ‘기록하는 삶’이고 더 나아가 ‘기록을 문서로 남기는 삶’이다. 어느 공동체든지 문서로 기록을 남기는 서기는 가장 중요한 직책 중의 하나다. 각 교단마다 최고 직위인 총회장이 되려면 대개 서기를 거쳐야 한다. 공동체의 수장이 되려면 전체상황을 꿰뚫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공산당에서는 서기장이 대통령과 같은 직책이다.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남긴 사람들도 대개 문서를 남긴 사람들이다.
예수님의 사역과 말씀이 담긴 4복음서는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한 세대쯤 후에 기록된 문서다. 물론 예수님의 행적을 다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의 삶과 뜻 그리고 복음을 나타내기에는 충분한 기록이다. 기록된 글은 놀라운 파워를 가진다. 더 나아가 기록된 말씀은 더욱 놀라운 파워를 가진다. 기록된 말씀은 능력의 원천이면서 가장 위대한 영향력의 원천이다. 그것이 바로 문서선교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기록된 말씀은 영혼을 사탄으로부터 지키는 최상의 도구다. 성도의 궁극적인 싸움의 대상은 자기 정욕이나 자기감정이 아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에서 사도 바울은 말한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성도의 싸움의 궁극적인 대상은 악의 영이다. 그 악한 영과의 싸움을 이기게 하는 최대 무기가 바로 기록된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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