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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무엇인가? 시116:15

by 【고동엽】 2022.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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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ww.youtube.com/watch?v=oz8wkMb4yjE

 

◈죽음이란 무엇인가?            시116:15            설교 녹취

 

임종을 앞 둔 분에게, 아래 설교문을 곁에서 계속 읽어주시면 효과 있습니다.

하루에 한 번씩 며칠 반복적으로 학습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 분이 담대해 질 것입니다.

 

 

 

◑1.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에 관해서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아는’ 사람은 없다.

종교가, 철학자, 문학가들이 죽음에 대해서 말을 하지만.. 그것은 견해에 불과하다.

확실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아신다.

 

동양의 현자 공자는, ‘죽음이 무엇입니까?’라는 제자들의 질문을 받았을 때,

‘사는 것도 다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논할 수 있겠느냐?’고 대답했다고 한다.

 

오늘날 현대과학의 발달로, 약과 의술로, 인간 생명의 연장을 꿈꾸고 있다.

아무리 유전자 지도를 완성하고, 장기를 새 것으로 만약 대치할 수 있다 하더라도

사람은 죽게 되어있다.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갑자기 맞이하게 되는 죽음

TV등을 통해서 유명 인사들의 죽음을 보고, 전해 듣는다.

그러다가 친지들, 친구들의 죽음을 접한다.

가까운 가족들의 죽음은 누구에게나 중대한 심적인 타격을 준다.

 

그러다가 어느 날 자기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준비해야 할 때가 온다.

이것이 인생이다.

 

대부분 세상 사람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싫고 무서운 것이다.

죽음은 미지의 세계이다.

죽음이 끝인지, 그 후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죽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이,

어느 날 순간적으로 갑작스럽게 맞게 되는 것이 죽음이다.

 

교회를 다닌 성도가,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해서 쩔쩔 매거나 당황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일평생 ‘영광스런 죽음과 영생’을 준비하며, 사모하며 살아야 한다.

 

 

◑2. 성도의 죽음

 

▲1. 하나님은, 성도의 죽음을 귀중히 보신다.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 시116:15

  

그러므로 성도의 죽음은, 허망한 것이 아니다.

안타깝고 슬픈 것이 아니다.

 

장례가 나면, 주위 사람들이 고인을 기리며 화환을 보내고 하는데,

그렇게 고인을 기리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이

하나님은, 성도의 죽음을 귀중히 봐 주신다 

 

땅에서 모든 사명을 마친 십자가의 군병이, 천국으로 귀환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땅에서 모든 마라톤 경주를 마친 선수가, 결승선을 넘은 날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함께 천국의 수많은 앞서간 성도들이, 그렇게 ‘죽음’을 존중해 줄 것이다.

 

그러므로 영생을 가진 성도는,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기대되고 기다려진다.

성도들은 언제든지 죽을 준비, 즉 주님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2. 성도의 죽음은..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고후5:8

 

우리가 확신에 차서confident, 원하는 것은willing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고 바울은 말했다.

 

내가 천국에 갔는데,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도 않고,

천국 시민들이 모두 자기 일에 바빠서 분주하다면

무슨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간혹 한국인이 미국 친척집을 방문하면,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될 수도 있다. 

아침에 모든 식구들이 자기 직장 가 버리고,

자기는 집을 지켜야 하는 신세!

 

천국은 그렇지 않다. 주와 함께 있게 된다.

우리가 일평생 사모했던 내 주님, 내 선한 목자, 내 친구, 나의 동행자

그 분과 이제는 정말 가까이 함께 있게 된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 동안에도, ‘주와 함께 있는 것’을 늘 사모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니까 성도는, 억지로, 마지못해 세상을 떠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주님을 사모하므로, 주님과 함께 있고 싶어서, 천국 가기를 사모한다.

 

바울은 ‘주와 함께 있는 것’을 더 원했다.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빌1:23~24

 

▲3. 성도의 죽음은.. 장막 집에서 → 영원한 집으로 이사 가는 것이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몸)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고후5:1

장막 집에서 → 영원한 집으로 이사 가는 것이다.

 

낡은 집에서 → 새 집으로, 이사 간다.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고후5:2

 

우리 몸은 젊어서 건강하고 아름다운 것 같지만,

죄의 몸, 천한vile 몸, 쉽게 늙고, 병들고 상하는 몸이다.

천국에 갈 때, 우리 몸은... 새로운 몸으로 덧입게 되는 것이다.

 

▲4. 사망이 생명에게 삼킨바 된다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고후5:4

 

성도의 죽음은, 끝장이 아니라 생명에게 삼킨바 되는 것이다.

 

죽음은 잃는 것이 아니라, 얻는 것이다.

몸을 잃었다 하지만... 더 좋은 몸이 기다리고 있다.

생명을 잃었다 하지만... 영원한 생명이 기다리고 있다.

땅의 집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하늘에 거처가 마련되어 있다.

 

죽음을.. 세상 사람들은 ‘잃어버리는 것’으로 이해하지만

성도는 죽음을.. 모두 새롭게 되찾는/덧입는 것으로 이해한다.

 

 

◐3. 죽음의 유익

 

▲1. 죽음은 완전한 치유다

오래 동안 질병으로 고생하는 성도가 있다.

가족과 교우들이 아무리 간절히 기도해도, 질병이 낫기는커녕 도리어 심해지다가

마침내 죽는 경우가 허다하다. 간절히 기도했는데도 말이다.

 

제가 아는 어떤 분도, 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처음에는 새벽기도도 다니면서 ‘나을 수도 있겠지, 낫겠지’ 하는 희망을 갖는다.

 

그런데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통계수치가 자기에게 적용됨을 느끼게 된다.

자기가 예외가 아님을 느끼고, 남들 가는 길로 가게 됨을 발견한다.

처음에는 ‘나을 수 있겠지’ 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기도했지만,

시간이 점점 흘러가면서, 통계 수치에 드러난 것처럼, 자기도 그 길로 가고 있었다.

 

그 때는 ‘내 기도가 약한 가, 내 믿음이 약한가?’ 하며 별 생각이 다 든다.

‘누구는 기적적으로 낫는다던데, 왜 나는 안 낫는가?’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한다.

통계적으로, 아무리 기도해도 질병이 낫지 않고, 결국 죽게 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 때 그의 가족 및 주위 사람들은 너무 안타깝겠지만

성도들은 이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죽음은 완전한 치유라는 것을!>

 

암의 가장 완전한 치유는 ‘죽는 것’이다.

죽음은.. 암을 포함한 모든 육신의 질병의 가장 완전하고 완벽한 치유이다.

 

▲2. 죽음은.. 육신의 사슬에서 해방이다.

많은 성도들이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질병과 ‘사망의 권세에 포로’가 되어있는 것을 자주 본다.

사망에게서 해방된 자들이, 여전히 ‘사망에 종노릇’하는 것을 보게 된다.

 

사망을 이기신 권세를 가지신 주님의 자녀이면서도

여전히 사망을 두려워한다.

 

여러분, 사망은 존재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존재 양식이 달라지는 것이다.

삶의 방식이 달라지는 것이다.

삶의 거처가 옮겨지는, 이사 가는 것이다.

 

땅에서는 영적으로 눈에 안 보이게 주님과 함께 있었지만,

하늘에서는 진짜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주님과 함께 있을 것이다.

 

성도의 죽음은

성도의 영혼을, 육신이라는 사슬에서 풀어주는 해방이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죽음을

어떤 형벌로 보시지 않고, 영적인 진보로 보신다.

 

▲3. 죽음으로 완성된다.

주님도 죽으심으로써 모든 것을 완성하셨다. “다 이루었다!”

사도바울은 죽음으로 자기 달려갈 길을 마쳤다.

 

 

◐4. 적용

 

▲1. 죽음의 위기를 한 번 겪은 사람은, 삶의 가치관이 완전히 바뀐 것을 본다.

사람이 완전히 성숙되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죽음’이라는 것이, 무조건 안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죽음’을 생각하며, ‘죽음’을 앞두고 사는 인생은

보다 삶을 보람되고 성실하게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삶의 가치관이 확 달라진다. 아무렇게나 살지 않는다.

 

그러므로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상가집에 가는 것이 더 지혜롭다.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전7:1~2

 

 

▲2. 지혜로운 성도는 <예비 된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우리는 ‘어리석은 부자처럼’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해서는 안 된다.

 

▲3. 소망 없는 자처럼 슬퍼하면 안 된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살전4:13

 

바울은, 성도가 죽음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식을 가지라는 것이다.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살전4:13

 

 

 

◑5. 성경이 말하는 ‘육신의 죽음’

 

성경은 죽음이 무엇인지 상세하게 알려준다.

성경은 죽음의 원인, 실체, 더 나아가서 그것의 극복방법까지 알려 준다.

죽음이 누구에게 정복되었는지 가르쳐 주며, 죽음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준다.

 

▲1. 사망과 지옥도 불못에 던져지더라   계20:14

이것이 바로 ‘죽음의 종말’이다. 죽음도 죽어 없어지는 날이 있다는 것이다.

 

사망은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멸망 받는다.

마지막으로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입니다. 고전15:26

 

그래서 성도는 ‘죽음에 대해 승리’를 선포한다.

성도는 ‘죽음의 죽음(최후 종말)’까지 알고 있다.

 

우리는 사망이 생명을 삼키는 이 시대에 살고 있지만,

장차 생명이 사망을 삼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늙고, 병들고, 약하고, 죽는다.

예수 믿는다고 안 늙고, 병 안 드는 것이 아니다.

믿는 사람이나/안 믿는 사람이나.. 똑같이 늙고, 병들고, 약해지고 죽는다.

그러나 성도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죽음’은 지금 살아서 활동하고 있는 듯 하나, 이미 십자가에서 패했고,

장차 최후 멸망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2. 죄로 인해 사망이 들어왔다.

세상에 사망, 죽음이 들어오게 된 것은 아담의 범죄를 통해서 였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롬5:12

 

▲3. 죄의 삯, 죄의 치르는 대가는 사망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롬6:23

 

야고보 사도도,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다고 했다. 약1:15

and sin, when it is finished, bringeth forth death

‘킹 제임스 성경’은 약1:15절을 ‘죄의 결과finish는 사망’이라고 번역했다.

 

▲4. 사망의 쏘는 것은 죄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고전15: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the sting of death is sin

- 사망이 독침을 쏘는 것이 ‘죄’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성경은, 사망을 마귀의 일종으로, 어떤 인격체로 본다.)

 

죄를 한 번 지을 때마다, ‘사망’으로부터 독침 한방씩 맞는 것이다.

물론 많이 맞을수록 치사량이 늘어갈 것이다.

 

여러분, 벌에 쏘여 보신 적 있으신가?

한 번 침sting에 쏘이면, 독이 그 주위에 확 퍼지면서 약간 부어오른다.

사망의 쏘는 독침이 죄다.

그러다가 그 죄의 독이 전신에 퍼지면... 그것이 바로 죽음이다.

 

▲5, 죽음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다.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한 일이요, 그 뒤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히6:9

 

▲6. 예수님은 육신의 죽음을 통해, 죽음의 세력을 가진 자 마귀를 멸하셨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히2:14

 

마귀는 죽음을 가져다주는 권세를 가진 자이다.

그러나 육신을 가지신 예수님을 ‘죽이지 못했다’

왜냐면 육신을 가지신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육신을 가진 우리도, 죽음을 이길 수 있는 문을 열어놓으신 것이다.

 

<09년 2월, 인터넷 설교 녹취, 정리          

 

출처 :  https://rfcdrfcd.tistory.com/1597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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