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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기독교적 성찰 - 죽음의 기술

by 【고동엽】 2022.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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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wvTFHtN92rQ&feature=youtu.be

◈죽음에 대한 기독교적 성찰 - 죽음의 기술               롬8:11, 고전15:55                출처

인생에서 가장 확실한 진실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나도 죽는다는 진실입니다.
죽음은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많은 죽음을 보고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죽는 사람들, 한강 다리에서 투신해서 죽는 사람들,
새벽에 마라톤을 뛰다가 음주 차량에 치여 죽는 사람들,
병원에서 온갖 생명 연장 기구를 몸에 단 채 결국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정치사에서 노무현, 노회찬, 정두언 등
유명 정치인들의 죽음이 잇다르고 있습니다.

이런 분들의 죽음을 통해, '죽음'이란 주제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죽음에도 방식이 있습니다.
죽음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살아온 방식대로 죽는다고 말합니다.

결국 죽지만, 잘 죽는 것이 중요합니다.
잘 죽는 문제는, 사실상 잘 사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잘 살기 위해서는 죽음을 제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죽음을 다시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특히 교회는 '죽음의 기술'을 회복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잘 죽고, 잘 애도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죽음을 묵상하는 일은 기독교 역사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전통이었습니다.
중세 시대부터 기독교에서는 아르스 모리엔디 Ars Moriendi 
즉 '죽음의 기술'이라는 용어가 있었습니다. 

죽음에 관한 실제적인 메뉴얼이기도 합니다.
죽더라도 잘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좋은 죽음'이라는 전통이 있습니다.
좋은 죽음이란, 영생을 바라는 소망을 신실하게 표현하려 애쓰는 것입니다.

과거의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즉 영생의 모든 것이 걸린 사건으로 인식했습니다.

중세 그리스도인들은 일찍부터 자신의 죽음을 자주 묵상해야만 했습니다.
당시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흑사병 등 갑작스레 질병으로 죽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생을 '죽음을 대비하는 과정'이라고 여겼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일은 모든 사람의 의무였습니다.

흑사병으로 또 사람이 죽어나갔다는 장례의 종소리가 유럽 전역을 휩쓸 무렵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이 공적 사건이요, 교회에 주는 교훈 임을 매순간 기억했습니다.

그들에게 죽음의 순간에 대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마음속으로 죽음을 통과해 보고,
기대감으로 그 모든 과정을 견뎌 봄으로써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의 구원하시는 은혜를
믿는 신자가 된다는 확신 가운데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마음의 준비가 아르스 모리엔디(죽음의 기술) 라는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주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의죽음은
신앙이 없는 사람들의 죽음과는 달라야 한다는 점을 확실히 인식했습니다.

▲이 땅의 삶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영원한 삶의 서곡에 불과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우리의 영화된 몸과 재결합 할 것입니다.

우리는 다 함께 영원토록 하나님을 예배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삶이 종착역을 향해 가는 순간에도, 우리는 소망과 평안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에 대해 매우 특별한 본보기를 제공하며
모든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종말에 우리 몸이 부활하리라는 소망을 줍니다.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의 생명을 온전히 누린다면
이 땅에서 우리는 삶에 대해 전혀 다른 관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죽음과 관련해 우리에게는 주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라는
결정적 본보기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분은 여느 평범한 인간처럼 죽음을 앞두고 괴로워하셨지만
기꺼이 그 길을 가셨습니다.

그 분은 돌아가시는 순간에도 가족과 이땅에서 그들의 필요를 잊지 않고
제자들에게 자기 어머니를 부탁하셨습니다.

그분은 자기 영혼을 포기하고 기꺼이 적극적으로 죽음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죽음은 악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보고 우셨으며
사도바울은 죽음을 가리켜 '마지막 원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으로 들어가는 문이기에 축복이기도 합니다. 

생애 마지막은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죽음은 악인 동시에 축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죽음을 피하고 외면하고 싶어하기에 
죽음을 직시하고 죽음을 이기신 하나님께만 소망이 있음을 계속해서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회는 무엇보다도 죽은 자의 부활을 믿는 공동체입니다 

먼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어서 그분을 믿는 자들이 부활하며 
온 세상이 재창조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우리 믿음을 드러내야 할 중요한 영역이 있다면 
바로 죽음을 실천하는 방식일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모든 사람은 죽습니다. 
대부분 나이 들어 죽겠지만 꼭 그러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성경은 미리부터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날을 계수하는 법을 아는 자는 지혜롭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안에서 
소망과 신뢰 가운데 십자가와 빈 무덤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도 마지막 날에 몸으로 부활할 것을 바라고 믿습니다. 
성경은 "그가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롬8:11


▲죽음을 떠올리면, 우리의 우선 순위에 마음을 모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산 사람은 자연스레 제대로 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제대로 된 크리스천의 삶을 산 사람들은 
급작스런 죽음이든, 서서히 진행되는 죽음이든 
평안과 소망가운데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임종은, 죽음을 십자가의 길로써 실천할 수 있는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일본의 소설가 미우라 아야코 처럼 "죽음은 내게 주어진 최후의 사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시리아의 성 이삭 이라는 분이 했다는 이 말을 음미하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죽음을 마음으로 준비하십시오. 
현명한 사람이라면 매 시간 자신의 죽음을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다가 죽음의 시간이 이르면 이렇게 말하면서 기쁘게 죽음을 맞이하십시오. 
'평안히 오라! 네가 올 줄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이 여정에서 나를 도와줄 만한 것은 하나도 소홀히 한 것이 없노라!" 

부디 이 땅에 죽음의 문화, 죽음의 영이 사라지고 생명의 영이 가득차기 소망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죽음아 네 승리는 어디 갔느냐, 죽음아 네 독침은 어디 있느냐?' 는 성경말씀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vTFHtN92rQ&feature=youtu.be

 

 

출처 : https://rfcdrfcd.tistory.com/15978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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