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친구인데 꼴불견의 친구가 있습니다. 바로 '잘난 척 하는 친구'입니다. 잘난 척 하는 태도는 우정의 참 의미를 망각하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진실한 우정에는 '잘남'과 '못남'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정은 부등식의 평평한 관계에서 진정 아름다운 실체를 나타냅니다. 진실한 우정은 상호보완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잘남'이 너의 '못남'을 보완해야 되고, 너의 '잘남'이 나의 '못남'을 보완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잘난 것이 있어도 그 잘난 것을 감추는 겸손한 친구가 진실한 우정을 얻습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애정보다 우정을 더 귀한 것으로 생각합니까? 애정은 소유욕이 포함되어 있는 사랑이지만 우정은 피차간의 인격을 존중하는 동등한 위치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의 동등성을 파괴하는 교만이 꽃피는 곳에 아름다운 우정의 꽃은 자라나지 않습니다. 공자 위정편 17절을 보면 공자가 '유'라는 제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유야! 네게 안다는 것에 대해서 가르쳐 주마.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다." 공자님 말씀처럼 진정한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솔직한 모습이 필요합니다. 친구관계에서 이상한 일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이 '안다'고 말하는 사람보다 친구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모이지 않듯이 사람이 너무 지나치게 똑똑하게 굴거나 너무 지나치게 영리하게 굴면 친구가 그 사람 주변으로 모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친구를 사귀려면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할 줄 아는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대개 완벽한 사람과는 친구로 사귀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유리알 같이 날카로운 사람에게는 친구가 붙지 않습니다. 어리숙한 듯이 보이는 사람에게 "뭔가 삶에 유익이 있겠지"하고 사람이 몰립니다. 아는 것이 많기 때문에 '잘 말하는 사람'보다 겸손한 인격을 가졌기 때문에 '잘 들어주는 사람'이 좋은 친구를 많이 둡니다. 위대한 친구의 첫째가는 표상은 바로 겸손입니다. 겸손이 없이는 친구를 사귀기도 어렵고, 일찍이 있었던 우정을 지키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겸손은 진실한 우정을 담는 그릇이요 그 담겨진 우정을 보호하는 견고한 성입니다. 겸손은 매연과 분진으로 가득한 현대 사회에 다소 걸맞지 않는 덕목인 것 같지만 아름다운 우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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