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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곽선희 목사 설교

주께서 마음 문을 연 사람(사도행전 16:11~15)

by 【고동엽】 2024.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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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마음 문을 연 사람(사도행전 16:1115)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경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더니 두아디라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야 있게 하니라

 

 

 

하나님의 크신 경륜 안에서 바울과 일행은 소아시아를 떠나 유럽으로 건너가게 되고, 바로 마게도냐 지경에 이릅니다. '마게도냐'는 지역 이름이고 빌립보는 도성의 이름입니다. 빌립보는 마게도냐 지경의 첫 성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빌립보를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게도냐 지경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이제 마게도냐 지경 전체를 향해서 복음을 전하게 되겠는데 빌립보에서가 그 시작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어서 데살로니가, 아덴, 고린도로 전도 여행을 하게 됩니다. 그런고로 첫 성이라고 하는 말이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여기서부터 시작하여 마게도냐 전 지방에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바울은 이 첫 성에 교회를 세우게 된다는 말씀이 되겠는데 소아시아에서의 전도와는 또다른 성격을 가집니다. 소아시아 쪽은 어디까지나 동방적인 것이었고 이 빌립보는 서양입니다. 그리고 유럽입니다. 그러므로 이제까지와는 문화, 철학, 생활, 풍속, 그리고 특별히 세계관이 다른 곳입니다. 이 빌립보에서부터 복음이 어떻게 전파되느냐, 선교가 어떻게 이루어지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출발부터 잘 되어야 계속해서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며, 또 어떤 의미에서는 유럽 전 지역을 향하여 선교할 때에는 어떤 선교 전략으로 임해야 하느냐가 좌우됩니다. 중요한 전기(轉機)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첫 성'이라는 것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는 로마의 식민지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마음은 일찍부터 로마로 향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빌립보에서부터 사실은 로마가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의미상으로 볼 때에, 이미 로마의 영토로 들어가고 있는 셈이 됩니다. 그런고로 앞으로 이루어질 로마 선교의 전략상 이 빌립보 성의 선교는 중요한 과정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일행과 함께 이곳에 도착해서 며칠을 유하는 중에 안식일이 됩니다. 안식일이 되면 유대사람들은 어디서나 철저하게 안식일을 지킵니다. 오늘의 본문 가운데서도 우리는 유대사람들의 안식일 지키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로마의 식민지일 뿐 아니라 유대사람들이 많이 사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회당이 없는 것 같습니다. 교회당이 없으면 어떻게 안식을 지키는냐----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를 생각해봅니다. 유대사람들은 철저하게 안식일을 지킵니다. 유대사람들이 안식일을 지킨 게 아니라 안식일이 유대사람들을 지켰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유대사람들의 신앙이라고 하는 것을 딱 두 마디로 요약됩니다. 안식일 중심이요, 교회당 중심입니다. 열 가족만 모여도 회당을 세웁니다. 그들은 회당을 중심으로 해서 삽니다. 아무튼 안식일을 지켜야 유대사람입니다. 안식일을 안 지키는 사람은 유대사람이 아닙니다. 이방인일 뿐입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어떠한 일이 있어도, 어떤 손해를 지불하더라도 안식일을 지킵니다. 어떤 핍박을 겪으면서도 생명보다도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안식일입니다. 안식일에는 철저하게 쉽니다. 그래야 안식일입니다. 하는 일을 다 멈추고 24시간 깨끗하게 쉽니다.

그리고 공간적으로는 일단 회당으로 가야 됩니다. 자기 있던 곳에 그대로 머물러서는 안식일이 안됩니다. 이 점을 생각해야 됩니다. 우리가 때로는 집에서 기도한다던가 집에서 예배드리면 되지 않겠는가, 집에서 성경보고 기도하면 되는 거지 굳이 교회라는 곳에 나가야 한다는 법이 어디 있는가 하고 생각할 때가 있으나 그렇지 않습니다. 유대사람들은 절대로 그렇지 않아요. 회당 중심입니다. 그래서 꼭 회당에 가야 됩니다. 유대사람들이 이렇듯 회당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그들은 어디에를 가든지 회당부터 먼저 짓습니다. 지어놓고는 회당 중심으로 삽니다.

지금도 미국 같은 데에는 유대사람들이 많이 삽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모입니다. 회당 하나 딱 지어놓으면 그것 중심으로 모여 삽니다. 안식일 날에 자동차를 타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아무리 차가 있어도 타면 안 된다고 합니다. 차 안 타려면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살아야 합니다. 회당에서부터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살아야 경건한 유대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회당 하나 지으면 그것을 중심으로 한 동네가 생기는 것이지요. 자연히 Jewish town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지금도 이것은 철저합니다. 예배당이 낡든가 해서 옮겨갈 때에는 넓은 곳으로 옮겨가 회당을 짓기 위해 그것을 팔아요. 팔면 주로 한국사람들이 사들입니다. 사서 우리 교회로 사용하거든요. LA에 가면 그런 교회가 많습니다. 유대인들이 자기네 교회를 파는 것은 낡았기 때문입니다. 동네가 어지럽기 때문입니다. 팔고 넓은 지역으로 갑니다. 회당을 잘 지어놓으면 당장에 큰 마을이 생깁니다.

아무튼 공간적으로 일단 집을 떠나야 합니다. 자기가 있던 곳이나 일터에 머물러 있으면 안식일이 아닙니다. 행동에 있어서는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외고 해석하고, 그리고 명상하고 하면서 하루를 보냅니다. 저들은 이렇게 안식일을 지킵니다. 이제 빌립보는 회당이 없는 곳입니다. 회당이 없는 곳에서도 우선 안식일이니까 쉴 수는 있어요. 그러나 회당은 없으니까 기도할만한 어떤 곳으로 모여야 됩니다. 자기 집에 있어서는 안됩니다. 산으로 가든 숲 속으로 가든 바위굴 속으로 가든 공동묘지로 가든 일단 자리는 옮겨야 됩니다. 또 한 가지는 한적한 강가로 모였다고 합니다. 아무튼 조용한 곳을 찾아야 합니다. 거기서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제가 군인이었을 때, 전선에 나가 있을 때입니다. 주일은 되었는데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거든요. 내가 마음대로 이탈해서 어디로 갈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나무 밑이라든가 바위 밑 같은 한적한 곳을 찾아서 하루종일 앉아 성경을 읽곤 했었습니다. 아무튼 자리를 한번 옮겨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있던 그 자리에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이스라엘사람들의 법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배할만한 곳을 찾다보니 한적한 어느 강가로 갔고 거기에 찬송부르고 예배드리는 사람들이 모여 있어요. 그래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고 그래서 그들에게 전도했다는 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반드시 안식일을 지켜야 이스라엘사람인 것과 같이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주일날 교회에 나가야 교인입니다. 그것은 틀림이 없어요.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어요. 주일날 교회에 열심히 나가면 거기에서 듣고, 배우고, 느끼고 하면서 신앙이 향상되는 것이지 내 의지로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고, 결심하고, 선하게 살고…… 쓸데없는 소립니다. 그것은 예수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것은 교회 다니는 것입니다. 주일을 잘 지키는 것입니다. 교회 중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만약에 교회가 없다고 한다면 어느 곳이든지 한적한 곳을 찾아서 그리스도인들이 모여야 해요. 모여서 찬송하고, 기도하고 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인의 예배하는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여행 중인데 교회가 없는 곳이라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바울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한적한 곳을 찾아 예배하러 강가에 나갔다가 거기서 예배하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얼마나 반가웠겠습니까? 그리하여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거기서 루디아라고 하는 사람을 만납니다. 여자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대로 루디아에 대해서는 생각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본문에 "루디아라고 하는 한 여자가"라고 말씀합니다. 루디아라고 하는 이름도 원문대로 보면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아마도 루디아라고 하는 말은 개인의 이름이라기보다는 가문의 이름인 것 같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그런 게 있잖아요? 이름을 부르지 않고 '수원댁'이니 '청주댁'이니 하지 않습니까? "두아디라성의 자주 장사로서"--이렇게 말씀합니다. 두아디라라는 성과 이 루디아는 어떠한 관계에 있었는지 상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살기는 이 빌립보에 사는데 이렇게 소개되고 있거든요. 그러므로 내용을 정리해봅니다. 두아디라라는 성은 수세기에 걸쳐 염료 생산지로 유명합니다. 물감을 만드는 곳으로 유명했습니다.

물감 생산이란 간단한 업종이 아닙니다. 고급 기술이 필요합니다.

아무나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연세가 높은 분들은 기억할 것입니다. 815광복 직후였습니다. 베를 짜 가지고 옷을 해 입어야 되겠는데 그냥 해 입으면 하얗잖아요? 흰옷입니다. 염색을 했으면 좋겠는데 염색할 방법이 있나요? 물감이 없을 때였거든요. 그래서 궁여지책인지 슬기인지 솜을 굴뚝에다 올려놓았어요. 연기가 올라가면서 솜이 새까매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며칠동안 놓아두었다가 빨아 가지고 흰색하고 섞어서 짜 가지고 옷을 해 입었어요. 쉽게 말하여 물감이 귀했으므로 연기에다 염색을 해서 옷을 해 입었어요. 제가 피난 나올 때에도 그런 옷 입고 나왔습니다. 그야말로 정성이지요. 밭에 목화를 심어서 솜을 만들고, 다시 그렇게 염색을 해서 실을 뽑아 물레질하고 베를 짜고…… 그래가지고 옷을 만들어놓으니 이 옷이 변변치는 않아도 거기에 기울인 정성으로 말하면 기가 막힌 것이지요. 요새같이 훌렁 나가서 사 입고 이내 내버리는 그런 옷과는 이야기가 다른 것입니다.

아무튼 물감이라는 것은 예로부터 참 귀한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고급 물감은 귀한 것인데 하물며 2천 년 전입니다. 그런데 두아디라 성은 염료 생산지로 유명했습니다. 루디아는 염료 중에서도 값비싼 자색 염료로 처리된 자주(紫紬)를 취급하는 장사였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자주 장사였습니다. 옛날에도 이 장사는 굉장한 장사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이렇게 정리할 수가 있습니다. 두아디라에 염색 공장이 있었고, 그 공장의 생산품을 마게도냐 지방으로 가져와 파는, 이른바 마게도냐 대리점을 경영하는 사람이 루디아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남편은 먼저 세상을 떠나고, 루디아는 생활력이 강해서, 활동적이어서 이 사업을 맡아 하는 것이었고, 그래서 생활이 넉넉했습니다. 활동적이고 돈도 있는 부인이었습니다. 이렇게 보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입니다.

두 번째로 루디아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유대인이라 하지 않고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어요. 이방사람이 유대교로 개종을 해서 성실하게 유대종교 믿고 살 때, 그런 사람을 가리켜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미루어볼 때에 루디아는 유대사람이 아닙니다. 유대종교로 개종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붙는 호칭이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유대종교로 개종한 다음에 경건하게 유대사람들의 종교적 규례를 따라 안식일을 지키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다음으로 생각된 것은, 사도 바울이 설교를 할 때에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주셨다고 합니다.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주시어 청종케 하셨다 합니다. 대단히 귀한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선교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성령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전도를 합니다.

그러나 전도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그 사람의 마음을 열어주셔야 그 사람에게 전도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온다고 예수믿는 것이 아니예요. 성령이 마음을 열어주셔야 돼요. 선교의 주체는 성령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이쪽으로 보내신 것도 성령이요, 바울로 하여금 설교하게 하시는 것도 성령이요, 듣는 사람의 마음을 여시는 것도 성령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아무도 이 낯선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없는 것입니다.

동양 고전의 하나인 대학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마음에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지 않고, 들어도 듣지 않으면,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마음이 문제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보면 만인만사가 다 아름답게 보입니다. 다 잘 들리는 것입니다. 입맛도 좋아집니다. 그러나 사랑이 빠지고 보면 보이는 것도 없고, 예쁘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고, 짜증만 나고, 음식은 맛이 없어집니다. 그럴 수밖에 없어요. 이게 마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마음을 내 마음대로 못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이란 우러나서 생겨야 되는 것입니다. 열려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생겨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생기지 않으면 듣건 보건 소용이 없다는 말씀이 됩니다. 성령이 주장해서 루디아의 선입관을 제거하고 마음 문을 열어 듣게도 하고 청종케도 했습니다. 깨닫게도 하고, 받아들이게도 하고, 사랑하게도 하고, 결심하게도 했습니다. 성령이 마음 문을 열어주셨어요. 그래서 단 한번의 설교에 마음 문을 열고 예수를 믿게 되고,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헌신하게 됩니다.

그 다음으로 생각할 문제는 루디아라는 여성의 사람됨입니다. 왜냐하면 유럽 전 지역을 선교 상대로 하는 이 시간에 첫 번째 교인으로 루디아가 나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을 통하여 빌립보교회가 세워집니다.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거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예요. 우연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예요.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이 사건이 이루어졌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그 사람의 사람됨, 혹은 선교적으로 쓰일 수 있는 그릇됨과 자격은 어떤 것이냐--그것을 좀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우선 이 사람은 종교적인 인물입니다. 돈은 많아요. 생활이 넉넉한 사람인 것 같아요. 그러나 하나님을 섬겼어요. 개종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었어요. 이 점이 중요합니다. 이 사람이 사도 바울에게 병 고쳐달라고 나온 것이 아니예요. 이미 넉넉한 생활을 하면서도 종교성이 있는 여성이예요. 하나님을 섬겨야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많은 사람이 우상을 숭배하고, 많은 사람이 타락하고 있지마는 이 여성은 종교성이 있었어요.

그래서 하나님을 찾고, 섬기고, 회당도 없는데도 기도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안식일을 지킬 줄 아는, 종교적 인물이었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보면, 어떤 사람은 지혜에 밝고, 어떤 사람은 말을 잘하고, 어떤 사람은 정치성이 있고, 어떤 사람은 수단이 좋고 똑똑하지만 루디아는 특별히 종교성이 있었어요. 그것이 특징입니다.

두 번째로, 이 사람은 사업가입니다. 직업여성입니다. 남편의 사업을 이어받아 하는 것 같습니다마는, 아무튼 그는 직업여성입니다. 장사하는 사람입니다. 이 점을 깊이 생각해야 됩니다. 활동적입니다. 그래서 빌립보교회를 설립했습니다. 나아가서는 사랑하는 마음도 있어서, 사도 바울이 감옥에 있을 때마다 연보를 해서 사람을 시켜 보내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사랑도 있고 능동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 그런지 어딘가에 질투심이 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나 분명히 담대한 사람입니다. 선교적으로 쓰임 받기에 적당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한번 이런 일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교인 하나가 제게 찾아와 "목사님, 저는 전도도 하고 싶고, 학교에 가서 뭘 좀 가르쳐 주고도 싶은데 워낙 숫기가 없어서 그런 걸 못합니다. 사람 만나는 게 겁이 나고요. 더구나 낯선 사람은 못 만납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정말로 그렇게 하고 싶습니까?" "꼭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를 보고 대영 백과사전 파는 세일즈맨을 훈련하는 데가 있는데 거기 가서 훈련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정말로 들어가서 훈련을 받았어요. 두 달도 안됐어요. 아니나다를까 훈련받고 나서 얼마나 활달해졌는지 몰라요. 여러분, 집에 뭘 팔러 온 사람 보셨지요? 그 사람들, 보통 능한 게 아니예요. 따르릉하고 초인종 누른 다음에 "누구세요?"하면 백과사전 팔러 왔다고 대답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일로 왔는데요."하고는 문 열면 발 하니 딱 들이밀고 문 못 닫게 한 다음에 어린아이보고는 "아유, 예쁘기도 해라" "어머, 저 화분 좀 봐"----이런 식으로 접근해 들어가면서 기어이 책 하나를 팔고야 나오는 것입니다. 그게 보통 기술이 아니예요. 이것을 아셔야 합니다. 전도사가 되었어요.

특별히 낯선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예요. 미국의 어떤 신학대학에서는 한 학기 동안에 세일즈맨 트레이닝을 합니다. 세일즈맨 가르치는 전문가가 와서 한 학기 동안 가르칩니다. 한 과목을 가르친 다음에 여름방학 동안 석 달 동안에 백과사전을 팔게 합니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팔게 합니다. 이 자격증을 얻고나서야 신학을 졸업하게 합니다. 이래야 심방을 하지요.

낯선 집을 찾아가는 것이 쉬운 일 아닙니다. 문간에서부터 "필요없어요"한다고 "알았어요"하고 돌아서면 어떻게 됩니까? 장사라는 게 쉬운 것이 아니예요. 우선 시간시간 낯선 사람을 만나지 않아요? 남의 주머니에 든 돈 끌어내기가 쉬운 건가요? 사람을 딱 만나요. 친절하게 만나요. 마음을 움직여야 됩니다. 루디아는 장사하는 여자입니다. 사회성이 있어요. 인간관계가 좋아요. 낯선 사람을 만나는 데 능숙해요. 그러니까 쓰임 받는 것입니다. 사람만 만나면 벌벌 떠는 사람 데려다 뭘 하겠어요? 저 한 사람이나 예수 믿지 죽을 때까지 예수 믿으라는 말 한마디 못하고 죽을 텐데요. 그런 비생산적인 교인 가지고는 교회 못 세우는 것입니다. 적어도 선교를 위해서는 확실히 이런 활동적인 여자가 필요해요. 세일즈맨이요, 넉넉한 사람이예요, 경영하는 머리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쓰임 받는 것입니다. 그것은 알아야 합니다.

나아가서는 지도력도 잇는 여인입니다. 본문에 보니 자기가 예수믿자마자 어떻게 합니까? 당장에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당일에 세례를 다 받은 것입니다. 그 여자야 벌써 마음을 열어 알았지만, 다른 사람이야 뭘 알겠어요? 다른 사람의 마음이 다 열린 것이 아니예요. 그러나 어찌했을 것 같습니까? "세례 받아!" "그거 좋은 거야" "받으라면 받아"--이렇게 된 것이 아니겠어요? 온 집안이, 아마도 하인들까지 다 세례 받게 했어요. 백부장 고넬료도 그랬지 않습니까? 자기가 예수 믿으면서 온 집안, 친척까지 다 세례 받게 했지요. 아주 그룹으로, 전체가 한꺼번에 예수를 믿는 거예요. 지금 루디아도 그렇습니다.

그만큼 지도력이 있는 여자예요. "오늘부터 내가 예수 믿으니까 당신들도 지금부터 예수 믿는 거요. 그리스도인으로 세례 받는 거요"---온 집이 함께 세례를 받았습니다. 지도력이 대단히 강한 여자예요. 적극적인 여자입니다. 내일 모레 하고 미루는 것이 아니예요. 오늘 예수 믿고 오늘 당장 세례 받는 것입니다.

어떤 여자들 보면 "믿기는 믿겠습니다마는 좀더 기도해보고요" 어쩌고 하면서 아주 복잡해요. 그러나 이 여자는 그렇지 않아요. 즉각적으로입니다. 귀한 일입니다. 성령이 마음 문을 열어주실 때에 당장 세례 받고 그대로 문을 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헌신적이고 용기가 있는 사람이예요. 본문에 아주 재미있는 대화 한 대목이 나옵니다.

자세히 보세요. 이렇게 나옵니다.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하고 강권합니다(15).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바울은 남자입니다. 이 집은 여자네 집입니다. 남자가 함부로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지 않아요. 그러나 이 루디아는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합니다. 자기를 여자로 보지 알아라, 예수 믿는 사람으로 보라 함입니다. 이렇게 해서 open house합니다. 대단히 능동적입니다. 자기 집을 그렇게 여는 그 때부터 빌립보교회가 됩니다. 가정교회가 시작됩니다. 얼마나 굉장합니까? 그대로 집을 열고 맙니다. 자기 집을 교회로 제공합니다. 자기 집을 교회로 제공하면서, 예배 처소로 제공하면서 교회가 서는 것입니다. 헌신적이고 용기 있는 여인입니다. 즉각적으로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서 모든 장애 되는 것들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낯선 사람을 자기 집에 들임으로 말미암아서 세상으로부터 무슨 오해를 받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상관없어요. 그는 담대합니다. 확실합니다. "나를 주 믿는 사람으로 알거든 우리 집에 유하라"--그리고 영접하게 됩니다. 이래서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유명한 말이 있지요. "나는 생각한다. 그런고로 존재한다"----데카르트의 말입니다. "나는 느낀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루소의 말입니다. "나는 행동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행동주의자의 말입니다. "나는 반항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까뮈의 말입니다. 여러분, "나는 믿는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말입니다. "나는 헌신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이런 사람이 주의 일꾼입니다. 다른 생각 없어요. 주를 영접하고, 그대로 즉시 헌신합니다. 루디아는 즉시, 그리고 전적으로 헌신합니다.

여기서 루디아는 명실공히 빌립보교회의 믿음의 어머니가 됩니다. 그리고 큰 역사를 이룹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을 위해서 얼마나 소중한 교인인지 모릅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혔을 때마다 빌립보교회가 그를 도와줍니다. 바울이 사방에다 수고하여 전도했지마는 바울에게 진정으로 위로를 줄 수 있었던 사람은 바로 이 빌립보교회와 루디아였던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루디아는 사도 바울에게 귀하고도 중요한 협력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빌립보교회는 영성 지도적인 교회를 출발합니다. 사랑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 가운데 루디아의 마음 문이 열리고 그녀를 통하여 마침내 교회가 세워지는 아름다운 사건을 보면서 우리 또한 하나님의 거룩하신 역사에 쓰임 받으려면 어떠해야 되는가--아울러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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