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을 귀를 가지십시오 (이사야 50장 4-6절) <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십시오 >
회복의 은혜를 입기 위해 특별히 2가지가 중요합니다. 하나는 ‘돕는 말을 하는 혀’이고 또 하나는 ‘알아듣는 귀’입니다. 그처럼 복된 혀와 귀가 있는 사람에게는 순종과 전진의 삶이 나타납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승리와 회복의 역사를 이루려면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믿음에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흔히 심리학을 인본주의적인 학문이라고 주장하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닙니다. 학문 자체를 놓고 좋고 나쁜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학문하는 사람이 신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냐 하는 것입니다. 폴 뚜르니에는 불신의 치명성을 역설했던 믿음을 가진 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였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한 가지의 악이 무서운 연쇄성을 가지고 다른 악을 가져온다. 세상에 대한 과학적 설명은 결국 아무 것도 설명하지 못했다.”
다른 어떤 논리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성경의 진리입니다. 성경에서 논리가 아닌 생명을 찾으십시오. 성경을 통해 얻는 가장 위대한 진리 중의 하나가 하나님은 생명력을 넘치게 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란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정신에서 육체까지 미칩니다. 사실 병들 때 가장 필요한 것도 바로 믿음입니다. 뚜르니에가 말했습니다. “생명력과 자연치유력이 신앙의 척도는 아니지만은 수많은 사례에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재건으로 생명력과 자연치유력이 강화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병든 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회개하는 마음입니다. 회개를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복원은 병을 고치는 가장 기초 원리입니다. 그래서 병들고 힘들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용기입니다. 질병과 고난은 뭔가를 가르쳐주고 가져다주며 가치관 변화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살면서 때로 만나는 고통과 슬픔의 순간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기회로 삼으십시오. 인생의 수리와 회복을 원하면 ‘사실에 대한 관찰’보다 ‘은혜로운 해석’을 앞세우고 더 나아가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가장 앞세워야 합니다.
< 들을 귀를 가지십시오 >
어떻게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에서 흔들리지 않고 온전히 갈 수 있었습니까? 늘 ‘하늘의 소리’를 들으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영혼을 유혹하는 ‘세상의 소리’가 얼마나 많습니까? 세상의 소리는 대개 “힘이 정의다!”라는 소리로 압축됩니다. 그런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아무런 저항도 없이 십자가를 지는 예수님의 모습은 참 무력해 보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무력해서 힘을 못 쓴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능력을 안 쓴 것입니다. 그렇게 힘을 안 쓰면서 힘 있는 사람들을 굴복시키는 힘이 진짜 힘입니다.
힘이 없고 두려워서 저항하지 않는 것은 비굴이지만 힘이 있으면서 조용히 의의 길로 행하는 것은 참된 용기입니다. 간디나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은 그런 용기가 있었는데 그 용기의 원천이 바로 ‘들을 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매일 하루의 첫 시간을 말씀과 함께 시작하는 사람은 인생승리의 제일 원천을 가진 사람입니다. 결국 ‘학자의 혀’와 ‘학자의 귀’는 인생 승리의 2대 원천입니다. 기도시간은 혀로 아뢰는 시간이기도 하고 귀로 듣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귀로 잘 듣는 사람이 말로 잘 아뢸 수 있습니다. 귀가 열리면 하나님이 말씀도 주십니다.
요새 세상의 소리가 교회 안에도 많이 침투했습니다. 특히 세상의 소리를 따라 형성된 외적인 교회성장 전략으로 하나님의 뜻과 다른 길을 가는 모습이 많습니다. 그러면 일시적으로는 성장하는 것 같아도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후퇴합니다.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중요한 척도는 “그것이 얼마나 효율적인가?”가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한 것인가?”입니다. 조금 고집스러워도 하나님의 뜻대로 따르려고 할 때 교회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될 수 있습니다.
더디더라도 정도를 걷고, 홀로 100걸음을 앞서 가기보다는 함께 50걸음을 가려는 마음을 가지고, 남을 짓밟고 올라서기보다는 뒤에서 밀어주고 앞에서 당겨주며 함께 나가는 삶이 바로 교회가 선택해야 할 삶입니다. 낭패란 단어에서 랑(狼)과 패(狽)는 모두 이리과의 짐승인데 꼬리가 길어 서둘러 달리다가 제 꼬리를 밟고 넘어질 때가 많습니다. 그 상황을 묘사한 단어가 낭패란 단어입니다. 그처럼 지름길만 찾아 서둘러 가면 반드시 낭패를 봅니다.
1980년대부터 외적인 성공을 위한 ‘교회성장 세미나’가 한때 큰 인기를 끌었지만 그 ‘교회성장 세미나’가 한국 교회를 망친 주범이란 견해도 많습니다. 이제 크기의 신화에서 해방되고 숫자의 신화에서도 해방되십시오. 또한 힘을 정의로 알고 있는 세상 원리에서도 해방되십시오. 그런 해방의 역사를 위해 근본적이고 내적인 변화가 필요합니다. 그런 내적인 변화를 이루려면 마음을 열고 하늘의 소리를 듣는 태도가 있어야 합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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