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로 돌아가기 |
자기 진실의 진단! (눅 16:9-13)
1940년 미국에서 되었던 이야기 입니다. 노틀담 미국 축구팀의 센 터 포지션을 맡고 있는
사람은 프랭 크 사만스키라고 하는 축구선수였습 니다. 그가 어떤 민사소송에 연유 되어 가
지고 증인으로 법정에 가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판사는 그에 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노 틀담 미식축구 팀의 선수로 출전한 일이 있습니까?"
"예 재판장님.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다 시 물었습니다.
"포지션은 무엇입 니까?"
그는 대답했습니다.
"센터 입니다."
재판장은 지긋이 좀 비웃 는 그런 얼굴로 물었습니다.
"그래, 당신은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춘 센 터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습니까?"
이 청년은 잠깐 생각하고 나서 당돌 하게 하는 말이
"역대의 센터 역사 중의 가장 뛰어난 선수라고 생각합 니다."하고 말했답니다. 모든 사람 이
깜짝 놀랐습니다. 물론 그 뒤에 와 있던 감독은 더 놀랐습니다. 저 사람이 평소에 되게 아주
참 겸손하 고, 자기 스스로를 낮추는 그런 사 람이었는데 어떻게 이 자리에 와서 자기가 최
고의 센터라고 이렇게 당 돌하게 말하나, 그래서 하도 어의가 없었는데 재판이 끝난 다음에
이 감 독이 이 선수를 데리고 나가면서
"자네 평소에 그렇게 겸손하더니 오 늘은 어떻게 당당하게 내가 역사상 최고의 좋은 축구선
수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가?"
그러니까 이 청년 이 하는 말입니다.
"저는 재판장 앞에서 손을 들고 '진실 외에는 말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선서를 했습 니다.
나는 진실을 말했을 뿐입니 다."
여러분, 재판정에 선 사람은 나는 진실을 말하고 진실 외에는 말 하지 않겠습니다. 그 순간
은 내가 말한 결과가 어떻게 되던지 주위에 누가 듣고 있는지 누가보고 있는지 아무 것도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이로 인하여 내게 어떤 이익이 올 것인지 이런 것을 생각하면 진실이
아닙니다. 오로지 진실 하나만 생 각하고 진실만 말합니다. 나는 내 가 믿기에 최고의 축구
선수라고 생 각하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진실을 말한 것 뿐입니다.
여러분, 바로 이 진실에 문제가 있는 겁니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 은 자본이라고 합니다.
지식이라고 도 하고 경험이라고도 하고, 열심이 라고도 합니다 만은 아닙니다. 이 를 가능케
하는 것은 진실입니다. 우리에게 지금 없는 것은 바로 진실 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 충성이라는 말 이 나옵니다. 이 말은 헬라어로 '피 스티스'라고 말합니다.
그 말은 충 성, 진실 이렇게 두 가지로 번역이 됩니다. 사실 충성과 진실은 하나 입니다. 믿
음이올시다. 믿을 수 있 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실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예수님
말씀 이 '작은 일에 충성했기에 큰 일을 맡기리라.' 자세히 한 번 들어봅시 다. 맡긴다는 말
이 무엇입니까? 어디에다 맡긴다는 말입니까? 지식 이 있는 자, 능력이 있는 자, 경험이 있
는 자? 아니에요. 진실이 있는 자에게 맡긴다는 겁니다. 충성이 없는 자의 것은 빼앗았습니
다. 그 가 가지고 있는 것도 다 빼앗겼습니 다. 우리가 빼앗긴 것은 바로 진실 이 없었기 때
문이요. 다시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많은 은혜를 받을 수 있다면 축복을 받을 수 있다면
그 근거는 충성과 진실입니다. 우 리는 이 충성을 다시 한번 점검해야 되겠습니다. 자기 진
실을 진단해야 되겠습니다. 나는 어느 정도의 진 실한 자인가, 어떤 진실을 가지고 있는가,
내 진실은 지수가 얼마인 가? 스스로 평가해 봐야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이 말씀을 아주 논리적으로 차곡차곡 우리에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
다. 먼저는 재 산을 통해서 보아야 됩니다. 사람 의 진실은 물질 앞에서 무너집니다. 돈이라
는 것이 중요한 시금석이 됩 니다. 돈과 사람 어느 쪽이 중요합 니까? 돈만 생각하고 사람
을 못 보 면 그건 진실이 없는 겁니다.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특별히 '불의한 재 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랬는데 이 불의한 재물이라는 말은
여러가지 의미를 가집니다. 본문 처음부터 쭉 읽으면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습 니다. 잃어버
린 불 충성 때문에 이 미 선언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얼 마간의 유예기간을 얻었는데 이제
없어질 재물입니다. 내 손에서 곧 떠나게 될 재물입니다. 없어질 재 물, 얼마 안 남았습니다.
부득불 빼 앗길 수밖에 없는 재물입니다. 이 재물을 가지고 친구를 사귀어라. 어쩌면 이 남
은 기간 내 것 가지고 싶지요. 내 것 만들고 싶지만은 아 니에요. 오히려 이것을 가지고 친
구를 사귀라. 친구가 더 중요하다 는 말이지요. 사람을 잃어버린 다 음에 돈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가만히 보세요. 돈에 인색한 사람 은 친구가 없습니다. 돈을 바로 쓰 지 못하는
사람은 고독합니다. 그 리고 마지막엔 돈도 지키지 못합니 다. 그것도 다 날아가고 맙니다.
다 잃어버리게 됩니다. 여러분, 여 러분 스스로 생각해 보세요. 나는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
각하나?
1993년 9월 25일에 있었던 일입 니다. 저 스페인이라는 나라에 어 떤 청년에게 3억원 상당
의 복권이 당선이 됐습니다. 공짜 돈 3억원이 생겼단 말이에요. 온 집안이 모여 서 축하파티
를 했습니다. 굉장한 파티를 벌였는데 벌이고 나서 이걸 좀 나누어 갖자. 그래서 친척간에
형제간에 나누다가 싸움이 나서 사 람을 죽였습니다. 참 이상한 것은 복권 당선돼 가지고
잘되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게 복권이 아 닙니다 그게. 화권입니다. 화권. 공짜 돈이
라는 건 절대로 나를 행복 하게 하지 못한다. 여러분 생각해 보셨습니까? 억 만금이 내 손
에 들 어와도 아닙니다. 공짜는 바라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그 수준에 도 달합니까? 아니 돈
번다는데 무얼 마다하나? 그까짓 거짓말이 문제냐 진실이 문제냐 사람이 문제냐? 강 도가
별 사람입니까? 사람의 목숨 은 중요하지 않고 돈만 중요한 사람 이 강도요. 그 강도의 마
음이에요. 그런고로 우리는 어디까지나 인격과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그런 수준의 진실이어
야 한단 말이에요.
고려 공민왕 때에 있었던 이야기 입니다. 두 청년이 아주 형제간의 우애가 좋았는데 길을
가다가 금 덩 어리 하나를 주웠습니다. 노다지를 주웠는데 자 이 형님의 손에 있으면 동생
이 불안하고, 동생의 손에 있으 면 형님이 불안해서 나 좀 보자, 나 좀 봅시다 이러고 가다
가 형님이 양 화진 나루터에서 한강을 건너면서 나룻배를 타고 가다가 이 금 덩어리 를 물
속에다 집어넣고 말았습니다. 왜요? 우리 사이가 이렇게 좋았는 데 이 금 덩어리가 우리 손
에 있으 면서부터 내 마음도 괴롭고, 네 마 음도 괴롭고 어느 사이에 우리 사이 가 이렇게
나빠지더냐 이거예요. 그런고로 이 금 덩어리는 우리에게 필요 없다. 던져 버렸어요. 자 이
제 우리가 친구를 사귀고 인격을 높 이고 신의를 위하여 금 덩어리를 던 질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무엇 을 더 소중히 여깁니까? 거기에 진 실이 있는 것이에요.
또한 오늘 성경에 말씀하십니다. '작은 것에 충성된 자라야 큰 것에 도 충성된다.' 작은 것,
큰 것. 사 람보기에는 작고 큰 것이 있지만은 하나님 앞에는 마찬가지예요. 한 달란트든 두
달란트든 다섯 달란트 든 주인이 준 달란트입니다. 작고 크고가 없습니다. 그런고로 작은 일
보면 큰 일도 알 수 있어요. 근 데 사람마다 큰 일하겠다 그러면서 작은 걸 무시해요. 나는
위대한 일 을 하기 때문에 이런 건 상관이 없 다. 여기에 망조가 있는 거예요. 여러분 작은
진실을 다시 찾으십시 다.
우린 차를 운전할 때 보면 여러 분 다 느끼겠지만 앞에 가는 차 자 세히 보면은 담배 불을,
그 담배 재 를 문 밖에는 터는 이런 사람 볼 때 마다 마음이 괴로워요. 가까이 가 서 보니
까 멀쩡한 사람이에요. 이 사람은 지금 내가 무얼 잘못하고 있 는지 몰라요. 그 사람에게 내
가 한 마디 충고하고 싶지만 충고했다가는 싸움 날까봐 못합니다. 그 다음에 더 못된 말 나
올까봐 차마 말을 못 하고 지나갈 때 마음이 아픕니다. 슬픕니다. 도대체 이 담배 재를 어
디가 털고 있는 거예요. 이게 바로 우리의 문화예요 지금.
그뿐입니까? 가끔 식당에서 보 면은요 그저 남이야 듣던 말던 소리 지르고 떠드는 걸 볼 때
에 웃는 소 리라면 괜찮아요. 일장 연설을 하 고 떠드는 걸 보면 이게 야만인이 따로 없는
거예요. 자기가 전세 냈 어요? 누가 옆에서 들을까봐 조용 조용 말해야 되겠는데 이게 상관
이 없는 거예요 그냥. 이게 작은 일 아닙니까? 휴지 한 장을 써도 아낄 줄 알아야 되고, 메
모지 한 장이라 도 한 쪽이 남았으면 뒤집어 다시 쓸 줄을 알아야지 그까짓 더 사면 그만
아니야 이게 안되지요.
내 이런 책을 읽었습니다. '한국 이 미국사람에게 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 그런 책이 있더라
고요. 거기 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우리 한국 은 구두닦이가 성행이고, 미국은 구 두 수선
이 성행이라고…… 거기서 졌다는 얘기입니다. 백 불 짜리 구 두를 밑창이 떨어졌다고 50불
을 주 고 수리를 하더랍니다. 백 불 짜리 구두를 50불 들여서 수리. 우리 같 으면 50불 보태
서 새 것을 사지…… 이게 우리 마음이요. 저 사람들은 안 그래요. 50불을 들여서 다시 수
리해 가지고 신는 겁니다. 작은 일, 작은 일 같지만 바로 그것이 복 받 는 그릇이에요. 멀쩡
한 걸 내버리 고요. 이래서 되겠습니까? 작은 일에 충성치 못하면 큰 일 바라볼 거 없어요.
그걸 알아야 합니다. 작은 일 성실히 해야 됩니다.
오늘도 귀한 성가를 불러줬습니 다만은 유능한 작곡가 바하는 본래 라이프 치히라고 하는
곳에 있는 토 마스 교회의 오르가니스트입니다. 오르가니스트로서 그는 생각했습니 다. 매주
일 새로운 곡을 내가 작곡 해서 교회를 봉사하고 하나님께 영 광을 돌릴 것이다. 매주일 작
곡을 합니다. 새로운 합창곡을 작곡하고 새로운 올겐 곡을 작곡을 했습니다. 그의 작곡이 출
판되지도 않았고 팔 리지도 않고 뿐만 아니라 거기에 대 한 누가 돈을 주는 사람도 없습니
다. 아무 값도 받지 못하나 교회를 섬기는 그 마음으로 부지런히 매주 일매주일 작곡을 했
습니다. 마침내 그는 265 올겐 곡과 263의 합창곡 그리고 162곡의 피아노 곡을 작곡하 게
됩니다. 이렇게 수 십년 봉사할 때에 그 재능이 점점 높아지고 명성 이 높아져서 오늘 우리
가 기억하는 세계적인 바하가 된 거예요. 그가 천재는 아니에요. 작은 일에 성실 히성실히
봉사하다 보니 이런 사람 이 된 거지요.
무엇을 하던지 그렇습니다. 전 대단히 죄송하지만 이제 오늘도 문 제인데 좀 있다가 헌금
할 때 독창 부르겠는데 난 독창하는 사람이 악 보 가지고 나오는 건 영 못 봐줍니 다. 그
한 곡 부르려면 제대로 부 르던지 하지 악보 가지고 나와서 읽 자고야 뭐 하는 거예요? 자
기가 작 곡한 것도 아닌데 남의 거 제대로라 도 부르지…… 이걸 그래 악보를 가지고 와서
읽고 앉았어! 그렇게 불성실할 바엔 그만 둬! 그것이 내 마음입니다. 뭐 하나라도 정말 성
실하게 충성되게 정 못하겠거든 손 바닥에다가도 써 가지고 나오지 그 큰 악보를 들고 부르
고 있어요. 나 이거 영 못 봐. 그런 줄 아세요. 거기에 성의가 없는 거예요. 성의 가. 정성과
진실이 담겨지지 않았 다는 말입니다. 그 한 곡을 위해서 정말 애를 써서 하는 것과, 즉흥적
으로 한 곡 나와서 손들고 찬송가 가지고 부르는 건 이게 바로 진실이 없는 거예요. 마음이
담기지 않았 다는 얘기입니다. 작은 일에 충성 하자. 하나님께서 큰일을, 큰일을 큰 것을 맡
기시는 거예요.
또 남의 것, 내 것 할 때는 남의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 열왕기 하 6장에 보면 엘리사 선
지 때에 그 제자들이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찍 게 됩니다. 자기네 숙소를 좀 넓히 기 위해
서. 나무를 찍다가 도끼 하 나가 도끼 자루에서 빠져서 물 속에 빠졌어요. 그 때의 그 제자
가 이렇 게 말합니다.
"아 큰일 났습니다. 이것은 빌려온 도끼입니다."
그리 고 당황합니다.
"내 도끼면 하나 없어지면 그만이지만 빌려온 것입니 다. 어떡하면 좋습니까?"
그리 안 타까워하여서 엘리사가 그 도끼를 건져주는 이야기가 있지요. 빌려온 물건, 내 물건
과 빌려온 물건 어느 쪽이 소중합니까? 여러분 진실을 물어보세요. 내 것과 남의 것 어느
쪽이 소중합니까? 내 기분 남의 기 분 어느 쪽이 소중합니까? 내 명예 남의 명예 어느 쪽
이 소중합니까? 여기서 우리가 부도난 것이에요. 남의 것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그건 더 중요하니까요. 배 려 의식이 너무 부족합니다.
유명한 얘기입니다. 제가 여기 서도 몇 번 말씀 드린 것 같습니다. 인도의 지도자인 간디는
어느 날 기 차를 타는데 조금 늦어서 달려가는 기차를 겨우 올라탔습니다. 올라타 자마자
신발 하나가 벗어 졌어요. 신발 하나가 벗어 졌는데 뭐 그렇다 고 기차 멈추겠습니까? 한
짝 잃어 버렸지. 그런 순간 바로 다른 한 쪽 신발을 벗어서 던지더랍니다. 아니 한 쪽 잃어
버린 것도 억울한데 왜 한 쪽은 던집니까? 나야 어차피 잃어 버렸지만은 저 신발을 주울 때
한 짝 가지고야 신겠나 두 짝을 줘 야 신을 거 아닌가 하고 벗어주는 거예요. 내 신 잃어
버렸다고 몸부 림치기보다 이 신을 다음에 신을 사 람이 두 짝이 되야 신지 않겠느냐 그 쪽
을 먼저 생각했더라 이 말이예 요. 이것이 위대한 사람이요, 남의 일을 먼저 생각하는 겁니
다. 얼마 나 소중한 얘기입니까!
더욱 재미있는 얘기가 하나 있습 니다. 스위스에 캐스퍼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
은 조그마 하게 시계포를 하는 사람이에요. 시계를 만들어서 파는 그런 사랍니 다. 그런데
좀 사업이 잘못 돼 가 지고 빚을 많이 져서 급히 은행 빚 을 갚아야 되는데 독촉을 받고 있
었 어요. 그런데 자기 집에 시계, 고급 좋은 시계가 몇 개 있는데 이게 팔 리면 되겠는데 하
고 기다렸는데 기 도했어요. 그것 때문에. '이 고급 시계 좀 몇 개 빨리 팔려서 빚을 갚 게
해 주세요.' 시계는 가지고 있는 데 돈은 없거든. 그랬는데 어떤 점 잖은 사람이 와서 시계
는 사는 거예 요. 아 그 비싼 시계를 많은 돈을 내고 사요. 돈을 치렀어요. 그래서 이제 됐
다 생각했는데 이 사람이 그 러고 나서 하는 말이
"사실은―다른 시계 하나 보이면서―내가 이 시계 를 내가 잘 아는 그리스도 인, 예수 믿는
사람 집에서 샀는데 이게 사자 마자 고장이 났어. 그래 내가 마음 이 아파서 새 것을 또 사
느라고 ……"
그러니까 이 주인이
"시계 좀 봅시다."
보니까 훨씬 고급 시 계예요. 아주 좋은 시계야.
"잠깐 무엇이 좀 잘 못 됐나 본데 제가 좀 손봐 드리겠습니다."
잠깐 만지니 까 잘 돌아가요.
"이 시계가 제가 판 시계보다 훨씬 좋은 시계입니다. 그러니까 내 시계는 필요가 없겠구 만
요. 도로 주시구려."
그리고 돈 을 드렸어요. 이걸 옆에서 보던 아 들이
"아버지, 그러면 은행 빚은 못 갚지 않습니까? 이미 판 시계인데 가만히 있지 않고, 그 왜
남의 시계 는 좋다고 칭찬해 가지고 이렇게 되 는 겁니까?"
그 아버지가 하는 말 이
"받아서 복된 돈이 있고, 복되지 못한 돈이 있느니라."
그리고 시계 를 주었습니다. 보세요. 이틀 후에 이 사람이 가만히 생각하니까 참 좋 은 사람
이거든요. 다시 돌아와서 시계를 많이 살 뿐만 아니라
"앞으 로 이 회사에서 만드는 시계 2년 동 안 내가 몽땅 사겠습니다."
이래서 크게 성공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내 물건 남의 물건 어느 쪽이 더 소중 합니까?
우리는 남 칭찬하는 거 아주 못 봐요. 남의 물건 좋다는 것은 죽어 도 못해요. 그러면 죽어
야지. 식을 알아야 돼. 충성이 없고, 진실이 없 어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언제 나 남의
물건이 더 소중한 것이에 요. 남의 인격이 더 소중한 것이요.
그리고 오늘 본문에 주신 말씀이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 느니라. 돈이 진실보
다 앞서서는 안됩니다. 물론 하나님과 함께 맘 모니즘이 돼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지금 큰
채찍을 맞고 있습니다. 그 건 바로 맘모니즘에 대한 징계입니 다. 황금 만능주의에 대한 채
찍입 니다. 우리가 지금 문제되는 것은 전부 진실은 없고, 돈만 있는 거예 요. 돈 하나만 따
라가면서 다 팔아 먹었어요.
제가 어느 때 학장 일을 좀 보았 어요. 입학기가 되면은 어떤 부모 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돈은 얼 마든지 줄 테니까 이 학생을 입학시 켜 달라고 그럽니다. 저는 앉혀 놓 고
"그러지 맙시다. 학교를 못 다 녀도 진실이 해야지. 이걸 뒷문으 로 돈을 받고 얘를 입학시
키면은 얘 는 앞으로 아들딸을 낳았을 때 아이 들을 어떻게 가르치겠습니까? 지금 만 생각
하지 마시고 장차를 생각하 십시다."
그런고로 이런 일 하지 말라고 해도 말 안 들어요.
"좌우 지간 입학시켜 주세요."
그 때마다 이 한심한 집이라고 생각했어요. 거짓 위에 돈은 뭐하고 명예는 뭐하 고 학벌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왜 우리는 이렇게 이것이 문화화 되 버렸습니까? 뭐 그래도 상관없
는 것처럼 이것이 문화화 될 때 그건 종말입니다.
우리 다시 깊이 생각하십시다. 스스로 진단해 보십시다. 진실을 잃어버린 지식이 무슨 의미
가 있습 니까! 진실이 없는 열심이 무슨 소 용이 있습니까? 진실이 없는 부지 런이 무슨 소
용 있습니까? 진실을 가르치지 못하고 우리가 돈을 주면 무얼하고 명예를 주면 무얼 하겠습
니까! 온통 거짓 투성이야. 바로 이것 때문에 우리는 시달리고 있는 겁니다. 이것이 원인이
라는 것을 우리는 생각하려고도 안 합니다. 다시 돌아가서 우리는 작은 것에 충 성돼야 주
께서 큰일을 맡기실 겁니 다. 남의 것에 충성할 것입니다. 신앙적 자세로 진실을 다시 재점
검 해야 됩니다. 그리할 때에 주께서 는 큰 것으로 더 좋은 것으로 더 넉 넉한 것으로 우리
에게 맡기실 것입 니다. 실종된 자기 진실에 대하여 다시 깊은 반성이 있어야 하겠습니 다.
'◑δεδομένα 18,185편 ◑ > क्वाक पास्टर 1,910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을 마치려는 사람! (행 20:17-25) (0) | 2022.12.03 |
---|---|
잃은 양 비유! (눅 15:3-7) (0) | 2022.12.03 |
주께서 아시나이다 (요한복음 21 : 15 ∼ 17) (0) | 2022.12.03 |
주님의 택한 그릇! (행 9:10-18) (0) | 2022.12.03 |
주도적 신앙의 본질! (눅 13:6-9) (0) | 2022.12.0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