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로 돌아가기 |
첫 사랑을 잃은 인간상! (계 2:1-7)
"우리는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건다" 라고 하는 교양서적, 아주 재미있는 책을 써서 1, 2권이
나와 있는데 우리 모두에게 알려져 있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리차드 칼슨 박사
님께서 요새도 책을 많이 쓰시고 많은 곳에서 강연을 하고 높이 존경을 받고 또 많은 감화
를 끼치고 있는데 최근에 쓴 책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Don't Sweat the Small Stuff
in Love 그런 책입니다. 우리말로 이 번역을 아주 잘했어요. "사랑은 사소한 일에도 상처를
입는다" 그렇게 번역했습니다.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사랑이라는
것은 인간관계입니다. 좁혀서 말하면 두 사람의 관계입니다. 더구나 부부간의 관계라는 것은
두 인격의 만남입니다. 이 사랑 속에서 참 오묘한 것은 큰 일에 대해서는 문제가 생기질 않
습니다. 우린 자꾸 큰 일만 생각하고 크게 생각하나 큰 일이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
를 들어서 두 사이에 자라나고 있는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간다고 생각합시다. 어린아이가
아프다고 하면 뭐 남편이건 아내건 다 하나가 됩니다. 그를 위해 기도하고 그를 위해 애쓰
고 그 답답한 시간에 사랑은 뜨겁게 달아오릅니다. 사업에 실패했다, 또 큰, 본의 아닌 엄청
난 문제에 이렇게 도전 받게 될 때 사랑은 쉽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여긴 문제가 없습
니다. 근데 우리는 거기에만 문제가 있는 줄 알아요. 그게 아니라 사실은 작은 일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죠. 큰 일을 당하게 되면 사람들은 대부분 용기와 창의성을 가지고 대처하게 됩
니다. 그리고 합심하게 됩니다. 그런고로 문제가 없는데 사소한 일, 예컨대 TV 채널을 선택
하는 일, 남편은 이걸 보겠다 그러고 아내는 저걸 보겠다 그러고, 이거 가지고 티격태격 합
니다. 거기까지도 괜찮은데 당신은 그 수준이라서 그런 걸 본다 이거야. 그래서 수준 높은
사람 좋은 대로 해봐, 이러고 싸우고. 이어서 딴 방으로 가서 보라고 내 쫓으니까 둘이 따로
따로. 이렇게 되면서 금이 가기 시작을 합니다. 그 말 한마디에. 그렇지 않습니까? 또 그런
가 하면 전기 스위치를 왜 켰느냐 껐느냐. 또 치약을 몸통부터 눌러 가지고 난리다. 이것 가
지고 또 서로 한마디씩 하게 되면 마음이 상합니다. 양말을 벗어서 아무데나 내 던진다, 한
평생 잔소리를 해도 못 고칩니다. "당신은 근본적으로 가정교육을 잘못 받아서……" 이렇게
나오는 날이면 일은 끝나는 겁니다. 일은 끝나는 겁니다. 이건 큰 문제올시다. 족보 문제니
까. 못 고치는 거예요 이거는. 이래 돼서 사소한 일, 자그마한 일인데 거기서 상대방의 인격
을 헐뜯어요. 상대방의 명예를 짓밟아요. 자존심을 묵살해버려요. 이 사소한 일 같지만 사소
한 일이 아니에요. 벌써 사랑이 멀어졌다는 것을 여기서 보게되는 것이지요. 증거를 얻은 것
이지요. 이건 사소한 일이 아니에요 큰일이올시다. 그래서 리차드 칼슨박사님께서는 100가지
처방을 내놓습니다. 사소한 일이 부딪치지 않으려면은. 100가지를 설명을 하는 데, 그 중에
99번째가 "처음처럼 행동하라." "처음처럼 행동하라" 그랬습니다. 연애시절로 돌아가라는 것
이지요. 그래서 간혹 여러분 이런 것 보세요. 너무 무의미한 생활에 타성에 젖어 가다가 남
편이 그래도 옛날 연애할 때 생각을 하면서 '오늘은 그래도 기분을 좀 내보자.' 그래서 꽃이
라도 몇 송이 사 가지고 집에 들어갔대요. 그러면 부인이 "이거 웬일입니까? 그거 옛날 연
애할 때 생각이 나누만" 하고 받아줬으면 좋은데 딱 보더니 "웬 꽃?" 이러더래요. 돈 없애
고 웃기는 짓하네, 이렇게 되면은 이거는 영영 끝나는 거예요 이게. 고 말 한마디, 사소한
일이 사소한 일이 아니죠 이게 지금. 이게 근본적인 문제가 되는 겁니다 이게. 그래서 말입
니다만은 라이프지 최신호에 그런 논문이 나와 있습니다. "사랑의 과학"이라는. 그 "사랑의
과학"이라는 책에는 뭐라고 하느냐. 처음 사랑, 즉 다시 말해서 "당신 없이는 살 수 없다"라
고 말할 때, 그 말만이 아니요 진실이요. '정말 저 사람 없이는 내가 못 살 거 같애.' 그런
순간이 있었어요 확실히. 그게 얼마나 가느냐. 과학적으로 연구해 보았더니 18개월 간답니
다. 그것도 오래 간 거죠 18개월이면. 그리고 최고로 오래간 사람이 3년 간다고 합니다. 그
렇다면 그런 줄 아세요. 그런 고로 특별한 대처가 없이는 그대로 자연현상으로 사랑이 이어
지리라고 생각해서는 안돼는 거예요. 여기 처방이 있어야 하는 것이죠. 문제가 있지요? 이걸
알아야 합니다.
그래 오늘 본문 성경에서는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 군상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예수께서 직접 말씀하시고 직접 처방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아주 훌륭한 교회입니
다 에베소 교회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 가운데 가장 크고 대표적인 교회인데 이 교회는 좋
은 교회요. 그러나 문제가 있었어요. 잃어버린 것이 있어요. 첫 사랑을 잃어버렸어요. 여러
분. 사랑을 어느 정도 무겁게 생각하십니까? 고린도전서 13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지요?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요. 아무 것도 아니요. "자
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 지라도" 이거 얼마나 굉장한 얘기입니까? 얼마나 엄청난 희생입니
까?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 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Nothing,
아무 것도 아니라 이거예요.
자, 여기서 오늘 본문 성경을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보면 이 에베소 교회는 수고가 있었어
요. 인내가 있었어요. 그 성경에 보는 대로 "수고와 인내가 있다." 그 좋은 일이죠. 많은 수
고 많은 인내함이 있었어요. 그러나 사랑이 없어 보니까 불평과 원망 뿐이요. 오늘도 보면은
자식을 위해서 수고했어요. 한 평생 수고했어요. 오래오래 참았어요. 잘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원망과 불평이요. 왜? 사랑이 없기 때문에. 이걸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철학자는 말합니다. "우리가 정말 사랑하고 있을까?" 그런 책이 있어요. 제목 자체가
마음을 뜨겁게 합니다. 우리가 정말 사랑하고 있을까? 내가 자식을 사랑했느냐고 물어보세
요. 사랑이 없었기 때문에 원망과 불평이 나오는 거예요. 어떤 때는 자식 하나를 위해서 정
말 혼자서 그 아이를 키우면서 한평생 수고를 해요. 얼마나 수고했어요. 얼마나 오래동안 참
았어요. 그런데 마지막에 "나는 잘못 살았다" "헛살았다" 하고 말한단 말입니다. 그러면 당
신은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린 거예요? 무엇을 위해 살았더냐구요. 사랑이 없으면 수고와 인
내 아무 소용도 없는 것이래요. 결국은 원망과 불평으로 그렇게 끝나고 말아요. 사랑이 없기
때문에.
또한 에베소 교회는 아주 정의감이 강하고 비판이 있고 개혁이 있는 교회고 의를 주장하는
교회예요. 그래서 이단을 척결했어요. 아주 잘 한 일이요. 아주 잘 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 사랑이 없었어요. 사랑 없는 개혁, 사랑 없는 이단 척결, 사랑 없는 비판. 결국은 상처
뿐입니다. 분열로 그렇게 멍들고 말았어요.
또 하나는 오늘 여기 보니까 "참고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하고" 그랬어요. 참 귀한 말씀이
죠? 참고 견디고 게으르지 않았다. 이보다 더 좋은 얘기가 어디 있어요? 내 이름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참고 견뎠다 이거예요. 게으르지 않았다. 대단히 잘 했어요.
그러나 사랑이 없었어요. 교만했어요. 여기서 원망과 불평으로 끝났어요. 간혹 그런 경우가
있답니다. 선교사들이 해외에 나가서 수고해요. 수고 많이 해요. 그런데 선교사들 가운데 상
당수가 본국에 돌아와서 원망 불평이 많아요. 왜요? '이렇게 잘 살면서 나 왜 안 도와주
나?' '도대체 교회는 뭘 하고 있느냐?' 그러고 비판한다구요. 그래서 그러면 누구를 위해 종
을 울렸냐 이거예요. 교만에 빠졌어요. 사랑이 없기 때문에 교만해져요. 그것으로 끝났단 말
입니다요. 남을 비판하고 원망하고 이런 것을 볼 수가 있어요. 그런 고로 모든 일에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요. 피곤하고 절망하고 비판하고 분열하고 그렇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랑이 없이는 지식은 교만하게 되고 수고와 업적이라는 것은 원망과 불평으로 끝나
게 되죠.
대책은 사랑 뿐이요. 사랑을 떠났기 때문에 잃어버린 사랑, 실종된 사랑에 관심을 가지고 다
시 처음 사랑을 찾아 돌아가야 된다는 말씀이죠. 심리학자인 나폴레온 힐(Napoleon Hill)이
라는 분은 인간에게 있어서는 더구나 현대인은 일곱 가지를 고민한다고 했습니다. 불안이
있는데 그 불안의 첫째는 가난해 질까봐 불안하고 경제적 불안, 그 다음은 실패할까봐 불안
해요. 이건 명예에 대한 것이구요. 그 다음에는 질병, 건강에 대한 불안이 있고, 그 다음에는
사랑의 손실, 사랑이 깨지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이 있고, 그 다음에는 노쇠에 대한 불안이
있고, 그 다음에 자기가 누리는 자유, 자유를 잃어버리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 마지막에 죽
을까 하는 죽음에 대한 불안이 있다. 일곱 가지 불안. 제가 생각하기에는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죠. 사랑에 대해서 걱정할 줄 알아야돼요. 사랑에 대해서 또 다시 한 번 깊은 관심을
가져야만 모든 문제의 해결을 볼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 성경은 말씀합니다. 처음 사
랑을 가지라. 아가페 프로토스, 이 처음이라는 말은 시간적 개념이 아닙니다. 이것은 본질적
이고 속성적인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근본적인 것입니다. 사랑이 근본적인, 본래적 사랑으
로 돌아가라, 이제 그런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가운데는 이걸 자세하게 처방을 내렸
습니다.
훈계를 들어보세요.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그랬지요. 여기서 문제가 되는 거예요.
사랑이란 중심 이동입니다. 목적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에요. 나를 기쁘게 하던 자가 저를 기
쁘게 하려고 할 때 그게 사랑이에요. 내가 목적이 되던 사람이 다른 사람이 목적이 될 때
그게 사랑이라는 거예요. 이처럼 중심이 상대방에게 가 있는데 어느새 이게 되돌아 왔어요.
자, 선한 일 하면 칭찬 받아요. 표창장도 받을 수가 있어요. 그러나 어느 사이에 고만 칭찬
받는데 매력을 느끼고 사랑은 없어졌어요. 좋은 일 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지요.
그러나 축복 받는데 그만 마음을 두기 시작하면서 어느 사이에 그만 이걸 잃어버렸어요. 사
랑을 잃어버렸어요. 근본적인 사랑을 잃어버렸다 이거예요. 그러면 남는 게 뭡니까? 아무 것
도 아니거든요. 그래서 어디서 떨어지고 무엇 때문에 잘못됐는지 어디서부터 잘못 되기 시
작했는지를 깊이 생각하라 그 말씀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혹 생각해 보세요. 운동을 하십니
까? 운동 좋아하세요? 골프를 치던지 뭐 정구를 치던지 뭘하든지 간에 건강을 위해서 운동
들 많이 하시는데 기왕 할 바에는 좀 잘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그래서 제가 보니까요 난
우스운 건 목욕탕에 가서 빨가벗고 앉아서 골프 연습하는 사람들 많이 봐요. 거기서도 그냥
이러고 있더라구요. 잘 하려는 마음은 좋습니다. 자 이제 내가 잘 하는 비결을 말할께요. 이
걸 아셔야 됩니다. 운동은 자연현상이 아닙니다. 이걸 운동을 해서 할 때에 이걸 똑같은 일
을 반복하고 있는데 이것이 저절로 되리라고 생각해서는 안돼요. 운동을 잘 하는 세계적인
선수들이 하는 말에서 귀 기울여 들어보세요. 이게 뭐냐하면 자기가 장점이 뭔지 단점이 뭔
지를 알고 있어요. 이상한 것은 내버려두면 단점이 나와요. 꼭 생각을 하고 '요거는 내 단점
이다, 요건 내 장점이다' 한 번 더 생각을 하고 시도를 해야 되는 거예요. 순간순간 잠깐이
라도 생각을 놓치면 안돼요. 사랑도 마찬가지 예요. 사랑은 자유 현상이 아니에요. 사랑은
감성이 아니에요. 의지입니다. 사랑은 훈련도 하고 공부도 해야 돼요. 깊이 생각해야 돼요.
그래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라 그랬잖아요. 그리고야 할 수 있는 거예요. 분명히 생각
을 해야돼요. 순간순간. 그러니까 보세요. 남편이 저녁에 집에 돌아온다 합시다. 여러분 한참
뜨거울 때는 어쨌어요. 들어왔을 때 '내가 첫마디를 뭐라고 할까? 오늘 무슨 옷을 입고 맞
이할까? 이 헤어스타일은 어떻게 할까?' 옛날에는 그랬더라구요. 그런데 이제 얼마 살다 보
니까 그만 타성이 생겨 가지고 세수도 안하고 앉았다가 "여보, 나 왔수" 그러면 "왔어?" 그
러고 말잖아요. 생각이 없잖아요 도대체가. 순간순간 하나의 사건에도 생각이라는 것을 얹어
가지고 행동하고 말해야 되는 거예요. 운동이 그래요. 저도 운동을 해봅니다마는 순간순간
생각해야지 잠깐만 마음을 비우면 벌써 빗나가요.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데. 그래서 습관이나
혹은 익숙해진 것으로부터 내가 탈피해야 되는 것이에요. 항상 새롭게 생각하고 처음처럼
생각을 해야 돼요. 그래야만 이 사랑을 지켜갈 수 있는 것이다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어디
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라."
그리고 "회개하고 처음 행위를 가지라." 회개, 메타노이오, 회개란 말은 리턴(Return)입니다.
원점으로 돌아가라. 처음 사랑으로 돌아가라. 신혼여행으로 돌아가라. 그 쪽으로 돌아가서
다시 생각하라. 다시 시작하는 거예요. "회개하고 처음 행위를 가져라" 그랬습니다. 여러분
그 단테의 "신곡"이라고 하는 책이 있지요? 거기 보면 지옥편에 말입니다 지옥도 층계가 있
어요. 점점 더 내려가고 내려가고 내려가면 지옥 맨 밑바닥 제일 깊은 곳에 제일 무서운 죄
인이 거기 있어요. 세 사람이 있답니다. 하나가 예수 그리스도, 스승을 배반한 가롯유다. 뭐
그럴 거야. 지당한 말씀이요. 그 다음에 자기를 사랑한 친구를 배신한, 시이저를 배신한 부
르투스. 부르투스하고 키시우스가 그 맨 밑바닥에 있다고 합니다. 단테가 생각한 것은 무엇
이냐 하면 배신이라는 죄가 가장 큰 죄라는 것이죠. 소크라데스는 무지가 큰 죄라고 했고
헬라 사람들은 교만이 큰 죄라고 하고 피히테라고 하는 사람은 나태가 가장 큰 죄라고 합니
다마는 단테는 배신이다. 사랑의 배신, 가장 소중한 첫 사랑의 배신, 이것이 가장 큰 죄가
됨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의 배신, 누굴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자신, 자신의 사랑을 자
신이 배신한 거예요. 자신이 받는 사랑을 자신이 배신한 거라고요. 처음 사랑을 가지라.
여러분 예수 믿고 처음이 어떻습니까? 처음 구원받은 것 감사하고 죄 사함 받은 것 감사하
고 천국 약속 받은 것 감사하고 십자가 중심의 깨끗한 신앙으로 출발을 합니다. 그래서 전
도학에 보면 재미있는 얘기가 있습니다. 전도를 누가 제일 많이 하느냐? 우리 교인들 가운
데 1년 동안에 전도 몇 사람이나 합니까? 전도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이 누구인고 하니 통계
학적으로 1년 6개월 못 된 사람. 예수 믿고 1년 반 된 사람, 고 전까지가 제일 전도를 많이
합니다. 예수 믿고 오래되고 나이 좀 오래되면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일년 내내 한번도 전
도한 일 없어요. 이게 바로 문제라는 거예요. 첫 사랑을 잃어버린 거예요. 처음 감격이 없는
거예요. 처음에는 예수님이 알고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만족하죠. 그러나 뒤에는 그
렇지 못하더라구요. 처음에는 예수만 보고 나왔는데 그 다음엔 사람을 보아요. 사람들이 나
를 알아주나 못 알아주나 칭찬하나 안 하나 요거 생각하더라구요. 그래 가끔 제가 어려움을
당합니다. 어떤 권사님이라든가 절 만나 가지고 "목사님 저 누군지 알아요?" 또 놀려요 또.
"제가 소망교회 교인이라는 거 알아요 몰라요?" "모르겠는데?" "저, 권사인데요." 그러면 제
가 한마디, 저도 할 말이 있답니다. "자고로 나는 여자 얼굴을 똑바로 안 봅니다" 그러죠.
그 다음에 또 한마디합니다. "예수님이 아시면 됐지 내가 알아서 뭐 하겠어요?" 내가 아나
모르나 목사님이 알아주나 못 알아주나 그게 무슨 대수요? 그거 신경 꺼버려. 첫 사랑엔 이
런 게 없었거든요. 오로지 예수, 오로지 하나님,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만족하고 충만했
는데 어쩌자고 사람의 눈치를 보고 사람의 평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을 하는 거예요? 여기
서 그만 추락해 버리고 마는 것이지요. 무엇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무엇 때문에
피곤해졌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랑을 잃었어요. 처음 사랑을 잃었어요. 이제 다시 찾는 길은
첫 사랑으로 돌아가는 것이요. 처음으로 돌아가서 처음 행위를 가져라. 그 뜨거운 사랑으로
돌아가라. 그리하면 온 세상을 다 사랑의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온 세상 사람이 다 반가워
질 것입니다. 삼라만상이 아름답게 보일 것입니다. 사랑하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게
될 때 바로 거기 성령의 역사가 있는 거예요. 성령의 역사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해 주십
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많은 것을 얻은 것 같으나 중요한 것을 잃었고 때로 많은 것을 잃은 것 같
지만은 또 중요한 것을 얻을 때도 있었습니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고 어느 사이에 그만
피곤해진 저희들의 모습을 불쌍히 여기시고 건져 주시옵소서. 다시 처음 사랑으로 돌아가서
주님의 사랑 십자가의 사랑을 확증하고 그리고 아내를 남편을 자녀를 그리고 세상을 사랑의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주님의 사람들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 설교자료 18,185편 ◑ > 곽선희목사 설교 1,910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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