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4:12-16
예수께서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 가셨다가…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일렀으되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마 4:12-16
저는 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는 일이 많기 때문에 여름의 긴긴 해도 짧아서 해가 더 길었으면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죄인에게는 밤이 좋습니다. 밤은 어둡기 때문에 범죄하기 좋고 그들은 피곤한 인생이므로 밤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밤이 없는 세계가 올 것입니다. 지옥은 밤이 없습니다. 천국도 밤이 없습니다. 계시록 21:23에서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고 했고, 21:25에는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고 했습니다. 앞으로는 밤이 없는 세계가 옵니다.
지척을 분간하지 못할 때 어디서 호롱불이라도 비치면 얼마나 밝습니까? 옛날에 전기불 없이 살 때는 등잔불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촛불만 켜도 환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촛불을 켜도 불을 켰는지 껐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답답합니다. 그만큼 밝은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각할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세상은 밝아졌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태양 빛으로 만족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몇십 층 건물을 보면 대낮인데도 불을 켜고 있는 곳이 많습니다. 과거의 학생들보다 요즘의 학생들은 놀라울 정도로 실력이 향상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지능지수가 높아졌겠지만 현대는 여러 면에서 밝아졌기 때문입니다.
세상 일에 밝아진 자들을 성경에 보면 영에 속한 자보다 육에 속한 자, 약속의 자녀보다 육신의 자녀, 즉 가인 계통이 셋의 아벨 계통보다도 지혜로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육축치는 자의 조상인 야발이나 (창 4:20), 악기의 조상인 유발(4:21)이나 각양 날카로운 기계의 조상인 두발가인(4:22)도 모두 가인의 계통이었습니다.
오늘도 보면 세상의 지혜로운 자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자들은 항상 그 사람들에게 속고 어리석은 취급을 받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는 그리스도의 연고로 미련하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되…”(고전 4:10)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처럼 세상은 밝아졌습니다.
둘째, 죄악으로 밝아진 세상
요즈음 세상은 너무나 죄악으로 밝아졌습니다. 한창 공부해야 할 10대들을 보아도 돈에 맑아지고 퇴폐 풍조에 밝아져서 10대의 범죄가 무섭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과거엔 죄악을 저질러도 숨어서 했는데 요즘은 버젓이 드러내 놓고 합니다. 그만큼 사람의 마음이 완악해지고 뻔뻔해진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밝은 눈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더 밝게 해주겠다고 유혹하여(창 3:5)선악과를 따먹게 했습니다. 이들이 그 과일을 따먹고 난 후에는 눈이 밝아져서 자기들의 몸이 멋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가렸다고 했습니다. 눈이 밝아졌는데 왜 가렸을까요? 눈은 맑아졌으나 잘못 밝아진 것입니다. 왜냐하면 창세기 3:8 이하를 보면 하나님께서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다가 아담을 불렀는데 이들이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로 숨었다고 했습니다. 눈이 밝아졌는데 왜 숨었을까요? 눈이 밝아지면 기분이 상쾌하고 좋아져야지 왜 숨었으며 왜 두려워했을까요? 죄악의 눈이 밝아졌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눈 밝아진 사람들을 보십시오. 오히려 현실에 눈이 어둡다는 사람들은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우나 죄악에 눈이 밝아진 사람들은 불안하고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서 기적적으로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고 아이 성을 점령했을 때 엉뚱한 것에 눈이 밝은 아간이란 자가 있었습니다. 이 아간은 아이 성이 무너질 때 그곳의 금덩이에 눈이 어두워져서 그것을 장막 안에 숨겼습니다. 이것을 아신 하나님은 부정하게 물건을 숨긴 자를 찾아 내라고 하여 아간과 아간의 가족이 전멸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수 7:24)
열왕기하 5장에도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이 생겨서 노심초사하고 있을 때 유대 나라에서 포로로 잡혀 온 여자 아이 하나가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소개합니다. 장군은 병만 고칠 수 있다면 어딘들 못 가랴 하고 많은 보화를 싣고 엘리사를 찾아갔습니다. 엘리사는 요단 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했습니다(왕하 5:10). 나아만 장군이 그대로 한 결과 깨끗이 나았습니다. 장군은 너무나 고마워서 가지고 온 보화를 엘리사에게 줍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게하시가 그것을 받아서 숨겼습니다. 이 사실을 안 엘리사는 나아만의 문둥병을 게하시에게 주었습니다(왕하 5:27). 이와 같이 눈이 밝아졌는데 다른 곳에 밝아진 사람이 많습니다.
세상은 밝아졌습니다. 전쟁도 밝아졌습니다. 이제는 옛날 6.25와 같은 전쟁은 없을 것입니다. 지금은 적대 국가끼리 싸우기도 어렵습니다. 세상이 밝아져서 서로 다 알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벌기도 어려운 소중한 물질을 마음이 어둡고 눈이 어둡다 보니까 어두운 데만 쓰고 있습니다. 그 물질을 구제하고 선한 일에 쓰면 얼마나 귀하겠습니까? 그것만이 아닙니다. 오늘날 과학과 같은 지식도 인류의 평화를 취하여 쓴다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하겠습니까? 그런데 사람을 살생하는 전쟁왕 무기를 만드는데 쓰고 있으니 이 세상이 얼마나 불안하고 잔인합니까?
셋째, 큰 빛을 찾자.
빛은 이미 내게 비쳤으나 내 것이 못 된 자가 세상에는 많이 있습니다. 이들은 소경입니다. 소경은 태양 빛을 따스하게 느낄 수는 있으나 자기 눈이 어둡다 보니까 깜깜해서 보지 못합니다. 창세기 1:1에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 이는 첫째 날이니라”고 했고, 또 창세기 1:14-18을 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 또 별들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에 비취게 하시며…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창세기 1:3 이하의 빛과 14-18의 빛은 다릅니다. 창세기 1:3의 빛은 태양 빛이 아니라 하나님의 빛이며 하나님의 본체입니다. 계시록 21:23에서 볼 때에 하나님이 영광의 빛이고 어린 양의 등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빛을 2000년 전 동방 박사가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보았습니다. 이 빛은 눈으로는 볼 수 없고 영으로 느껴지는 빛입니다. 요한 복음 1:4 이하를 보면 요한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거 왔다고 했습니다. 10절을 보면 이 참빛은 세상에 이미 계셨으나 세상은 그를 알지 못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빛을 찾아야 합니다. 이 빛은 생명입니다. 이 빛은 길이고 소망이며 거룩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본체인 참빛은 우리에게 비쳐올 때 생명의 길로 거룩으로 소망으로 비쳐옵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3:3에 보면 요한이 외칠 때에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빛을 영접한 자가 생명을 얻은 자요 길을 찾은 자요 소망을 얻은 자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빛이십니다. 이 빛을 발견하면 현실에서 살아가는 길만 열어 주는 것이 아니라 영생할 수 있는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십니다.
금년에도 한 해 동안 어둠 속에서 탄식하며 살았다면 이번 성탄절을 계기로 하여 참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풍성한 삶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김충기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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