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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길 (미가 7장 1-10절)

by 【고동엽】 2022. 12. 31.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길 (미가 7장 1-10절) < 겸손하게 자신을 준비시키라 >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는 선거로 무혈혁명을 해 왕조를 바꾸는 것과 개념이 유사하다. 자당 출신 타 후보의 대통령 당선은 ‘왕의 교체’라는 개념을 내포하고 타당 출신 후보의 대통령 당선은 ‘왕조의 교체’라는 개념을 내포한다. 역사적으로 왕조가 바뀌면 전임 왕조 세력은 씨가 마르고 권력 중심에 있던 왕족 세력은 더 씨가 마른다. 조선의 이씨 왕조 개국 후 고려의 왕족이던 왕씨가 거의 몰살당한 것과 같은 비극적인 역사는 수없이 많았다.

 우리나라의 남북분단 상황에서 좌경 공포감은 보수정권에게 큰 정치적인 이득을 주었고 정권교체는 상당 기간 어려울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 생각이 IMF 경제위기로 깨지면서 1998년 진보정권이 탄생했다. 그때 일부 국민은 나라의 좌경화를 염려했고 당시 진보정권은 자기들이 좌경 정권이 아님을 나타내 국민들을 안심시키고 정치보복으로 비춰지지 않도록 ‘왕조의 교체’라는 개념에 걸맞은 혁명적인 변화는 비교적 자제한 편이었다.

 신임 대통령도 오랫동안 탄압받는 이미지로 인권 정치를 했기에 정치보복으로 비춰질까봐 더 몸을 사리면서 ‘왕조의 교체’라는 개념보다는 ‘왕의 교체’라는 개념 정도의 변화를 추구했다. 그래서 당시 보수 세력이 크게 다치지 않았기에 “정권교체도 별 것 아니네.”라는 안도감은 들었겠지만 그것이 보수 세력에게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반격의 기회가 쉽게 온 편이어서 반성의 기회가 적었기 때문이다.

 권력을 남용하면 정권교체 후 씨가 마를 수 있다는 선한 두려움이 불의한 권력 행사를 자제시킨다. 그러나 1998년 이후 10년의 진보정권은 처음 5년은 보수 세력이 연합된 진보정권이었고 그 다음 5년은 내부 분열로 힘이 빠진 진보정권이었기에 개혁의 동력이 약했다. 그러다가 보수 세력이 크게 다치지 않은 채 10년 만에 정권을 되찾았기에 “권력을 남용하면 안 된다.”는 교훈과 겸손을 뼈저리게 배울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 후 보수정권은 자기 진영이 생각하는 선을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의 불의와 불법은 괜찮다고 여겼던 것 같다. 이전 진보정권 때의 학습 효과로 인해 “앞으로 정권이 교체되어도 별일 없을 거야.”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지식수준이 높아지고 사회적 연결망과 감시망은 촘촘해지는데 옛날처럼 권력기관을 적법하지 않게 동원하는 의식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그런 민낯이 지금의 진보정권 하에서 하나씩 파헤쳐지고 있다.

 지금의 진보정권은 보수 세력의 좌경 프레임이나 정치보복 프레임을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다. 국민들이 이전 정권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면서 그 프레임에 잘 넘어가지 않을 것이란 자신감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이전의 진보 정권에서 화해란 명목으로 과거의 잘못된 관행에 대해 느슨하고 엉성하게 대처하다가 별로 개혁한 것도 없이 정권을 내주는 쓴 맛을 본 경험으로 인한 학습 효과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보수 세력의 반발을 개의치 않고 적폐를 깨겠다고 과감히 밀어붙이고 있고 아직까지는 국민 여론이 호의적인 것 같다.

 이번에는 보수 세력이 10년 전과는 달리 꽤 곤경과 아픔을 겪을 것이다. 그래도 한과 절망에 빠지기보다는 현 상황을 성찰의 기회로 삼고 바닥 민심의 중요성도 깨닫고 겸손하게 국민의 마음을 얻으려고 심기일전하면 반전의 기회가 생길 것이다. 바른 교훈을 위한 일시적인 정치적 고통은 어느 세력에게나 필요하다. 그래야 다음번에는 보다 바르고 겸손하고 정당한 모습으로 국민의 마음을 얻으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자괴감을 느끼는 보수 세력도 너무 실망할 필요가 없다. 진보정권이 교만에 빠져 잘못하면 국민의 마음이 멀어지고 반면에 보수 세력이 충분히 반성해 국민의 마음을 얻으면 정권을 다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겸손과 정의와 실력으로 정당하게 내일의 때를 준비하면 된다. 보수 세력은 이전의 정권교체 때 정치적인 고통을 비교적 크게 받지 않은 편이었기에 겸손과 공평과 정의로 국민의 마음을 얻는 일을 게을리 해서 지금의 고통을 자초했다. 그런 역사와 정치 현실을 생각하면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란 성경 말씀이 더 실감된다.

 교회도 국민의 마음을 얻도록 더욱 힘써서 불의한 탄압에는 과감히 맞서되 바른 쓴 소리는 겸손하게 듣고 공평과 정의의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해야 한다. 예전에 대형교회 목사는 정치 흐름도 좌우할 정도로 힘이 있었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져서 힘 있는 교회나 목사도 교만한 모습을 보이면 곧 패망의 길로 떨어진다. 진리를 가졌다고 교만한 모습을 보이면 사람의 마음을 더 얻지 못한다. 진리를 가졌기에 더 겸손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요즘 보수정권 하에서 커온 대형교회의 이미지로 인해 교회가 마치 보수 세력의 대표처럼 오해되는 것도 염려스럽다. 교회는 보수와 개혁 이미지를 다 품고 공평과 정의로 좌우 세력의 균형추 역할을 해야 한다. 비행기는 좌우측 날개가 균형 있게 작동해야 잘 난다. 현재 <한국호> 비행기는 우측 날개가 많이 상처 입은 상태다. 좌우의 선의의 경쟁은 필요하지만 경쟁이 전쟁처럼 되어 상대 날개를 완전히 부수려고 하면 공멸한다. 게다가 불법으로 상대 날개를 완전히 부수려고 하면 공멸 이전에 먼저 자멸한다는 것이 역사적 교훈이다.

 지금은 지식과 정보의 유통이 많아져서 옛날처럼 사람들이 거짓과 편견에 잘 넘어가지 않기에 진실이 힘이란 말이 더 뚜렷해진 시대다. 좌우 진영이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잘못하면 얼마든지 정권을 넘겨줄 수 있다는 마음으로 공정하게 정치해야 한다. 정권이 불법을 저지르면 정권교체가 두렵기에 어쩔 수 없이 정권 연장을 불법적으로 꾀하다가 결국 더 비참해진다. 불법이 없이 정당하게 경쟁하면 정권교체가 두렵지 않고 경기에서 한 번 진 것이라고 여기고 다음 선거에서 이기려고 자신을 더욱 겸손하게 가다듬고 준비하면 된다.

 정치인들은 잘못했으면 정당하게 정권을 내놓고 다시 정당하게 정권을 찾아오려고 해야 한다. 정치인이 권력기관을 이용해 상대 날개를 꺾으려고 하면 지금은 오히려 역효과다. 우측에서 안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면 안보팔이가 되어 참된 안보가 위협받고 좌측에서 인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면 인권팔이가 되어 참된 인권이 위협받는다. 안보와 인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고 진실과 정의와 공평과 겸손으로 국민의 마음을 얻으려고 해야 한다.

 교회와 교인은 좌우 진영의 정치 지형에서 균형 잡힌 조정자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한다. 특히 교회 내에서는 편향적인 정치 성향을 나타내지 말아야 한다. 같은 사건을 사람마다 다르고 볼 때도 많고 상황과 위치가 달라지면서 견해도 달라질 때가 많다. 다 부족한 존재로서 자기 견해를 절대 선이 아닌 조금 더 나은 선으로 여기려는 겸손하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바르고 건강한 사회를 선도함으로 사회의 부패를 막는 데 일조해야 한다.

<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길 >

 건강한 사회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스라엘의 부패한 타락상에 대한 미가의 안타까운 외침이 언급되는 본문을 통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몇 가지 길을 교훈 받는다.

1. 경건하고 정직하게 살라

 미가 당시 부패한 이스라엘의 가장 큰 문제는 경건하고 정직한 지도자의 결핍이었다(1-4절). 지도자나 목회자는 경건하고 정직하며 불의와 불법을 최대한 주의해야 한다. 특히 목회자는 정치적인 편향성이 없어야 한다. 목회자의 정치적 편향성은 다른 정치성향을 가진 성도에게 큰 상처가 된다. 목회자가 정권과 가까워지면 언젠가 정권이 바뀌면서 추락한다. 목회자가 정치 집회에 교인을 동원하면 교회 이미지도 나빠지고 나중에 여러 문제가 터지면서 어려워진다.

 음지가 양지가 되고 양지가 음지가 된다. 양지만 추구하면 언젠가 추락한다. 대형교회 목사라고 해서 대통령과 친한 척 알랑알랑 했다가 정권이 바뀐 후 자신도 곤란해지고 교인의 자존심에도 깊은 상처를 남길 때가 얼마나 많은가? 진짜 대 목사는 정치적인 편향성을 나타내지 않고 어쩔 수 없이 나타낸다면 고난을 당해도 약자의 편에 서는 모습으로 나타내야 성직자다운 모습도 잃지 않고 교인들의 자존심에도 상처가 남지 않는다.

 또한 지도자가 경건하고 정직하게 살려고 하면 세상 욕심을 잘 버려야 한다. 더하려고만 하지 말고 덜어내려고도 하라. 필자가 핸드폰 문자나 카카오톡을 안 하는 이유는 많은 정보 유통으로 머리 회로가 복잡해지지 않도록 삶을 단순화시키고 슬림화시키기 위해서다. 약속을 깨는 것도 일종의 거짓말로 여기고 사소한 거짓말도 주의하라. 약속했다가 귀찮다고 약속을 깨지 말고 약속했기에 귀찮아도 이행하려는 것이 경건하고 정직한 삶의 한 단면이다.

2.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

 미가는 이웃이나 친구, 더 나아가 배우자나 가족도 의지하지 말라고 했다(5-6절). 왜 가까운 사람에게 섭섭함을 느끼는가? 그로부터 무엇인가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가까워도 무엇을 얻겠다고 아예 기대하지 말라. 기대가 없어야 섭섭함도 없다. 가끔 <월새기>를 받아보던 가까운 지인이 앞으로 더 이상 구독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굉장히 미안해한다. 혹시 필자가 섭섭해할까봐 걱정한다. 어떤 친구나 지인은 마치 전별금조로 헌금을 많이 하고 <월새기> 구독을 중단한다. 그렇게 미안해하니까 오히려 필자가 더 미안하다.

 필자는 친구가 <월새기> 구독을 끊어도 “아니, 친구라면서 이럴 때 구독하고 도와야지.”라고 하면서 섭섭해 하지 않는다. 사모하며 찾는 다른 사람에게 <월새기가> 전달되면 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찾는 사람이 매달 크게 느는 편이지만 찾는 사람이 없으면 폐간하면 된다. 얼마나 편한가? 받을 생각은 없고 줄 생각만 있으면 안타까움은 있어도 섭섭함은 없게 된다. 그처럼 도움 받으려는 마음이 없으면 섭섭함도 없게 되지만 그런 넉넉한 모습을 보고 하나님은 신기하게 더 돕는 사람을 붙여주신다.

 섭섭함은 상대로부터 기대한 것을 얻지 못해 생기는 감정이다. 결국 섭섭함을 없애는 최선의 방책은 사람으로부터 받을 기대를 아예 하지 않는 것이다. 뇌물이 아닌 경우 순수한 선물이나 헌신은 기쁘게 받되 겉으로나 속으로나 받을 것을 기대하면서 공동체 생활이나 인간관계를 하지 말라. 기대지도 말고 기대하지도 말라. 주면서 기여하려고 해야 섭섭함은 줄어들고 넉넉함이 넘치게 된다. 기대하면 섭섭해지고 기여하면 넉넉해진다.

3.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하라

 이스라엘의 부패를 보면서 미가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길밖에 없음을 깨닫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자기 기도를 들어주실 것을 믿었다(7절). 절망적인 상황과 환경은 하나님께 돌아서서 기도하라는 표식이다. 구원받은 사실도 기쁜 일이지만 구원받은 사람답게 살도록 기도를 들어주실 하나님이 있다는 사실도 얼마나 기쁜 일인가?

 어려움이 생기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왜 하나님이 이런 문제를 주실까?” 필자도 교인이 힘든 일을 겪으면 밤새 울적함에 젖다가 “내가 목회자로서 약한 마음을 가지면 안 되지.”라고 하면서 새벽에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리면 그때 대개 울적함이 사라진다. 새벽시간은 상처가 놀랍게 치유되는 시간이다. 필자는 가끔 새벽기도가 없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새벽기도뿐만 아니라 기도 자체가 은총의 핵심 통로다.

 기도할 때는 ‘자기 복’만 위해 기도하지 말고 ‘우리 복’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더 나아가 달라고만 하지 말고 하나님과 기도로 교제하는 것 자체를 소중히 여기라. 하나님은 기도하기 전에 이미 자신에게 무엇이 있어야 할지를 다 아신다. 그 말은 기도할 때 ‘구하는 것’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암시다. 하나님의 선물에만 눈독을 들이지 말고 하나님 자신을 먼저 찾고 하나님을 사랑하라. 사랑이란 상대의 호주머니를 노리는 것이 아니다. 상대의 호주머니에서 무엇을 얻어내기보다 상대에게 좋은 것을 주려는 것이 사랑이다.

4. 하나님의 공의를 기다리라

 회개하고 바로 선 상태에서 인내하고 기다리면 빛을 보고 공의가 이뤄질 때가 반드시 온다(8-10절). 세상을 급히 바꿔보겠다고 안달하지 말고 때를 기다리는 법도 배우라. 복도 너무 빨리 받으려고 하지 말라. 때가 되어 복을 받아야 그 복이 유용해진다. 아이가 차를 몰면 위험해서 일정 연령 이상이 되어야 운전면허를 주듯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큰일이 맡겨지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높은 자리와 큰 축복만 바라지 말고 그 자리와 축복을 감당하고 소화할 수 있도록 자기를 계속 준비시키라. 그러면 쓰임 받을 때가 반드시 온다.

 자기가 뿌린 선의 씨앗이 언제 어떻게 열매를 맺을지 잘 몰라도 반드시 맺는다. 때로는 먼 훗날에 자기 자녀가 열매를 따기도 한다. 열심히 선의 씨를 뿌리라. 때가 되면 심은 대로 거둔다. 공평과 정의를 앞세워 살라. 욕심 많은 사람이 불공평과 부정과 불법과 부조리로 세상을 뒤틀어도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바르고 추상같이 정의를 세우심으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고 공짜 점심은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실 것이다.

 역사가 사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처음 된 것이 나중 되고 나중 된 것이 처음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한 독재자가 자기 출신 지역만 개발하고 정적의 출신 지역은 황무지로 남겨두었다. 50년 후에는 어떻게 되는가? 먼저 개발된 지역의 건물들은 다 노후화되어서 그 지역사회는 점차 건물과 함께 쇠퇴되었지만 반면에 황무지로 있던 지역에는 개발할 싼 택지가 많아서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면서 오히려 발전한다. 그렇게 공평과 정의로 하나님은 역사를 이끌어 가신다. 그러므로 눈앞의 현실만 보고 실망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주신 자기 달란트를 살려 끈기 있게 나아가라. 욕심을 부려 너무 서두르지 말라. 교회성장에 안달해서 목회자의 달란트, 주변 환경 여건, 꿈과 비전 등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세미나를 통해 배운 어떤 프로그램을 도입하면 부작용만 생긴다.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으면 결과도 좋지 않고 더 탈진된다. 모든 일에는 때와 시기가 있다. 바른 믿음으로 계속 자신을 준비시키고 나아가면 시간은 그의 편이 되고 그가 속한 사회도 건강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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