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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곽선희 목사 설교

영광의 약속(요 17:20-26)

by 【고동엽】 2024.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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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약속(17:20-26)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니다.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삽고 저희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삽나이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17장은 전체가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날 밤에, 제자들과 더불어 하신 기도였으므로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 기도는 세 부문으로 나뉘는데 첫째와 둘째 부문은 이미 공부했습니다. 잠깐 복습을 하면, 첫째 내용은 십자가를 잘 감당하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며 아들을 영화롭게 하옵소서라는 예수님 자신을 위한 기도였고, 둘째는 제자들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제자들을 주님이 데려 가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남아 있겠는데, 그들이 잘 살거나 편안하기를 바라시는 대신에 죄악에 물들지 않고 자신들의 본분을 다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하시는 내용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으로서, 저 열 한 제자들을 통하여 앞으로 믿음을 갖게 될 세상 사람들을 위해 하신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 속에는 지금 우리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놀랍고 뜻깊은 기도입니까?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을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17:20) 여기서 먼저 생각되는 점은 예수님의 심오한 신앙과 영적 안목입니다. 지금 눈앞에는 대단히 힘든 십자가가 대기하고 있어, 이 시간만 지나면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시어 피땀 흘리시며 기도하시고, 새벽에는 체포되어 십자가를 져야 하는 어려운 형편입니다. 웬만하면, 십자가 외에는 그 어떤 일도 생각할 수 없는 가장 절박한 시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사건을 넘어서서 저 앞에 있는 영광스러운 승리를 바라보며 기도하고 계시니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의 이 모습을 닮아가야 하겠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현재 눈앞에 있는 일에만 골몰하여 "이제 죽게 되었사오니 어찌하오리까, 하필이면 이런 방법으로 내가 당해야 합니까" 하며 불신앙적인 말을 함부로 합니다. 나에게 불가능한 일이라고 해서 하나님께도 불가능한 일입니까? 나의 생각이 불행하다고 해서 하나님 보시기에도 불행하겠습니까? 육의 눈으로 보는 것과 영의 눈으로 보는 것은 관점이 서로 다릅니다. 내 사업이 망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사업에는 실패가 없습니다. 그래도 울며불며 기도하겠습니까? 눈물은 회개할 때만 흘려야지 기도할 때마다 울면 하나님도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네 믿음이 어디 있느냐고 책망을 듣게 될 것입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누구에게 무엇인가를 부탁할 때 의심하는 태도로 부탁하면, 쉬운 일도 어렵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선 믿고 감사하며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기도가 바로 이런 기도입니다. 십자가가 앞에 있지만 그 십자가를 넘어서서 더 앞의 것을 바라보는, 영적인 안목으로 기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제자들을 믿으셨다는 점입니다. 제자들은 이제 곧 예수님을 배반하고 흩어질 것인데, 그 사실을 아셨고 또한 예고까지 하시면서도, 그러나 그들이 다시 돌아올 것을 믿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만 믿은 것이 아니라 제자들도 믿었기에, 이들을 통해서 앞으로 구원받을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 안에서 사람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 없이 되는 일을 없습니다. 제자들은 질투심 때문에 서로의 발은 물론, 예수님의 발도 씻겨 드리지 못하고 그냥 식사에 임했지만, 예수께서 친히 그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이 때 베드로는 절대로 자기 발을 내놓지 않으려고 고집하다가, 예수님과 상관이 없다는 강경한 주님의 말씀 끝에 발을 내 놓습니다. 이런 제자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후에는 순교까지 할 것임을 예수님은 믿으셨습니다. 그래서, 이와 같이 기도할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제자들이 나가서 전도할 때, 그들의 말로 인하여 앞으로 예수를 믿을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지금 기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기도는 바로 우리를 위해서 주께서 미리 기도하신 것입니다. 저 멀리 앞을 내다보시며 아주 미래적인 일로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고 교회가 세워지고 구원받을 일들이 일어날 것을 예견하시고 그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신 위대한 주님의 신앙을 여기서 보게 됩니다.

이제 기도의 내용을 보겠습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17 : 21) 첫째로, 하나되게 해주시기를 기도하십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2천 년 동안 교회가 하나되지 못하고 분쟁 속에서 지나왔습니다. 분쟁이란 교회가 교회 되지 못할 때에 일어나는 하나의 부산물이며, 교회가 거룩하지 못함으로 있어지는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전도해야 할 교회가 전도하지 않는다든지, 진실해야 할 교회가 진실하지 못할 때에는 분쟁이 있기 마련입니다. 2천 년 전에 예수 님은 앞으로 믿게 될 모든 사람들이 하나되게 해주시라고 기도하신 것으로 보아, 하나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 깨닫게 됩니다. 첫째가 하나되는 역사입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이 말은 본질에서 하나요, 뜻에서 하나요, 사랑에서 하나요, 궁극적인 목적에서 하나요, 구체적으로는 순종과 복종과 십자가로 하나됨을 의미합니다. 하나되는 결정적인 이야기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예수님의 기도 속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되는 것은 그저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죽기까지 복종하는, 십자가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에서도 하나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하나되어야만 교회가 교회되며, 자기 본분을 다하는 것입니다. 분쟁 없이 하나이면 특별히 전도하지 않아도 교회는 부흥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해주십시오"라는 기도입니다.

"우리 안"이라는 말에서 포도나무 비유를 생각해 봅니다. 요한복음 15장에서 본 것처럼,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서 진액을 받아야 살 수 있듯이,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 붙어서 말씀을 받아야 살 수 있습니다. 밖으로 떨어지면 안 됩니다. 항상 말씀을 받아 순종해야 그리스도와 우리가 하나되는 것입니다.

세째는,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하는 기도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체적으로 나타났다고 하는 사실을 믿게 해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높은 하늘에서 편안하게 계시면서 사람들이 하나님께 올라오기를 기다리는 분이 아니라, 스스로 사람이 되시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들을 만나 주시고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오셔서 죄인을 사랑하고 구원하신다는 그 사실을 믿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지금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믿으면, 내가 아무리 죄인일찌라도 낙심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 사랑, 즉 아들을 보내어 십자가에 못박았다는 성육신의 사랑이 계시되었음을 사람들이 믿기를 간절히 원하시는 기도입니다. 십자가 사랑을 믿어야만 내가 십자가 안에서 출생되고 나의 나됨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네째는, 영광을 저희에게 주었습니다.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17:22) 이 말씀은 길게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다섯째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17 : 23) , 하나님께서 예수를 보내신 것과 사람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게 해주십사고 기도하셨습니다. 사랑을 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사랑을 해도 그 사랑을 깨닫지 못한다면 무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우리들을 사랑하신다는 것과 그 귀한 사랑을 사람들이 깨닫게 해주시라고 간절히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있습니까? 또한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거나, 하나님이 함께 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도록 행하고 있습니까? 구약성경에 보면 야곱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야곱이 삼촌댁에서 머물 때에 하나님은 야곱에게 복을 주사 그 집에까지 복을 주십니다. 물론 삼촌댁에 복을 준 것은 아닙니다. 얼마 후, 야곱이 그 집에서 나올 때에 삼촌이 중요한 말을 합니다.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고 너 때문에 우리 집에 복을 준 것을 내가 분명히 보았다." 얼마나 귀한 증언입니까? 가령, 예수를 잘 믿는 성도가 자기 직장에서 바르고 진실되게 생활할 때 동료들이 말하기를 "당신 때문에 우리 회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는 말을 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이러한 간증을 위해 주님은 지금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온 가족이 다 훌륭하지 못해도 어느 한 사람이 잘 믿으면 그 가정은 복을 받습니다.

필자가 언젠가 일본에서 성공한 장로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은 여러모로 성공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부러워서 성공의 비결을 묻습니다. 장로님의 대답은 한결같이 "나의 어머님의 믿음 덕분입니다"라고 어머님을 내세웠습니다. 장로님의 어머님은 배운 것도 없고 가난했지만 신앙이 좋아 예수님 동생이라는 별명을 가진 소문난 사람으로 목사님들께서도 설교 예화로 자주 언급할 정도로 훌륭한 신앙인이었다고 합니다. 장로님은 회상하시기를, 죄를 짓고 싶을 때마다 어머님만 생각하면 정신이 들었고, 어머님 때문에 하나님의 복을 받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일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정말 믿는 사람이기에 무엇인가 다르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이 느끼고 간증하도록 해야 합니다. 다니엘이 바벨론에서 살 때에 많은 왕들이 "하나님이 다니엘과 함께 하신다, 너희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다"라고 찬양하지 않았습니까? 바로 이렇게 되기를 원하셨기에, 세상 사람들이 알기를 기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섯째 기도는,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17:24)라고 구하고 있습니다. 이미 공부한 바 있는 15절에서 제자들을 위한 기도를 하실 때,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려 함이라", 주님 가시는 곳으로 데려가기 위함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는데, 여기서는 "나 있는 곳에 함께 있게 해주십시오"라고 구하고 계십니다. 또한 요한복음 14:3에서도 보면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서로 연관지어서 정리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다음, 잠깐 동안은 제자들이 세상에 있을 것인데 그 동안에는 악에 빠지지 않고 진리로 거룩하게 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잠깐 있게 하는 이유는, 개인적으로는 믿음이 성장하기 위해서이며, 또한 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그리고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에 종사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핍박도 받고 고생을 하며 순교도 하겠지만, 결국에는 주님 계신 곳에 함께 있게 하여 주옵소서 하는 종말론적인 기도입니다.

여러분, 우리들도 이 세상에 잠깐 머물면서 고생을 하겠지만, 마지막에는 주님의 기도가 응답되어 하나님 앞에 가서 주님과 함께 거하게 될 것입니다. "나와 함께 있게 해주옵소서" 주님의 종말적인 기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내게 주신 영광을 저희도 보게 하려 하심을 원하나이다"라고 귀한 기도를 하십니다. 얼마나 좋은 말씀입니까? 어린양 보좌에서 만백성 천국 천사와 이십 사 장로로부터 영광 받으시는 그리스도를 이 사람들이 구경하게 해달라는 내용입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어린양 보좌에 들리어 올려져서 주님과 함께 있을 뿐만 아니라 주님이 받으시는 영광을 구경도 하며 함께 누릴 것입니다. 그것을 위하여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이 기도가 반드시 응답될 것임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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