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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변화시키는 도구 (누가복음 22장 35-38절)

by 【고동엽】 2022. 12. 24.

세상을 변화시키는 도구 (누가복음 22장 35-38절) < 뜻을 품고 일어서십시오 >

 2015년 말, <월새기(월간 새벽기도)>로 큰 은혜를 받은 한 집사님이 찾아와 <월새기 영어판> 발행의 물꼬를 트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분은 한때 성공한 사업가였는데 최근에 큰 고난에 처해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그때 <월새기>를 통해 큰 은혜를 받고 재기의 꿈을 되살리고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자기처럼 많은 사람들이 <월새기>를 통해 은혜를 받게 하고 싶어서 <월새기 영어판> 발행의 물꼬를 트겠다는 꿈을 가진 것입니다.

 그분이 물었습니다. “목사님! <월새기 영어판> 발행을 시작하려면 어느 정도 필요한가요?” 제가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거창하게 시작했다가 지속시키지 못하면 돈키호테처럼 되니까 꽤 재정이 있어야 합니다. 미국에 사무실도 마련하고 사람도 최소한 4명은 필요합니다.” 그 정도만 말하고 끝내려는데 그분이 자꾸만 구체적인 액수를 물었습니다. 할 수 없이 말했습니다. “OO 원 정도 있으면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얘기를 듣고 그분이 말했습니다. “제가 여러 번 호텔에서 후원의 밤 행사를 주최했는데 <월새기 후원의 밤> 행사를 하면 어떨까요? 300명쯤 모일 텐데 목사님은 와서 30분 정도만 말씀을 전해주시고 비전 설명을 해주시면 됩니다.” 제가 조금 비전 성취가 늦어도 그런 공개적인 행사보다는 은밀한 헌신의 손길을 통해 사역을 진행시키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분이 말했습니다. “목사님의 취지와 방향을 잘 알겠습니다. 저도 목사님의 사역을 은밀하게 도울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열심히 뛰겠습니다. 저를 위해서도 기도해주세요.”

 그 후 그분은 <월새기> 사역을 위해 소리 없이 조금씩 도왔습니다. 그러던 중, 작년 9월에 그분이 전화했습니다. “목사님! 새롭게 사업을 추진하면서 기적적으로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최종 계약 전에 지금 마지막으로 투자자를 만나러 가는 중입니다. 이번 계약이 성사되면 감사한 마음으로 <월새기 영어판> 사역의 물꼬를 트도록 헌신하겠습니다. 기도해주십시오.”

 그 전화를 받고 저도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월새기 영어판> 발행이 하나남의 뜻이라면 그 계약이 이뤄지게 하소서. 계약이 무산되면 거기에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는 줄 믿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분이 실망하지 않고 계속 꿈을 품게 하소서!” 그날 아쉽게도 최종 계약이 무산되었지만 감사하게도 그분은 그 일로 실망하지 않고 계속 꿈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그 후로도 <월새기 영어판> 발행의 물꼬가 터지게 해달라고 저보다 더 간절히 기도하면서 가끔 전화와 문자로 힘이 되는 말을 해줍니다. 얼마나 귀한 영혼입니까?

 ‘은혜 받는 자’는 ‘은혜 받을 자’의 길을 열어주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을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구원하고 변화시키는데 쓰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 선한 목적을 가지고 물질이나 능력도 추구하십시오. 그런 선한 목적이 없다면 얼마나 허무한 삶입니까? 좋은 일에 쓰지 못할 물질과 능력은 행복의 도구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불행의 도구가 됩니다. 좋은 뜻을 품고 일어서십시오. 나 한 사람의 힘은 작은 힘이 아닙니다. 영혼 구원과 변화를 위해 작은 힘이라도 보태면 그 힘이 나비효과를 일으켜 세상을 변화시키는 큰 힘이 됩니다.

< 세상을 변화시키는 도구 >

 누가복음 10장을 보면 예수님이 70명의 제자를 둘씩 각 지역으로 전도를 보내실 때 “전대나 배낭이나 신발을 가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최후의 만찬석상에서는 전혀 다르게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36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배낭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예수님은 마지막 때를 준비시키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도구 3가지를 가지라고 명령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1. 전대

 예수님은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전대는 ‘돈 주머니’를 뜻합니다. 이 말씀은 소극적인 의미로는 “부를 배타하지 말라.”는 의미지만 적극적인 의미로는 “사명감을 가지고 사심 없이 부를 추구하라.”는 의미입니다. 왜 사명감을 가지고 부를 추구해야 합니까? 부를 잘 쓰면 세상을 변화시키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부를 무시하면서 큰소리칩니다. “하나님의 일에 무슨 돈이 필요하냐? 예수님이 돈을 가지고 사역하라고 가르치셨는가?” 그러나 예수님이 누가복음 9장에서 “전대를 가지지 말라.”고 하신 말씀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무일푼이었다는 뜻도 아니고 전도자는 돈을 절대 가져서는 안 된다는 뜻도 아닙니다. 그때는 전도 훈련을 시키는 상황이었는데 물질에 의지하지 않는 삶을 훈련하려고 “전대를 가지지 말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한 목회자가 청년들을 시골로 선교여행을 보낼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들! 이번에는 돈 없이 선교여행을 해보게.” 그 목회자의 말은 청년들이 돈이 없다는 말도 아니고 돈이 없어야 한다는 말도 아닙니다. 그 말은 이런 말입니다. “자네들!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훈련하도록 이번에는 돈이 없이 선교여행을 떠나보게.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네.”

 때로는 물질이 없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상황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사역에 돈이 왜 필요해? 예수님이 그렇게 가르쳤어?”라고 물질을 무시하면서 사려 깊은 준비도 없이 행동하면 그것은 믿음직한 언행이 되기보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교만한 언행이 됩니다. 예수님은 물질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씀도 많이 했습니다. 물질이 복음 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아니지만 결코 무시하지 마십시오. 돈을 잘 사용하면 세상을 변화시키는 좋은 도구가 됩니다.
 
2. 배낭

 예수님께서 “배낭도 그리하고”라고 말씀하신 것은 “배낭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배낭을 가지라.”는 말씀은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갈 준비를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나그네 의식을 가지라.”는 말씀이나 “이 땅의 것에 연연하지 말라.”는 말씀도 되고 적극적인 의미에서 “선교마인드를 가지고 나누라.”는 말씀도 됩니다. 물질을 자기만을 위해 쓰지 마십시오. 나눔이 없이 자기만을 위해 쓰면 물질이 많은 것도 축복이 아닙니다.

 축복은 ‘구심성 축복’과 ‘원심성 축복’이 겸비될 때 온전해집니다. 구심성 축복이란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축복’을 뜻하고 원심성 축복이란 ‘받은 축복을 나누는 것’을 뜻합니다. 미신이나 기복주의는 구심성 축복에만 매달리지만 참된 복은 구심성 축복이 원심성 축복으로 발전하는 복입니다. 하나님의 복은 발전하고 상승하고 확대되고 확산되어야 합니다. 개인의 복이 가족과 가문의 복으로, 가족과 가문의 복이 사회의 복으로, 사회의 복이 국가의 복으로, 국가의 복이 지구촌의 복으로 확산되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1장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승천 직전에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8절).” 이 구절에서 ‘성령을 받는 것’은 구심성 축복이고 ‘증인이 되는 것’은 원심성 축복입니다. 구심성 축복은 원심성 축복으로 확대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하신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의 증인이 된다.”는 말씀은 “축복을 받았으면 그 축복을 이웃과 나눔으로 개인의 복을 세상의 복으로 확대시키라.”는 ‘복의 확대’를 도전한 말씀입니다.

 개인의 복을 세상의 복으로 확대시키는 사명을 이루라고 하나님은 재능과 물질과 지위의 복을 주신 것입니다. 복은 나눔과 섬김의 재료로 삼아야 진짜 복입니다. 원심성 축복을 외면하고 받은 복을 자기만을 위해 사용하면 그 복은 더 이상 하나님의 복이 아니고 오히려 심판과 추락의 도구가 됩니다. 항상 배낭을 멘 나그네 인생이란 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소유와 능력을 세상을 변화시키는 도구로 사용하십시오.

3. 검

 예수님은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사라.”고 하셨습니다. 돈이 있으면 굳이 겉옷을 팔아서 검을 살 필요가 없으니 돈이 얼마나 유용합니까? 그러나 돈이 없다면 겉옷을 팔아서라도 검을 사라고 했습니다. 당시 겉옷은 가난한 자나 나그네에게는 밤에 덮는 이불 역할도 했던 매우 중요한 필수품이었습니다. 그런 겉옷까지 팔아 검을 사라고 한 것은 “반드시 검을 사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무력사용을 원하시지 않았는데 왜 “꼭 검을 사라.”고 하셨을까요? 신약성경에서 검은 영적인 의미로 ‘성령의 검’을 뜻합니다. 또한 에베소서 6장 17절에서는 ‘성령의 검’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명쾌하게 정의합니다. 결국 예수님이 “반드시 검을 사라.”고 하신 말씀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도구로서 ‘선하게 쓰이는 물질’도 필요하고 ‘좋은 것을 나누려는 선교마인드’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란 사실을 암시합니다.

 선교하고 나눌 때 복음과 말씀을 나누지 않으면 알맹이가 빠진 셈이 됩니다. 말씀은 세상을 변화시키고 심령을 변화시키는 최상의 도구입니다. 말씀이 없다면 죽는 길이 사는 길임을 어떻게 알고 십자가를 지는 일이 가장 자랑스러운 일임을 어떻게 이해합니까? 세상 격언도 깨달음을 주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얼마나 큰 깨달음을 줍니까? 말씀에 마음 문을 열 때 지식의 문도 열리고 치유와 행복과 축복의 문도 열립니다. 말씀 교육은 최상의 자녀 교육입니다.

 저는 두 딸에게 “결혼하면 남편을 잘 섬기고 늘 순종하면서 위해주라.”고 수시로 가르칩니다. 그러면 말씀의 능력을 체험한 겸손한 사람은 그런 교육을 기꺼이 받아들이지만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속으로 항거합니다. “목사님이 왜 남녀 차별적인 말씀을 할까?” 어떤 처녀는 상처를 받고 시험까지 듭니다. 그러나 남편을 섬기고 순종하라는 교육은 남녀 차별적이고 구시대적인 교육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딸의 영혼과 마음을 변화시켜 행복의 문을 열어주기 위해 그렇게 말씀 교육을 한 것입니다.

 나눔과 섬김과 죽음과 십자가의 길을 가르쳐서 딸에게 행복의 길을 열어주려는 부모의 말씀 교육을 남녀 차별적인 교육이라고 왜곡해 상처를 받고 시험에 든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부모가 딸에게 “얘야! 남녀평등 의식을 늘 가지고 네 권리를 강력히 주장하면서 살아야 해.”라고 교육하면 그런 교육은 딸을 성숙시키지 못하고 딸의 앞날과 행복도 망칩니다. 결국 “얘야! 너는 남편을 최대한 섬겨주고 힘써 순종하려고 해야 해.”라고 하는 교육은 딸의 인생을 죽이는 교육 같지만 그것이 오히려 딸의 인생을 살리는 교육입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섬김의 원리를 교육해서 행복의 문을 열어줍니다. 그래서 가정교육이 중요하고 특히 말씀 교육이 중요합니다. 제가 두 딸에게 한 말씀 교육은 남녀 차별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순응하라는 교육이 아니라 행복과 축복을 위한 사랑과 섬김 교육입니다. 만약 아들이 있는 경우에 이렇게 가르치면 남녀차별이 됩니다. “얘야! 성경은 ‘아내에게 순종하라.’고 했어. 때로는 세게 나가서라도 아내에게 순종을 요구해라.” 그런 교육은 자녀의 행복을 망칩니다.

 바른 부모라면 아들의 행복을 위해 이렇게 교육할 것입니다. “얘야! 네 아내를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 언어도 주의해서 써라. 아내가 나이가 적어도 존중하며 섬겨주고 아내를 네 자신보다 더 사랑하고 위해주어야 해.” 믿는 부모는 딸에게나 아들에게나 똑같이 사랑과 섬김의 원리를 가르칩니다. 제가 딸에게 남편을 섬겨주라고 하는 것은 남녀차별적인 구시대적인 사고 때문이 아니라 딸의 행복을 위해 섬김의 원리에 대한 말씀 교육을 한 것입니다. 말씀 교육을 통해 사랑과 섬김의 원리를 배우고 죽는 길이 사는 길임을 배울 때 행복과 축복이 넘치게 됩니다.

< 하나님의 눈에 띄는 인물 >

 심령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최상의 도구는 말씀입니다. 돈을 버는 최종목적은 영혼을 살리고 변화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나눔과 선교마인드를 가져야 하는 이유도 영혼을 살리고 변화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무엇이 영혼을 살리고 변화시킵니까? 바로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겉옷을 팔아 검을 사라.”고 했듯이 자신의 물질과 재능과 지위와 전 존재를 말씀 전파를 위해 지혜롭게 활용하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월새기(월간 새벽기도)>는 좋은 말씀전파의 도구입니다. 요새 <월새기>를 통해 얼마나 많은 구원의 역사와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특히 교정기관에서 수많은 감사편지와 간증편지를 받고 있습니다. 저의 홈페이지에 가끔 ‘담안편지’로 소개되는 것은 저희들이 받는 편지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습니다. 너무 많아서 홈페이지에 다 소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월새기> 사역을 통해 천하보다 귀한 수많은 영혼들이 변화되는 모습을 보면서 최근에 세계선교를 위한 <월새기 영어판> 사역에 대한 비전이 점차 간절해지고 있습니다.

 저는 선교사가 되려고 신학대학원에 갔지만 여러 사정상 그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세계선교를 위한 <월새기 영어판> 비전을 더욱 사모하게 된 것입니다. <월새기 영어판>을 통하면 세계선교에 멋지게 일조할 수 있고 선교사님들에게도 큰 말씀의 검을 안겨줄 수 있습니다. 요새 선교사들의 사역 환경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선교사들에 대한 각국 정부들의 압박도 커지는 상황에서 영혼을 살리는 <월새기 영어판>의 말씀이 문서로 조용히 전달되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세계선교가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으니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월새기> 1권에 천 원의 후원금을 받듯이 <월새기 영어판>도 1권에 1불의 후원금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 사역을 위해 많은 재정이 필요하지만 지금 준비된 재정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기적적인 채움을 역사를 믿고 준비하려고 합니다. 이 사역을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더 나아가 물질적인 영역을 힘써 정복해 그 물질로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데 뒷받침하는 거룩한 큰손 인물이 되겠다는 비전을 가지십시오. 그 비전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영어권 성도들은 같은 내용의 말씀을 들어도 한국 성도들보다 청중의 반응이 능동적인 편이어서 감정이입을 잘해주고 감동도 잘해주는 편입니다. <월새기 영어판>이 발행되어 미국의 교정기관을 비롯한 여러 기관과 교회에 전파되면 감동을 받은 미국의 독지가들이 문서선교 후원에 동참하면서 세계선교의 비전이 더욱 멋지게 이뤄지는 굳건한 기틀이 마련될 것입니다.

 <월새기 영어판> 사역을 준비 없이 무작정 시작하면 자기중심적인 믿음으로서 하나님을 시험하는 행위가 될 수 있기에 하나님께서 어느 정도 환경적인 메시지로 재정적인 준비를 시켜주시면 사역을 시작할 것입니다. 그때가 언제쯤일까 오랫동안 기도하다가 최근에 <월새기 영어판 창간호>를 2019년 9월 1일에 발행하는 것으로 구체적인 목표를 정했습니다. 그 정한 날짜에 발행이 되도록 기도해주십시오. 그때까지 875일 남았습니다.

 한국 교계에서 그동안 영문 경건서적을 한국어로 번역해 은혜를 받는 일만 하다가 이제는 거꾸로 <월새기 영어판>을 발행해 지구촌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는 일을 하게 되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입니까? 그런 비전을 가지고 나아가면 지켜보는 사람들의 믿음을 커지게 하면서 큰 품을 가진 인물을 낳는 토양이 될 것입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이 인물이 인물을 불러냅니다. 지금 하나님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큰 품을 가진 인물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 인물로 하나님의 눈에 띄어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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