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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의 5대 표식 (이사야 27장 1-13절)

by 【고동엽】 2022. 12. 29.

하나님의 사랑의 5대 표식 (이사야 27장 1-13절) 1. 원수의 심판

 하나님은 날랜 뱀 리워야단,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 바다에 있는 용으로 표현된 당시 3대 강국인 앗수르, 바벨론, 애굽을 심판하십니다(1절). 왜 심판하십니까? 이스라엘을 구원해 기쁨의 노래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2절).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위해 대적이 이스라엘을 해치는 상황을 잠시 허락해도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은 이스라엘이 아닌 대적이기에 결국 이스라엘은 회복시키고 대적은 철저히 심판하십니다(4절). 그 말은 심판은 스스로 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라는 암시가 담긴 말씀입니다. 특히 살인과 폭력에 의한 심판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예전에 미국의 한 유명한 극우 방송 설교가가 미국에 적대적인 남미의 한 대통령을 암살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석유를 무기로 미국을 위협하는 그를 제거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이 드는 전쟁을 하기보다 일등 저격수가 그를 암살하면 큰 유익이라면서 암살을 사주하는 말을 복음 전도자란 사람이 한 것입니다. 바른 종교라면 어느 종교에서도 암살과 테러 사주자는 이단입니다. 기독교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편견과 왜곡으로 가득 찬 그런 사탄적인 사람이 큰 교회를 이루고 많은 신도를 이끈다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예수님은 원수도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하나님이지만 삶에서도 하나님이셨습니다. 폭력이 넘치는 인간의 삶과는 너무나 낯선 삶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원수를 심판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원수의 결말을 생각하면서 불쌍히 여기십시오. 폭력과 불의를 방관하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의로우신 손길에 그 심판을 맡기라는 말씀입니다. 원수와 대적에 대한 심판을 스스로 하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가장 멋지게 악에 대해 보응해주시고 선에 대해 보상해주실 것입니다.

2. 세심한 보호

 하나님은 대적의 손에서 선민을 구원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세상 끝 날까지 밤낮으로 지켜주십니다(3절). 하나님께서 밤낮으로 지켜주신다는 사실을 믿을 때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고 편안하게 쉼도 가질 수 있습니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쉼을 가지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중요한 징표 중의 하나입니다. 쉼도 없이 스스로를 너무 지키려고 하지 말고 쉼을 통해 하나님의 지켜주심을 누리려고 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으려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이미 많이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를 음미하고 누리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예전에 한국의 기도원은 큰 기도소리가 자랑거리였지만 많은 서구의 영성훈련원은 침묵이 자랑거리였습니다. 뚜렷한 프로그램도 없이 얼마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침묵할 때 신기하게도 치유를 체험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몸이 아프면 몸의 자정능력과 하나님의 만져주심을 믿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치유를 촉진할 때가 많습니다. 가끔 쉬면서 가만히 있는 시간을 일부러 내십시오. 왜 사람과 사회의 병세가 깊어지고 왜 사고가 납니까? 쉼이나 생각도 없이 너무 서두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원래 급한 사람들이 아닌데 라면이 나오면서 바빠졌다고 합니다. 라면을 통해 식사를 빨리 하면서부터 삶에 여유를 잃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중요한 일을 위해서는 시간을 꼭 내십시오. 하나님 안에서 쉬는 시간은 오히려 시간을 잘 사용하는 것입니다. 주일성수를 기본으로 해서 가끔 가족이나 좋은 사람과 여행하거나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안식하고 쉬는 시간은 놀면서 낭비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그런 시간을 적절하게 가져야 삶에 활력과 지혜와 명철도 넘치고 하나님의 지켜주심도 있게 됩니다.

3. 최종적 승리

 하나님의 백성이 최종적으로 승리하고 번성의 은혜를 누릴 것입니다(6절). 현재의 부족한 현실과 과정을 보고 너무 안달하지 말고 최종 승리를 믿으십시오. 안달한다고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로 지켜주셔야 최종적으로 승리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성도의 최종 승리입니다. 실패도 최종 승리를 향하고 있고 고난도 최종 승리를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현재의 모습만 보지 말고 내일의 승리를 보십시오.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쉽게 판단하지 말고 “내가 혹시 이면을 보지 못한 것이 있지 않을까?”를 고려해서 판단을 늘 주의하십시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은 “과정도 중시하라는 말이지 과정을 보고 남을 판단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과정에서의 초라한 모습으로 인생이나 사역의 성패를 단정하지 마십시오. 땀과 헌신과 사랑은 긴 시간으로 보면 결코 배반이 없습니다. 누가 오리를 가자거든 과감히 십리를 가주십시오. 오리 인생은 종 인생이고 십리 인생은 주인 인생입니다. 오리 인생은 율법 인생이고 십리 인생은 은혜 인생입니다. 오리 인생은 저차원의 인생과 최종적인 실패로 귀결되지만 십리 인생은 고차원의 인생과 최종적인 성공으로 귀결됩니다.

 십리 인생으로 살면 최후에 웃습니다. 오리 인생은 시계를 보는 인생이고 십리 인생은 미래를 보는 인생입니다. 현재의 모습으로 판단하거나 실망하지 마십시오. 현재 힘들어도 꿈을 잃지 마십시오. 하나님 안에서 땀을 흘리며 과정에 충실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인생 및 사역의 물꼬가 터지게 하시고 거룩한 만남도 허락하시면서 꿈과 같은 영적인 승진이 이뤄지게 하실 것입니다. 그처럼 최종 승리를 바라보며 꿈과 힘을 잃지 말고 나아가십시오.

4. 적당한 견책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책망해도 적당하게 살 길을 열어주실 것이고 또한 포로가 되어 타지로 쫓겨 갈 때도 은혜의 손길을 베풀어서 그 가는 길에 역풍이 불지 않게 하심으로 최악의 상황을 막아주십니다(7-8절). 이스라엘은 적당하게 견책 받지만 대적들은 엄중하게 심판받습니다(9-11절). 성도의 고난은 회개와 선한 변화를 위한 적당한 견책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성도의 고통과 고난과 기도제목은 하나님의 사랑의 흔적이고 심지어는 죽음조차도 하나님의 사랑의 흔적임을 예수님의 십자가는 잘 말해줍니다.

 저의 아버님은 어렵게 살면서도 8명의 자식을 다 대학을 졸업시켰습니다. 12년 사이에 8명의 자녀를 낳았기에 첫째 누님이 대학교 4학년이고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는 8명이 모두 학교를 다녔었고 3명이 동시에 대학을 다닐 때가 4년이나 연속되기도 했습니다. 새 학기 등록금을 낼 날이 되면 아버님은 자녀들이 눈치 채지 않게  한숨을 푹푹 쉬셨지만 그래도 어떻게든지 등록금을 마련해오셨습니다. 매일 저녁 귀가하실 때 하루 매상이 적으면 힘이 많이 빠진 모습을 하셨습니다. 그 생각을 하면 아버님이 존경스럽고 감사합니다.

 그런 아버님도 때로는 엄하게 매를 드셨습니다. 8명이나 되는 자녀를 바로 키우려면 어쩔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매를 맞으면 자기 잘못은 외면하고 매 맞은 것만 가지고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크면서 그 매가 사랑의 행위였음을 깨달았습니다. 부모들은 대개 자식을 그렇게 키웁니다. 어떤 일로 부모님께 너무 섭섭해 하지 마십시오. 지혜와 인내와 능력은 조금 부족했어도 그 상황에서 부모님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도 때로는 적절하게 사랑의 매를 드십니다. 그때 섭섭해 하지 말고 변함없이 하나님을 최고로 예배하십시오.

5. 예배의 회복

 하나님은 심판의 날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시 모으시고 그때 앗수르와 애굽은 멸망하고 앗수르와 애굽으로 끌려갔던 사람들이 돌아와 하나님을 다시 예배할 것입니다(12-13절). 대적의 패망은 이스라엘의 회복으로 연결되고 이스라엘의 회복은 최종적으로 예배 회복을 위한 것입니다. 본문의 결론적인 말씀은 예배의 중요성을 다시 깨닫게 합니다. 모든 회복은 예배 회복을 위한 과정이어야 합니다. 예배 회복은 성도가 지향해야 할 최대 목표입니다.

 예배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차림새도 예배자답게 하십시오. 잔치에 갈 때 단정하게 하고 가야 초대한 사람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초대받은 사람이 반바지나 작업복을 입고 슬리퍼를 신고 잔치에 참석하면 큰 실례입니다. 단정한 복장으로 참여해서 주인의 체면도 생각해주고 자신으로 인해 잔치가 조금이라도 빛나도록 하는 것이 잔치 참여자의 바른 자세입니다. 예배에 참석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예배드리러 올 때 최고의 마음과 정성과 모습을 예비하고 오는 것이 성도의 예절입니다. 예배하는 사람은 예절 바른 사람도 되어야 합니다.

 예배드리러 갈 때는 예배 자체를 위해서도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오늘도 성공적인 예배자가 되게 하소서.” 그처럼 기도의 옷도 준비하고 예배 시간 전에 와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예배에 참여하십시오. 유대인은 안식일 전날을 ‘안식일의 예비일’이라고 해서 안식일을 준비하는 날도 중시했습니다. 성도도 토요일부터 예배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살면 주일에 예배하면 은혜를 받을 가능성이 커집니다. 무엇이든지 준비가 철저하면 성공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예배도 미리 잘 준비하면 성공적인 예배가 됩니다.

 특히 예배를 다른 어떤 일보다 중시하십시오. 학생도 공부보다 예배를 우선시하며 하나님의 마음에 들면 얼마나 복된 길이 열리겠습니까? 만약 목사님에게 추천 기회가 생기면 어느 누구보다 예배하는 학생을 이렇게 적극적으로 추천할 것입니다. “제가 보증합니다. 그를 써보세요.” 무엇보다 하나님께 탄원할 것입니다. “하나님! 그 예배하는 학생과 성도를 지켜주세요.” 그러면 얼마나 복된 길이 열리겠습니까? 예배가 회복되면 모든 것이 회복됩니다. 결국 하나님이 예배를 회복시켜주시는 것은 무엇보다 큰 사랑의 징표입니다.

<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 >

 가끔 하나님의 사랑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때가 많습니까? ‘믿음 안의 자신’과 ‘현실 안의 자신’ 사이에 내적인 갈등도 심하게 겪을 때도 많습니다. 작은 것을 꼭 움켜쥐다가 큰 것을 잃을 경우도 얼마나 많습니까? 넓은 마음을 가지고 살고 싶지만 조금만 모욕을 받고 손해를 입어도 노발대발하고 어려운 자를 도와야 하는 줄 알면서도 속으로 무시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불의를 못 참는 것 같지만 자기 불의에는 눈을 감을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내적인 갈등이 있는 것입니다.

 성도에게는 내적인 갈등이 더 심할 수 있습니다. 사탄에게 무방비 상태로 당하기는 싫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사람은 다 부족하고 연약하고 죄악에 사로잡혀 신음할 때가 많습니다. 그것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하나님을 간절히 붙잡고 하나님의 은혜를 갈구하며 사십시오.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없으면 한 시도 살 수 없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지금까지 자신과 같은 부족한 죄인에게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격적입니까?

 살면서 가끔 어려운 일을 겪어도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결코 사랑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성육신하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을 진실로 믿고 구원을 얻었다면 그 다음부터는 어차피 죽었다가 살아난 인생이기에 어차피 덤으로 사는 인생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고난과 시련이 와도 이미 플러스 인생을 살고 있다고 믿고 하나님의 절대사랑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옛날에 절대 권위를 가진 존경 받는 한 왕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왕이 한 비천한 여종을 사랑하면서 진실한 사랑을 그 여종과 나누기를 원했기에 고민했습니다. “어떻게 그 여종에게 사랑을 고백할까?” 그냥 고백하고 싶어도 왕의 신분이 진실한 고백을 주저하게 했습니다. 왕이 자기 신분을 밝히고 여종에게 청혼하면 그녀는 그 제의를 거절할 수 없겠지만 그러면 여종의 진실한 사랑과 진실한 마음을 얻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왕은 대등한 사랑과 진실한 사랑을 원했습니다. 왕의 신분을 내세워 여종을 사랑하면 여종의 사랑은 얻을 수 있어도 평생 진정한 사랑관계가 아닌 종속관계가 펼쳐질 것 같았습니다. 왕은 여종이 자신을 왕이 아닌 한 훌륭한 인격체로 사랑해주기를 원했습니다. 결국 그 소원을 이루려고 스스로 비천한 신분이 되기로 결정하고 평민의 옷을 입고 여종이 사는 오두막으로 향했습니다. 그때 왕은 단순히 평민처럼 변장만 한 것이 아니라 참된 사랑을 얻으려고 왕좌를 깨끗이 포기하고 진짜 평민이 되었습니다. 그 왕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은 참된 사랑을 위해 아들까지 내어주셨고 아들이신 예수님은 기꺼이 죽으셨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고난 중에 사탄이 찾아와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고 해도 그 말을 무시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합니다. 하나님은 대적조차 심판하기를 원치 않으시고 화친하기를 원하십니다(5절). 그런 하나님이 회개를 앞세운 신실한 성도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얼마나 정교한 미래의 축복 계획을 가지고 계시겠습니까? 늘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며 자신감 있게 사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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