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가끔 교인들에게 "결혼식에는 가지 못해도 초상집에는 꼭 가세요"라고 말합니다. 잔칫집에 자주 가면 어리석은 자가 되고 초상집에 자주 가면 지혜자가 됩니다. 왜냐하면 다른 이의 죽음을 보면서 나의 죽음을 준비하게 되고, 내세를 바라보면서 현재의 삶을 겸허하게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실질적으로 초상집에 가서 죽은 사람을 보면 많은 진리를 배우게 됩니다. 저는 목회자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죽는 사람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리고 입관 의식을 거행할 때에는 죽은 사람의 얼굴을 항상 만져보는데, 그때 말없는 대화를 합니다. 그런데 어떤 분을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대화가 오고 갑니다. "선생님! 이렇게 되려고 그렇게 뛰었습니까?" 그러나 어떤 분과는 정말 기분 좋은 대화가 오고 갑니다. "천국에서 만납시다! 당신의 아름다운 삶! 오래 기억하겠습니다." 그런 대화가 오고 가면 얼마나 흐뭇하고 기분이 좋은지 모릅니다. 그처럼 죽음 앞에 서면 얼마나 삶이 진지하게 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자녀교육 중에서도 부모의 아름다운 죽음만큼 소중한 자녀교육은 없다고 합니다. 어떤 여성은 교회에서 묵묵히 아름다운 봉사의 손길을 펼칩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분은 순교자의 딸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순교했다는 사실이 항상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으니까 순교자적인 아름다운 삶이 그녀의 삶 속에 완전히 체질화된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남겨줄 수 있는 최후의 가르침이자 가장 좋은 가르침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인생을 잘 마감하는 것입니다. 그처럼 죽은 사람도 많은 교훈을 남기지만 죽어 가는 사람도 많은 교훈을 줍니다. 혹시 주변에 누군가 중환자가 있으면 그를 자주 찾아주시고, 초상집에도 최선을 다해서 찾아 주십시오. 그리고 아는 사람이 죽어서 입관 의식을 거행할 때에는 꼭 입회하십시오. 가끔 어떤 분은 부조가 무서워서 초상집에 안 갑니다. 차라리 한 끼 외식을 안 하면 될 것을 그 돈이 그렇게 아깝단 말입니까? 육신의 조그만 욕망을 채우는 것보다 초상집에서 지혜를 배우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는 덜 중요한 일과 더 중요한 일을 구분하고 살아야 합니다. 이제는 정말 사람의 형상을 가진 자로서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어떤 분은 가면서도 숫자나 채우러 가자는 마음으로 가는 분이 있습니다. 마치 숫자 부조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부조한다는 높은 마음이 아닌 지혜를 얻겠다는 겸허한 마음으로 초상집에 가야 합니다. 지혜를 주는 자리를 소중히 여기고 그곳을 힘써 찾는 마음이 지혜로운 마음입니다.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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