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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누가복음 7장36-50 / 사랑과 감격이 있는 신앙

by 【고동엽】 2022. 11. 19.
■2022년 11월18일(금)■
 
(누가복음 7장)
 
36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37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39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4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그가 이르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41 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42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43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이르시되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44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45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48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49 함께 앉아 있는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50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묵상/눅 7:36-50)
 
◆ 예수님의 본
 
(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만일 당신에게 동네에서 타락한 여자라고 알려진 자가 나를 존경한다며 가까이 다가오면 어떨까? 그것도 수많은 사람이 쳐다보고 있는데...
 
대부분 이런 일을 당하면 분명히 움츠러들 것이다. 아무리 진정성을 가지고 다가와도 그 여자의 대접보다는 타인의 평가가 더 신경 쓰일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이 사람과 나는 관계가 없는 자인 것처럼 보이려고 애쓰거나 심지어 단호히 거절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지 않으셨다.
이 여자의 대접을 받아주는 것이 분명히 평판에 도움이 안 됨을 아시면서도 전혀 개의치 않으셨다. 예수님께는 타인의 평가가 가치 기준이 아니었다. 오직 진리만이 기준이셨다. 이는 우리가 따라야 할 본이다.
 
하나님은 온 천하가 대적할지라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그러한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은 하나님을 본받아 타인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고 진리를 따라 행한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골똘한 자들은 아직 예수님이 어떤 길을 가셨는지를 모르는 자다.
 
 
◆ 사랑과 감격이 있는 신앙
 
(43)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이르시되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오늘 예수님을 집으로 초대한 바리새인의 이름은 시몬이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 시몬이 아니다.
 
그런데 바리새인 시몬은 예수님을 대접한답시고 집으로 초청했지만, 발 씻을 물도, 입을 맞추지도 않은 것을 보면 귀한 손님을 대하는 예를 취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아마도 그는 진정으로 예수님을 대접하고 싶었다기보다는 예수님을 초청함으로써 자신의 명성이 올라가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예수님과 동급이라는 것을 과시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바리새인 시몬은 예수님이 소문난 탕녀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주는 것을 보면서 예수님께서 선지자임을 의심했다. 타인의 평가에 목숨을 거는 자신의 인생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39)
 
그러나 이미 예수님은 시몬의 마음까지 간파하시고 질문을 던지셨다.
"오천만 원 빚진 자와, 오백만 원 빚진 자를 모두 탕감해주면 누가 더 그를 사랑하겠는가?"
"많이 탕감받은 자입니다."
"이 여자가 바로 그러한 자다."
 
타인의 평가와 수군댐을 개의치 않고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씻기는 이 여인은 누구인가? 나는 이 여자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모른다. 본문에도 아무런 정보가 없다. 그러나 바리새인 시몬의 말을 빌리자면 '죄인'이었다. 행실이 나쁜 여자였거나, 혹은 창녀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여자는 더는 과거의 죄인이 아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진정한 인생의 의미를 깨달은 자다. 살아야 할 이유를 얻은 자다. 예수님은 자기 인생을 바꾸신 분, 쓰레기 같은 인생이라고 자학하며 살던 자신을 진짜 가치 있는 인간으로 살게 해주신 분이시다.
 
이 여자의 눈물은 죄책감의 눈물일까, 감격의 눈물일까?
주님께서는 비유를 통해서 이 여자가 많은 죄를 용서받은 자임을 말씀하셨다. 즉 이 여자의 사랑과 눈물은 바로 그러한 용서의 은총에 대한 반응이다.
 
주님께서 이 여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48) 고 하심은 이제 막 용서되었음을 선포하신 것이 아니라, 이미 죄 사함을 받았음을 다시금 상기시키고 확신을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이시다. 왜냐하면 47절에서 죄 사함을 받은 그 결과로 이런 사랑이 나왔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당신은 바리새인 시몬처럼 별로 탕감받은 적이 없는 사람이어서 아무런 감동도 감격도 없는 신앙인인가? 자신의 죄인됨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영원한 구원의 기회를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죄가 너무 크게 느껴져서 괴로워하는가?  
내 죄보다 더 큰 십자가의 은총을 믿자. 그래서 더 열심히 감사하고 사랑하자. 이제부터는 자책감을 이 모든 것을 용서하신 은혜에 대한 감사와 하나님을 향한 더 큰 사랑으로 승화시키자.
 
차마 예수님께 다가가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괴로워하는 자가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께 다가가서 그의 발 앞에 엎드리며 그의 발에 향유를 붓는 이 여인처럼 사랑과 감격이 있는 신앙인이 되자.
 
죄책감으로 사는 것이 겸손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생각하는가?
아니다. 비록 과거의 죄가 부끄럽지만, 십자가의 용서를 받아들이고 감사와 감격으로 사는 것이 진짜 신앙인이다. 우리가 종종 성찬을 하면서 우는 이유는 죄책감에서가 아니라, 용서의 감격 때문이다.
 
놀라운 은혜(Amazing Grace)!
나 같은 죄인을 용서하신다는 복음이 얼마나 달콤한지.
전에 나는 잃어버린 자였지만, 이제는 하나님께 찾은 바 되었고,
전에 나는 어둠 속에 있는 장님이었지만, 이제는 진리의 빛을 보노라.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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