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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설교-은혜와 진리

by 【고동엽】 2022. 12. 3.

은혜와 진리

본문 : 요이1:1-6, 시85:7-13

설교 : 이동원 목사(지구촌 교회) 

 

 

새해 첫 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사랑하는 가정마다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난 한 해야말로 문자 그대로 다사다난했던 일년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나라는 싸움과 다툼과 그리고 인재와 재앙이 멈출 날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우상과 불신과 불의와 불법으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금년은 새해답게 모든 것이 새로워지는 복된 한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백성들의 심령 상태가 새로워져야 합니다. 새해가 되었다고 새로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새 옷을 갈아입었다고 새로워지는 것도 아닙니다. 새로운 결심을 한다고 새로워지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금년 한해는 새롭게 하시는 성령님의 강권적으로 역사로 교회가 새로워지고, 이 나라 이민족이 새로워지는 복된 한해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민족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회는 교회대로, 민족은 민족대로 안에서나 밖에서나 존경과 사랑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은 가난하고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진실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정치하는 사람들은 존경하고 사랑할 수 없었던 것도 그들을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들에게 진실이 없기 때문에 사랑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정치가 이와 같이 신실하지 못한 까닭에 오늘 이 땅에서 신뢰심과 사랑이 모두 증발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에게는 깊은 증오심과 불신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나라가 잘되기를 바라고 남북 통일을 위해서 기도하고 간절히 원하고 있지만 가장 큰 장애는 불신과 증오입니다. 동서남북으로 갈라진 불신의 깊은 골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서로 불신하며 또한 진실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까지 정권이 거짓 위에 세워졌고 진실이란 찾아볼 수 없기에 저들을 도무지 신뢰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진실이 없는 곳에 신뢰가 있을 수 없고, 신뢰가 없는 곳에 사랑이 자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나라가 잘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진실을 회복하여야 합니다.

 

불신과 증오! 이것은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암적인 요소입니다. 대학 사회마저 이 암적인 요소들로 인하여 흔들리고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두려움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과거에는 권위와 신뢰의 대상이었던 것들이 오늘에 와서는 진리를 상실했기 때문에 그것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존경하고 사랑할 대상을 모두 잃어버리고만 것입니다.심지어는 가정에서 조차도 부모의 권위가 땅에 떨어져 그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부모들이 진리 가운데 거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이와 같이 병든 사회를 누가 치료할 수 있을까요?

 

진리와 사랑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 사회의 불신과 증오를 거두어 가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이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믿는 우리가 사랑과 진리를 이 민족 속에 심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진리는 사랑이 행동화 된 것이다

 

1. 진리가 무엇입니까?

성경의 ‘진리’라는 말은 견고, 안전, 신실, 확고부동을 뜻합니다. 확고하고 안전한 것을 의미하는 말로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와 그가 인간 생활 속에 임재하시고 활동하시는 특징을 나타내는데 주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시편31:5절에 보면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구속하셨나이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스스로 신실하시고, 자기 약속에 대하여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신자들을 사랑하시고 친히 간섭하셔서 신자들을 위협하는 불안정에서 구출하시고 새 기반을 닦아 생존의 터를 만들어 주시며, 미래의 소망을 열어 주신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 진리는 모든 사물과 인간의 가장 신실한 삶의 표준이요 존재의 척도가 됩니다. 즉 진리이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모든 존재는 존재로서의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 되신 하나님께서는 그가 진리이심을 말씀으로 나타내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확실하여서 틀림없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변함이 없다는 뜻에서 진리입니다. 또 한가지 하나님의 진리이심은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을 입어 이 땅에 오셨는데 그가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하나님의 진리를 나타내시고자 오셨고, 그 자신이 진리이십니다. 진리란 결국 우리가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는 확고 불변한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께만 있는 것입니다.

 

2. 은혜와 사랑 의미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사랑과 진리” 또한 “은혜와 진리”라는 말이 나옵니다. 성경에 보면 ‘사랑’이란 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 곧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신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은혜’라는 것은 우리를 위해서 값없이 주신 모든 좋은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포괄적인 표현할 때에는 ‘은혜’로 말했고, 그 은혜 가운데 구속의 은총을 말할 때에는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특히 사랑이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을 말합니다. 이런 점에서 교회는 먼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할 때에 사랑이 넘치며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로 성장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 있어서 교회가 성숙한 교회로써 사랑과 진리가 충만한 교회로 금년에는 새로와져야 할 것입니다.

교회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래서 금년에는 진리의 말씀인 성경 쓰기와 읽기에 온 성도들이 힘을 써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모하는 자에게 은혜를 더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은혜 우에 은혜를 더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3. 사랑과 진리, 은혜와 진리는 불가불리의 관계입니다.

사실 은혜도 사랑도 진리를 떠나서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진리 안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졌다는 것은 진리가 우리 안에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는다는 우리에게 사랑이 없다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은 자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본체가 되시는 사랑의 주님을 영접한 성도라면 서로 사랑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요일2:4-5절에 보면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믿노라 하고 사랑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면 거짓 말하는 자라는 말입니다. 요한 복음과 요한 서신들은 사랑과 진리라는 말을 가장 많이 사용한 서신들입니다. 요한2서와 3서에 보면 ‘진리 안에 거한다’는 말이 자주 사용되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진리 안에 거한다는 말은 바로 그들이 사랑을 행한다는 말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이4절에 보면 “너희 자녀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요한 서신에서 계명은 곧 사랑하는 것인데, 여기서는 진리를 행하는 것으로 표현하므로 그것이 같은 것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리 안에 거한다는 사실은 우리의 모든 삶에 거짓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른 말을 하고 바른 행동을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성실하다든지 진실한 사람이든지 하는 말이 다 진리 안에 거하는 삶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진리 안에 거한다는 것은 나의 삶이 변화되어 깨끗하게 되었음을 뜻합니다. 거짓을 버리고 진실만을 추구하므로 써 자신의 영혼을 맑게 만드는 삶입니다. 그런데 필연적으로 이렇게 진리를 추구하는 삶은 사랑에 이르게 마련입니다.

 

벧전1:22절에 “너희가 진리를 순종하므로 써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나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하였습니다. 진리는 우리를 사랑으로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가 없이 사랑이 있을 수 없고 사랑 없는 진리는 진리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지키는 자들로 자부하였습니다. 자신들을 진리의 사람들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진리는 있었지만 사랑이 없으므로 해서 그 진리 자체가 왜곡되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진리는 율법의 글자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율법이 말씀하신 사랑의 하나님 안에 있음을 저들은 알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3. 진리는 사랑으로 증거되는 것입니다.

이 진리 되신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거짓에 속아서 잘못된 길로 나가는 인간들을 구원하여 진리이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참 안전과 생명을 줄 수 없는 우상에게로 이끌리는 인간들을 그 파멸의 길에서 돌이켜 생명의 길로 이끄시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그리스도는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자신을 내어 주시므로 그는 자신이 진리임을 증명하신 것입니다. 롬5:8절에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거짓이 아님을 확증하심으로 그 자신이 진리이심을 나타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진리와 생명과 사랑은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한결같이 나타나서 우리를 죄악 가운데서 구원하여 생명을 주신 일- 이것이 바로 진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진리에 기초할 때 진정한 사랑이 될 수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진리가 빠져 버린 사랑은 사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요일3:8절에 보면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라고 했습니다. 말과 혀로만 하는 사랑은 거짓 사랑입니다. 롬12:9절에서 ‘사랑엔 거짓이 없다’고 말씀한 것도 바로 사랑은 행함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임을 뜻한 것입니다.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 사랑은 진리와 함께 할 때만 효력을 나타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불신의 사회를 치료하는 길이나 남북의 통일을 이룩하는 길은 우리가 먼저 사랑을 실천하는데 있습니다. 우리가 묵묵히 사랑을 실천할 때 진리가 나타나게 되고, 진리가 나타나면 거짓이 물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한반도에 거짓이 활개를 치는 까닭은 진리가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진리가 되려면 자신을 희생의 제물로 드리는 사랑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삼상14장에 보면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을 읽어 볼 수가 있습니다.

요나단은 사울의 아들로서 세상적으로는 차기 왕이 되는 사람이 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윗이 하나님에게 지명된 왕이라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아버지인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가진 못된 짓을 할 때 요나단은 다윗을 보호하고 존경하고 사랑하며 진실한 우정을 바침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진실은 이렇게 자기를 희생하며 사랑해야 빛이 나타나는 것이며 참된 진실이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가 왕이 되었을 때 요나단의 므비보셋을 자기 아들로 삼아 사랑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의 진실과 사랑은 하나님 앞에서의 참된 사랑이요 진실이었습니다.

 

우리가 지도자들의 말을 믿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애국심을 불신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거짓 말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내가 하나님을 사랑해요’,‘내가 나라를 이만큼 사랑했오’해도 그 말을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천애인도 진실한 말과 행동에서 비릇된 하나님 사랑, 나라사랑이 되어야지 거짓 말이 가득한 사랑은 애국심도 아니오, 하나님 사랑도 아닙니다. 그리고 그 말과 행동은 모두 자기 희생이요 겸손으로 증명 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거짓의 아비인 마귀에게 이끌려 진리를 떠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셨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율법과 예언자만을 보내셔서 ‘생명의 길은 창조주이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다’고 가르쳐 주시는 것으로 그치지 아니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직접 이 땅에 보내시어 십자가를 지게 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 하셨고, 그가 진리임을 확증하심으로 거짓의 아비인 마귀를 몰아내시고 빛과 사랑의 세계를 이룩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진리는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이 아니고서는 진리로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거짓과 어둠으로 덮였던 이 세계 속에 하나님의 아들이 들어오심으로 해서 그 거짓과 어둠을 몰아내시고 진리와 빛의 세계를 이룩하셨던 것처럼, 오늘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이 사회 속에 성육신 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으로 희생의 제물이 될 때 비로소 우리가 가진 복음이 진리가 되어 거짓들이 물러가게 될 것입니다.

 

4. 우리가 해야 할 일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땅에서는 누가 이 거짓 말의 왕인 마귀를 몰아 낼 것입니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앞장서서 몸으로 이 모든 거짓과 부딪쳐 가야 합니다.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으로 복음을 증거해야 할 것입니다. 그 때 그 복음이 진리가 되고 그 진리가 이 땅에서 모든 거짓을 몰아내게 될 것입니다. 불신과 증오의 치료는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사랑을 퍼부을 때만 가능합니다. 일방적으로 사랑을 쏟는다는 것은 결국 희생을 뜻합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을 뜻합니다.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고 날뛰는 자식을 치료하는 길은 부모의 끝없는 사랑밖에는 없습니다. 오늘의 병든 대학 사회를 치료하는 길도 재단과 교수들의 인내와 사랑으로 학생들을 감화시키는 길밖에 없다고 봅니다. 오늘의 병든 정치를 치료하는 길도 국민들이 그 거짓된 정치로 인하여 오는 피해를 감수하면서 이 사랑을 통하여 저들의 거짓을 계속 들어내는 길밖에는 없다고 봅니다.

 

공중도덕아 환경오염의 문제를 볼 때에 아직도 먼 감이 듭니다. 그것은 자연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말이나 구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을 진리로 바꾸는 사랑의 삶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진리는 사랑과 함께 역동적인 것이므로 우리 머리 속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슴속에 자리잡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의 문자에 사로잡히거나 교회 법에 붙잡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올바로 파악하지 못하므로 해서 사랑이 없는 형식적인 종교로 전락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아무리 성경을 많이 읽고 안다 하더라도 그 말씀이 지시하는 사랑의 생활을 하지 못할 때 그것은 진리가 아닌 한낱 지식에 불과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아니라 진리가 필요한 것입니다.

 

요즈음 한국 교회가 성경 공부는 많이 하고 있습니다만 문제는 성경 공부가 우리의 지식은 많이 향상시켜 주는데는 크게 기여를 했지만, 진리를 행하는데 까지는 이끌어 주지 못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우리가 배운 지식을 사랑으로 발동을 걸어 그것이 진리가 되게 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지식을 추구했지, 진리를 추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진리를 행하는 자, 사랑을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불신과 증오로 얼룩진 사회 속에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성숙한 교회가 되어 사랑과 진리의 복음을 우리의 삶을 통하여 전파하므로 인해서 이 사회가 변화되고 치료되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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