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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용서는 쉽지 않다

by 【고동엽】 2022. 12. 24.

진짜 용서는 쉽지 않다

 

   프랑스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Gabriel Marcel)이 들려주는 얘기다. 한 여자가 잠깐의 실수로 불륜을 저질렀다. 죄책감이 밀려왔다. 시간이 지나면 잊힐 줄 알았는데 잘 잊히지 않았다. 고뇌하며 미안한 마음으로 남편에게 더 잘해주었지만 죄책감은 그대로였다. 결국 10년 만에 남편에게 자기의 불륜 사실을 고백했다. “여보! 10년 전에 제가 잠깐 실수로 한 남자와 그만 일을 저질렀어요.”
   
  그 말을 듣고 남편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알았어. 용서할게.” 바로 그때, 아내가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나는 당신과 더 이상 같이 못 살아요!” 그러면서 막 뛰쳐나갔다. 남편이 놀라서 뒤따르며 말했다. “여보! 왜 그래? 용서한다고 했잖아?” 그때 아내가 말했다. “당신의 용서는 구토가 나요.”
   
  진짜 용서는 쉽지 않다. 고뇌가 없는 용서는 진짜 용서가 아니다. 만약 배우자로부터 그런 고백을 들으면 화를 내고 집을 뛰쳐나가 고민하다가 며칠 만에 들어와서 이렇게 말해야 정상이다. “여보! 그래도 내겐 당신이 필요해요.”
   
  용서는 고뇌하면서 고뇌하는 상대방을 사랑으로 받아줄 때 이뤄진다. 마르셀은 말했다. “사랑이 시작되려면 먼저 서로를 초대하십시오. 둘이 사랑으로 결합되려면 ‘나와 함께’란 신호가 상대에게 전달되어야 합니다. 서로의 삶에 참여하려는 의지가 둘 사이에 교감될 때 ‘나’를 ‘당신’에게 열어줍니다. 동시에 ‘당신’을 ‘나’에게 열어주고 그것을 내가 깨달으면서 사랑의 신비한 공존((Co-esse)이 실현됩니다.”
   
  용서는 ‘사랑과 위로를 찾는 서로’에게 건너갈 다리를 놓는 작업이다. ‘인류를 사랑하는 것’보다 ‘그대를 용서하는 것’이 더 중요한 과제다. 거센 폭풍이 불 때 다른 새들은 처마 밑에 숨지만 독수리는 강한 양 날개로 비행을 즐긴다. 그처럼 영혼을 천상의 세계로 비상하게 하는 양 날개는 사랑과 용서다.
   
  힐러리의 고백이다. 어느 날, 남편 클린턴이 르윈스키와의 스캔들로 법정에 나가면서 계면쩍게 웃으며 말했다. “여보! 내가 르윈스키와 불미스런 관계가 있었소.” 그 말을 듣고 힐러리는 계면쩍게 웃는 남편의 모가지를 죽도록 비틀고 싶었다. 곧 죽음과도 같은 고통의 시간을 지낸 후, 힐러리는 자기감정을 포기하고 생각했다. “그래도 그는 내 남편이고, 내 딸의 아버지고, 대통령이니 사랑해야만 된다.”
   
  이 세상에 ‘용서를 좋아하는 자기’는 없다. 용서해 보려고 노력하면 더 용서가 힘들다. 용서는 용서하려는 자기까지 포기해야 이뤄진다. 필자는 미국에서 공부할 때 울적할 때마다 자주 근처 공동묘지를 찾았다. 그러면 신기하게 울적함이 사라졌다. 용서가 힘들 때는 무덤 안의 내 모습을 상상해볼 때다. 산 사람에게는 용서가 어렵지만 죽은 사람에게는 용서가 쉽다.

 

이한규의 <상처는 인생의 보물지도> 치유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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