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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를 잘 돌봐주십시오 (이사야 16장 1-5절)

by 【고동엽】 2022. 12. 29.

약자를 잘 돌봐주십시오 (이사야 16장 1-5절) < 좋은 친구를 두십시오 >

 하나님은 모압의 심판을 경고하면서도 그 심판으로부터 건짐 받는 방법도 제시합니다. 모압이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건짐 받으려면 유다에게 조공을 바쳐야 한다고 했습니다(1절). 유다와 화친하며 가까이 지내라는 뜻입니다. 왜 모압이 특별히 유다와 화친하며 지내야 했을까요? 모압 주변의 강력한 제국들과는 달리 유다는 인자함과 충실함과 정의와 공의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5절).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건짐을 받고 은혜를 받으려면 좋은 영적인 친구를 가까이해야 한다는 암시입니다.

 자신이 사귀는 친구는 자신의 내일의 축복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기에 거룩하고 신실하고 순종적이고 긍정적인 친구를 가까이하십시오. 찬란한 비전은 대개 혼자 이루기 어렵기에 자신의 비전과 믿음과 재능을 격려해줄 친구가 필요합니다. 때로는 거룩한 도전을 하면서 도와주고 성장시켜줄 좋은 영적인 친구가 없다면 꿈과 비전을 높은 차원과 수준으로 이뤄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비전을 이해해주고 장점을 격려해주고 낙심되는 환경에서 “할 수 있다.”고 위대함의 씨를 뿌려주는 친구가 필요한 것입니다.

 옆에 있는 친구가 은근히 깎아내리고 거의 습관적으로 “할 수 없다.”는 분위기를 조성하면 좋은 작품 인생을 만들어내기가 더욱 벅차게 됩니다. 가까이하는 사람으로부터 질질 끌리는 상태에서 인생을 전진시키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습니다. 어떤 사람은 부정적인 의견을 가지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집니다. 착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복된 인생을 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불의한 사람과 결별하지 못해서 불의와 결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좋은 것(good)’도 기뻐하시지만 ‘바른 것(true)’을 더욱 기뻐하십니다. 진선미(眞善美)의 원리에서 ‘좋은 것인 선’도 중요한 가치지만 ‘바른 것인 진’은 더 앞서야 하는 가치입니다. 나쁜 생각과 성품과 태도와 과감히 결별해야 좋은 생각과 성품과 태도가 생깁니다. 사람을 쉽게 정죄하고 판단하면 절대 안 된다는 전제 하에서 나쁜 영적인 친구와 과감히 결별하려고 할 때 좋은 영적인 친구가 찾아옵니다. 좋은 영적인 친구를 사모하십시오. 이별의 순간을 믿음으로 잘 승화시키면 그것이 더 좋은 새로운 만남의 계기가 됩니다.

< 약자를 잘 돌봐주십시오 >

 전쟁이 나고 나라가 어려워지면 더 비참해지는 존재가 여자들입니다. 본문 2절에서 모압의 딸들이 아르논 나루에서 떠다니는 새처럼 된다는 것은 모압 백성들, 특히 힘없는 약한 백성들이 비참하게 흩어질 것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어려울 때 어려운 자를 살피는 것은 어려움을 벗어나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본문 3절을 보십시오. “너는 방도를 베풀며 공의로 판결하며 대낮에 밤 같이 그늘을 지으며 쫓겨난 자들을 숨기며 도망한 자들을 발각되게 하지 말며.” 선지자가 ‘공의의 판결’을 언급할 때는 늘 “힘없는 자를 괴롭히지 말라.”는 메시지가 숨어 있기에 이 말씀은 약자와 피난민을 잘 돌봐주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야 모압의 압제자가 멸절하고 모압에게 피할 길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4절).

 하나님의 뜻은 약자를 위하는 것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약자를 위하셨습니다. 사람이 약자를 위한다고 할 때는 정신적이고 사회적인 우월의식이 은근히 깔려있는 경우도 있지만 예수님의 삶은 약자를 위한 삶의 순수한 결정체였습니다. 그런 기독교 진리를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니체는 “하나님은 죽었다. 기독교는 약자의 종교다.”라고 비웃으며 초인사상을 들고 나왔습니다. 초인 정신을 가져야 세상을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나중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정신병에 걸려 횡사했습니다.

 나중에 니체의 사상에 심취해 정치판에 들어가서 그 사상을 활용한 사람이 히틀러였습니다. 그는 초인사상을 가지고 세상을 정복하려고 했습니다. 그 결과 수천만 명이 죽었습니다. 약자를 생각할 줄 모르는 초인사상은 저주로서 결국 지옥을 만듭니다. 인류 역사가 그것을 증명합니다. 결국 진짜 약자요 진짜 패자는 니체와 히틀러였습니다.

 교회와 교인이 힘을 숭상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지는 길입니다. 현대의 무조건적인 성공주의도 조심해야 하고 기복주의적인 세미나도 조심해야 합니다. 참된 성공은 힘이 강해지고 숫자가 많아지고 돈이 쌓이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진짜 성공은 내게 있는 것으로 약자를 돕는 것입니다. 때로 하나님이 강함을 주시더라도 그 강함을 약자를 위하는 쓰는 자가 진짜 승리자가 됩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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