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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 (본문 마14:22-33)

by 【고동엽】 2022. 9. 29.

바다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 (본문 마14:22-33)

1. 2천년 전에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주님이시다. 오랫동안 하나님의 백성들이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린 이유는 바로 구원을 얻기 위해서였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실 때 그를 환영하는 사람들은 종려나무가지를 꺾어들고 흔들며 "호산나!"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이제 구원하옵소서"하며 환영했다. 메시야- 인류의 구세주로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으로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누구든지 그를 만나면 구원을 받는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 저를 믿으 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요3;16)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16;31)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그 자체로서 생명과 축복의 책이다. 인류를 구원하는 완전한 책이다. 누구든지 어느 민족이든지 이 말씀 속에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그 개인과 가정과 집단과 민족은 구원을 받는다.


2.오늘 본몬의 말씀을 생각해 보자.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굶주린 사람 오천명을 배불리 먹이시는 기적을 행하셨다. 제자들은 흥분했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예수님이시라면 인류의 문제는 무엇이든 해결하실 수 있다고 믿는 일단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제자들도 충분히 그런 기대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무엇보다 먼저 십자가를 지셔야했기 때문에 어느 한 민족의 왕으로 군림하실 수 없었다. 그래서 들떠있는 제자들을 서둘러서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게 하셨다. 노를 저어 바다를 가로질러가던 그들은 그날 밤 몹시 거센 풍랑을 만났다. 아무리 노를 저어도 그들의 수고는 고난으로 보상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없었다. 그렇게 고생하는 중에 새벽 4시가 지났다. 제자들이 모두 지쳐서 거의 기진맥진해 있는데 예수께서 그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것이었다. 제자들은 "유령이다!"하고 소리쳤다. 예수님께서 "안심하라. 나다.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셨다. 이 때 성질 급한 제자 베드로는 "주님 만일 주님이시라면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제안했다. 예수님은 그에게 "오라"하셨다. 베드로는 급히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다가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면서 소리 질렀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예수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하시며 함께 배에 오르셨다. 그러자 바람이 잠잠해 졌다. 밤새 배에서 고생했던 제자들은 예수님께 절하며 말했다.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3. 첫째, 자신의 부족한 믿음을 두려워 말라.
오늘의 성경은 우기에 처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남으로 놀라운 구원을 경험하는 사건을 전해주고 있다. 사실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의 제자들은 아직도 영적으로 온전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예수의 부르심을 받고 그를 따르고는 있지만 솔직히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확신조차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들을 이미 제자로 인정하셨다. 제자다운 제자로 세우기 위하여 끊임없이 교육하고 훈련하고 계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의 세계 기독교를 세우는 기초가 된 것이다.
나는 현재 우리들을 보면서 이와 같은 비전을 갖는다. 우리들은 누가 보아도 부족한 믿음의 사람들이다. 누가 우리에게 다가와서 "너 진정한 신앙인이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낙심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만들어져 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자녀를 키우면서 이런 사실을 느껴 본적이 있었을 것이다. 어릴 때 또래의 자녀를 가진 엄마들이 자식 자랑을 하는 것을 보면, 모두 천재이거나 신동이라고 느껴질 정도이다. 그러면 내 집의 아이들은 그렇지 못한데 혹시 성장이 너무 늦되는 것이 아닌가를 걱정한다. 그러나, 그 때마다 아직도 성장하는 과정에 있는 아이들이므로 좀 더딜지라도 반드시 성숙의 단계에 이르게 되는 것을 보아 왔다.
한 때 한국 기독교의 이단으로 "구원파"라 불리는 집단들이 있었다. 그들은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형제여, 구원받았습니까?" "언제 구원받았습니까?" "어떻게 구원받았습니까?" 여기에 대답이 시원치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 사람으로 간주하고 지금까지의 신앙생활 잘못한 것으로 정죄 한다. 그리고 구원받은 사람들은 굳이 복잡한 신앙생활을 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가르쳤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그렇게 다그치지 않으셨다. 우리들의 완전치 못함을 아셨다. 심지어 예수님을 부인하고 도망갈 것까지 예측하면서도 그들을 정죄 하시거나, 포기하지 않으셨다. 더욱이 예수님을 부인하고 그 곁을 떠나간 제자들을 갈릴리 바다로 찾아가셔서 너 아직도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면서 무너져버린 그들의 신앙을 다시 세워주셨다. 바로 이 사랑 위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 오늘 한국 교회가 있다.

둘째, 삶의 풍랑을 두려워 말라. 풍랑을 타고 오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기회이다.
이 사건을 통해서 풍랑이 이는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의 인생은 때로 감당할 수 없는 풍랑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과, 바로 이때 예수님은 그 풍랑이는 바다 위로 걸어오신다는 것을 깨우쳐 주고 있다. 당신은 인생의 바다에서 거센 바람을 만나 본적이 있는가? 그 풍랑 가운데서 방향을 잃고 헤매다 지쳐 쓰러져 본적이 있는가? 그 때 그 풍랑 속으로 당신을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만나 본 적이 있는가? 그 휘몰아치는 물보라 속에서 정신없이 노를 저어보지만 도무지 앞으로 전진하지 못한 채 고난 가운데 있어 본 적이 있는가?

요즈음 TV SBS에서 "덕이"라는 연속극이 진행중이다. 이 작품 속의 주인공 "덕이"라는 아이는 한마디로 요즘 사람들을 속 터지게 하는 아이다. 짐스런 가족들을 떠난다면 충분히 풍요롭고 편안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데도 절대로 가족을 떠나지 도 않는다. 제 어니 귀진이처럼 조금만이라도 영악하게 군다면 쉽게 잘살 수 있는데도 언제나 고생을 무릅쓰고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끝끝내 고집한다. 솔직히 이런 '바보같고', '비현실적이고', '답답한' 덕이는 작가 이희우씨가 의도하는 모습 그대로이다. 그는 두려울 정도로 너무나 삭막하게 변해가고 있는 이 혼란한 시대에 이기적이고, 메마른 세태를 거스르는 역(逆)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작가는 이 "덕이"를 통하여 이십년 전 너무도 큰 아픔을 겪은 뒤에야 비로소 만나게 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말 칭찬할 만한 인물로 그려내겠다는 것이다.

작가 이희우씨는 교회 집사이다. 그는 이십년 전에 사랑하는 어린 딸을 화상을 당하여 잃었다. 어린 딸의 죽음으로, 감당할 수 없는 막막함이 끝없이 몰려오는데 자신의 한 몸을 의탁할 수 있는 안식처가 없었다. 그 극심한 혼란 속에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 예수님은 그 풍랑 속으로 그를 찾아 오셨다.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그렇게 그 분을 만나게 되었다. 그 분과의 첫 만남이 그리 뜨겁지도 않았고, 그 분을 만난 뒤 한때 고민과 방황도 했었다. 그러나 십자가의 사랑을 진심으로 깨닫고 난 이후부터 이제는 매 순간 가장 간절하게, 그리고 가장 솔직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부를 수 있는 이름 하나가 내게도 생긴 것이다. 애통하고 목마른 인생에게 참 사랑과 위로와 긍휼을 베푸시는 그분의 이름, '예수 그리스도!'" "나는 큰 슬픔 뒤에 만나게 된 너무나도 소중한 그 분의 향기를 부족하나마 나의 작품을 통해 세상에 전하고 싶다. 그리고 그 향기를 맡은 사람들이 그 분의 존재와 사랑을 깨닫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을 오늘도 가만히 눈을 감고 그 분께 아뢰어본다"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도 감당할 수 없는 인생의 풍랑을 만나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그 풍랑 속으로 다가오신다. 물보라 몰아치는 그 사이로 그 분은 온 세상의 풍랑을 잠재울 그 구원을 가지고 우리에게 찾아오신다. 인생의 풍랑을 만난 분들이여, 눈을 들고 그 분을 바라보라. 그 분을 우리의 인생의 배 안에 모시면 바람은 잔잔해지고 안식이 시작된다.

셋째,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두려워 말라.
여기 한 가지 생각하라. 베드로처럼 성급하게 예수님을 의지해서 바다 위를 걸어 보려고 하는 유혹을 가져서는 안 된다. 예수님처럼 풍랑 이는 바다 위를 걸어보는 것은 사실 영웅적인 행동이다. 예수 믿고 위대한 인생을 한 번 살아보고 싶은 욕망! 어쩌면 이것은 우리 모두의 소망인지도 모른다. 예수 믿음으로 꿈을 가지는 것과 풍랑 이는 바다 위를 걷는 것과는 다르다. 예수님께서 바람을 보고 겁을 먹고 물 속에 빠져드는 베드로의 손을 잡아 함께 베에 오르셨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모든 제자들이 다 베드로처럼 바다 위를 걷기를 원하셨다면 베드로를 건져내시고 함께 물 위로 걸으시면서 배 안에 있는 다른 제자들도 나와 함께 걷게 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고 하셨다. 무엇을 의심하였다는 말인가? 그는 "만일 주시어든"이라는 말을 생각해 보라. 그는 예수님을 믿지 못해서 물 위로 걸어 보려고 했다. 예수 그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기적을 통해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던 그 날 십자가 아래 모여있던 사람들을 기억해 보라.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까지 기적을 기대하며 죽음의 순간까지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숨을 죽이고 멀찍이에서 그 상황을 지켜보던 제자들, 십자가에서 신음하는 예수를 향해 지금이라도 그 우에서 뛰어내리기만 한다면 우리가 당신을 믿겠노라고 발악하던 사람들, 그를 십자가에 못박은 다음 죽음을 확인하고 무덤에 장사하도록 하고서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무덤을 굳게 지키라고 명령했던 로마 군인들, 이들은 하나같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그것은 혹시 행할지도 모를 예수의 기적이었다. 그들은 예수를 믿었기 때문이 아니라, 혹시라도 그들이 기대했던 그 기적을 행하시기만 한다면 순식간에 나타나서 내가 당신의 제자라고 했을 것이다. 우리가 당신을 믿노라고 말했을 것이다. 우리가 바로 당신의 이 기적을 기대하고 이 짓을 했노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끝내 아무 일도 행하시지 않으셨다. 그대로 십자가 위에서 죽음으로 생을 끝내고 말았다. 그리고 무덤에 장사되고 안식일이 지나도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예수를 따르던 그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그 분의 삶에 대한 아쉬운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을 뿐! 아직도 그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로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기적에는 실패하였어도 예수님을 진실로 자신의 가슴속에 모셔들인 사람들의 삶 속에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아는가! 그 무섭던 바람도 자고 그 뛰놀던 풍랑도 잔잔해져버린 삶의 기적을 보았는가!
예수님은 기적의 사랑을 만드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오시는 분이 아니시다. 우리 인생의 배에 주인으로 오시기를 원하신다. 그와 함께 하면 바람도 풍랑도 끝난다. 우리의 배는 목적지에 도달하게 된다.
예수는 유령이 아니다.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혀 온 여인에게 예수님은 용서이셨다.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에게 예수님은 치유자이셨다.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무덤에 장사되었던 나사로에게 예수님은 부활이셨다.
죄인이었던 나에게 예수님은 의로움이셨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몰라하던 나에게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셨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 나에게 예수님은 삶의 목적이었고, 소망이었다.
예수님은 오늘의 나를 나되게 하신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다.
나의 삶 속에 한결같이 살아 계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오늘 세계의 최강국으로 인정받는 미국은 240년 전 영국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청교도들의 신앙의 바탕 위에 세워진 나라이다. 현실적으로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지만 국민의 90% 이상이 하나님이 계시다고 인정하는 나라 미국, 역사 이레 이번까지 43명의 대통령을 선출한 가운데 단 한 사람의 천주교 신자를 제외한 42명의 기독교인을 대통령으로 선출한 나라 미국은 누가 뭐라 해도 세계의 으뜸이다.
우리 대한 민국은 116년 전 미국의 선교사에게서 이 복음을 받아 오늘 전 국민의 25%인 1200만 명의 신자를 가진 준 기독교국가로 성장했다. 하나님은 기독교의 부흥과 함께 우리 민족을 놀랍게 축복하셨다. 누가 이 사실을 부인할 수 있겠는가!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의 주님으로 우리에게 오셨다. 지금도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다. 예수를 만나면 구원을 받는다. 사탄의 지배를 받던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죄의 지배를 받던 사람이 진리의 사람이 된다. 질병으로 괴로워하던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 된다. 파탄에 이른 사람들이 다시 회복되는 인생을 산다. 지옥의 삶을 살던 사람이 천국으로 옮겨진다. 예수님은 구세주이시다.

예수 그리스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은 당신의 삶 속에 또 다른 기적을 통해 검증되기를 원치 않으신다. 겸손히 당신의 인생이란 배에 주와 그리스도로 영접하기를 원하신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 예수님은 때때로 당신의 삶 속에 일어나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풍랑 가운데로 오신다. 당신을 그 풍랑 위로 걷는 인생의 곡예사로 만드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가야할 그 인생의 바다에 함께 하시는 구원자로 오시는 것이다. 당신의 인생이란 배에 함께 하기 위하여 오시는 것이다.

2000년 12월 10일, 세상은 또 한번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듯한 위기감에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있다. IMF 이후 최악의 체감 경기라고 말한다. 高물가, 高실업, 低성장, 低투자를 걱정한다. 이 어려운 시기에 정부의 정책 부재를 비난하는 소리들로 세상은 온통 시끄럽다. 어쩌면 또 다시 거센 풍랑이 우리들을 뒤덮을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바람이 문제가 아니다. 풍랑이 문제가 아니다. 잔잔한 바다 위를 잘 나가던 때에 잃어버린 예수님을 되찾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이 풍랑 속으로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를 온전히 영접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출처/이천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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