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모성적인 속성 >
오늘 본문에는 성령님의 성격을 잘 묘사하는 구절이 나옵니다. 본문 13절 말씀을 보십시오.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인간은 아버지의 권위에서 안정감을 느끼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아버지의 권위를 깨면 자신의 삶의 기반도 흔들리게 됩니다. 권위주의는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지만 권위는 존중되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권위를 존중하는 사람이 풍성한 은혜를 받게 됩니다.
그처럼 인간은 하나님 아버지의 권위에서 깊은 안정감을 느끼지만 한편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모성적인 사랑을 찾고자 합니다. 그러한 성향이 가톨릭교회에서는 잘못 표출되어 인간인 성모 마리아를 숭배하는 모습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예수님의 사랑에서도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부족한 부분이란 바로 여성에게서 발견되는 고유한 여성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마음은 강인한 한 남자의 마음일 뿐만 아니라, 그 마음 안에는 여성적인 동정심과 온유함과 부드러움도 또한 있습니다.
예수님은 여성상과 완전히 다른 딱딱한 남성상만을 가진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완전한 인간성을 갖추신 ‘인자(the Son of Man)’로서 주님은 그 자신 안에 남자의 특성과 여자의 특성을 모두 갖추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마치 인류의 첫 번째 남자였던 아담이 하와가 그의 몸으로부터 분리되어 형성되기 전에도 그 자신의 존재 안에 여성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과 마찬가지입니다.
본문 1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어머니 같은 감미로운 모습을 가진 존재로 계시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모성적 사랑은 ‘어머니 같은 성령님’ 안에서 완벽하게 드러납니다. 삼위일체에서 가장 여성적인 특징의 위격은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안에는 아버지상도 있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상을 추구하는 모든 심령들을 만족시키는 여성성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령님의 어떤 모습이 어머니 같은 모습이겠습니까?
1. 위로하시는 성령님의 모습
요한복음 14장 18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겠다” 그 말씀은 주님이 어머니처럼 항상 우리 곁에 함께 하셔서 위로자가 되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성령님의 위로해주시는 사역은 성령님의 어머니 같은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2. 중생을 주도하시는 성령님의 모습
어머니는 아기를 낳는 분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중생을 주도하시는 분은 성령님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처럼 우리들의 새롭고 거룩한 탄생 즉 중생을 주도하시는 성령님의 모습은 어머니 같은 모습입니다.
3. 중생한 자를 인도하는 성령님의 모습
어머니를 아기를 낳고 그냥 버리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령님은 우리는 중생시키고 그냥 버려두지 않습니다. 우리는 철저히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살고 있는데 그처럼 우리를 세심하게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모습은 어머니 같은 모습입니다.
4. 중생한 자를 양육하시는 성령님의 모습
요한복음 14장에서 주님은 성령님의 사역을 설명해주셨습니다.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이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은 많으나 지금은 너희들이 다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이끌 것이다.” 그처럼 삶의 전 분야에서 우리들을 양육하시고, 훈련하시고, 가르치시는 모습은 어머니 같은 모습입니다.
5. 성령님의 부드러운 모습과 인내하시는 모습
성령의 가르침과 인도하심의 특별한 특징은 바로 어머니와 같은 사려 은 부드러움과 인내하심에 있습니다. 성령님은 아직 받을만한 준비가 없는 진리를 우리들에게 강요하지 않습니다. 강요하고 윽박지르는 모습은 성령님의 역사라고 보기 힘듭니다. 그처럼 성령님은 우리를 부드럽게 인도하시고, 감동적으로 인도하시며, 구약 성경에 잘 나타나 있는 대로 조금씩 우리들을 가르치십니다.
옛날의 고대 선생들은 오늘날의 학교 선생들과 아주 달랐습니다. 고대의 선생들은 제자들의 동료였고 친구였습니다. 그들은 하루 종일 거리에서, 시장에서, 들에서, 그리고 큰 도로에서 제자들과 함께 여기 저기 걸어 다녔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삶에서 얻어지는 모든 사건들을 진리의 도구로 사용하면서 가르쳤습니다. 마찬가지로 위로자 성령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가 하나의 교훈을 잘 배워 보다 차원 높은 배움의 장과 보다 심오한 진리로 나아가기까지 기다리십니다. 그래서 그분은 잊혀진 진리를 우리들에게 다시 기억나게 하시며, 끝없는 인내와 열정을 가지고 우리가 아직 완전히 배우지 못한 교훈을 우리와 함께 다시 살피시며 소화하게 하십니다.
6. 고통의 시간에 가까이 찾아오시는 성령님의 모습
우리가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과 사랑스런 위로가 가장 필요한 때는 고통의 시간이 우리에게 찾아올 때입니다. 모든 것이 형통하고 안정적일 때 우리는 다른 친구들을 찾아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낙심했을 때 우리를 도우러 가장 먼저 누가 달려옵니까? 누가 우리들에게 진정 용기를 주고, 상황을 개선시키려 어려움을 감수하고자 합니까? 바로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성경은 위로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하나님은 위로가 많으시기에 우리들에게 끊임없는 위로를 가져다주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친절한 사랑과 무한한 위로를 생생하게 우리에게 전달하시는 분은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시험과 슬픔을 경험하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동정과 위로가 필요한 존재입니다. 그런 존재이기에 성령님의 위로가 얼마나 감미롭게 느껴지는지 모릅니다.
7. 때때로 채찍을 드시며 훈계하시는 성령님의 모습
어떤 분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현재 연단이 없는 것은 기쁜 일인 것 같아도 슬픈 일입니다. 왜냐하면 시간이 지난 후에 연단의 과정에서 훈련받은 사람들에게는 아름다운 의의 열매가 틀림없이 맺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다운 모성은 잘못을 저지른 자녀들에게 꼭 필요한 훈련과 신실한 훈계를 거부하지 않습니다. 그처럼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책임적인 사랑’을 가지고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잘못된 길로 나가지 않도록 때로는 고통을 허락하시기도 합니다.
< 서로 위로하십시오 >
이처럼 우리에게는 우리를 도우시고 위로하시는 어머니 같은 성령님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은 모신 자에게 나타나는 한 가지 뚜렷한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도 위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위로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다 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강한 것 같아도 우리 안에는 다 약한 부분이 있습니다. 자기의 못남을 누구보다 자기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 위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교회를 만드셨고, 우리에게 “네가 행복하기를 원하면 먼저 위로해주어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위로해주어야 합니다. 아내와 남편이 서로 위로하고, 부모와 자녀가 서로 위로하고, 목회자와 성도가 서로 위로해주고, 성도와 성도가 서로 위로해주어야 합니다. 위로는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때에 따라서 받는 사람에게 엄청난 힘과 용기를 줍니다. 우리의 말 한마디가 영혼을 살릴 수 있고, 우리의 작은 위로 하나가 한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 능력을 믿으시고 서로 위로해주십시오.
주님께서는 마지막 고별에서 제자들에게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보혜사란 ‘옆에서 위로하는 분’이란 뜻입니다. 그처럼 성령님은 우리 옆에서 얼마나 자주 우리를 위로해주셨습니까? 그렇다면 성령님을 모신 우리도 다른 사람을 위로해야 합니다. 오늘부터 배우자를 위로하고, 자녀를 위로하고, 부모를 위로하고 목자를 위로하고, 성도를 위로하며 살겠다고 결심하십시오. 그때 모든 사람에게 은혜가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심장이 잘 움직이면 그 혜택을 심장 혼자 받습니까? 심장 옆의 폐만 받습니까? 아닙니다. 새끼손가락과 발가락까지도 받게 됩니다. 저는 특별히 손과 발이 찬 편인데 심장이 활성화되면 손과 발도 다 따뜻해집니다. 마찬가지로 새벽예배 나오는 우리가 위로를 다짐하고 실천하면 우리 교회와 가정, 우리 인생과 자녀의 인생까지 건강하게 될 것입니다. 항상 성령님 안에서 위로자의 삶을 사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 이한규목사(분당 샛별교회) http://www.john316.or.kr ⓒ 글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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