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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로잡힌 것을 보는 사람! (롬 7:14-25)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 이라고 하는 책은 이제 는 고전입니다. 아마 대
학시절에 모두가 한번쯤은 읽었었으리라고 생 각합니다. 이 '죽음에 이르는 병'이 라고 하는
책 속에서 자기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는 혼란스러운 인간상 을 지적하는 이야기, 재미있는
설화 가 있습니다. 어떤 농부 한 사람이 아침 일찍이 맨발로, 양말도 신발도 신지 못한 채
도시로 뛰어들어갔습 니다. 그리고 하루종일 궂은일을 해서 그 날 따라 돈을 많이 벌었습
니다. 한 켤레의 양말을 사서 신고 또 구두를 사서 신었습니다. 그리 고도 돈이 꽤 많이 남
았습니다. 이 것을 가지고 그는 술을 마셨습니다. 만취상태가 돼 가지고 비틀거리며 자기 집
을 향하여 시골로 돌아오다 가 길 한 가운데서 그는 취기가 너 무 높아져서 만취된 상태로
길에 누 워버렸습니다. 아주 큰 대자로 벌 떡 누워서 잠을 자는데 마침 마차 하나가 지나가
다가 마차를 세워놓고 마차에 탄 사람이 소리를 질렀습니 다.
"이 사람아 길을 비켜. 만일에 비키지 않으면 그대로 네 다리 위로 지나가 버리고 말 것이
다. 네 발 위로 지나갈 것이다"
이렇게 말했습 니다. 만취된 농부는 그때야 눈을 뜨고 정신을 좀 차리고 하는 말입니 다. 자
기 발을 보고 양말과 신을 신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자기의 발 이라고 생각하지를 않고
"지나가거 나 말거나 마음대로 하시오. 이것 은 내 발이 아니니까"
라고 말했습 니다. 세상에 자기 발, 자기 발이 신발을 벗었을 때 자기 거라고 생각 하고 술
취한 가운데 신발을 신어놓 고 이것은 내 발이 아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마음대로
지나 가라고 이 만취한 사람의 형편없는 소리, 우습게 들리지요. 바로 인간 의 혼란스러운
모습이 이러하다는 겁니다. 그래 소크라테스는 유명한 말을 하지 않습니까.
"키노시 아우 토스"
유명한 말이죠. Know thyself,
"네 자신을 알라"
하고 말 합니다. 우리가 가지는 슬픔, 우리 가 가지는 인간적 괴로움이라는 것 은 전부 후회
스러운 일들입니다. 그 후회스러움의 근본은 내가 나 자 신에게 속았다는 겁니다. 무엇인가
좀 아는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까 아무 것도 몰라요. 뭘 열심히 번 줄 알았는데 정산을 해
보았더니 적 자투성이예요. 아무 것도 번 게 없 어요. 나는 무엇인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
데 이제 보니 아주 무능해 요. 최소한도 그래도 남보다 좀 낫 겠지 하고 제 잘난 맛에 살았
는데 이제 보니까 다른 사람은 다 훌륭하 고 내가 형편없어요. 이걸 깨닫게 될 때 비참한
거죠. 내가 나에게 속은 겁니다. 여기서 자기 상실의 아픔을 느끼게 됩니다. 때로는 절 망하
게 됩니다. 왜 자기를 잃어버 리게 되느냐? 그 근본은 동일시하 는 착각 때문입니다. 여러분
돈을 벌었다고 해서 그 돈과 내가 하나가 되는 건 아니에요. 나는 납니다. 돈을 벌어서 좀
부자가 되었다고 해 서 내가 커지는 거 아니죠. 나라는 인격은 나대로 있는 거예요. 그런 데
돈이 있을 때에 내가 커지는 줄 로 자기를 부풀려 생각을 하고 돈이 없으면은 자기 인생도
다 망가진 것 처럼 착각을 하는데 그런 거 아니에 요. 나라는 존재와 돈을 별개요. 또는 때
로는 지식이 있을 때, 남보 다 좀 뭘 좀 더 알고 똑똑하면은 아 주 기고만장하고 자기 존재
가 무슨 굉장한 줄 아는데요, 그리고 남을 무시하고. 그러나 알고 보세요. 별 거 아니에요.
안다는 거 그거 아무 것도 아니에요. 그것과 나 자체와 는 그것도 별개예요. 그런데 이것 을
지식과 나를 하나로 생각하는 데 서부터 문제가 되는 것이거든요. 때로는 남이 내게 하는
평판이 있지 요. 남들이 뭐 그 사람 잘났다, 많 이 안다, 천재다 뭐 이러잖아요. 남 이 나더
러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나 는 천재 아니거든요. 아무리 훌륭 하다고 해도 훌륭하지 못한
건 내가 잘 알아요. 그 자기 페이스를 자기 진실을 절대로 잃어버리면 안 되는 데 남의 평
판에 의해서 오르락내리 락하는 이 시원치 않은 존재, 이 인 격 이것이 바로 문제란 말입니
다. 남이 평판해 주는 자기와, 자기 자 신과를 동일시하는 바로 거기에 허 점이 있는 겁니
다. 때로는 과거가 문제입니다. 나를 따라 다니는 아 픈 과거, 그건 어디까지나 지나간 겁니
다. 오늘의 나는 어디까지나 나 자신일 뿐인데 지난날에 의해서 오늘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
어요. 물론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보겠지 요. 그러나 나는 아니요. 나는 과 거와 관련을 끊
은 사람이요. 바로 그런 인식을 가지지 못하고 여전히 지난날의 나는 실패한 사람, 지난날
의 나는 방탕했던 사람, 지난날의 나는 이런 결점이 있는 사람, 이 전 과자 같이 여기에 계
속 매여있으면 나라고 하는 소중한 존재가 증발해 버리고 말아요. 이 또한 불쌍한 사 람이
죠. 또 어떤 사람은 미래에 대 한 꿈에 사는 사람이 있어요. 그 꿈과 자기를 동일시하는 사
람이 있 어요. 마치 뭐와 같은고 하니 어떤 사람은 돈을 번 게 아니에요. 벌기 로 계획한 거
예요. 이렇게 이렇게 벌겠다 생각하고 미리 돈을 꾸어서 다 써버려요. 이런 정신나간 사람,
벌 셈치고 쓰는 거예요. 그것처럼 이 허황한 꿈을 꾸고 이 뜬구름 쫓 아가는 사람이 있어요.
그리고 벌 써 마음이 부풀어 가지고 있어요. 이게 정신병자 아니에요? 이런 사 람이 바로
자기 상실증에 빠진다 하 는 얘깁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이 현장에서는 자기를 잃어버리기
가 쉬 워요. 또 이 자기를 객관화하지 못 할 때에 자기를 잃어버리는 거예요. 여러분 혹 이
런 거 보셨어요. 장기 나 바둑을 둘 때 보면요 거기에 앉 아 가지고 대결해서 두는 사람은
정 신이 없어요. 그런데 옆에서 구경 하는 사람들 훈수하는 사람이 수를 잘 봐요. 그것은 객
관화 할 수 있 으니까요. 그 사람이 아는 게 더 많아요. 요렇게 하면 된다, 요렇게 하면 된
다. 그런데
"네가 앉아 해 봐"
그러면 저는 못해요. 그게 뭘 말하는고 하니 인식의 객관화라는 것이죠. 현장에 뛰어들면 아
주 몽 롱해져요. 또 남의 일에 대해서는 잘 알 수가 있는데 자기 문제로 부 딪치면 아주 무
능해지고 만단 말이 에요. 그런고로 인식의 객관화가 필요합니다.
오늘 성경말씀 가운데서 우리가 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정직 해야 합니다. 이 정직하기
위해서 는 용기가 있어야 됩니다. 이런 재 미있는 책이 있어서 많은 사람, 온 세계 사람들에
게 현재 읽히고 있는 베스트셀러가 있습니다. '우리는 사 소한 일에 목숨을 건다' Don't
Sweat the Small Stuff with Your Family 그런 책인데요. 이 사소한 일에, 시시한 일에 너
무 마음을 쓴 다는 거죠. 그래서 불행해진다. 이 리차드 칼슨(Richard Carlson) 의 유명한
책입니다. 일반적으로 많이 읽히는 책입니다. 요새 1권이 나왔 다해서 2권이, 속편이 또 나
와서 우 리에게 읽혀지고 있습니다. 이 책 이 말하는 내용이 뭐냐? 저는 이래 생각합니다.
모든 문제는 밖에 있 는 게 아니고 나 자신에 있는 것이 다. 그래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을 해요. 결 국은 자기를 잃어버리는 거예요. 모든 불행과 근심, 심지
어 스트레스 라고 하는 것도 자기 내부에 있는 거예요. 그런고로 자기 자신에 대 한 문제,
자기 진실에 대한 것을 바 로 찾으라. 그러면은 당신이 그렇 게 걱정하는 큰 문제가 아무
것도 아닌 문제로 풀릴 수가 있을 것이다 하는 것이죠. 문제의 해결이 밖에 있다고 생각하
지 말아요. 내 안에 있는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런 고로 자기 자신에 대하여 진실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똑바로 알아 야 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바르게 인정해야 됩니다. 알지
요. 알면서 도 인정하지를 않아요. 거기에 문 제가 있는 것이에요. 허상에 매여 삽니다. 거품
을 붙들어 보려고 합 니다. 거짓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 다. 오늘 본문성경에 나타난 이 말
씀은 로마서 한 중심에 있는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저는 이 로마서 7장 을 읽을 때마다 언
제든지 사도바울 의 위대함을 알고 있습니다 만은 더 더욱 위대한 것을 느끼게되고 부럽 기
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하고 위대 하게 보일 때가 있어요. 아주 감동 하면서 이 책을 읽고
때로는 눈물로 이 성경을 읽게 됩니다. 왜요? 바 울은 너무나 정직해요. 너무 위대 합니다.
정직함에 있어서 위대합니 다. 그의 마음은 단순합니다. 아주 Simplicity, 단순해요. 보세요,
로마 교회는 사도바울이 세운 교회가 아 닙니다. 모름지기 사도바울에게서 예수를 믿은 사
람들이 로마로 돌아 가서 거기서 교회를 세운 겁니다. 그러니까 로마교회에서 모인 교인들
은 사도바울에 대해서 높은 존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 얼굴을 보 지 못했거든요. 바울의
얼굴은 못 보았지만 바울에 대한, 바울로부터 예수 믿은 사람들이 여기서 전해주 었으니까.
그 분들은 사도바울은 위대한 사도라고 이렇게 높이높이 존경하고 있거든요. 바로 자기 얼
굴을 보지 못한 바로 이 사람들에게 지금 편지를 쓰는 겁니다. 기독교 교리와 복음에 대해
서 전반적인 메 시지를 보내면서 어찌 이렇게 정직 할 수 있습니까? 아 자기에게도 장 점도
있고 단점도 있겠지요. 밝은 면도 있고 어두운 면도 있겠지요 만 은 자기 자신의 그 깊은
어두운 면 을 그대로 말하고 있어요. 다 노출 하고 있습니다. 옷을 활짝 벗듯이 말이에요.
솔직하기 이를 데 없습 니다. 그것이 위대한 것입니다. 이 렇게 진실하고 이렇게 정직하고
이 것을 바탕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게 되는 것입니다.
보세요,
"나는 육에 속하여"
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그 위대한 말입 니다. 그는 지식의 부조리를 말합 니다. 내가 안다고
하나 아는 대로 살지 못해요. 내가 느끼고 있다, 원 하는 것이 있지만은 원하는 대로 행 하
지 못해요. 이 비참한 자기 모습 을 고대로 말합니다.
"육에 속하 여"
엄청난 말입니다. 당연히 영에 속한 사람이어야지요. 육신에 대한 생각은 싹 없어야지요. 그
러나 그 렇지 않아요. 바울은 말합니다, 나 는 육에 속한 사람이라고. 마틴 루 터는 인간을
이렇게 비유했습니다.
"마치 기수에게 끌려가는 말과 같 다."
좋은 말이 펄펄 뛰면서 소리 를 내고 뛰고 있지만은 자기가 뛰는 게 아니에요. 그 위에 타
고있는 기 수가 고삐를 쥐고 가라는 대로 가는 거예요. 오늘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나는 육
에 속해서, 여전히 육신에 속해있다는 것이죠. 그뿐입니까.
"육에 팔렸다"
그랬어요. 아주 팔 렸다, 그래서 나는 알지 못한다. 무 의식중에 죄를 짓고있어요. 의식 이전
에, 의식보다 더 깊은 곳에, 이 잠재의식 속에 거기에 죄가 아직도 있어요. 그래 죄에 끌려
가는 존재 다. 내게는 자유가 없다고 고백합 니다. 여러분 잘 아는 유명한 개그 맨 전유성씨
라고 있어요. 개그맨 중에 공부를 제일 많이 하고 책을 많이 보는 그러한 분으로 알려져 있
지 않습니까? 이 전유성씨가 쓴 책 의 제목이 너무 재미있어요. '하지 말라는 것은 다 재미
있다.' 어떻습 니까? 개그맨 다운 얘기지만 굉장 한 메시지가 있는 얘기예요. 하지 말라는
것은 다 재미있다. 말을 바 꾸겠습니다. 먹지 말라는 것은 다 맛이 있다. 보지 말라는 것은
다 매력이 있다. 이 소리요. 왜? 왜 그렇습니까? 그게 바로 우리 인간 속에 있는 악이거든
요. 자 보세요. 하라고 하는 일이 재미있어야지요. 당연히 해야할 일이 즐거워야지요. 그런데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즐겁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일만 재미가 있는 거예요. 먹지 말아야하
는 음 식만 맛이 있는 거예요. 그게 바로 병자예요. 내 몸에 좋은 것만 먹고 싶고 맛이 있게
느끼는 사람이 건강 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먹어서는 안될 것만 맛이 있는 거예요. 그것 이
무얼 말하는 겁니까? 내 속에 악이 있어요. 어딘가 팔려 있어요. 묶여있어요. 끌려가고 있다
그 소 리예요. 사도바울은 특별히 말합니 다.
"내가 선을 행하고저 하는 거 기에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참으로 진실합니다. 여러분, 내가 어떤 때 선한 일을 해요. 순수한 마음으로 선한 일을 했습
니다. 그 러면 끝까지 순수해야지요. 그런데 왜 칭찬 받으려는 마음이 있지요? 사람들이 알
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지요? 그러면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린 겁니까? 도대체 누구를 위해
이 선한 일을 한거냐구요? 그래 예 수님 말씀이 오른손이 하는 것 왼손 이 모르게, 얼마나
중요한 말씀입니 까? 내가 교회 봉사한다. 좋은 일 을 한다. 친절하게 한다. 악수를 한다. 반
갑게……, 좋은 일 하기는 하는 것 같은데 속에 요기에 딴 생 각이 있거든요. 중요한 것은
자기 가 모르고 있거든요. 내 속에 악이 있다는 것을 내가 선한 일을 하는 속에 악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내가 모르고 있어요. 다른 사람들 은 다 아는데 본인만 모르고 있어 요.
여기서 엄청난 모순에 빠지는 것이에요. 사도바울은 여기에 위대 한 점이 있습니다. 많은 사
람들은 이렇게 악과 위선과 거짓에 젖어 살 아가면서 어디까지가 의인지, 어디 까지가 선인
지 모르고 그냥 흘러가 고 있어요. 그러나 바울은 아니요.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자기를 객관시 할 수 있는 객관화 능력이 있었어요. 자기가 자기를 볼 수 있는 눈이, 그게
다른 거예요. 그래서 말입니다.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포로 된 상태, 비참 한 자기
모습, 이 형편없는 인간을 저 멀리서 바라보았어요.
"야 이놈 아!"
자기가 자기를 볼 줄 알아요. 이것이 중요한 거예요. 제가 신학 대학에 다닐 때, 나름대로
경건하게 살려고도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해 보 려고 하고, 앞으로 목사가 돼서 좀 가장 거룩
한 목사로 살아보겠다고 나름대로 노력은 해 봅니다. 이 뜻 대로 잘 됩니까 어디? 그래 제
가 공부하고 있는 기숙사 방 거기에는 커다랗게 써 붙였어요. 아주 고상 하게 헬라어로 써
붙였어요.
"탈라 이폴로스 에고안트로포스"
써 놓으 니까, 가끔 친구들이 저 무슨 뜻이 냐고,
"거 알 거 없어, 나만 알면 돼!"
"탈라이폴로스 에고안트로포 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 다!"
이겁니다. 오늘 본문에서
"오 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왜 이렇게 이렇게 모순덩어리냐 말야, 아는 대로도 못하겠고 행하고 싶은 대로도 못하겠고,
모처럼 선한 일 한다고 그 속에 악이 있고, 그래서 나는 뭐냐 도대체 이게…….
"오호 라 이 불쌍한 사람아, 이 가련한 사 람아"
그런 뜻입니다. 자기가 자기 를 가련하게 볼 수 있었어요. 그러 므로 바울은 위대한 것이에
요. 전 적인 타락, 전적인 무능을 알았습니 다. 그런고로 내가 어디까지 왔던 지 이대로가
은혜예요. 이대로가 은혜예요.
가끔 그런 얘기를 들어요. 어떤 분들은, 아 그 어느 장로님 그 거……, 아 그 장로라는 사람
이 왜 그 모양이고……, 뭐 어쩌고저쩌 고……, 그런 얘기하는 사람이 있어 요. 그런 생각하
지 마세요. 예수 믿으니까 그만하지, 그 사람이 안 믿었더라면 어떻게 될 뻔했어요. 그렇게
생각해 주세요. 여러분 스 스로도 못마땅해요, 자기 자신이 못 마땅해요. 왜 어쩌다가 이 모
양이 냐 이 나쁜 놈아, 그래 심판하지 마 세요. 예수 믿어서 그만한 거예요. 은혜 안에서 내
가 이만한 거예요. 사도바울은 그래서 말합니다.
"오 직 은혜 안에서"
오직 은혜 안에. 나의 나됨은 오직 은혜로 된 것이 다. 그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오 늘 내
가 있다. 은혜 안에 있는 자 기 정체를 확인하고 감사하게 되는 것이에요. 재미있는 얘기가
있습니 다. 아주 부인에게 꽉 쥐여사는, 철 저하게 쥐여사는 남편이 있었는데 아이가 여섯이
에요. 어느 날 부인 이 시장에 갔다 오면서 예쁜 장난감 인형을 하나 사 가지고 왔어요. 뭐
여섯 명이니까 다 줄 수는 없고 하 나 딱 사 가지고 와서 하는 말이
"가장 말 잘 듣고 얌전하고 말대답 하지 않고 전적으로 나에게 순종하 는 사람에게 그런 아
이에게 요것 주 겠다"
그랬어요. 그러니까 여섯 명 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는데
"그러면 아빠잖아"
그러더랍니다. 전적으로 순종하고 사세요. 그게 행복한 거 예요. 오직 은혜로 내가 있음을
알 고 은혜로 미래가 있어요. 은혜의 말씀께 100%, 100% 순종합니다. 이것에는 후회가 없
어요. 감사와 찬송만이 있을 뿐이에요. 그래 사 도바울은 말합니다.
"사망의 몸에 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 님께
감사하리로다."
오직 그리스 도로 말미암아 감사하고 그 속에 내 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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