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이 주시는 변화 (이사야 32장 5절) < 성령님이 주시는 변화 >
영적인 사람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시야가 열리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3장 12-16절을 보면 영적인 사람은 ‘수건을 벗은 얼굴’을 가지게 됩니다. 반면에 육적인 사람은 ‘수건을 쓴 얼굴’을 가진 것처럼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영적인 사람은 온통 부정적인 환경에서도 긍정적인 것을 보지만 육적인 사람은 온통 긍정적인 환경에서도 부정적인 것을 봅니다.
영적인 눈은 초월적인 눈입니다. 육안으로 보면 베드로는 쓸모없는 갈릴리 바다의 어부에 불과했지만 영안으로 보면 베드로는 예루살렘을 뒤흔드는 거대한 재목이었습니다. 성령이 함께 하면 하나님의 초월적인 시야가 생깁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가치 없는 것을 통해 위대한 가치를 발견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을 볼 때 현재의 모습으로 보지 말고 그의 가치와 가능성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을 보는 시야도 달라져야 합니다. 자신에게도 놀라운 가능성이 있다고 믿으십시오. 자신에 대해 큰 가치를 부여하십시오. “나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 아니다. 나를 통해 하나님의 이상이 서고 하나님의 교회가 든든히 선다.”는 자신감을 가지십시오. 성령의 빛으로 비춰보면 자신을 통해 놀라운 가치를 볼 수 있습니다. 하늘에 닿는 벧엘의 사다리는 여전히 놓여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성령 받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변해서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여러 변화가 있지만 어떤 변화보다 복된 변화가 바로 자기 변화입니다. 본문에서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된다.”는 말씀은 성령이 임할 때 외적인 환경의 변화가 있음을 뜻하고 “아름다운 밭을 삼림으로 여기게 된다.”는 말씀은 성령이 임할 때 내적인 마음과 생각과 시각의 변화가 있음을 뜻합니다.
사람들은 변화보다 열매를 좋아하지만 열매 전에는 먼저 ‘변화’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열매가 빌딩이라면 변화는 그 빌딩의 기초와 같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가장 안타깝고 비극적인 모습이 열매에 대한 꿈은 있지만 변화에 대한 꿈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면 새로운 꿈과 비전이 생기고, 현재의 경험보다 훨씬 발전적 생각이 떠오르고, 보다 차원 높은 세계를 지향하게 됩니다. 성령이 임하면 다음의 변화가 생깁니다.
1) 눈이 달라집니다
성령이 임하면 가능성을 크게 보게 됩니다. 그때 부정적으로 보았던 것을 긍정적으로 보고 절망에서 희망을 봅니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한다는 확신을 가지십시오. 지상 최고의 무기는 ‘하나님의 사랑’이란 무기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어렵고 답답한 일을 당하고 공격도 당하고 좌절도 겪습니다. 그때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위로부터 파도처럼 밀려오는 하나님의 생기와 사랑을 통해 넘치는 희망이 보이게 됩니다.
2) 눈이 좋아집니다
고린도전서 2장 9-10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성령이 임하면 찬란한 전망과 비전이 확실해집니다. 더 나아가 참과 거짓을 가려내는 분별력이 생기면서 이단에게 미혹되지 않게 됩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이단에게 미혹되지만 않으면 거의 절반은 성공한 셈입니다.
3) 눈이 높아집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보다 나은 세계에 대한 전망과 비전이 생기면 지상에서 자신을 매혹시켰던 것들에 미혹되지 않게 됩니다. 또한 천국과 하나님만 사모하면서 아파트 평수 넓히는 것보다 선교와 구제의 지경이 확장되는 것을 더 소원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눈이 교만하게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차원 높게 높아지면 미운 사람도 미워하지 않게 됩니다. 사람을 미워하지 말고 어둠의 세력을 미워하십시오. 사람을 잘 관리하고 통제하려고 하기보다 상황을 잘 관리하고 통제하려고 할 때 미움 문제도 비교적 잘 극복할 수 있습니다.
4) 눈이 빛납니다
성령이 임하면 생기 있고 활기차게 타오르는 눈빛이 됩니다. 그래서 시간도 그냥 헛되이 보내지 않고 사소한 것도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때 철저히 준비하는 삶을 살게 되고 일을 대할 때도 집착으로 하지 않고 열정으로 하게 됩니다. 눈이 빛난다는 것은 생명력이 넘치게 된다는 암시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종교’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기’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종교를 붙들면 권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습니다. 성령의 생기만 들어가면 어떤 환경에서도 내일의 소망이 뚜렷하게 보입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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