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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곽선희 목사 설교

받음직한 봉사! (롬 15:30-33)

by 【고동엽】 2022.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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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음직한 봉사! (롬 15:30-33)

 

4살 난 어린아이를 위해서 어머 니가 그와 함께 잠자리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늘 건강하게 해주시 고, 또 총명있게 자라게 해주시 고…"이렇게 기도하다가
"어머니 말 씀 잘 듣게 해주시고…"그렇게 기도 했단 말입니다. 그 늘 기도하는 소 릴 듣다
가 이 4살 어린아이가
"엄마 오늘은 내가 기도할께"
"그래라"
얘 가 기도하는데
"엄마가 내말 잘 듣 게 해주세요"하고 기도했습니다.
각각 자기 입장만 생각하고, 자 기에게 유리한 서원을 내놓고 있습 니다. 어머니라면은 내가
진정 애 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잘 하는 것일까, 어떻게 사랑 하는 것이 정
말 바로 사랑하는 것일 까, 그것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해 야 할 것인데, '나는 다 잘하고
있 고, 저 애가 내 말을 잘 듣게 해달 라고' 그렇게 기도하고 있는 것이죠. 각자 자기 나름
에 소원만을 열심히 구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 미국에 칼럼리스트들이 여론 조사를 해서, 한 연구 보고서 를 내 놨습니다. 그것은
기독교인 과 비기독교인의 비교하는 그러한 비교 도표입니다. 헌신 봉사를 중 심으로 해서
비교한 결과 이렇게, 이런 기준으로 해서 평가하게 되었 다고 합니다. 첫째는 '봉사 참가 지
수', '봉사활동에 얼마나 참가하고 있는가'하는 겁니다. 이 조사해 본 결과 단연 '기독교인
들이 월등하게, 뭐 잘 믿거나 못 믿거나 훨씬 더 많 은 사람들이 봉사활동에 나서고 있 더
라'하는 것이구요. 두 번째는 '포 용력지수', 그 말은 하나님께 헌신하 고, 특별히 인종 문제
가 복잡한 나 라이기 때문에, 그 '인종차별', 이 문 제에 있어서 얼마나 포용력이 있나' 또
'가난한 자와 부한 자, 얼마나 넉 넉하게 포용을 하고 있는가'. 포용 력 지수를 평가 해 보
았다는 겁니 다. 그러면 '얼마나 관용할 수 있느 냐'하는 것이 그 지수가 되겠습니다. 또 하
나는 '가정 안정지수', 뭐 '이혼 문제라든가 이런 불안에 떨지 않고, 아이들도 부모님의 뜻
을 따라서 성 실하게 잘 자라주고 있는가' 이런 것들을 가정 안정지수라고 해서 평 가 해
보았는데, 이것도 월등하게 기독교인들이 더 낫구요. 마지막에 '행복감 지수'입니다. 그것은
'베푸 는 삶을 통해서 스스로의 행복을 얼 마나 만끽하고 살아가는가'하는데, 이 만족도가
60%라고 했습니다. 60%의 사람들이 '우리는 만족합니 다.' 그렇게 생각했더라고 합니다. 여
러분 이렇게 네 가지에 의해서 우 리를 평가한다면, 여러분 자신들을 평가한다면, 얼마의 지
수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자 봉사생활 금년에 얼마나 했습니까? 얼마나 좀 너그러
운 사람이 됐습니까? 가 정은 얼마나 더 안정이 됐습니까? 여러분의 행복감은 어느 수준에
있 습니까? 스스로 물어야 할 것입니 다.
인생은 받는 것보다는 주는 일에 서 기쁨을 찾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창조한 것 같습니다.
사도행전 20 장에 볼 것 같으면, 35절에 예수님 친히 하신 말씀을 바울이 인용합니 다. '받
는 것보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 '주는 자에게 기쁨이 있다. 주는 자에게 행복이 있다.' 여
러분 이 주는 행복의 진리를 터득하기까 지는 여러분은 영영 행복을 모르고 말 것입니다.
이 진리만은 논리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행동 으로 실천하는 사람만이 터득할 수
있는 특별한 진리입니다. 자 이제, 자녀와의 관계를 한번 보십시다. 여러분이 자녀들을 위해
서 수고합니 까? 수고하는 그 자체를 행복으로 여기는 자라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여기다
가 밑천을 들여가지고 본전 뽑을려고 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불 만이 많습니다. 그 키우면서
얼마 나 재미있습니까? 그것으로 벌써 기쁨을 다 얻은 거예요. 뭐 효도하 라고 강요할 거
없습니다. 본전 다 찾은 거예요. 그걸 잊어서는 안돼 요. 베푸는 재미, 키우는 재미, 수 고하
는 재미, 그 자체가 행복이었더 란 말이죠. 그런고로 인생은 항상 베풀면서 살아갈 수 있도
록, 행복할 수 있도록 그렇게 창조된 존재입니 다. 이것이 바로 성숙된 인격입니 다. 삶의
질을 여기서 높여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마다 임종하게 되면, 마지막 으로 크게 뉘우치게 된다고 합니다. 죽기 전에는 사람이 착
해지니까요. 최소한도 임종에서는 착해지니까요. 그 순간 세 가지를 후회가게 되는 데, 그
첫째가 베풀지 못한 겁니다. '좀 더 베풀 수 있었는데, 좀 더 줄 수 있었는데, 내가 왜 주지
않았나.' 그대로 그대로 생각이 납니다. '좀 더 넉넉하게 주면서 살 수 있었는 데…… 이렇
게 쥐고, 모아봐도 먹지 도 못하고 가는 걸 좀더 좋은 일하 면서 살았으면 좋았을 걸' 이것
이 큰 후회, 첫째 후회입니다. 둘째가 참지 못한 것. '조금만 참았더라면 좋았을 걸, 왜 쓸데
없는 말을 하고, 쓸데없이 행동했던가?' 그렇습니다. 세 번째가 '좀 더 행복하게 살수도 있
었는데, 좀 더 즐길 수 있었는데, 뭐 그렇게 아웅다웅 싸우고 울고불 고 할 필요가 없었는
데, 얼마든지 즐겁게 살수 있었는데, 나는 왜 이 렇게 사람이 못돼 먹어서 나 괴롭 고, 남
괴롭히고, 그렇게 살아야 했 던가?' 이것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후회입니다. 여러분 정말 받
는 데 만 급급하고, 못 받는 원망, 더 가지 고 싶은 욕심, 여기서만 버둥거리고 있기 때문에
영영 행복할 길이 없습 니다. 문제는 베푸는 생각을 해보 십시다. 베풀기 위한, 한번 마음을
가져 봅시다. 그리하지 않고는 절 대로 여러분은 행복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생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자 베푸는 자가 누굽니까? 우리 생각에는
"아! 돈 많은 사람이 주는 거지. 아, 우리같이 가난한 사람, 나야 구제 받아야 할 대상인데
누굴 구제한단 말이냐."라고 생각하겠죠. 아니 그렇습니다. 지금은 문전에 오는 거지가 없지
만, 옛날에는 거지 가 많았죠. 얻어먹으러 오는 사람 이 많았는데, 그 거지들 말에 의하 면
요. 대문이 크고 담장이 높은 집 에 가서는 얻어먹지 못 한답니다. 욕만 먹고 나온답니다.
재수 없다 고, 아침부터 뭐 얻으러 온다고. 아 주 가난한 집, 대문도 없는 집에 가 야 넉넉
히 얻어먹는다고 합니다. 구제를 부자가 하는 게 아니에요. 그걸 알아야돼요. 성공한 사람이
구제하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사 업이 망한 사람이 구제를 합니다. 가난한 사람이 돕게 마
련이지, 부한 사람, 그 사람들은 돈에 미쳐가지고 요. 정신없어요. 내버려두세요. 어림도 없
습니다. 어렵고 가난한, 바로 그 형편에 있는 사람이 진정으 로 마음을 쓸 수가 있는 것이에
요.
또, 누구에게 주어야 되느냐 하 는 겁니다. 우리는 그 쓸데없이 괜 히 돈 있는 사람에게 주
느라고 문제 예요. 뭐 사과상자니 뭐니 해가지 고 말이야. 이게 우리의 선행은 전 혀 보상할
수 없는, 대신 보답할 수 없는 사람에게 주어야 되는 것이에 요. 그걸 있지 말아야 돼요. 내
친 척, 내 아는 사람, 뭐 주변에, 그게 아니구요 날 찾아오지도 못하고, 내 가 와서 도움을
청할 수도 없는 바 로 그런 사람들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4장 12절에
서 '부한 자는 너의 잔치에 초청하 지 말라' 그랬어요. '초청하면, 다시 그 사람이 너를 대
신 청할 것 아니 냐.' 그러면 쓸데없는 거죠. '대신 청할 수 없는, 보답할 수 없는 바로 그,
그 사람을 대상으로 해서 선한 일을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문제는 어떻게 해야되는 겁니까? 그것을 오늘 본문에서 읽 게 됩니다. 저는 몇 일
전에 미국으 로 여행을 가면서, 집회 인도하러 가면서 비행기 안에서 참 많은 마음 을, 아픈
마음을 뉘우쳐 봤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내 앞에 앉은 의자 에 점잖은 미국사람 내외분이,
백인 인데, 한국에 와서 고아를 데리고 가는 거예요. 아직 낯을 가리지 못 하는 어린애, 칭
얼거리는 애를 하나 딱 안고, 이걸 가면서요. 열시간동 안 내내 아버지가 돌봐요. 그것 또
이상하데요. 그 어머니는 까딱도 안 해요. 옆에서 구경만 하고, 아버 지가 그 애를 안고 그
애쓰는 걸 볼 때요, 나는 저렇게 오랫동안 애를 안아 본 일이 없어요. 이렇게 정성 스러울
수가 없어요. 그렇게, 아이 를 분명히 한국아이인데, 고아를 하 나 데리고 가면서 그렇게 정
성을 다 하는 걸 보고, 제가 많이 생각했습 니다. 저 사람들은 여기까지 와서 저 애를 데리
고 가는 데, 우리는 도 대체 고아를 팔아먹는 나라가 됐으 니, 이래가지고도 복 받겠다고?
조 심하세요. 무슨 복이 온다는 얘기 입니까 이 땅에. 도대체 이게 될 말입니까? 바로 그 얘
기를 '아 저 사람 참 훌륭하다고'. 마침, 내 옆 에 미군, 옛날에 장성이 왔다가면서 옆에 앉
았어요. 그 얘기를 주고받 았더니, 자기 말이라고는 안하데요, 꼭 자기 같은데 말은 안하면

"아, 내가 아는 사람은요. 아 지금 아이 가 다섯인데 남의 아이가 또 다섯이 에요. 그 집에
가면 아주 와글와글 하는데 아 나는 그 집에 갈 때마다 너무 행복하게 보이더라"고, 아 또
그러고 나니까 점점 더 부끄러워져 서, 아 그렇게 민망한 줄 모르겠어 요. '어쩌다가 우리는
이렇게 이 모 양이 됐나……' 생각이 들어요. 복 달라고 열심히 소리만 질렀지, 복 받을 만
한 짓을 하지 못해요 도대체 가요.
자 오늘 본문에 나타난 말씀을 보십시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소 아시아 전 지역을 다니면
서 복음을 전하는데 그건 개척교회를 하는 겁 니다. Church Planting을 하는 거 거든요. 아
전혀 예수 믿는 사람이 없는 곳에 가서 예수 믿는 사람을 만드는 거예요. 교회를 세워요. 지
금 아직도 이 사람들이 신앙적으로 익숙하지도 못했는데 성숙하지 못한 사람을 놓고,
"자, 헌금합시다."
연 보하자고 저 예루살렘에 많은 사람 들이 지금 흉년들어서 굶어 죽어 간 다고,
"당신들도 소식 들어 알잖습 니까? 우리가 도웁시다!"
정성껏 헌 금을 했어요. 이 연보를 예루살렘 으로 송금을 했습니다. 그런데 특 별히 오늘 본
문에 보는 대로는 많은 헌금을 해 가지고 이번만은 내가 직 접 가지고 갈 것이다. 친히 가
지고 간다고, 소중하기 때문에, 마음을 담 아 가지고 가야겠기 때문에 또, 특 별히 중요한
것은 이 헌금을 한 이 이방교인들에, 이방사람들에 마음, 사랑을 전달하고 싶어서 이 헌금을
손수 가지고 갑니다. 여기에는 큰 위험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사도 바울을 죽이겠다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바울은 알고 있습니다. 너무 위험해요. 이번에 갔다가는 살아남기가 어
렵겠다는 걸 알고 있 습니다. 그래서 로마서를 쓴 겁니 다. 내가 로마로 가고 싶은데, 만일
에 여차해서 못 가더라도 이 편지로 대신하고 싶어서 쓰게 된 편지가 로 마서입니다. 그러
면 그 성금을 이 위험을 무릎 쓰고 직접 가지고 갑니 다. 그러나 이것을 받은 예루살렘 이
결코 그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를 죽일려고 들었고, 죽이지 않고 는 먹지 않겠다고 맹세한
사람들도 있었어요. 사도 바울이 결국은 많 은 핍박을 받고 갇혀가지고, 로마로, 죄수의 몸
으로 상소해서 로마까지 가게 되지 않습니까? 그렇게 된 것 이에요.
그런데 지금 로마에 편지를 합니 다. '내가 예루살렘에 대한 섬기는 일, 받음직한 것이 되기
를 바랍니다. 위하여 기도해 주세요. 섬김은 섬 기는 거지요 분명히. 돈은 가지고 가고 있습
니다. 그런데 '이것이 받 음직한 것이 되게 해주세요.' 이렇게 기도 요청을 하고 있는 것입
니다. 얼마나 놀라운 얘기입니까? 주는 자의 마음입니다. 먼저는 주는 자 의 마음이 뜨거워
야됩니다. 던져주 는 게 아니에요. 억지로 주는 거 아니에요. 불가피해서 주는 게 아 니에요.
자랑삼아 주는 게 아니에 요. 높은 자세로 주는 게 아닙니다. 주는 자의 마음, 물질이 아니
고 사 랑을 주고, 희생을 주고, 죄송한 마 음으로 주고 그래야 된다는 거죠. 더구나 겸손한
마음으로 주어야 하 는 거죠. 아쉬운 마음으로.
여러분 자녀교육에 있어서 아이 들의 용돈 때문에 고생하십니까? 또 아이들의, 자녀교육에
문제가 있 습니까? 말 한마디에 달린 거예요. 아이들에게 무엇을 주더라도 줄 때
"미안하다. 더 잘해주고 싶은데 요 것밖에 없어서 어떻하냐? 네가 우 리 집에 태어나길 잘
못이지. 아버 지 재주 없고, 내 재주 더 없고. 그 러니까 요것밖에 없지 않니? 그저 다른 집
에는 더 잘해 주더라마는 나 는 못 해주니 미안하다."
이러면서 주어야 아이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감사하지요.
"야, 왜 이렇게 용돈이 많으냐? 남에 집 아들은 조금 쓰드 만 너는 그 모양이냐?"
이렇게 나오 죠? 얘들이 얼마나 머리가 빠른대 요.
"아버지 골프 한번 치는데 얼 마인줄 아세요? 다 알고 있어요. 아버지가 술좌석 한번 벌이
면 얼만 줄 아느냐고요?"
말은 안하지만 속 은 멀쩡합니다. 이 아들이 어떻게 잘 되겠습니까? 보세요. 마음이 없잖아
요. 마음을 주지 못하고 있 잖아요. 그러니까 주는 사람의 마 음은 언제나 '미안합니다.'하는
마음 이 있어야 하는 거예요. 아쉬운 마 음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부모에 게 효도할 때에도
"더 잘해주고 싶 지마는 그저 형편이 이래서요."
이 런 마음이래야지.
"뭐 그만하면 됐 지 뭘."
그딴 소리를 하면 안되는 겁니다.
탈무드에 재미있는 소리가 있어 요. 어떤 왕이 있는데, 왕에게 외동 딸이 있는데, 병이 들어
서 죽게 됩 니다. 죽어가니까 왕이 너무 다급 해서
"이 딸의 병을 고치는 자는 사 위를 삼고, 내 대를 이어서 왕을 삼 겠습니다. 왕을 만들게
되겠다. 왕 위에 오르게 해 주마."
방을 붙였어 요. 먼먼 나라에 있는 어느 삼형제 가 산골에 살았는데, 이 삼형제가 보화, 신
기한 보화를 하나씩 가지고 있어요. 큰형은 멀리 보는 망원경 을, 천리를 보는 망원경이 있
어요. 그래서 그 망원경으로 이 사실을 보 게 됐어요. 방 붙인걸 보게 됐고, 또 둘째형은 말
입니다, 그 옛날에 있잖아요, 하늘을 날아다니는 양탄 자, 아 그거 하나를 가지고 있거든 요.
이거를 타고 이제 가게 되는 거예요. 거기까지. 세 번째 동생은 말이죠. 어떤 병이라도 요것
만 먹 으면 낫는 귀중한 사과 하나를 갖고 있어요. 자, 이 삼 형제가 멀리서 보고, 양탄자를
타고 와서 이 사과 를 주워서 이 공주가 병이 나았어 요. 이제 사위를 삼아야 하는 데, 여기
에 공을 세운 사람이 세 사람이 에요. 어느 사람을 사위로 삼아야 하느냐 이겁니다. 여기에
대한 탈 무드에 대한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망원경은 도로 가져가면 되고, 양 탄자도 도로 가져가면 되고, 사과는 먹어 없어졌으니까
당신이야말로 큰 희생을 한거요.". 그 사람이 왕이 됐답니다. 없어져야 되는 거예요. 사랑이
란 희생해서 내가 없어져야 지. 아직도 멀쩡한데요. 무슨 사랑 이 그런 게 있나요. 그런고로
주는 자의 마음이 얼마나 지극해야 하는 가. 나 자신이 사라지는, 거기에 진 정한 주는 자의
마음이 있는 것이구 요. 또 하나는 신앙적이고, 절대적 이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하고 비 교
할 것 없어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요. 하나님께로 나는 많은 것 을 받았습니다. 그 받은
마음에서 적은 봉사를 하는 것입니다. 받은 마음에 대한 감사가 이렇게 열매를 맺어 나가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누구에게 주느냐 할 때는, 전혀 보답을 바람이 없이 줘 야됩니다. 보상을 바람이
없이, 전 혀 기대를 걸지 않고. 인사도 안 해도 좋아요. 전혀 상관이 없이, 조 금이라도 그
어느 누구라든지 보상 을 바라는 마음 없는 봉사이어야 한 다는 겁니다. 그 다음에는 정성
을 기울여야 합니다. 마음을, 사랑을 그래요. 똑같은 일이라도 정성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
언제 한 번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저 지난 삼월 달에 북한 나진에 갔을 때 그때 만 해도 삼
월 달에는 추워요, 북한은. 그래서 차를 타고 가다가 식량을 구 하러 다니느라고 보따리를
지고서 여기저기 다니는 사람을 많이 보는 데, 마침 넓은 벌판을 지나가게 돼 서 차를 세우

"가는 길까지 태워 다 드릴테니 타십시오. 같은 방향 이니까"
타라고 그래서 탔어요. 보 니까 옷을 입었는데, 방한복이 괜찮 아요. 좋은 옷을 입었더라구
요. 그 래서
"아이구, 동무 옷이 참 좋습니 다."
"이거요 평화그룹에서 보내 준 겁니다."
저희 교회가 북한을 도울 때에 그 이름이 '평화그룹'입니다. '소망교회'가 아닙니다. '평화그
룹' 이라는 이름으로 주는데요. 그렇다 고 그래요. 그 옆에 있던 사람이 한 마디, 그 말을
안 했어야 되는 데
"이분이 평화그룹 이사장입니 다."
그랬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아이구, 감사합니다."
그래요. 딱 쳐다보더니요 깜짝 놀랄 말을 합니 다.
"소망교회에서 보내온 것이 제 일 좋아요."
그래요. 만일에
"소망 교회에서 보낸 것이 제일 못 돼요."
그러면 난 큰일날 뻔했어요. 어떻 게 고마운지……. 여러분 어떤 일 이던 간에 베풀 때는 정
말 정성을 다해야돼요. 마음을 주는 것이니까 요. 성의를 다해야 됩니다. 그리고 또 하는, 선
한 일하는 사람은 결과 에 연연하지 마세요. 이 어떻게 되 느냐, 어떻게 되느냐. 가끔 보니
까 그런 말 많이 해요. 뭐 쌀을 보냈 더니
"누가 먹나요."
말이 많아요. 아무가 먹던 별생각 다하네. 당신 이 주는 것만 주세요. 누가 먹느냐 는 하나
님이 알아서 하실거구요. 그거 그런 것 신경 쓰다가 평생 그 인색한 노릇하다가 끝나지요.
줄 때는 그 생각하는 거 아니에요. 내 손에서 떠난 것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드렸으면 끝난거 죠. 어떻게 쓰여지느냐는 묻지 마 세요. 하나님이 들어서 '오병이어' 처럼,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기 적을 낳을테니까, 두고보세요. 그걸 생각하지 마세요.
하나 더 있습니다. 선한 일 하 고 잊으세요. 탈무드에 그런 말 있 어요. '내가 누구를 줬는
지를 몰라 야 하고, 받는 사람은 주는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지 말아야 한다'는 거 예요. '누
구로부터 받았다'할 때는 벌써 얘기가 달라진다는 것이에요. 의미가 없어요. 잊으세요. 예수
님 말씀대로,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오 른 손이 하는 거 왼손이 모르게' 얼 마나 강한 말씀
입니까?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마라.' 참 내가 유감 스러운 말을 듣습니다.
"뭐, 돕자, 돕자하는 거, 뭐 도울 마음은 있습 니다마는 내가 가서 주고 악수해야 만 주겠데
요. 누가 받는지도 모르 는 거, 안 준다."
그래요. 이게 한 국 교인들이요. 요 정도 밖에 안 되는 거예요. 수준이 이 정도입니 다. 이게
무슨 구제요, 선한 일입니 까? 아무가 받으면 어때요? 잊어 버리세요. 내가 얼마를 줬는지
기 억지도 말아야 돼요. 누구 줬는 지 알아서 뭐해요? 내 기억에서 다 잊 어 버렸어요. 그런
돈의 숫자 필요 없어요. 미안하지만 제가 저희 교 회에서 회보를 만들지 않습니다. 그 이유
는 간단해요. 회보 가운데 보면은 주보가 전부 그 자랑이죠. 고아원 방문, 양로원 방문, 어데
얼 마 주고, 어데 좀……. 난 이거 보 기 싫어 안 해요. 그 무슨 소용 있 단 말입니까? 그
기억이 무슨 소용 있어요? 이건 교회답지 못해요. 이거는 하나님의 일도 아니에요. 깨끗한
마음으로 잊어버리세요. 나 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어요. 그 마음이라야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는 어려 운 시대를 맞았습니다.
"하필이면 IMF시대에 왜 저런 말을 할까?"하 겠죠? IMF시대니까 이 말을 하는 겁니다. 여
러분, 삶을 질을 높여 사 십시다. 베푸는 마음만이 높은 질 의 생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4 장 28절에 보면 재미있는 말씀이 있 어요. '이제는 구제할 것이 있기 위 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제 손으로 수고하여', 이자받 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에요. 내
손으로 수고하여, 여러분, '난 밥 먹 을 것이 있다. 그러니 나는 그냥 있어도 된다.' 그러겠
습니까? 아니 오, 잡수실 것이 있거든 이제부터는 구제할 것을 위해서 일하세요. 무 엇이라
도 하세요. 이것은 나를 위 한 것이 아니오. 내 처자식 벌어 먹이기 위한 것이 아니오. 구제
할 목적으로 돈을 버는 것이오. 구제 할 목적으로 땀을 흘리는 것이에요. 과거보다 더 열심
히, 열심히 뛰세요. 뭐라도 해서, 더 벌어서, 좀 더 주의 일 하겠다고, 난 밥 먹을 것이 있으
니까, 그저 이자받아 가지고 가만히 놀겠다고. 그러니까 가만있으니까 아주 가만히 있게 되
고 말지. 여러 분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일을 하세요. 땀을 흘리세요.
자, 그 뿐만 아닙니다. 오늘 본 문대로 받을려고 하는 기도에서 이 제는 주려는 기도요, 베
푸는 기도요, 또 받음직하게, 내가 돕는 그분들이 받음직한 것이 되기 위하여 기도합 니다.
바로 이것이 나를 행복하게 할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삶 의 가치를 높여 줄 것입니다.
여기 에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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