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1월3일(월)■
(로마서 5장) 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16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묵상/롬 5:12-21) ◆ 원죄( 原罪 original sin) (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여기서 언급한 '한 사람'이란 아담을 의미한다. 아담 때문에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 아담이 지은 죄 - 이것을 신학적 용어로 원죄라고 칭한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사망 선고를 받아서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때 아담만 쫓겨난 것이 아니다. 온 인류가 쫓겨났다. 본래 아비가 지은 죄가 자식에게 전달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선언하셨다(신 24:16, 렘 31:29-30). 그러나 아담의 죄는 매우 특이하다. 모든 인간에게 전가되었다. 아담의 죄가 어떻게 후손에게 전가되는가? 이것을 생물학적으로나 철학적으로 명쾌하게 설명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만유인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몰라도 분명히 존재함을 알듯이 우리는 아담의 죄가 어떻게 전가되는지는 몰라도 현실적인 증거들을 통해 아담의 죄가 전가되었음을 본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원죄는 두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서 설명해야 한다. 하나는 죄책이고, 또 하나는 죄성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모두가 후손에게 전달되었다. 일부 신학자들은 죄책의 전달은 부정하고, 죄성만 전달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간의 사망이 죄책 때문에 나타난 것인데, 죄지을 틈도 없었던 갓 태어난 아기도 죽는 것을 보면, 아담의 죄책은 결국 모든 인간에게 전달되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 예외가 없다. 원죄 이론에 의하면 아무리 순수하고 정결해 보이는 아기도 아담의 후손인 이상 죄인인 셈이다. 그렇다고 어린 아기들조차 모두 지옥에 간다고 선언하면 안 된다. 그런 단순 논리의 희생물로 만들면 안 된다. '이전의 죄를 간과하시는 하나님'(행 17:30, 롬 3:25)께서는 어린아이들을 용서하시고 천국으로 받아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예수님께서는 천국이 어린아이들의 것이라고 하셨다(마 19:14). 판단할 능력이 없고, 선악을 제대로 구별할 수 없는 어린아이들을 위해서도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려주셨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내 개인적인 확신은 어린아이들은 모두 천국에 있다. 또 하나의 영역은 죄성이다. 죄성은 인간 본성에 뿌리를 박고 있다. 인간 죄성의 본질은 '자기 영광 추구'다. 자기가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선악과를 따먹고 생긴 이 형질은 모두 유전되었다. 모든 인간이 예외 없이 자기 자랑에 몰두하는 것도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자기가 하나님이 되다보니 하나님과 사사건건 부딪힐 수밖에 없다. 감히 하나님을 판단하고 온 우주의 주인 행세를 하는 건방짐이란! 모든 죄는 여기에서 파생된다. 고집이나 자기 자랑이 도둑질이나 간음보다 훨씬 더 원죄에 가까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대속(代贖 - atonement redemption) (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아담때문에 모든 인류가 죄인이 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반전이 일어났다. 예수 그리스도때문에 모든 사람이 의인이 되는 것이다. 놀라운 역습이고 역전이다. 거시적으로 봤을 때, 첫 번째 아담은 타락하여 모든 인류를 죄인으로 만들었지만,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께서는 자신이 죽으심으로써 많은 사람을 의인으로 만드셨다(고전 15:45). 그를 통해서 새로운 인류가 탄생하게된 셈이다. 아담의 죄가 어떻게 모든 인류에게 미쳤는지 생물학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현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듯이, 이번에는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써 대속하신 은총이 어떻게 모든 사람에게 미치는지를 설명할 수 없어도 현실이 그것을 말해준다. 중풍병자에게 네 죄를 사함받았다고 할 때 바리새인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라고 논쟁했지만, 예수님은 그에게 침상을 들고 걸어가게 하심으로써 그것이 사실임을 증명하셨다. 사실 앞에서 모든 논리는 힘을 잃는다. 많은 성도들이 자신이 죄사함 받았음을 간증한다. 성령께서 오신 것이 그 증거이며, 평안과 기쁨이 그 부산물이다. ◆ 넘치는 은혜 (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율법을 주신 이유는 인간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심이다. 죄를 죄인 줄 모르고 자기 자랑에 몰두한 인간들이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깨우치고, 인간에게 은혜가 필요함을 역설하기 위함이다. 오늘 본문에서 '왕 노릇'이란 말이 여러 번 나온다. 사망이 왕 노릇 했다(17). 죄가 왕 노릇 했다(21). 왕 노릇이란,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영역임을 의미한다. 왕에게 무슨 저항이 가능하겠는가? 저항한다고 이길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강력한 힘에 압도될 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은혜도 왕 노릇 하신다!(21)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것 같은 죄도 압살해서 없애버리는 풍성한 은혜, 절대로 치료되지 않을 것 같은 중독에서도 건져내시는 강력한 은혜. 죄인을 의인으로 만드시는 놀라운 은혜. 영원한 사망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기시는 절대적인 은혜.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그의 다 떨어진 거지 옷을 벗기시고 가장 좋은 옷을 입히셨다. 가락지를 끼웠다. 새 신을 신겼다. 그리고 잔치를 벌이셨다. 풍악을 울리도록 했다. 이런 은혜가 임할 때 우리는 압도 당한다. 저항할 수 없다. 은혜가 왕노릇할 때 그저 감사, 또 감사하며 감격할 뿐이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에게 압도하는 은혜를 베푸신 아버지 내 평생에 아버지를 경배하며, 찬양합니다.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저를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습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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