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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출 3:6-12

by 【고동엽】 2022. 12. 3.

당신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2002-11-13 14:46:19 read : 6990

 

3:6-12 // 021110

 

 

며칠 전, 한 목사님을 통해 자신이 10년 전에 겪은 교회의 화재에 관한 간증을 들었습니다. 그때 화재 소식을 듣고 현장에 가보니 불길이 사방으로 뻗쳐오르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목사님 마음에 절망감이 밀려왔습니다. 특히 그 당시 교회가 권태기를 겪으며 교회 안에 균열조짐이 보여 40일 특별기도회를 하고 있었는데, 그 중간에 화재가 생겨 성도들이 더 시험에 들고 기도에 대한 열심이 사라질 것 같아 "이제 내 목회는 끝났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생겼습니다. 수많은 성도들이 자진해서 교회에 나와 헌신적으로 복구공사에 참여하고, 평소에 믿음이 없다고 여겨지던 분들까지 열심을 내고, 누가 강조하지 않아도 엄청난 헌금을 했습니다. 추운 겨울, 수많은 성도들이 낮에는 복구공사에 참여했고, 밤에는 온통 검게 그을려진 본당 안에서 꽁꽁 언 손을 가지고 눈물로 기도하는데 한달 내내 부흥회가 따로 없었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교회 안의 모든 문제는 기도의 열기로 사라져버렸고, 교회는 더 든든하게 서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고난 중에 함께 하시는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 6절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하나님'도 되신다는 말입니다. 또한 이 말에는 믿음의 선배들과 한 약속을 지키시겠다는 의미도 있고, 믿음의 축복은 계승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 생활 잘 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 자녀도 지켜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자녀의 앞날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들이 자녀들에게 '아빠, 엄마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만 심어주면 자녀들은 어떤 고통도 잘 헤쳐나갈 것입니다. 어떤 분은 자기가 고생했기 때문에 자기 자녀만은 절대 고생을 시키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엄마는 딸에게 힘든 일은 시키지 않고 잘 꾸며주면서 공주처럼 키우려고 합니다. 숙제도 대신해줍니다. 그러면 딸아이가 진짜 공주처럼 살 것 같지만 점차 그 아이의 영혼과 인격의 가치는 떨어지게 됩니다. 감사도 모르고, 조금만 뜻대로 안되면 원망부터 하고, 효도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자랐으니 나중에 효도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생하고 자란 아이들이 부모님께 효도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는 만만한 사회가 아닙니다. 가정생활도 만만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공주처럼 자라도 시집가면 매사가 고생입니다. 그런 고생을 극복해야 행복도 주어집니다. 인생이란 언제나 고난을 통해서 행복의 열매를 얻습니다. 그러므로 자녀가 행복하기를 원하면 절대 공주처럼 키우겠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중요한 것은 고난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면 삶의 지혜도 생깁니다. 얼마 전, CNN방송과 갤럽이 공동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성적이 상위권인 미국 중고등학교 학생의 73%가 교회를 다닌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대로 사는 사람에게 반드시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지금 전 세계에 수많은 불교국가, 유교국가, 힌두교 국가, 이슬람 국가들이 있지만 선진국은 대개 하나님을 잘 믿는 나라입니다. 그런 현상을 "잘 살면 다냐?"라고 무시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의 열매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 하나님에 대한 경건한 두려움이 있습니까? >

 

하나님께서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실 때 모세가 어떻게 했습니까? 하나님 뵈옵기가 두려워 얼굴을 가렸습니다. 이 두려움은 '무서운 두려움'이 아니라 '거룩함에 압도된 두려움'을 말합니다. 무엇이 이런 두려움을 생기게 합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그렇게 만듭니다. 은혜가 있는 사람은 거룩한 두려움이 생깁니다. 찬송가 405장의 영어 가사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나의 마음에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르쳐주었던 것도 은혜였고, 나의 두려움들을 없어지게 해주신 것도 은혜였습니다."

 

부모님의 은혜를 아는 아이는 버릇없는 아이가 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은혜 받은 성도에게는 경건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기도도 진지하게 하고, 예배도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드립니다. 어떤 분 집에 심방을 가면 예배 준비도 잘 되어 있고, 예배 자세도 너무나 좋습니다. 음식을 하는 경우에는 음식 준비도 미리 합니다. 전화 코드도 미리 빼 놓습니다. 개가 있으면 개를 베란다에 미리 묶어 놓습니다. 평소에는 유행가만 틀어도 심방 받는다고 하면 찬송가 테이프를 사서 은은하게 켜 놓습니다. 어떤 분은 심방 받는 기회에 아예 집 도배까지 합니다. 이런 가정에 가면 목회자도 그 집에 들어가면서 은혜가 되고, 하나님께서도 그런 모습을 보고 기뻐하시지 않겠습니까? 은혜는 항상 경건하게 준비된 마음가짐 속에 주어지게 됩니다.

 

< 우리의 처지를 보고 듣고 아시는 하나님 >

 

하나님은 위엄이 있으신 두려운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하나님은 아주 자상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7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을 보고 듣고 아신다고 합니다. 사람은 사람의 어려움을 잘 모릅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어려움을 잘 모릅니다. 그 한계를 저도 인정하고, 여러분들도 인정할 때 목회자와 성도는 서로 축복해주고 기도해주는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그처럼 사람은 몰라도 하나님은 아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어려움에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평안합니까? 더욱 하나님께 감사하고 충성하십시오, 반대로 힘든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주위 사람을 향해 원망하거나 불평하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그때가 하나님을 만날 절호의 기회입니다. 어떤 분은 고난을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안경이라고 했습니다. 그 안경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어려운 상황을 보고 절대로 그냥 지나치지 않고 "우리가 어떻게 하나?" 하고 자세히 보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려운 지경에서도 감사하면 하나님은 감동을 받으시고 그에게 큰 축복과 위로를 주실 것입니다.

 

얼마 전, 이산가족과 상봉한 정귀업 할머니 이야기입니다. 이 할머니는 19세에 영광 출신의 남편과 결혼했습니다. 그 당시 남편은 목포고를 졸업하고 서울로 가서 한양공대에 다녔는데, 6.25가 터지면서 소식이 뚝 끊겼습니다. 남편과 산 기간은 고작 1년이었습니다. 그후 남편이 어디선가 건강하게 살아있어만 달라는 믿음을 간직한 채 52년을 시부모와 시조모까지 모시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그 남편이 북한에 사는 것을 알고 이번에 만나게 된 것입니다.

 

남편은 북한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교편을 잡고 재혼해 5남매를 두고 살고 있었습니다. 자기는 평생 수절하며 52년을 시부모와 시조모까지 모시며 지냈는데 남편은 금방 재혼해서 5남매까지 두었다고 하니 얼마나 기막힌 일입니까? 그러나 정 할머니는 침착하게 그 현실을 맞이하고 "내가 예수님 때문에 52년을 이렇게 살 수 있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매일 교회를 찾아 남편을 위해 "하나님! 우리 신랑 어쨌든 그 여자랑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게 해 주세요!" 하고 기도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모습을 보시고 감탄하시지 않겠습니까? '너야말로 진짜 성도다!"라고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믿으면서 그런 슬픔과 원망을 이기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이길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형편을 다 아신다고 생각하면 이길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보는 것을 믿는 사람들이지만 우리 믿는 사람들은 믿는 것을 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의 눈으로 우리를 애틋한 사랑으로 살펴보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믿음을 보여드리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 다음 작업을 위해서 움직여주실 것입니다.

 

< 은혜로 구원하시는 하나님 >

 

본문 8절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들을 구원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 사랑으로 예수님도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길 외에는 다른 구원의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선행은 구원의 길이 아닙니다. 선행 속에 인간의 계산도 많이 깔렸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양심을 따라 사는 것도 구원의 길이 아닙니다. 우리의 양심이 얼마나 자기 생각과 경험에 의해 왜곡될 수 있는지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10일 금식기도 후에, 기분 좋게 산에서 내려오다 원두막에서 잠시 쉬는데 참외밭의 참외가 맛있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사 먹으려고 주인을 기다리는데 주인이 오지 않아서 주인이 오면 계산하리라 생각하고 참외를 따먹었습니다. 그런데 계속 주인이 오지 않아 할 수 없이 그냥 집으로 왔습니다. 집에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본심은 그렇지 않았지만 남의 참외를 따먹었으니 도둑놈이 된 셈이었습니다. 금식기도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이 도적질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새벽 기도를 갔는데 마음속에 양심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네가 목사냐! 금식 후 첫날부터 남의 물건을 훔쳐! 두 손 가지고 지옥 가느니 훔친 손 하나를 버리고라도 천당 가는 것이 낫다!" 목사님은 스스로 생각했습니다. "손을 자르면 될까?" 마음속에 또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손뿐만 아니라 눈으로 훔칠 것을 보았으니까 눈도 뽑아야 되고, 발로 참외밭까지 걸어갔으니까 발도 자르고, 네 목으로 들어갔으니 목도 자르고, 지금은 창자까지 갔을 테니까 창자도 잘라야지."

 

그 양심의 소리에 목사님은 자신의 몸에 어느 것 하나 온전한 것이 없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금식기도로 조금이라도 의로워질 줄 알았는데 금식기도는 의와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결국 목사님은 은혜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 금식기도를 하고 깨달은 것보다 참외를 훔쳐먹고 깨달은 것이 더 많습니다. 제가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앞세워 살게 해주세요."

 

금식기도 하면 의인이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의인이라고 여기거나 "내가 그래 봬도 저 사람보다 낫지!"라고 생각하면 바로 그 순간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버립니다. 내가 신앙생활을 잘 해도 그것조차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지 내가 잘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자기 의를 포기하고 하나님께 매달릴 때 주어집니다.

 

가끔 보면 아이들 중에 밥을 흘리고 먹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남의 아이가 그러면 속으로 생각합니다. "저 자식! 밥도 제대로 못 먹어!" 그런데 자기 자식이 그러면 미운 것이 없고, 어떤 분은 아이가 흘린 밥알을 주어 먹습니다. 식당에서도 다른 아이가 떠들고 뛰어다니면 "저 자식! 버릇 못되게 들었네!"하고 생각하는데 자기 아이가 그러면 버릇이 못된 자식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똑같이 행동해도 남의 자식은 율법으로 보니까 허물이 많아 보이고, 자기 자식은 은혜와 사랑으로 보니까 허물을 덮어줍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은 허물을 덮어주는 부모의 은혜와 사랑을 느낄 때 아이의 행동이 점점 바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은 점차 믿는 사람다운 냄새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 무능한 자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

 

오늘 본문 10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구원의 사명을 모세에게 맡기십니다. 그때 모세가 하나님께 묻습니다. 11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그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합니다. "내가 정녕 너와 함께 하리라."(12) 하나님은 우리가 무능하다고 고백할 때 더 가까이 와서 격려해주십니다. 하나님은 갖추어진 사람을 쓰시는 것이 아니라 덜 갖추어진 사람을 쓰십니다. 아무리 무능해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누구보다 유능한 존재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없다고 어깨를 움츠리거나 고개를 숙이는 인생이 되지 마십시오. 그때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준비하신 일이 없는가?" 하고 주위를 살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초라한 우리 인생에도 기적은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바로의 힘을 이용하지 않고 양치기를 불러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눈으로 우리를 보지 말고, 다른 사람의 눈으로도 우리를 보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눈으로, 또한 하나님의 부르심 안에서 우리 자신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 우연은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삶은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어려움에도 낙심하지 말고, 준비하면서 때를 기다리십시오. 어려움이 크면 그 뒤에 다가오는 축복도 크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일찍이 스코틀랜드의 남극탐험대의 대장이었던 베어드가 남극을 향해 걸어갈 때 별안간 눈보라가 그를 덮쳤습니다. 무전기는 파괴되어 연락이 두절되고 방향도 잃어버렸습니다. 점차 그의 온 몸이 마비되었습니다. 그는 빙판 위에 쭈그리고 앉아 "이제는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절망적인 순간에 머리에 한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바로 "임마누엘(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단어였습니다. 그 단어가 입에서 기합소리처럼 나오더니 순간적으로 힘이 솟구쳤습니다. 결국 그는 일어서서 자기가 걸어온 방향으로 걸어와 살아났습니다.

 

살면서 때로 포기하고 싶은 때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오해가 생기고, 살아가는 것이 재미없고, 좋은 일에 대한 의욕이 없고, 평소에 잘 지내던 사람이 돌멩이를 던지고, 아무도 내 힘든 마음을 몰라줄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주저앉고 싶을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귀에 조용히 말씀해주실 것입니다. "아무개야! 그래도 나는 끝까지 너와 함께 있어줄 것이다!"

 

저는 늦게 집에 들어갈 때가 많습니다. 그때 들어가면 꼭 아이들이 자는 방에 가서 아이들이 자는 모습을 봅니다.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키스해줍니다. 그 시간은 저에게 아주 행복한 시간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지친 마음으로 잠자리에 눕지만 그 순간 하나님이 우리 바로 앞까지 오셔서 우리에게 속삭여주실 것입니다. "아무개야! 그래도 나는 이 세상에서 네가 제일 좋단다!"

 

<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던지십시오 >

 

하나님은 우리를 가장 좋아하시고, 우리와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세상 끝날까지 하나님과 함께 하기를 작정하며 우리 자신을 던져 온전히 헌신해야 합니다. 바로 그때 우리 인생은 가장 가치 있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인생도 헌신이 없이 위대한 인생이 될 수는 없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대개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헌신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사람의 성공은 누구를 위해 쓰임 받고, 무엇을 위해 쓰임 받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비전을 위해 쓰임 받는 인생은 가장 성공적인 인생입니다. 하나님은 유능한 사람보다 주님의 비전에 동참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내 모든 현실이 다 의미 있는 줄 알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를 써주실 것입니다.

 

이솝우화에 박쥐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날, 새와 짐승이 전쟁을 하는데 박쥐는 새가 유리하면 자신도 날개를 펼쳐 새라고 하면서 새 편을 들고, 짐승이 유리하면 날개를 접고 자신도 짐승이라고 하면서 짐승 편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양쪽을 왔다 갔다 하니까 나중에는 짐승도 받아주지 않고, 새도 받아주지 않아 결국 혼자 동굴에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느 한쪽에 헌신하지 않으면 결국 이 박쥐처럼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서 온전히 헌신하기를 원합니다.

 

정치하는 것을 보면 정당 지지율이 떨어질 때가 있습니다. 대개 박쥐 정치인 혹은 철새 정치인을 받는 순간 정당 지지율이 떨어집니다. 이상을 따라 헌신해야지 이익을 따라 살면 안된다는 것이 일반 사람들의 정서입니다. 하나님의 정서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도 한번 믿고 교회에 다니기로 작정했으면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끝내주게 헌신하는 사람을 축복해주실 것입니다.

 

우리 영혼이 사는 다른 길은 없습니다. 내 영혼을 하나님께 깨끗하게 드려야 합니다. 누가복음 16장에는 나오는 거지 나사로란 이름의 뜻은 "하나님을 기대고 사는 자"라는 뜻입니다. 나사로는 가난했지만 하나님을 기대고 살다가 천국으로 갔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엇이 있는가? 없는가?"가 아니라 진정 "하나님을 기대고 사느냐?"하는 것입니다.

 

요즘 길가에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습니다. 한 때의 무성한 자랑을 뒤로 하고 땅에 떨어져 뒹굴면 청소부는 그 낙엽을 쓸어서 불에 태워 버립니다. 그런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씨를 가진 열매를 남기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그런 영생의 씨를 가진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어떤 분은 놀기에 바쁘고 일이 바빠서 믿을 시간이 없다고 하지만 바쁠수록 영혼의 문제를 생각하며 시간의 성소를 구별하고 "교회를 위해 내가 할 일은 없나?" 하고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실 조금 덜 살고, 조금 더 살고 하는 문제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조금 덜 살더라도 영생을 소유해야 합니다. 사십대에는 몸이 아파도 계속 산다는 생각이 들지만 오십이 넘으면 건강해도 죽는다는 생각이 든다고 합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무덤의 소리가 크게 들리기에 무덤으로 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칩니다. 그러나 예수님 믿어 영생의 문제를 해결하고 멋있게 살다가 때가 되어 깨끗이 천국으로 간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삶입니까?

 

어떤 선교사의 간증입니다. 그분은 원래 불신자였는데 선교사가 되기까지 사연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30대 때에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가 항상 말했습니다. "아빠! 저와 함께 교회 다녀요." 이분은 아이의 말을 애교로만 알고 "알았다. 가자!"고 하면서 계속 교회를 안 나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족 여행을 갔다가 자동차 사고로 아이만 죽게 되었습니다. 가슴이 미어지는 상태로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그날 밤, 아이의 일기장을 뒤지는데 일기장 마지막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나는 오늘밤도 무릎꿇고 우리 아빠가 예수님 믿고 천국 가기를 기도했다. 아빠가 항상 교회에 간다고 하면서 가지 않아 눈물이 난다. 아빠가 예수님 믿고 천국 가는 것을 보고 싶다. 내가 죽어서라도 우리 아빠가 예수님 믿는다면 좋겠다."

 

이 글을 읽고 이 분이 통곡을 하며, "얘야, 나도 너를 따라 예수님 믿고 너 간 곳으로 가겠다"고 굳게 결심한 후에 자기의 삶을 깨끗하게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아들의 생명은 떨어졌지만 아버지의 영혼을 살리는 열매를 남기고 떨어진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해주는 누군가가 있었기에 저와 여러분이 지금 이 자리에서 하나님께 예배 드리고 말씀을 듣게 된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무슨 일이 있어도 영혼의 문제를 가볍게 생각하지 말고, 바쁘다 핑계하지 말고, 환경이 어렵다고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축복이 더디 온다고 서두르지 말고, 항상 여러분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기대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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