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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날을 꿈꾸라 (이사야 42장 10-13절)

by 【고동엽】 2022. 12. 31.

새 날을 꿈꾸라 (이사야 42장 10-13절) < 새 날을 꿈꾸라 >

 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교회에 다녔지만 사회의 부조리를 보면서 하나님의 정의에 대해 회의를 품었다. 그때부터 그의 삶은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 하게 되었다. 결국 데모대의 일원이 되었고 데모만 하면 늘 선두에 섰다. 어느 날,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가자 위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너무 암세포가 퍼져 의사는 수술을 포기하고 삼 개월 정도밖에 못 산다고 했다.

 그는 병원을 나서면서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1년만 더 살게 해 주세요.” 그렇게 기도하다가 자동차 창밖을 보자 갑자기 세상이 달리 보이는 것 같았다. 그때 하늘을 우러러 중얼거렸다. “아! 하늘이 이처럼 아름다운 줄 미처 몰랐구나. 내가 이 아름다운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했구나.”

 갑자기 세상이 전혀 달리 보였다. 마치 새로운 빛의 세계가 그 앞에 나타난 것 같았다. 그때 알 수 없는 감동의 전율이 일면서 회개의 고백이 터져 나왔다. “하나님! 이제까지 제 의로 똘똘 뭉쳐서 살았던 지난날을 용서해주세요.” 그때부터 그는 하나님께 자신의 생사를 온전히 맡기고 매일 감사하고 찬양하며 지냈다. 결국 위암 말기를 극복하고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했다.

 마음이 새로워지면 하늘과 땅도 새롭게 보인다. 한 해의 끝 날인 12월 31일과 한 해의 첫 날인 1월 1일은 똑같은 태양이 뜨고 똑같은 날이지만 심령이 변화된 상태에서 새해를 맞이하면 두 날은 전혀 다른 날이 된다. 해 아래 새 것은 없지만 새로운 경험과 새롭게 보이는 역사는 있다. 마음과 생각과 태도의 변화에 따라 오늘은 어제와는 전혀 다른 새 날이 될 수 있다. 그런 새 날을 꿈꾸라.

< 하나님을 찬송하라 >

 어떻게 오늘을 어제와는 다른 새 날로 만들 수 있는가?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10-11절). 하나님을 찬송할 때 하나님은 대적을 물리쳐주시고 그의 앞날을 거칠 것이 없게 만들어주신다(13절). 하나님은 한없이 부드럽고 자애로운 분이지만 때로는 강력한 권능으로 대적을 쳐서 멸하신다. 사람은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지만 하나님은 약자에게는 부드럽게 나타나시고 강자에게는 강하게 나타나신다. 그처럼 은혜로우신 하나님께 찬송과 감사를 넘치게 드림으로 내적인 마음이 변화되면 외적인 환경도 변화된다.

 찬송은 환경을 변화시키는 능력의 최대 원천이지만 왜 그런 능력이 잘 나타나지 않는가? 찬송에 대한 오해 때문이다. 찬송은 ‘찬송가를 많이 부르는 것’이나 ‘찬양 예배를 역동적으로 잘 드리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찬양예배 때 역동적으로 일어서서 찬양하고 소리 높여 찬양하고 손을 들고 찬양하면서 열심히 찬양 예배에 참석하지만 주일성수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거나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삶이 부족하다면 찬송이 환경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

 찬양 예배 때 역동적인 모습으로 찬양하는 삶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삶의 작은 일부분일 뿐이다. 희생과 헌신이 수반되지 않는 찬양은 사실상 복된 찬양이 아니다. 학생이나 청년이 교회 찬양 예배 때 역동적으로 찬양을 해도 교회를 위해 청소하거나 다른 음지의 봉사를 해보지 않는다면 그 신앙은 신실하고 헌신적인 신앙으로 자라지 못하고 오래 가지도 않고 복된 신앙도 아니다. 교회에서 청소하고 어르신들을 위한 식탁 봉사를 하기도 하면서 자신을 드리는 삶으로 나타난 찬송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능력 있는 찬송이다.

 성경은 찬송과 관련해서 ‘찬미의 제사’라는 표현을 쓰고 감사와 관련해서 ‘감사의 제사’라는 표현을 쓴다. 제사는 제물을 드리는 것을 뜻하고 최고의 제사는 자기를 제물로 드리는 것이다. 자기를 드리는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삶이 수반된 찬송이 진짜 찬송이다. 희생과 헌신도 없이 짧은 찬양 예배 시간에 역동적인 모습으로 찬양을 드리는 삶을 하나님을 찬송하는 삶으로 오해하면 그 찬송은 세상과 환경을 변화시키는 찬송이 되지 못한다.

 고통 중에도 찬송을 잃지 말라. 인간의 때와 하나님의 때는 다르다. 하나님은 무정한 분도 아니고 무능한 분도 아니다. 다만 잠잠하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분노를 자제하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은 성도의 고통을 무정하게 바라만 보시지 않고 그때 같이 마음 아파하시면서 가장 적절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계신다.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넉넉한 믿음으로 기다리면 가장 적절한 때에 환경이 극적으로 변화되는 수직상승 은혜의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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