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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곽선희 목사 설교

분쟁하면 망하느니라(마가복음 3장 24절~26절)

by 【고동엽】 2024. 3. 19.
목차

분쟁하면 망하느니라(마가복음 32426)

 

또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고, 만 일 사단이 자기를 거스려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이에 망하느니라.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고. 만일 사단이 자기를 거스려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이에 망하느니라" -집이나 나라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마귀의 나라도 스스로 분쟁을 하면 망하고 만다고 하시는 예수님의 이 잠언말씀에는 먼저 살펴보아야 할 배경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내쫓으신 사건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이 나타난 사건이었습니다. 구원 사역의 일부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정신적인 병과 육체적인 병, 그리고 영적인 병을 다 하나로 보시고 계십니다. 서로가 유기적인 관계하에 일맥(一脈)으로 통하는 현상이라고 보셨습니다. 영성(靈性)문제, 정신 문제, 육체 문제 -좀더 학술적인 용어를 빌린다면 신학적인 문제와 철학적인 문제와 물질적인 문제가 일맥상통,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 차원은 건강해도 함께 건강하고 병들어도 함께 병듭니다.

그 중심은 두말할 것도 없이 영적인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의 질병을 보실 때에 언제나 그것을 단순히 육체적 생리적 현상으로만 보시는 것이 아니라 영적 차원에서 보셨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매우 심각한 문제를 제기합니다. 오늘도 우리가 건강을 유지함에 있어서, 몸에 온 질병을 생각함에 있어서. 이것을 단순하게 생리적인 현상으로만 간주하려 한다면 잘못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환자를 대하실 때에 언제나 그렇듯 근본적인 문제를 아울러 생각하시면서 역사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점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힘의 대결'입니다. 영성을 놓고 보아도 힘의 대결이 문제요, 육체적 생리적 현상을 놓고 보아도 그렇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모든 사람이 누구나 병균 속에서 삽니다. 병과 싸우면서 삽니다.

이는 상식에 속합니다. 병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누구나 병을 가지고 삽니다. 그런데 사람은 본디 이들 병을 이길 수 있는 저항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충분한 저항력이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한다면, 충분히 건강한 것입니다. 그래서 추위도 이기고 더위도 이깁니다. 병도 이기고 병균도 이깁니다. 다시 말하면 그런 것에 충분히 저항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어느 때에 어쩌다 저항력이 약해지고 보면 이제는 지는 것입니다. 힘의 대결에서 열세가 되고 보면 패배하고 마는 것입니다. 덮쳐들면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하찮은 생채기 하나가 생겨도 그렇지 않습니까? 건강할 때에는 웬만큼 찢어지고 피가 나도 그냥 내버려두면 절로 아물어버립니다. 굳이 약을 바른다 싸맨다 하지 않아도 말입니다. 그러나 몸이 부실한 사람은 생채기 하나가 생겨도 잘 낫지를 않습니다. 건강한 사람이면 하룻밤만 자고 나도 나아버릴 것을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좋이 고생을 하는 것입니다. 잘 곪습니다. 생채기 하나에도 잘 곪는 사람, 시원치 않은 사람입니다. 대결할 힘이 약한 것입니다. 주어진 저항력이 약해 있는 것입니다.

내 몸이 건강하다는 것은 병마와의 싸움에서 내 몸의 힘(저항력)이 병마의 힘을 이기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렇게 이기는 상태를 유지해나가면 늘 건강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길만한 힘을 잃어서 자꾸만 뒤로 물러서면 약해지고 병들고 썩어지고 죽음에 이르는 것입니다. 사람의 정신도 꼭 이와 같습니다. 아니, 더욱 그러합니다. 늘 힘의 대결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영적으로도 우리는 언제나 어두움의 힘과 싸우는 상태에 있습니다. 악령과 싸우는 것입니다. 잊지 말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끊임없는 싸움입니다. 끝나지 않는 싸움입니다. 오늘의 잠언은 그래서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 싸움에서 예수님은 요샛말로 '수퍼스타'입니다. 영성에서 강건하신 분입니다. 그가 나타나셨다 하면 악령, 잡귀들이 견뎌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이쿠" 소리지르고 나가버립니다. 나가떨어지고 무릎을 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만큼 영적으로 강건하십니다. 절대적으로 강건하십니다. 주검을 보시고도 일어나라 하시면 썩은 주검도 속절없이 벌떡 일어납니다. 그토록 강건하십니다. 힘의 대결에서 무적(無敵)인 것입니다. 생명의 능력이 넘쳐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 어떤 힘보다도 상대적으로 절대적으로 강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악한 마귀를 내쫓으시는 것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의 능력의 계시요,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의 계시요, 하나님나라의 임함이라고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12 : 28) -하나님의 나라가 들어오고 마귀의 나라가 쫓겨납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행사됨입니다. 악령의 주권이 밀려남입니다. 오늘의 잠언말씀은 이 같은 힘의 대회전(大會戰 : Power encounter)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의 확립이요 확장입니다. 하나님나라의 확장을 말씀하심입니다.

여기 한 귀신들린 사람이 있어 예수님께서 귀신더러 나가라고 일갈하시니 귀신이 나가버립니다. 이렇듯 귀한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리스도의 왕권이, 그리스도의 영권(靈權)이 행사되었습니다. 메시야의 권세가 나타났습니다. 영적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습니다. 이런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놀라운 사건 앞에서 사람들의 마음이 감동되었습니다. , 하나님의 역사다, 메시야의 나라가 여기 이루어지고 있다. 왕권이 행사되고 있다, 하나님께 할렐루야 -이렇게 영광을 돌리는 순간에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서기관들이 재를 뿌립니다. "저가 바알세불을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22)" -더 강한 마귀를 힘입어서 더 악한 마귀를 내쫓은 것이라고 강변해서 사태를 뒤집으려고 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마귀끼리 싸우는 것이 아니냐, 마귀가 마귀보고 나가라 하는 것이라면 마귀가 저들끼리 싸우는 것이 아니냐, 분쟁하면 무너지느니라 --"사단이 자기를 거스려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이에 망하느니라." 저들은 그야말로 억지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저들 스스로가 혼란에 빠진 것입니다. 악마가 선을 행하는 법이 없습니다. 악마는 맑은 정신 가진 사람을 흐리게 만들지 흐린 정신 가진 사람이나 제정신 잃은 사람을 맑게 똑똑하게 만드는 법이 없지 않습니까? 중요한 것은 저 서기관들이 지금 선악을 전도하고 있기 때문에 회개할 기회를 스스로 버렸다는 것입니다. 억지를 부리는 동안에는 회개가 불가능한 법입니다. 철저하게 악마적인 체질이라 하겠습니다. 습관적으로 사물을 왜곡하는 사람들입니다. 곧은 것도 비뚤게만 보는 사람들입니다. 바르게 볼 생각이 아예 없는 사람들입니다. 깨끗한 마음으로 이해하는 법이 없습니다. 뒤집어놓기를 즐깁니다. 체질적으로 철저하게 악한 자들입니다. 본질적으로 악한 자들입니다. 경험하는 것, 생각하는 것, 느끼는 것이 모조리 부정적입니다. 만사를 부정적으로 보기 버릇하는 사람은 결국 하나도 긍정적으로 보는 법이 없습니다. 체질적인 병이지요.

그리하여 저들은 마침내 예수님께서 행하신 그 엄청나고 귀한 역사마저 악마의 역사로 왜곡해놓는 것입니다. 바로 그 순간에 예수님께서는 그 시각, 그 사건을 계기로 해서 또 다른 진리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분쟁하면 망한다고.

분쟁하면 내가 망하고, 분쟁하면 집이 망하고, 분쟁하면 나라가 망하고, 심지어 분쟁하면 사단의 나라도 망한다 세상에 싸움이 있다고 하는 세계관을 기초로 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세상에 싸움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시고 계십니다. 선과 악의 싸움이 있습니다. 빛과 어두움의 싸움이 있습니다. 의와 불의의 싸움이 있습니다. 진리와 거짓의 싸움이 있습니다. 분명히 싸움이 있습니다. 싸움의 긴장관계가 상존 합니다. 우리의 건강도, 우리의 행복도, 우리의 모든 삶이 싸움의 긴장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힘의 대결입니다. 힘의 대결인 이상 부득이 강해야 합니다.

강해야만 살아남습니다. 약하면 죽습니다. 육체적으로도 강해야 하고 정신적으로도 강해야 합니다. 정치적으로도 강해야 하고 경제적으로도 강해야 합니다.

작년에 동 유럽쪽을 여행하면서 헝가리며 체코슬로바키아며 모스크바 등지를 죽 둘러본 적이 있습니다. 그 때에 느낀 것이 있습니다. 저는 본디부터가 돈버는 사람도 아니고 돈과 함께 살아온 사람도 아닙니다.

어디를 가나 그저 목사된 입장에서나 교수된 입장에서 환영을 받곤 합니다마는 희귀하게도 이번 여행에서는 돈 많은 사람으로 대접받는 체험을 가졌습니다. 그쪽이 워낙 가난하고 어렵다보니 제가 '돈 많은 한국사람'쯤으로 여겨진 것입니다. 가는 곳마다 그렇게 대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가만히 보니까 그쪽의 물가라는 것이 한국 돈으로 치면 꽤 싼 편인지라 씀씀이가 힘겹지 않습디다. 이래저래 자연히 돈푼이나 쓰는 사람으로 행세해보는 체험을 난생처음으로 가져보았던 것입니다. 택시 한 대를 하루종일 고용해서 타고 다녀본 적도 있습니다. 새삼 돈의 세력이라는 것이 참 대단하구나 싶었습니다.

모름지기 우리는 모든 면에서 강하고 보아야 합니다. 정신력도 강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가장 강해야 될 것은 영성(靈性)입니다. 이것이 약하면 안됩니다. 그러면 영성이 강해야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사도 바울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사랑 안에서 내가 넉넉히 이기는 것입니다. 그는 에베소서 4장에서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속에서 강해지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속 사람을 강건하게 하는 길은 믿음에 있습니다. 성령과 사랑에 대한 확신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자신이 있는 사람은 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영성이 강해지는 것입니다. 영성이 약하게 되면 이 어려운 세상, 악령의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강하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강함입니다. 그리스도의 강함입니다. 하나님만이 강자이십니다. 그리스도만이 강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편에 서면 강해집니다. 저는 텔레비전을 통하여 운동경기를 볼 때가 많습니다. 이를테면 권투시합을 구경할 때면 언제나 마음을 이기는 편에 두고 봅니다. 지고 있는 편을 응원할 것이 아니라 이기고 있는 편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보고 있으면 편합니다. 지고 있는 편을 응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보면 마음도 아프고 피곤해집니다. 이긴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국제경기를 할 때에 보면 우리나라 선수가 이길 때에는 그 선수를 응원하던 사람들은 다같이 눈물을 흘리며 기뻐합니다. 만세를 부르고 좋아합니다. 결국 어느 편에 섰느냐가 문제입니다. 이기는 편에 서면 이기는 것입니다. 편을 짜서 무슨 게임을 할 때에도 다행히 이기는 편에 들어 있으면 이기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면 이길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기시니까요.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승리하시니까요. 그러므로 그 편에서면 승리는 내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승리를 나의 승리로 동일시(identify)하면 됩니다. 동일시하는 그 순간에 나는 이기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 있고, 진리 안에 있고, 하나님 안에 있는 한 승리는 내 것으로 보장되는 것입니다. 당연히 내가 강해집니다. 성도로서 가장 강한 성도를 꼽으라면 단연 스데반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돌에 맞아 죽습니다. 순교하는 지극한 고통 가운데서도 그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고 합니다. 그토록 마음이 평안했다는 반증입니다.

더욱이 자기를 죽이는 사람들을 위하여 그는 기도합니다. 그들을 사랑합니다. 용서합니다. 변함없이 천사와 같은 얼굴을 하고 주님 앞에 갑니다. 이긴 것입니다. 그지없이 강한 사람입니다.

본문을 다시 보십시다. 강할 수 있는 길이 분쟁하지 않는 데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분쟁하면 망합니다. 강자 되는 길은 하나되는 데 있습니다. 믿고 사랑하고 하나님과 하나되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내 속에서 분쟁하면 안됩니다. 내 속에서 뭉쳐야 하고 연합해야 하고 일치해야 합니다. 분쟁하면 이미 그 자체로 약해집니다. 그래서 외적(外敵)을 이길 수가 없게 됩니다. 사람 사이에도 분쟁이 없어야 합니다. 서로 분쟁을 하다보면 상대의 장점은 보이지 않고 단점만 보입니다. 한 몸인 부부간에도 일단 싸움이 붙었다 하면 못된 것만 들춥니다. 십년 전 이십 년 전의 일까지 들추어 삿대질합니다. 나쁜 점만 자꾸 노출되고 좋은 점은 간데온데없어집니다. 이리하여 결국은 약해집니다. 비겁해지고 비열해지고 천해집니다. 그 인격이 말이 아니게 됩니다. 두 사람 다 비참해지고 약해집니다. 어떤 시험이 오더라도 이길 수가 없게 됩니다. 분쟁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마귀도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귀가 마귀보고 나가라고 하겠느냐, 어떻게 돼서 마귀가 마귀를 내쫓았다고 생각하느냐 하십니다. 귀신은 하나님께서 내쫓으신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심입니다.

우리는 오늘의 말씀에서 문면에 나타나지 않은 behind truth(숨은 진리)를 발견해야 합니다. 진리 뒤에 있는 진리가 있는 것입니다. 성도가 서로 분쟁하면 약해지고 망한다고 하는, 마귀를 이기지 못한다고 하는 진리입니다. 교회가 서로 분쟁하면 세상을 이기지 못합니다. 분쟁하느라고 마음쓰는 동안에 아무 일도 못합니다.

언젠가 어느 도시에 집회를 인도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그곳 목사님들이 모여 의논하는 가운데 아주 슬픈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서울에는 교인이 주민의 몇 퍼센트쯤 되느냐고 묻기에 25에서 40퍼센트쯤 되는데 우리 강남구는 제일 교인이 많은 구역이라 한 40퍼센트 된다고 했더니 깜짝들 놀라요. 그곳은 겨우 5퍼센트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인근의 다른 도시들만 해도 10에서 20퍼센트는 넘는데 유독 그곳만 그렇게 적다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까닭인즉 분쟁 때문이었습니다.

교파가 갈라지고 할 때부터 20여 년을 두고 분쟁을 하는데, 이를테면 한 건물에서도 1층에 교회가 있고 2층에도 따로 교회가 있어 1층에서 설교할 때 2층에서는 찬송 부르고, 2층에서 설교할 때는 1층에서 찬송 부르고 하는 형국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분쟁으로 해서 교인이 그 정도밖에 안 된다는 슬픈 이야기였습니다. 잊지 말 것입니다. 분쟁하면 망합니다.

가정도 분쟁하면 망하고 성도끼리도 분쟁하면 다 망합니다. 분쟁하면 약해지고, 약해지기 때문에 망하는 것입니다. 시험을 이길 수가 없어집니다. 모르는 사이에 악령의 사자(使者)가 되어버립니다. 마귀의 제자가 되고 맙니다. 마귀의 제자가 따로 있던가요? 가룟 유다도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베드로가 그 유명한 신앙고백을 하고 예수님께 칭찬을 받은 다음에도 주님의 십자가를 만류할 때에 주님께서 베드로를 보시고 꾸짖지 않으십니까? "사단아 물러가라"라고.

누구든 약해지고 비굴해지고 분쟁이 생길 때에 마귀가 들 수 있습니다. 성도가 분쟁하면 마귀를 이기지 못합니다. 교회가 분쟁하면 바로 서지를 못하고 망합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합니다. 보십시오. 부흥되지 않는 교회마다 분쟁이 있습니다. 밖에서는 보이지 않아도 무슨 일인지 많은 분쟁이 있는 것입니다. 일사불란하게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언젠가 한경직 목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았습니다. "교회는 그저 부흥하게 되어 있습니다. 분쟁만 하지 않으면 부흥합니다. 서로 분란만 일으키지 않으면 부흥하게 마련입니다.

보이지 않게든 보이게든 속에서 자꾸 싸우고 있으니까 안 되는 거지 하나가 되기만 하면 부흥하게 되어 있는 거요."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하나가 되지 못하면 마귀를 이기지 못한다. 스스로 분쟁하면 망한다고. 이것은 추상적인 이론이 아닙니다.

형이상학적으로 구구하게 말씀하심이 아닙니다. 실제적인 말씀입니다.

우리는 실생활에서 항상 마귀와 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하나님을 믿어서 강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면서 강하고,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강하고, 우리들 서로가 하나됨으로써 강합니다. 나 자신의 내부에도 갈등이 있으면 내가 망합니다. 시험을 이겨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럴까 저럴까, 저럴까 이럴까 마음속에 싸움이 있다면 한시바삐 정리하고 말 것입니다. 흔히들 고민거리가 있으면 잠도 못 자고 괴로워합니다. 저는 이런 분들에게 충고합니다. 몇월 며칠까지만 고민하기로 정해놓고 그 때까지만 고민하고 말아버리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필요한 일입니다. 철학이라는 것이 딴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판단중지'하는 것도 철학입니다. 판단이라는 것은 워낙 끝이 안 나는 법입니다. 이쪽을 생각하니 이게 옳고 저쪽을 생각하니 저게 옳고, 이럴까 저럴까, 저 사람하고 할까 말까, 인물로 보아서는 이 사람이 좋고, 성격으로 보아서는 저 사람이 좋고, 믿음을 생각하면 저 사람이 좋고, 돈을 생각하면 이 사람이 좋고 -처녀가 이렇게 왔다 갔다 하다가는 노처녀 되고 맙니다.

판단중지가 필요한 것입니다.

내 마음속에 갈등, 분쟁이 없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단의 시험도 이기고 유혹도 뿌리칠 수 있도록 강해집니다. 죄도 이길 수 있습니다.

마음속에 분쟁이 있는 사람은 자꾸 움츠러들고 비굴해지고, 마침내는 하찮은 시험만 와도 벌렁 넘어집니다. 잊지 말 것입니다. 강하라, 그래야 이기느니라. 분쟁이 없어야 강해지느니라, 그래야 세상을 이기느니라, 믿음에 굳게 섬으로 강자가 되라, 그래서 악령의 세력을 눌러 승리하라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승자에게만 영광은 보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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