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원의 우물에서 자료원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발행일 : 94년 12월 25일 본문은 하나님을 나의 구원과 힘과 노래로 밍고 사는 사람들에게 임할 은혜와 그 삶이 어떤 것인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 면 구원받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밝혀 주고 있는 것입니 다. 3절은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 나님을 나의 구원, 힘, 노래로 믿고 산다면'이라는 뜻입니다. 그가 예수를 믿는 사람인가, 구원을 받은 사람인가, 은혜를 받은 사람인 가 하는 것은 그의 사는 모습을 통해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3 절 [그러므로]이하의 설명을 주목해야 합니다. 1.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네가 생각하는 땅이나 물에 대한 개념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생각하는 개념은 전혀 다릅니다. 땅은 하나님이 주셨다고 믿기 때문에 성지로 믿는가하면 물이 귀 한 곳이기 때문에 [구원]의 상징으로 묘사된 곳이 많습니다. 사8:6을 보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긴 죄를 가 리켜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렸다"고 묘사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생명의 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수가성에 살던 어떤 여인은 피곤하고 지친 모습으로 물 길러 나왔다가 거기서 생수이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야말로 기 쁨으로 물을 긷게 된 것입니다. 출17:1-7을 보면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물이 없어 고통받고 있을 때 하나님은 반석에서 물이 나와 마시게 해 주셨습니다. 이상에서 말한 물과 얽힌 모든 사건 등은 결국 영원한 생명의 물 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물 긷 는 사람들 입니다. 지금도 수도 물을 사용합니다만 옛날엔 우물을 파고 그 물을 두 레박으로 퍼내 썼습니다. 우물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그 동네 여론의 집합소입니다. 우물가에 둘러앉은 아낙네들이 세상 돌아가는 얘기며 속상한 얘 기며 축하할만한 소식들을 주고 받는 곳이 우물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여론광장인 셈입니다. 둘째, 우물물은 퍼내야 맑고 깨끗합니다. 물을 퍼쓰지 않으면 얼마 가지 못해 이끼가 끼고 썩게 됩니다. 물은 흔들고 흘러야 생수가 되는 법입니다. 셋째, 두레박이 터지면 안됩니다. 그렇게 되면 물이 다 새어 나가게 됩니다. 넷째, 우물물은 계속 새롭게 솟아납니다. 우리가 예수를 영접하고 구주로 고백하는 순간부터 마치 우물물 이 솟아나듯 기쁨이 샘솟게 되는 것입니다. 물 없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쁨보다 더 큰 감격이 신령 한 우물을 만난 사람에게 넘치는 것입니다. 누굴 만날까봐 뜨거운 한 낮에 물길러 나왔던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만난 후 참 기쁨이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기 쁨으로 구원의 우물에서 물을 긷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참 기빛븜, 참 행복, 참 만족을 얻으려면 구원의 우물에 서 물을 길어야 합니다. 구원의 우물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야 합니다. 우리끼리만 우물가에 둘러 앉아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 의 꽃이 피운다면 참 기쁨이나 구원을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2. 여호와께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4절을 보면 "그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의 최초의 언어는 [감사합니다]라는 것입 니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을 건져주었습니다. 정신을 차린 그 가 자신을 구원해 준 사람에게 맨 먼저 할 말이 무엇이겠습니까? "형씨 몇살이슈?" "주민등록 번호가 뭐유?" "어디 사슈?"라야 되겠습니다. 아닙니다. 그건 안됩니다. 첫마디는 "감사합니다"라는 것이어야 합니다. 본문을 보면 감사의 대상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 이름을 부르 며"라고 했습니다. 딴이름 부르며 감사하면 안됩니다. 나에게 구원 의 기쁨을 주신 하나님을 부르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시편 후반부를 보면 "여호와께 감사하라"는 노래들로 채워져 있 습니다. 때로 우리는 정말로 감사해야 될 하나님과 상대적인 감사의 대상 인 사람을 뒤바꿀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입은 은혜는 최선을 다해 감사할 줄 알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선 대충 대충 넘어갈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 다. 3. 그 행하심을 만국중에 선포하라고 했습니다. 감사하는 것만으로 끝나면 안됩니다. 내가 감사하고 있는 그 사 실과 내용을 선포해야 합니다. 어느 해 농아인들과 정박아들이 함께 드리는 추수감사절 예배에 참석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들보다 건강한 제가 볼 때 그들은 감사 할 조건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저는 그들의 노래와 손놀림 속에서 감격적 감사를 목격했습니다. 감동적인 예배였습니 다. 우리는 사지백체가 말짱하고 먹고 배설하고 잠자고 깨어날 수 있 을 뿐만 아니라 구원의 은총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감사가 적었습 니다. 감사는 하나였고 원망은 아홉이었습니다. 감사의 노래는 한곡 뿐이었고 원망과 시비의 노래는 수천곡조였 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감사를 중얼거렸을뿐 선포하지못했 습니다. 본문은 만국 중에 선포하라고 했습니다. 왜 예수님이 좋은가, 귀 한가, 위대하신가를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 김포 공항 직원들의 성탄 축하예배에 설교를 하기위해 갔습니다. 그날 마침 모 백화점이 제2공항청사 지하 넓은 공간에 매장을 열고 자선바자 판매를 하고 있었습니다. 예배 장소가 그곳 매장을 지나서 가야하는 곳이어서 매장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제가 여러 코너를 지날 때마다 판매원들이 "어서 오십시요" "할인 판매 합니다" "기회 놓치지 마십시요" "좋은 물건입니다"라며 손님 끌기 에 열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거기서 상품 판매에 열을 쏟는 젊은이들의 신념을 볼 수 있 었습니다. 그들은 부끄러움도 망서림도 없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감사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해야 합니담. "예 수님은 나를 위해 오셨다"고 "예수님은 나를 위해 죽으셨다"고 "예 수님은 나를 위해 다시 살아나셨다"고 "예수님은 오늘도 나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선포해야 합니다. 5절 끝을 보면 "온 세계에 알게 할찌어다"라고 했습니다.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만국 중에 선포하라든지 온 세계에 알게 하라는 것은 복음의 세계화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문민정부 출범초기의 이슈는 개혁과 민주화였습니다. 그리고 어 번 개각을 계기로 내건 이슈는 세계화입니다. 이제는 동남 아세아의 한국이 아니라 세계의 한국이 되어야 한다 는 것입니다. 어차피 세계 정세는 세계화를 지향할 수 밖에 없습니 다. 러시아나 중국이 이미 개방 정책을 표방한데 이어 북한도 영공개 방을 선언했습니다. 이제 더이상 폐쇄나 쇄국정책이 설 자리가 없 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볼 때 주전 700년경 하나님의 구원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온 세계에 알게 하라는 본문의 교훈이야말로 복음선교의 세계화를 위한 예언이었던 것입니다. 벳바게라는 마을을 떠나신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으 로 올라가고 계셨습니다. 길가에 서있던 시민들이 종려가지를 흔들 고 겉옷을 벗어 길에 편 채 호산나를 외쳤습니다. 그러자 종교 지 도자들이 웬 소란이냐며 말렸습니다. 그때 주님은 "만일 이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고 하 셨습니다. 4-6절 사이에 "그 이름을 부르며, 선포하며, 알게하라, 소리높여 부르라"고 반복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해야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4. 그 이유가 무엇인지 찾아 보겠습니다. 왜 감사해야 하며 그 이름을 부르고 선포하고 높이고 찬송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5절 끝을 보면 "가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라고 했습니다. 극히 아름답다는 것은 탁월한 비교할 수 없는 뛰어난 영광스러운 아름다움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고 탁월 하고 비교할 수 없고 영광스러운 사건이며 아름다운 일인 것입니 다. 신문 보도에 의하면 중국 상해나 북경에도 성탄나무(Christmas Tree)를 세우고 성탄 할아버지(Santa- )를 만들어 세웠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이 세상에서 가장 놀랍고 아름다운 사건입니다. 그러기에 전 세계가 그분의 탄새을 축하하고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 뿐입니까? 이 세상에 이름을 남긴 모든 사람들 가운데 예수님 보다 더 아름답고 귀한 삶을 산 사람이 누굽니까? 그리고 예수님처 럼 죽은 사람이 누굽니까? 오직 예수 뿐입니다. 그토록 아름답고 위대하신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이 크리스마스입 니다. 이 복된 날 우리에겐 너무나 감사하고 증거할 사건들이 많습니 다. 윌리엄 거널은 "악한 일을 하고 기뻐하는 모습이나 그리스도인들 이 슬퍼하고 낙심하는 모습은 똑같이 꼴불견이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어제(토요일)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늘 주님]이라는 붓글씨 를 써서 표구사에 보냈습니다. 어떤 분에게 선물을 하기 위해서였 습니다. 저는 그 분을 만나본 일이 없기 때문에 얼굴도 모르는 사 람입니다. 저희 교회 장로님이 몇년 전 제가 써준 [늘 주님]이라는 족자를 사무실에 걸어 놓았는데 어느날 그분이 그 방에 들어 왔다 가 그것을 보았답니다. 어렸을 때 교회 생활을 하다가 장년이 된 뒤로부터는 신앙생활을 못하던 사람이었는데 그날 [늘 주님]이라는 족자를 보는 순간 가슴 뭉클한 감동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휘호 하나를 더 부탁해서 받아 달라는 청탁을 받았다는 것입니 다. [늘 주님]을 히브리 말로는 임마누엘이라고 합니다. 임마누엘이 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임마누엘이 역사적 사건으로 이뤄진 날을 크리스마스라고 부릅니다. 크리스마스는 구원의 우물이 되신 주님께서 탄생하신 날입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는 지금도 나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이신 주님 을 찬양하는 날입니다. 이 사건을 감사합시다. 이 아름다운 사건을 만국에 전파합시다. 오늘도 주님은 나와 함께 계십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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