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지도자의 길 (본문 스10장1절-5절)
에스라가 하나님의 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심히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
엘람 자손 중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취하여 아내를 삼았으나 이스라엘에게 오히려 소망이 있나니
곧 내 주의 교훈을 좇으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의논을 좇아 이 모든 아내와 그 소생을 다 내어 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이는 당신의 주장할 일이니 일어나소서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
이에 에스라가 일어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대로 행하기를 맹세하게 하매 무리가 맹세하는지라
◈서론(유머)
미국의 어느 대 부자에게 무남독녀 외딸이 있었습니다. 모든 청년들은 이 부자의 사위가 되고 싶어했습니다. 어느 날 신문에 '나의 사위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모두 모이십시오. 그 날 제 사위를 뽑겠습니다.'라는 광고가 실렸습니다. 정해진 그 날 수많은 젊은이들이 모였고 그 중에 예비 심사를 거친 100여명이 그 집 정원에서 가든파티를 하고 있었습니다. 잔잔히 흐르던 음악이 갑자기 멈추고 이런 방송이 나왔습니다. "자 지금부터 저의 사위를 뽑겠습니다. 저쪽에 있는 수영장을 헤엄쳐 제일먼저 건너편에 도착하는 사람을 저의 사위로 삼겠습니다."
이 말이 끝나자마자 많은 젊은이들이 함성을 지르며 수영장을 향하여 달려갑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모두들 그 수영장 앞에서 급정거를 하는 겁니다. 그 이유는 수영장 속에는 악어 서너 마리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저쪽에서 한 청년이 그곳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모두들 숨을 죽이면서 바라보았습니다. 그 청년은 죽을힘을 다해 헤엄을 쳤습니다. 그는 악어들을 피해 아슬아슬하게 건너편으로 도착했습니다. 그 많은 구경꾼들이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방송국 카메라들이 다가와 이제 막 부호의 사윗감이 된 이 청년을 취재하기 위해 취재경쟁을 벌입니다.
한 기자가 묻습니다. "지금 심정이 어떠세요?"
그 청년이 숨을 급하게 몰아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가 밀었어?"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우리는 스스로 원하든지, 아니면 하나님에게 떠 밀려서 이든지 이 목회자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 맘에 쏙 드는 사명자가 되어서 이 시대를 책임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본문을 통하여 그 길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본문접근(당시의 정황)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70여 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얼마나 꿈에 그리던 예루살렘입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의 상속자로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나라를 재건하려는 일념으로 지난 4개월 동안 하루에 11㎞나 걸어서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여독을 풀고 나서 제일 먼저 하나님께서 희생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때 그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감격과 환희로 복받쳐 오르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에스라에게 들려온 소식은 잡혼에 대한 소식이었습니다. 그것도 지도자들이 앞장서서 이 잡혼을 장려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순수혈통이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북 이스라엘이 왜 망했습니까? 잡혼으로 인한 영적인 타락이 아니었습니까? 그나마 유다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다 흩으시고 이제 예루살렘에 거주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남은 희망이었습니다. 거룩한 씨였습니다. 그런데 잡혼이라니... 이게 웬일입니까?
에스라는 옷을 찢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울며 통곡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예루살렘에 돌아왔는데, 어떻게 바벨론에서 신앙을 지켰는데......
◈본문의 재 경청(사역, 공동번역)
이제 그 말씀을 공동번역으로 다시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에즈라가 하나님의 전 앞에 쓰러져 죄를 고백하고 울며 기도하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남자 여자 어린이 할 것 없이 울며불며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그러는 가운데 엘람 후손으로 여히엘의 아들 스가니야가 에즈라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배신하고 이 땅에 사는 족속들 가운데서 외국 여자를 얻어 살고 있기는 합니다마는 이스라엘은 아직 앞날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선생님의 뜻과 우리 하나님의 분부를 두려워 받드는 이들의 뜻을 따라 우리 하나님과 약조를 맺고 외국 여자와 그 몸에서 얻은 자식들을 다 내보내도록 합시다. 법에 그렇게 있으면 그대로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일어나십시오. 선생님이 알아서 일을 처리하십시오. 우리는 다만 따르겠습니다. 용기를 내어 밀고 나가십시오." 이 말을 듣고 에즈라는 일어나 사제장들과 레위인들을 비롯하여 온 이스라엘에게 그 말대로 따르겠다는 맹세를 하게 하였다. 사람들은 그대로 맹세하였다."
◈주제의 부상(참 사명자란 표현 5번 이상)
우리는 사명자가 많은 세상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참 사명자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합니다. 이 시대는 참 사명자를 간절히 찾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지난 2천년간 참 사명자에 의해서 성장하여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이 시대를 이끌어 갈 참 사명자를 찾고 계십니다. 우리를 참 사명자의 길로 부르고 계십니다.
◈주제에 대한 정의(3번 부정, 사전적 의미와 성서적 의미)
참 사명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신학교에 입학하여 학교에 잘 다닌다고 참 사명자입니까? 아닙니다.
매 주일 교회에서 설교하고, 찬양대를 지휘한다고 참 사명자입니까? 아닙니다.
큰 교회를 담임하여 많은 성도를 목양한다고 참 사명자입니까? 아닙니다.
참 사명자는 하나님의 대사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아 하나님의 뜻대로 가르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 참 사명자입니다.
◈주제의 필요성(
*이 글은 지난 해 12월 3일(목) '교회 내 성 폭력 추방을 위한 공청회'에서 발표된 것입니다.
저는 1989년 제 여동생을 통해서 예림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남대문에서 의류사업을 하고 있었으며 재정적으로도 넉넉했습니다. 목사는 지나치게 저에게 관심을 보이며 개인상담도 많이 해주었습니다. 오 목사는 '부모보다 내가 너를 더 사랑한다, 나는 영적인 의사다'라고 수없이 이야기하며, 병원에 가면 거리낌없이 벗고 진찰을 받듯이 숨김없이 자기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도록 했으며 자신이 '영적인 아버지'라고 늘 강조했습니다.
오 목사는 교회에서 철야를 강조했고 급기야 저는 집을 나와 지하선교관에서 지방 출신 여자 청년들과 몇몇 신도들과 함께 집단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 목사는 이 교회에 나온 사람은 사명자라며 "사명 저버리면 죽는다, 교회를 떠나면 저주받는다" 강조하여 세뇌가 될 정도였습니다. .
그러던 중 오 목사는 저를 재정위원을 시키는 등 다른 교인들이 질투를 할 정도로 총애를 하였습니다. 하루는 피곤해서 지하선교관에 있는데 목사가 들어왔습니다. 목사는 늘 아프다며 목회실, 지하선교관, 예배실에서도 누워 청년들에게 다리를 주무르라고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수종위원이라며 다리 주무르고 안마하는 청년들을 곁에 두기도 했습니다. 목사는 방으로 들어와 이불 펴고 누워서는 저에게 다리를 주무르라고 하더니 갑자기 끌어안고 키스를 하는 등 심한 성추행을 하였습니다. 문밖에는 목사의 세 자녀가 있어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습니다.
사명을 잃어버릴 때 이런 결과가 생기게되고 결국은 자신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마저도 어려움을 당하고 고통가운데 빠지게 됩니다. 홍수가 나면 오히려 먹을 물이 없다고 합니다. 오늘 이 시대의 참 사명자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하는 안타까운 소리가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주신 본문을 통해서 참 사명자의 길을 우리에게 밝히 보여주십니다.
◈주제실천방안(선포, 해석, 적용, 예화)
주안점- 첫째, 하나님께서는 참 사명자는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선포 - 여기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8장 21절입니다.
"때에 내가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것과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
▶해석 - 드디어 아닥사스다 왕의 귀환 명령이 떨어졌지만 걱정입니다.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의 거리는 무려 1,500㎞나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도적 떼가 출몰하여 여행객의 생명과 재산을 몰수하는 일은 흔한 일이었습니다. 거기다가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성전 기물들을 포함하여 바벨론에서 가져간 많은 보물들이 있었습니다. 도적 떼의 좋은 표적입니다.
4개월이나 걸리는 긴 여행길에서 무슨 일을 당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럴 때 제일 필요한 것은 군대의 호위를 받는 일입니다. 그러나 에스라는 군대의 호위를 거절하고 오로지 하나님의 보호에만 의존했습니다. 에스라는 금식하며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에스라는 하나님만을 의지했습니다.
▶적용 - 아니 하나님의 종이 되겠다고 신학교까지 온 사람들에게 하나님만을 의지하라니 하나님만을 의지하라고 하는 것은 신학생들에게 어쩌면 부적절한 말씀 같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다루는 사람이 진리에 더 민감하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제일 두려워하지 않는 부류가 어떤 부류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목회자입니다. 어쩌면 평신도들이 우리보다 하나님을 더 의지하는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 여러분은 이 사명자의 길을 감에 있어서 무엇을 의지하십니까? 여러분의 학벌을 의지하지는 않습니까? 오랜 경험을 의지하지는 않습니까? 높으신 목사님들이나 장로님들을 의지하지는 않습니까?
▶예화 - 여기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다 간 아름다운 음악 작품을 남긴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삶은 그리 아름답지 못했습니다.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가 열 살도 되기 전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그를 키워 준 형마저도 동생을 미워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 결혼을 한지 13년이 되던 해에 부인이 죽었습니다. 또 다시 결혼하게 된 그는 모두 스무 명의 자녀를 낳았는데 그 중에 10명은 어려서 죽었고, 한 명은 정신박약아였습니다. 나이가 많아져서는 시력을 잃었고 게다가 뇌출혈로 반신불수까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암울한 환경 속에서도 그는 작곡을 계속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사로잡는 웅장하고 장엄한 찬양과 경배와 감사의 노래들. 그는 그야말로 불후의 명작을 남겼습니다. 그토록 어둡고 비참한 삶속에서도 그토록 환하고 아름다운 곡을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요? 바로 그는 독실한 루터교 신자인 요한 세바스찬 바하입니다.
그는 자신이 작곡한 칸타타나 오라트리오의 마지막에 항상 S.D.G라는 글자를 적어 놓았는데 그 뜻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Soli Deo Glolia)』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의 첫 글자였습니다.
오르간을 위한 합창 전주곡들은 『지극히 존귀하신 하나님께! (The most High God)바치는 곡』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르간 연주를 위한 작품들의 첫 부분에는 I.N.J 즉, 『예수 이름으로(In Nomine Jesus: In the name of Jesus)』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바하는 도저히 하나님을 의지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만을 의지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의지했기에 사람들은 그에게 '음악의 아버지'란 칭호를 붙여주었습니다. 훌륭한 지도자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참 지도자가 됩니다.
주안점 - 둘째, 하나님께서는 참 지도자는 "울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선포 - 본문 1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합시다.
"에스라가 하나님의 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해석 - 에스라는 당시 바벨론 왕이 인정할 만한 석학이었습니다. 그는 학사겸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백성의 잡혼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 그가 첨으로 취한 행동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는 비상대책위원회를 세우지 않았습니다. 잡혼을 해결하기 위한 세미나를 열지도 않았습니다. 뭔가 실질적인 행동을 해야했음에도 그는 울었습니다. 옷을 찢으며 울었습니다. 머리털을 뜯으며 울었습니다.
D.H. 로렌스는 '인류가 협의(協議)하는 지상의 모든 언어 중에서 최고 발언자는 눈물이다. 눈물은 실로 위대한 통역관이다.'라고 말한 바가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세상에 계실 동안 남이 알게 모르게 수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는 자기의 사랑하는 친구 나사로가 죽어버린 죽음의 베다니에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멸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시고 우셨습니다.(눅19;41)
예레미야도 불순종으로 멸망당하는 자기 조국을 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성경의 사명자들은 한결같이 눈물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괴리된 백성의 삶 앞에서 그 현실 앞에서 저들은 울었습니다.
▶적용 -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 여러분이 마지막으로 눈물 흘리신 것이 언제입니까? 참 사명자는 눈물을 흘리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을 불쌍히 여기는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에게 전해질 때 우리는 통곡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썩어져 가는 세상을 바라보며 울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연약한 자신의 모습과 이 땅의 교회와 정치, 사회 문화를 바라보면서 통곡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저와 여러분의 눈물은 어디에 숨었습니까? 왜 우리의 눈물을 말라있습니까?
▶예화 - 여기 눈물을 회복한 한 목사님이 있습니다.
전라도 고흥에 개화교회 담임 목사님은 자신의 목회를 지지하지 않고 사사건건 물고 늘어
지는 한 장로님이 미웠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해 본 사람은 잘 알지만 이런 상태에서는 눈물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 이후 목사님의 목회는 건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늘 장로님을 미워하는 마음 때문에 소화도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장로님이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목사님은 속이 시원했습니다. 문병도 가기 싫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다음날 새벽에 말씀을 통해서 그 목사님의 눈물을 회복시켜주셨습니다.
이 목사님은 아침에 당장 문병을 갔습니다. 붕대를 감고 누워있는 장로님을 보자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그 장로님을 부둥켜안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장로님 잘못했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장로님이 이렇게 다치신 것은 제가 장로님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장로님 제가 잘못했습니다."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병상에 누워있는 장로님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사이의 미움의 감정들도 그 눈물과 함께 녹아 흘렀습니다.
목사님의 눈물이 회복되었을 때 그의 목회도 회복되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눈에 흐르는 눈물을 보기 원하십니다. 세상을 향하여 통곡하는 소리를 듣고 싶어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참 사명자는 눈물의 사람임을 깨닫기 원하십니다.
주안점 - 셋째, 하나님께서는 참 지도자는 "백성의 삶을 회복시키는 사역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선포 -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십시오! 3절 하반 절입니다.
"이 모든 아내와 그 소생을 다 내어 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해석 - 에스라의 눈물은 백성들을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은 회복되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회복되자 그들의 삶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백성들은 스스로 이방인 아내와 그 사이에 태어난 자식과 결별하기로 결심합니다. 온 이스라엘 무리는 여호와 앞에 맹세했습니다. 그들은 이제까지의 죄악된 행위를 깨끗이 정리하고 앞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의 삶을 살아가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에스라는 백성의 삶을 회복시켰습니다.
▶적용 -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사역의 현장은 어떻습니까? 매 주일 여러분의 설교를 듣고 아이들이 학생들이 청년들이 성도들이 변화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더 포악해지고 있습니까? 왜 우리의 설교를 듣고 변화되지 않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잘못입니까? 아니면 그 말씀을 전하는 우리의 잘못입니까? 저들이 변하지 않는다면 적어도 우리는 우리의 사역에 문제가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난 사경회의 특강시간에 오덕호 교수는 거짓 선지자는 세 종류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전하는 사람.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하지만 적용을 잘못하는 사람.
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하고 적용도 잘 하는데 말씀대로 살지 않는 자. 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부류에 속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지난 2천년의 기독교 역사 속에서 사람을 통하여 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참 사명자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이 거듭나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그 사명을 주십니다. '백성을 회복시키는 사명' 말입니다.
▶예화 - 청량리 사역 이야기
매 주일과 목요일에 청량리 광장에 가면 한 남자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름 유용일, 나이 41살. 그는 매 주일과 목요일에 노숙자 사역을 돕고 있습니다. 그는 빠른 몸놀림으로 의자를 셋팅하고 예배가 끝나면 식사 배식을 돕습니다. 그리고 모든 예배가 끝나면 다시 의자를 정리하고 식사도구들을 정리합니다. 자기 나이보다 10살이 더 들어 보이는 유용일씨도 한 때는 노숙자였습니다. 그가 청량리 역전을 배회하며 노숙을 하기 시작한 것은 10년 전이었습니다. 그를 첨 만났을 때 그는 알콜중독으로 거의 폐인이었습니다. 그는 예배를 방해하는 훼방꾼이었습니다. 그 동안 술 때문에 그리고 싸움으로 일년에 몇 번이고 119구급차에 실려갔던 인생의 종착역 근처를 더듬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예수님을 만난 것은 십자가 선교단을 통해서입니다. 이 선교단을 섬기는 목연 3학년인 김원일, 강병기 학우는 노숙자 사역을 하면서 계속 이 형제에게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기도하며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유용일씨는 드디어 노숙자들을 섬기는 쉼터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83일만에 그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의 부모, 형제마저도 그를 버렸을 때, 주님의 사랑을 안고 찾아간 십자가 선교단의 사역으로 그의 삶은 회복되었습니다. 그 누구도 그가 이렇게 변할 것이라는 것은 짐작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그의 얼굴에는 늘 해맑은 미소가 있습니다.
◈결과 (주제대로 행했을 때에 생겨지는 긍정적인 결과)
그 분은 참 사명자셨습니다. 막상 그 분의 소천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모두는 무언가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한국교회가 텅 비는 것 같았고 한국이 온통 빛을 잃은 것 같았습니다. 목사님은 참 목자이셨고, 예수님 닮은 지도자이셨습니다.
한경직 목사님! 목사님은 그야말로 하나님만을 의지하셨습니다.
1945년 12월 영락교회를 세워 1973년 원로목사로 추대되기까지 수많은 성도들을 영적으로 양육하였으며 또 온갖 경로를 통해 한국인과 세계인에게 선교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해외, 학원, 군, 농촌, 도시공장지대, 그 외의 모든 그늘진 곳 등 그의 선교의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지만 목사님은 늘 하나님을 의지하셨습니다.
또한 목사님의 새벽은 늘 눈물로 시작되었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향하여 온 세계를 향하여 그리고 성도들을 향하여 목사님은 늘 안타까워하셨고, 특히 조국의 통일염원으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수많은 피난민들의 설움과 한을 달래어 주시며 복음과 삶으로 저들을 회복시켜주신 목사님!
목사님은 참 사명자 이셨습니다.
◈결론
물질주의와 세속주의 흐름에 뒤범벅이 된 우리 한국교회를 누가 다시 맑게 교회의 본질을 회복시켜 주는 데 앞장설 수 있겠습니까? 참 사명자만이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등대 꺼진 항구같이 캄캄하기만 한 한국교회너머에서 우리에게 손짓하고 계십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눈물을 흘리며 성도들을 복음으로 회복시키는 참 사명자 !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이제 참 사명자의 삶을 살다 간 사람을 기리는 시 한편을 낭독하겠습니다.
어느 바보 목사님을 그리워하며…
<이 우 근/사법연수원 수석교수>
그는 참 바보처럼 살다 가셨습니다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가장 멋진 자동차를 탈 수 있었는데도,
그는 바보처럼 좋은 옷 대신에 소매가 닳아빠진 옷을 입었고,
멋진 차 대신에 버스를 타거나 남의 차를 빌려 타곤 했습니다.
가장 안락한 아파트에 살 수 있었는데도,
바보 같이 그것을 마다하고,
"월세 방에 사는 교인들이 얼마나 많은데…”하면서,
산꼭대기의 20평 짜리 국민주택에 들어갔습니다.
교단의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는데도,
바보처럼 그는 그것을 버렸습니다.
하나 뿐인 아들에게 교회를 대물림해 주라는 권유를 뿌리치고,
바보 같이 사랑하는 외아들을 먼 외국으로 쫓아 버렸습니다.
강연, 집회, 심방, 주례 등으로 짭짤한 부수입을 올릴 수 있었는데도,
바보 같은 그는 수많은 강연, 집회, 심방, 주례를 하면서도
어찌된 일인지 한 푼도 모으지를 못했습니다.
설교집과 자서전을 팔아 큰 인기와 재산을 얻을 수 있었는데도,
바보 같은 그는 “성경 하나면 되지 뭐…”하면서
도무지 그런 짓을 하려들지 않았습니다.
안수기도와 방언과 신유와 부흥회의 열광적인 분위기로
엄청난 카리스마를 누릴 수 있었는데도,
그는 바보처럼,
자신이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다고
늘 스스로를 탓할 뿐이었습니다.
새카만 후배들이 통일운동에 앞장선다면서
가로막힌 북녘 땅을 제 집 드나들 듯 마음대로 들락날락 거리며
헤어졌던 가족 친척들을 은밀히 만나고 다닐 때도,
그는 참 바보처럼
저 많은 실향민들이 고향엘 가지 못하는데,
어찌 나 혼자만 가겠는가…” 하면서,
그리운 고향 땅을 한번도 밟아보지 못했습니다.
정의감 넘치는 이들이
총칼을 두려워하지 않고 데모하고 감옥갈 때,
그는 총칼 든 사람들의 영혼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주고는
정말 바보처럼 욕만 실컷 얻어먹었습니다.
사자후 같은 명 설교도,
가슴을 쥐어뜯게 하는 감동적인 웅변도 할 줄 몰랐던 그는,
그저 바보처럼 자신의 몸으로,
자신의 손과 발로, 그렇게 자신의 삶으로
설교하고 선포했을 뿐입니다.
고난주간에
이름 있다는 목사님들이
대규모 부활절 연합예배의 설교와 기도 순서를 맡으려고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 다닐 때,
바보 같은 그는
고난주간을 채 넘기지 못한 채,
고난 속에 살다가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의 `아름다운 입(口)'이 아니라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의 `아름다운 발(足)'을 가졌던
이 바보 같은 목사님의 이름은
韓 景職 입니다.
이 바보 같은 이름은, 그러나
너무도 똑똑하고 성공적인 목사님들이 이름을 드날리는 오늘날
아마도 우리에게
가장 그리운 이름으로,
가장 진실된 이름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출처/이상섭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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