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δεδομένα 18,185편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그리스도인의 진실한 표적

by 【고동엽】 2022. 12. 8.

기독교는 기적의 종교입니다. 오늘날에도 그런 기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도 새벽에 같이 기도하던 한 성도가 난생 처음으로 새벽기도를 시작하면서 항상 자기를 짓누르던 위장병과 가슴의 통증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편이 "요새 왜 아픈 말을 안 하느냐?"고 신기하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도 기적은 무수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하루에 3백 개의 암세포가 생겨난다고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미워하고 한을 품고, 욕심을 계속 품으면 치유의 능력과 극복의 능력이 떨어져 암 세포가 커지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사랑 안에서 평안한 마음을 가지면 3백 번 암에 걸릴 가능성을 모두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매일 3백 번 이상의 기적을 체험하고 사는 존재입니다. 그처럼 건강도 기적이지만 우리의 생활 자체도 기적입니다. 수많은 사건과 사고를 통해서 죽고 다칠 수 있는 가능성 속에서도 지금 멀쩡히 살아 있다면 그것도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Cast Away)에서 주인공 톰 행크스가 무인도에서 살아 돌아온 것도 기적이지만, 하루에 집을 나섰다고 무사히 집에 돌아오는 것도 기적인 줄 알아야 합니다. 성경도 온통 기적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기적은 성경에만 나오지 않습니다. 어느 종교에서나 기적이야기는 아주 빈번하게 나옵니다. 오히려 이방 종교와 이단 종교에서는 기적 이야기가 더 나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그런 종류의 기적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신앙은 바람직한 신앙이 아닙니다. 성경에 나오는 기적 중에서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을 말할 때에는 표적(sign)이라는 말을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적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기적이 무엇을 바라보는 표적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즉 기적을 주님을 바라보는 표적으로 삼고, 자신을 향한 주님의 뜻을 바라보는 표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야 하는 진실한 표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악하고 음란한 사람들이 구하는 표적이 아니라 주님께서 보여주시기를 원하는 '요나의 표적'입니다(마 12:39). '요나의 표적'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가리키며,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 이루어진 '변화의 기적'을 가리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표적은 세상으로 향하던 죽은 사람이 하나님께 향하는 산 사람으로 변화되는 기적입니다. 모든 진실한 그리스도인에게는 그런 변화의 기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런 기적이 생활에서 조금 더 나타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체험하고 추구해야 할 가장 위대한 기적은 자기만 위해서 살던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기를 희생할 줄 아는 존재로 바뀌는 '요나의 표적'입니다. 그러므로 기적을 찾아다니며 밖에서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요나의 표적'은 바로 우리 자신에게서 나타나야 합니다. 몇 주 전에 우리 교회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주일에 스피커가 거듭나서 뒤에 있는 사람이 엄청나게 잘 들리게 된 것입니다. 알고 보니까 조용히 누가 만졌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에도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교회 입구 쪽에 들어오지 않던 등이 갑자기 들어온 것입니다. 알고 보니까 역시 조용히 누가 만졌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사람은 기적을 좇아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조용히 헌신의 손길을 베푸는 '그 누구'입니다. 우리가 움직이면 삶의 기적은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일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드리는 작은 헌신의 손길이 아무리 작아 보여도 그것은 반드시 세상을 변화시키는 소중한 기적이 씨앗이 될 것입니다. 마술적인 기적과 성공신화에 사로잡히면 반드시 패가망신하게 되지만 우리의 삶을 통해서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기적을 만들며 살 때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반드시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행복을 주실 것입니다. 항상 그리스도인의 진실한 표적을 보여주며 사는 행복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