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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울타리를 벗어나라 (이사야 45장 1-3절)

by 【고동엽】 2022. 12. 31.

자기 울타리를 벗어나라 (이사야 45장 1-3절) < 당대의 고레스가 되라 >

 하나님의 자녀는 늘 희망 가운데 살아야 한다. 아직 내게 최상의 날은 오지 않았다. 최상의 날을 꿈꾸며 열심히 살라.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루가 지날 때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몇째 날이다.”라는 기록이 반복된다. 일반적인 하루는 아침부터 저녁까지지만 성경적인 하루는 저녁에 시작해서 아침으로 끝난다. 성경적인 하루는 처음보다 나중이 좋아지고 앞으로 더 좋은 날이 펼쳐질 성도의 삶을 상징한다.

 오늘은 실패했어도 내일은 승리할 것이고 지금은 어두운 인생길을 걸어가도 내일은 찬란한 아침햇살이 펼쳐질 것이다. 어떤 어둠 중에도 절망하지 말라. 왜 열심히 믿고 봉사했는데 어둠이 계속되느냐고 하지 말라. 믿음은 투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삶에 감사하고 하나님의 꿈에 동참하는 것이다. 복이란 수익에 너무 관심을 두지 말라. 밤도 품고 살겠다고 하라. 어두운 밤일수록 별빛이 더욱 빛나듯이 삶이 어두울수록 더욱 빛나는 믿음을 가지라. 인물은 어두운 시대에 나온다. 인격도 어두운 때에 나온다.

 이사야는 장래에 고레스란 인물이 천하를 제패하고 그의 도움으로 이스라엘은 해방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 예언이 선포된 지 170년 후 고레스는 메대의 속국인 안산이란 소국에서 감비세스 왕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왕이 되자 메대를 격파하고 바사를 세운 후 전 소아시아와 바벨론까지 정복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겨 해방시키고 보화를 주면서 성전을 재건축하는 일까지 도와주었다. 누가 그 일을 이루셨는가? 고레스가 이룬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고레스를 통해 이루셨다(3절).

 시대가 어두울수록 하나님이 쓰시는 인물이 반드시 나타난다. 아무리 연약해 보여도 하나님이 붙들어주시면 고레스처럼 영향력 있는 강력한 인물이 될 수 있다. 또한 아무리 해결이 힘든 문제도 하나님이 한번만 도와주시면 순식간에 해결될 수 있다. 시대가 어둡게 되면 고레스가 기다려진다. 한국 교회에 기도의 고레스가 나오고 전도의 고레스가 나오고 헌신의 고레스가 나와야 한다. 또한 정치적인 고레스와 경제적인 고레스도 나와야 한다.

< 자기 울타리를 벗어나라 >

 당시 고레스는 바벨론 등에서 가져온 금은보화를 창고에 쌓아두지 않고 유다 민족이 귀환할 때 그 금은보화를 보내 성전 재건축을 도왔다. 그것을 보면 왜 하나님이 고레스를 축복하셨는지 깨닫게 된다. 축복받으려면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것도 중요하고 무릎이 닳도록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와 동시에 재물 앞에서 성실하고 정직해야 한다. 내가 얻은 보화가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인정하면 하나님이 더 주실 것이다.

 구약 성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의 핵심 주제가 무엇인가? 영적인 부흥과 물질 관리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즉 물질을 어떻게 관리하고 사용하느냐에 따라 인격과 신앙이 좌우된다. 물질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부흥과 침체가 갈리고 성공과 실패가 갈린다. 참된 축복을 원하면 물질 문제에서 정직하고 진실하기를 힘쓰라. 물질을 얻는 것은 재주가 있고 부지런하면 대개 얻지만 물질을 잘 쓰는 것은 인격과 신앙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물질은 마귀의 도구도 될 수 있고 천사의 도구도 될 수 있다. 물질을 잘 쓰면 축복이 되지만 잘못 쓰면 저주가 된다. 마태복음 13장 44절을 보면 농부가 밭에 감춰진 보화를 얻으려고 대가를 치르고 밭을 샀다. 보화를 얻으려면 대가를 치르려고 하라.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내놓겠다고 각오하라.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 더 나아가 살리고자 하는 자는 더 사는 역사가 나타난다. 값싼 은혜를 추구하지 말라. 내 뜻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게 하고 신앙고백과 생활고백이 일치되게 하라.

 거짓 종교는 나를 위해 사는 길을 추구하게 하다가 화를 부르고 참된 종교는 남을 위해 사는 길을 추구하게 하다가 복을 부른다. 남을 죽이고 내가 사는 길을 추구하는 것은 짐승처럼 되는 길이고 나를 죽이고 남이 사는 길을 추구하는 것은 성도답게 되는 길이다. 후자의 길로 가야 하는 줄 알면서도 전자의 길로 갈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래도 하나님은 여전히 성도를 믿어주신다. 후자의 길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갈 수 없다. 그래서 기독교는 은혜의 종교다. 하나님의 은혜를 앞세워 ‘자기’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라.

 십자가를 외면하는 자녀를 보면 하나님의 마음은 쓸쓸해진다. 반면에 십자가를 기꺼이 지려는 자녀를 보면 하나님의 마음은 풍성해진다. 십자가를 지고 누군가를 위해 살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하나님은 그 마음에 넘치는 평안을 주실 것이다. 지금 결단하라. “나는 이 시대의 고레스가 되리라.” 그리고 기도하라. “하나님! 오늘도 주신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오니 저를 이 시대의 고레스로 사용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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