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꾸준한 신앙’을 원하지 ‘급조신앙’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급조신앙의 전형적인 상징’이 바로 ‘잘못된 안수’입니다. 안수자가 순진한 성도들을 한 번 때리고 가면, 성도들은 맞으며 ‘아멘’을 기계적으로 외칩니다. 그리고 ‘대단한 것’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나는 어떤 체육관 집회에 참석했었습니다. 마침 안수 시간이 되어 많은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그때 젊은 주강사가 할머니들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치며 ‘요놈! 요놈!’하면, 할머니들은 얻어맞으며 ‘아멘! 아멘!’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정말 자식 보기에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모든 목회자들은 성도들을 위한 기도가 얼마나 힘들고, 시간이 많이 드는 작업인지 잘 압니다. 그런데 머리 한 번 툭 때리고 ‘임무완수’를 외치며 두 다리 뻗고 지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능력이 많은 분들은 그렇게 할 수 있으니 얼마나 대단한 역사요, 기적입니까? 그러나 능력이 무한하시고 충만하신 주님께서도 ‘당신의 위대한 손길’로 한 번 때리고 그냥 지나가서는 인간을 도저히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성령으로 우리 안에 오셔서 끊임없이 우리와 접촉하시고, 우리를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계속 기도하시며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어가고 계십니다. 그런데 예수님보다 엄청나게 능력이 많은 사람들을 눈앞에서 흔히 목격하게 되니 이 무슨 조화입니까? 그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요? 왜 그런 사람들이 도처에 있을까요? 이 문제를 놓고 하나님 앞에 진지하게 기도하며 스스로 물어 보십시오. “내게 기복주의와 급조신앙을 좋아하는 성향은 없는가? 과연 내 책임은 없는가?” 출처 불명의 안수를 피하십시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분’에게 안수 받는 것도 조심하시고, ‘나를 잘 알지 못하는 분’에게 안수 받는 것도 조심하십시오. 나를 진정으로 잘 알고, 나를 위해 안수 전에도 지속적으로 기도하고, 안수 후에도 지속적으로 기도해 줄 수 있는 분으로부터 ‘겸손한 안수’를 받기를 사모하십시오.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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