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손에 붙들리십시오 (마가복음 1장 9-11절) < 예수님의 세례의 의미 >
왜 예수님께서는 죄인처럼 되어 요단강으로 들어가서 세례를 받으십니까? 예수님의 세례에는 몇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1. 낮은 곳으로 내려가셨다는 의미
신앙생활은 예수님처럼 내려가는 생활이어야 합니다.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습니다. 섬기는 자가 섬김을 받습니다. 또한 높아지고자 하면 결국 낮아지고 낮아지고자 하면 결국 높아집니다. 그리고 죽어야만 부활이 있고 죽어야만 한 알의 밀이 백배의 결실을 맺습니다. 삶에서 고민과 갈등과 다툼이 있고 자존심의 상해서 마음이 상하고 자주 화를 내는 것도 모두 내려가는 삶이 서툴러서 그런 것입니다. 내려가는 것만 잘하면 모든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됩니다. 꿈과 비전은 저 놓은 곳을 향해 날마다 올라가야 하지만 생활과 자세는 저 낮은 곳을 향해 날마다 내려가는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2. 죄인의 자리로 내려가셨다는 의미
세례는 누가 받는 것입니까? 죄인이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요단강으로 친히 내려 가셔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것은 죄가 있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죄인처럼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스스로를 죄인의 모습으로 낮아지신 것은 자기만 제일 옳게 산다고 제발 믿지 말라는 교훈이 있습니다. 자기만 옳다는 하는 모습을 보이고 그런 냄새를 풍기면 그로부터 예수님의 향내 나는 삶은 나오지 않습니다. 성도는 다른 사람들을 죄인이라고 멸시하는 냄새를 절대 풍기지 말고 늘 심령이 가난한 자의 모습과 애통하는 자의 모습을 가져야 합니다.
3. 죽음의 자리로 내려가셨다는 의미
세례는 원래 온몸을 강물에 침수시키는 예식입니다. 자신의 전신이 물속에 들어가는 것은 “이제 나는 완전히 죽었다!”는 의미이며 자신의 전신이 다시 물에서 나오는 것은 “이제 나는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살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에서 요단강은 ‘죽음의 강’을 뜻합니다. 요단강으로 들어가는 존재가 되십시오. 요단강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 부활절을 맞이할 수 있고 부활절을 맞이한 사람이 성령강림절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무속신앙에서는 십자가의 삶을 말하지 않습니다. 기독교가 그런 무속신앙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십자가를 질 때 성령충만도 있습니다.
<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십시오 >
예수님이 세례 받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본문 10절을 보십시오.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어떤 성경학자는 이 구절에 대해 주석하면서 ‘두 번째 창조’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 처음 창조의 역사가 일어날 때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땅에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있을 때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했습니다. 바로 그 다음에 빛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 문이 열리면서 성령이 운행하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 장면이 창조의 장면과 유사하다고 해서 ‘두 번째 창조’라는 표현을 쓴 것입니다.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두 번째 창조 세계의 질서 안에 살고 있느냐 그렇지 않으냐의 차이입니다. 그처럼 성령이 임하는 역사 후에 본문 다음부터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 말은 예수님에게도 성령충만의 역사가 예수님 생애의 전환기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성령을 받지 않고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성령을 어떻게 받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성령을 받으려고 갖가지 시도를 하고 마음이 하늘까지 높이 올라가지만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성령 받으러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우리에게 내려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겸손한 마음이 중요합니다. 겸손한 심령으로 성령충만해서 하나님의 손의 붙들리기만 하면 놀라운 변화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길가에 굴러다니던 돌멩이가 다윗의 손에 들려졌을 때 하나님을 모독하던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던 여인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과 만났을 때 성녀 마리아로 변했습니다. 길가에 서서 십자가를 메고 가는 주님을 구경하다가 대신 십자가를 지게 된 구레네 사람 시몬은 거룩한 시몬이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누구의 손에 붙들리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버림받은 것 같은 인생도 성령이 임하고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자신 안에 있는 생명력과 가능성이 깨어납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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