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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인 삶의 2대 요소 (로마서 1장 1절)

by 【고동엽】 2022. 12. 24.

성공적인 삶의 2대 요소 (로마서 1장 1절) 1. 주님의 종이 되는 것

 사도 바울은 스스로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표현했습니다(1절). 당시에 종은 사람이 아니었고 집에 있는 가구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사람에게 가장 큰 행복은 자유를 얻는 것이고 가장 큰 불행은 종이 되는 것인데 왜 사도 바울은 자신을 종이라고 했을까요? 진짜 자유는 주님의 종이 되는 것에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미신은 믿으면 믿을수록 자유를 잃습니다. 결혼도 아무 날 못하고, 이사도 아무 날 못갑니다. 심한 사람은 집에 못 하나 박는 것도 정기가 끊길 수 있다고 조심합니다. 반대로 예수님을 잘 믿으면 대 자유가 생기고 그에 따른 대 평안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자유를 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고 이런 고백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제가 가진 물질, 시간, 재능, 위치 등 모든 것을 하나님을 위해 쓰겠습니다.”

 성도들 중에도 종처럼 하나님 말씀을 듣기보다는 주인처럼 하나님께 요구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들은 기도해도 거의 “달라!”는 기도만 합니다. 죄의 종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여! 들으소서. 종이 말하겠나이다.” 그러나 종은 말하는 자가 아니라 듣는 자입니다. 참된 종은 사무엘처럼 이렇게 기도할 것입니다. “주여! 말씀하소서. 종이 듣겠나이다.” 늘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사는 것이 죄의 종이 되지 않는 길입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좋아하지만 ‘새로운 것’이 다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오래된 것’이 더 가치 있을 때도 많습니다. ‘오래된 것’은 ‘새로운 것’을 위해 언제든지 길을 열어줄 줄 알아야 하고 ‘새로운 것’은 ‘오래된 것’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새로운 것’을 너무 좋아하면 얼마 후에 또 ‘새로운 것’을 찾게 되면서 점차 ‘화려한 것’과 ‘짜릿한 것’과 ‘황홀한 것’과 ‘신기한 것’을 추구하게 되고 결국 죄의 욕망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황홀한 것과 신기한 것을 너무 추구하면 이단에 미혹되어 태워지는 부나비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왜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잃습니까? 자신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참된 자유는 하나님만이 주시기에 하나님의 종이 되면 풍성한 자유를 누리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자유하면 세상의 종이 되어 참된 자유를 빼앗깁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주님의 종’으로 여기고 절대 복종했기에 풍성한 자유를 누리고 위대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2. 확고한 목표를 가진 것

 사도 바울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에 대한 확고한 삶의 목표와 소명이 있었습니다(1절). 그처럼 성공적인 삶을 살려면 삶의 목표와 사명이 분명해야 합니다. 왜 사는지 그리고 무엇을 위해 사는지 모르고 열심히 살면 성공하기도 힘들고 성공하더라고 그 다음에 공허함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열심히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삶의 목표를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뚜렷한 삶의 목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를 지는 것’이었습니다. 사탄은 시험을 통해 그 목표를 흐리게 하려고 스타가 되라고 유혹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세상의 영광에 유혹되지 않으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영광으로 진짜 중요한 것을 놓치면 안 됩니다. 십자가의 의미를 모르면 ‘스타’가 ‘사탄’이 되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신기한 체험을 하는 것보다 십자가를 지는 것이 훨씬 가치 있는 일입니다. 그처럼 ‘신기한 일’과 ‘가치 있는 일’을 분별해서 늘 가치 있는 일을 앞서 추구해야 합니다.

 데이빗 카퍼필드라는 세계적인 마술사가 있습니다. 그는 신기한 마술을 많이 행합니다. 비행기를 갑자기 사라지게 하는 등 신기한 마술을 많이 시행합니다. 사람들은 그를 훌륭한 마술사라고 하지만 그의 마술 실력 때문에 그를 위인이라고 존경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녀들에게 “이 다음에 커서 카퍼필드와 같은 마술사가 되라.”고 하거나 더 나아가 “용한 점쟁이나 용한 무당이 되라!”고 하는 부모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신기한 일이 가치 있는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님 십자가에 달리시지 않고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영광을 얻는 길로 가셨다면 그 당시의 순간적인 스타가 될지는 몰라도 2천년 후의 지금까지 찬란한 빛을 발하는 구세주가 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삶은 목표를 뚜렷이 하셨기에 구원의 길을 여실 수 있었습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표를 뚜렷이 하는 것입니다. 미래는 쉽게 보장되지 않습니다. 영광스러운 미래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푯대를 분명히 하고 전심을 다해 그 푯대를 향해 사도 바울처럼 일직선으로 가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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