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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곽선희 목사 설교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마 11:25-30)

by 【고동엽】 2022.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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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마 11:25-30)

 

현대를 사는 우리들을 평가하는 평가지수 가 있습니다, 경제 성장을 말할 때 성장 지 수를 말하는 것처럼 사람에 있어서도 사람 을 평가하는 지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지 금은 건강지수를 말하기도 하고 그가 가지 는 소유, 겅제를 가지고 말하기도 합니다마 는 사람의 사람됨은 그가 가진 소유나 그의 지식이나 혹은 건강에 의해서 굉가되지 않 습니다.

인격을 평가하는 네 가지 지수

현대에서는 네 가지를 가지고 사람의 인격 을 평가한다고 합니다 하나는 여러분이 잘 아시는대로 IQ라고 하는 것입니다,
Intelligence Quotient입니다, 지능지수입 니다, 우리는 과학 시대에 살고 기술 시대 에 살기 때문에 모든것이 이 지능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지능지수가 낮고 보면 되는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특별히 컴퓨터로 사는 오늘의 사회에 있어서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는 얘기는 말이 안되는 것입니다. 마당을 쓸어도 기계로 쓸고 칭소를 해도 기 계로 합니다, 모든 것이 기계와 기술을 요 하기 때문에 우리는 지능지수가 있어야 비 로소 무엇인가를 해낼 수가 있어서 IQ에 의 해서 사람을 평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근자에 와서 생각해보니 그것만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IQ만 가지고는 안되고
EQ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감성지수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공부를 많 이 해서 시험장에 나갑니다마는 시험장에 나가서 벌벌 떤다면 공부한 것이 헛것이 되 고 맙니다, 모름지기 우리의 마음이 평안해 야 합니다, 감성에 문제가 없어야 합니다. 감성에 안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인의 성공 비결에 3P라고 하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Practice, Peace, Patienee입니다. 여기에도 Peace가 있습니 다. 마음에 평화가 있어야 뭐가 됩니다, 마 음이 흔들리면 되는 일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고 요한 중에 고요한 것은 고요함이 아니다, 소란한 중에 고요함이 참 고요함이다." 이 시끄러운 세상에 살지만 마음은 고요해야 합니다, 스스로 고요히 명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감성지수가 높아 여유를 가지고 있 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또 셋째는 MQ라고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 것은 도덕성지수입니다, 의로운 중에 의롭 게 사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부도 덕한 사회에서 도덕성을 지켜야합니다, 모 든 사람이 전부 부정하지만 나 자신은 그속 에서 얼마나 스스로 의로을 수 있느냐, 선할 수 있느냐 하는 도덕성 지수가 문제입니다. 가령 사랑 받고 사랑 하는 것은 누구야 못하 겠습너까? 그런데 미움 받으면서도 사랑할 수 있는, 악한 세대 악한 처우를 받으면서도 자기 페이스를 바로 지켜나갈 수 있는 도덕 성 지수가 높아야 합니다. 요새도 많은 사
람들이 여기저기 연루되었는데 도덕성지수 가 모자라서 이렇게 휘청거리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넷째로 CQ라는 것이 있습니 다. 카리스마 지수입니다, 카리스마란 원 래 교회와 신학에서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은사(gift)라고 하는 뜻으로 일반적으로 사 용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지도력 지수 입니다. 사람이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 일 수 있어야 합니다. 나 흔자 사는 세상이 아닙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다스릴 수 있는, 다른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어떤 것 이 있어야 됩니다. 자기 혼자는 똑똑한데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도력이 없습니 다. 이렇게 되면 오늘같은 복잡한 사회에서 는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IQ, EQ, MQ, CQ의 네 Q가 결국은 오늘의 필수 조건이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어려움과 무능

요새 유행어가 있습너다, 힘들다는 말입니 다, 아이들까지도 이 말을 입버릇처럼 합니 다, 살기 힘들다, 공부하기 힘들다, 일하기 힘들다, 참기 힘들다 합니다, 그래서 전화 걸어서 "어떠냐?하면 "요새 힘들어" 한다 고 합니다. 아이들까지도 심지어는 놀기 힘 들다는 소리도 합니다, 무언가 힘에 부치고 있다는 것이지요. 지수가 모자라서 그렇습 니다. 이걸 넉넉히 이길만한 지수가 없어서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어렵다고 하 지만 넉넉히 이기는 힘이 내게 있으면 되는 데 그 생명력이 부족하니까 항상 힘들고, 휘
청거리고, 피곤하다는 말입니다,
또 한 가지는 무능이라는 것입니다, 요새처 럼 무능이 실감나는 때가 없는 것 같습니다, 뻔한 일도 해결하지 못합니다, 국회니 뭐니 하는 것만 보아도 뻔한 일 그거 하나 처리하 는 데 얼마나 걸리는 것입니까? 한심합니 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문제되고 있는 것 입니다, 어렵다고 하고 꽉 막혔다고 하지 만 막힌 것이 아니라 무능한 것입니다, 우 리는 그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렵다 어렵다 하지만 사실은 잘 사 는 것이 아닙니까? 실업자 문제가 있다지만 세계적으로 우리나라는 실업자에 대해서는 대단히 좋은 나라입너다, 실업자가 있다고 하는 한쪽에서는 사람이 모자라서 걱정입 니다. 일을 안하니까 그렇지, 지금 중소기 업에서는 사람을 못구해서 쩔쩔 매는데, 또 외국 사람들까지 끌어다 쓰는데 무슨 실업 자가 있다는 말입니까? 걱정할 것 없습니 다. 그런데 당장이라도 망하는 것처럼 난리 들입니다. 전쟁의 폐허에서도 살아남은 사 람들이 왜 이렇게 휘청거리고, 형편없이 되 고, 초라해졌습니까? 도대체 삶의 의지가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다 죽은 것처럼 말입니다, 어쩌다가 이 모앙이 되었습니까? 아주 무능해졌습니다, 무엇이 잘못입니까?

예수님의 세 가지 약속

사실을 바로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한 번 더 나아가서 나 자신을 바로 알도록 해야 합니다 세상이 잘못된 것이 아넙니 다, 나 자신을 내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무능함을 인정하려 들지를 않습니다, 사실대로 자기 자신을 인정해야 다시 새 길 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 다. 오늘의 본문성경에서 예수님께서는 말 씀하십니다. 세 가지를 약속하십너다. "내 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렇게 들끓 고 있고 걱정과 절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마음을 평안히 쉬게 하리라 하십니 다, 또네가하고 있는 일은쉽게 될 것이다, 아주 쉽게 멍에를 메게 되리라 하십니다.
또 "짐은 가여워질 것이다" 아주 귀한 약속 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참기 어렵고, 견디 기 어렵고 ,,, 우리는 한계에 왔습니다. 그 럴수록 원점으로 돌아가서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길이 잘못되었고 삶의 표본과 모델 이 잘못되었습니다 삶의 본이 바로 되면 일은 쉽게 됩니다, 학습 효과가 있습니다, 아주 좋은 텍스트를 구해야 합니다 교본을 바꾸어야 해요, 이것은 행동촉진 효과가 있 습니다. 나 스스로 창의적으로만 샅려 들지 말고 이미 성공한 길을따라서 바른 길에 서 게 되면 행동이 촉진되고 나아가서는 미래 의 운명에 대해서 걱정할필요가 없게 됩니 다. 이미 이루어진 것이요 이미 성공한 케 이스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승리한 길이기 때문에 승리를 보장받고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님의 멍에

그런고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수고 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그리고 약속해 주십니다. "쉼을 얻을 것이 다, 가볍게 될 것이다, 아주 편하게 될 것이 다"라고 약속해 주십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습니다 먼저 "다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내 위치에서 떠나 주님께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합터다. 오늘의 본문 25절 이하에 보면 "어린아이에게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하십니다. 여러분, 그 체면이니 위신이니 변변치 않은 자기의 실적이니 과거니 하는 것은 다 잊어버리십시오. 깨끗이 잊어버리 고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십시오,
부부간에 사이가 좋지 않습니까? 다시 원점 으로 돌아가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져보세 요, 별로 잘나지도 못한 사람이 잘난 척하 고, 가진 것도 없는데 있는 척하고, 된 것도 없이 된 것처럼 행동합니다, 이것이 깨지기 까지는 절대로 여러분에게 평안이 없고 또 새로운 능력도 없습니다. 내 무능함이 교만 때문임을 알아야 합너다. 잘난 체 하는 것 이젠 다 버려야 합니다. 아주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이런 이야기가 나 온 적이 있습니다 똑똑한 사람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를 든 것입니다, 대개 보면 머 리도 좋고 똑똑한 사람, 남달리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사회생활에 실패하고, 특별히 출 세를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 이 유가 첫째는 오만때문입니다, 저 잘났다고 하기 때문에 뭐 별것도 아닌 지식을 대단한
것처럼 착각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 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 만이 문제입니다, 두 번째는 외로움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반드시 외롭습니다, 아무도 그를 성원해주지 않습니다. 친구도 없습니 다 누구든,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교만 한 사람은 친구가 없습니다. 누가 그를 돕 나요? 잘났다는 사람 너 잘해봐 해버리고 맙니다, 부부간에도 안 돕습니다, 그래서 외로운 것입니다, 흔자서야 살 길이 없으므 로 결국 실페하는 것입니다
또 무모합니다 자기 능력과 지혜만 믿고 엉뚱한 짓을 합니다. 무모함이 파멸로 다다 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도를 초과합니다, 능력에 한계가 있고, 건강에도 한계가 있지 않습니까? 투자 능력에도 한계가 있는데 꼭 이것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멸 망의 조짐입니다. 바로 똑똑한 사람들이 하 는 짓이 건너 뛰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 나 천만입니다. 그런 비약은 없습터다. 무 모하게 자기 능력을 초과하여 지쳐 쓰러지 고 맙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모든 편 견, 고집, 좌절감 다 버리고 내게로 오라, 이 제는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내게로 오라" 하 고 부르십니다, 이제 손들고 주님 앞으로 나와야 합니다 우리 마음이 주께로 나가야 합니다. 다음으로 "네 멍에를 메고 내게 배 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깊이 생 각하면 참 중요한 의미가 있습너다.
여러분, 시골에서 자랄 때에 겪어보신 분들 은 알겠습니다만 밭갈이 하는 것을 보면 소 두 필로 밭을 갈게 되는데 두 필의 소에 멍 에를 메게 하고 거기에 보습쟁기를 걸어놓 고 그리고 쟁기를 한 사람이 붙들고 있으면 소가 앞으로 갑니다. 저의 아버지께서 제가 어렸을 때지만 그런 건 다 해보아야 된다고 하셔서 몇 번 제가 그 보습쟁기를 붙들고 소 를 따라가면서 밭을 갈아보았습니다. 소 걸 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느림니까? 천천히 걷 지만 보습쟁기를 딱 대고보니까 얼마나 빨 리 가는지 급하더라고요. 그런데 이 두 필 의 소가 꼭 같이 갑니다. 발도 맞추어서 그 대로 갑니다.
'내 멍에를 메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네 멍에를 나와 같이 메자는 말입니다. 네 가 내 멍에를 함께 메고 가자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동업하자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서 함께 가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와 함께 그가 나와 함께 해서 한 몸으로 메고 가자는 것입니다, 이 멍에라는 것은 죄짐이 나 자기 책임감이나 허물이나 저주 의식을 말하는 것이 아닙너다. 이런 멍에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메신 그 멍에입러다. 그래서 이 제는 내가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께서 책임을 지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이 "내 멍에를 메라"고 하십니 다, 네 멍에는 두고내 멍에를 나와 함께 메 자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발 을 맞추어 가자시는 것입니다. 한 목적, 한 방향, 한 방법, 한 마음으로 가자시는 것입
니 다.

제자의 삶

또, 오늘의 성경말씀을 보면 "내게 배우라" 하십니다. 배우라는 말은 헬라어로 좀 특별 한 뜻이 있습니다, "마데테 아푸 에무"라는 말인데 '마데테스'라고 하면 '제자'라는 말 입니다, 그런고로 "내 제자가 되어라"는 뜻 입니다. 단순히 학생과 선생의 관계가 아닙 니다, "내 제자가 되라, 내게 배우라"고 말 씀하십니다, 말로 배우고 가슴으로 배우고 행동으로 배우는 것입니다,
여러분, 배운다는 것이 어떻게 이루어집니 까7r초학습」이라고 하는 책이 있습너다. 부모님들이 특별히 한 번 쯤은 읽어야 될 책 입니다 어떻게 해야 공부를 잘할 수 있는 지를 말해주는 유명한 책입니다. 거기에 보 면 공부 잘하기 위한 세 가지 원칙이 있는 데, 첫째로 재미있는 걸 공부하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공부에 재미가 붙어야 된다는 것이지요, 또, 전체를 먼저 보라고 합니다, 부분적으로 공부하지 말고 전체를 관조하 는 눈을 가지고 공부하라고 합니다, 다음으 로 80%만 이해되었으면 이제는 응용으로 옮기라고 합니다. 우리는 다 알기를 바라지 만다알수없습니다. 얼마만알았으면 이 제는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결국은 공부를 즐겁게 하 라는 말입니다,
공관복음에서는 제자라는 말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으로 넘어가면 크리스천의 별명이 제자입 니다. 예수믿은 사람이 곧 제자입니다. 전 적으로 신뢰하고 전적으로 믿고 전적으로 사랑하고 배우라 하셨습너다, 그리하면 길 이 쉬워진다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확실한 말씀인지 알 수 없습니다.
어렵고 힘든 세상을 삽니까? 세상이 힘들어 졌습니까7절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내가 약해졌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길이 잘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와 함께 멍에를 메야 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한평생 배우는 마 음으로 임해야 됩니다, 배운 사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마음으로, 배우는 즐거 움으로 주님의 사랑을 확신하며, 또 주님의 하신 말씀을 내 생활 속에서 화증하며 사는 것입너다. 사랑해야 사랑을 알게 됩니다. 생명의 길을 가야 생명을 알게 됩니다. 이 것을 다 미리 알아 머리 속에서 다 납득한
다음에 움직이겠다고 하는 사람은 그러다 죽을 사람입니다. 아무 일도 못할 사람입니 다, 허약하고 미 련합니다,
여러분, 마지막 결과에 대한 것은 주님만 믿 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주께서 이미 그 길을 가셨고 그 길로 승리하셨습니다, 내가 사는 모든 과정은 주께서 내게 베푸시는 교 과 과정입니다. 내가 무엇을 배워야 할지, 내가무엇을 버려야할지 더 이상묻지 마십 시다. 이제 그를 배우십시다. 그러떤 모든 책임은 그가 지십니다.
주님께 나아오고 주님과 함께 하고 동행하 고, 그리고 주님을 배우십시오, 마음도 배 우고 행동도 배우고 함께 해보시기 바랍니 다. 어느 사이에 나도 모르게 멍에가 쉽고 짐은 점점 가벼워지고 자유하는 것을 느끼 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자유하게 될 때에 비로소 능력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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