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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하는 역사 (본문 민33:1-2)

by 【고동엽】 2022. 9. 29.

회고하는 역사  (본문 민33:1-2)


유명한 실레겔(Cyreker)은 ‘역사는 회고하는 예언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괴테(J. W. Goethe)는 ‘역사의 의무는 진실과 허위, 확실과 불확실, 의문과 부인을 명백히 구별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시세로(Cicero)는 ‘역사는 시대의 증인이요, 진실의 등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모세를 통하여 신명기 33장을 기록하게 하였습니다. 종 되었던 애굽 땅에서 나와 요단 가 모압 평지에 도착하기까지 40년 동안의 이스라엘 백성의 노정을 회고하고 있는 기록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신명기 8장 2절에는 「사십 년 동안의 … 광야의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스데반은 그의 설교에서 「광야 교회」라고 하였습니다(행 7:38). 광야길 40년의 역사를 회고하는 내용입니다. 출애굽 40년을 회고하는 내용입니다.

Ⅰ. 광야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 자신이었다고 하였습니다.

1. 여호와의 명대로 시작된 출애굽의 역사였습니다.
본문 민수기 33장 2절에 「모세가 여호와의 명대로 그 노정을 따라 그 진행한 것을 기록하였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출애굽의 거사는 모세 자신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산물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애굽 바로왕의 산물은 더욱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벌써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자손들이 이방 애굽에서 객이 되는 기간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거기서 400년 동안의 역사를 만든 다음에 그 자손이 큰 재물을 모아 가지고 나올 것이라고 예언한 일이었습니다(창 15:13-14).
하나님의 작정하신 때가 올 때, 그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모세에게 나타나서, 종된 애굽의 고통에서 그리고 바로왕의 굴레에서 떠나라고 명령하였습니다(출 3: ). 마침내 모세는 애굽 왕 바로 앞에 나타났고,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내라」고 출애굽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출 5:1).

2. 여호와의 정하신 노정을 따른 출애굽의 역사였습니다.
민수기 33장 2절이 다시 말하기를 「모세가 여호와의 명대로 그 노정을 따라 그 진행한 것을 기록하였으니 그 진행한 대로 그 노정은 이러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 노정’, ‘그 진행’이라고 하였습니다.
사실상 애굽 땅 라암셋에서부터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최종 지점인 모압 평지까지는 일주일 남짓한 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40년이라는 긴 세월을 잡았습니다. 그 이유를 신명기 8장 2-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둘러 가는 길(노정)을 정하신 것입니다(출 13:17). 그 노정, 그 시간, 그 사건은 모두 하나님 자신께서 기쁘시게 계획하신 경륜을 좇아 되어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출애굽의 역사, 광야길 40년의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 자신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출애굽의 주인은 모세가 아니고 하나님 자신입니다.

Ⅱ. 광야 역사는 유월절(속죄)을 기점으로 출발하였습니다.

민수기 33장 3절에 「그들이 정월 십오일에 라암셋에서 발행하였으니 곧 유월절 다음 날이라」고 하였습니다.
‘유월절 다음 날이라’는 말에 유의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출애굽은 유월절 이후에 이루어진 것이라는 말입니다. 즉 출애굽 이전에 유월절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유월절을 해의 첫 달이 되게 하였습니다. 저들은 애굽을 떠나기 전에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양을 잡아서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밤에 그 양고기를 반드시 불에 구워 먹되,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고 하였습니다.
그 문설주에 양의 피가 발라져 있는 집안에서 양고기를 구워 먹고 있던 사람들은, 그 날 밤에 하나님의 사자가 애굽의 모든 장자들과 초태생의 짐승을 죽일 때 모두 살아남았습니다(출 12:1-14).
바로 이스라엘의 이러한 유월절은 신약시대에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우리의 속죄를 예표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유월절이 없으면 출애굽이 불가능하고, 출애굽의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즉 가나안 행군의 의미가 없다는 말입니다.

신약시대에 예수로 말미암는 십가가에서 피흘리신 속죄가 없이는 이 세상에서 갈라져 나오는 일이나, 나와서 천국으로 가는 신령한 가나안 행군의 의미나 내용, 목적이 전혀 있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를 믿어 죄사함 받는 기본적인 순서가 없이는 구원이라든지, 천국으로 가는 길은 전혀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십자가의 속죄는 언제나 개인과 그 가정과 역사의 기원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 속죄의 피로 말미암는 사죄의 은총이 없이는 그 어떤 삶의 진행도, 역사도 무의미하다는 것입니다. 예수 피로 살아나지 않으면 하늘을 향하여 나아갈 수 없습니다. 죽은 송장에게는 호흡도 움직임도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 속죄의 피를 받은 자만이 세상에서 나와, 세상을 이기고, 힘있는 신앙의 전진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Ⅲ. 광야 역사는 출애굽(애굽에서 나옴) 역사입니다.

어떻게 나왔던가?

1. 광명정대(光明正大)하게 나왔습니다.
민수기 33장 3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모든 사람의 목전에서…」라고 하였습니다.

결코 출애굽 운동은 몰래, 비밀히 도망쳐 나온 것이 아닙니다. 출애굽기 12장 35-36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출애굽을 할 때 애굽 사람들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요구하였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저들이 요구하는 대로 가져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은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육십만 가량이라고 하였습니다(출 12:37).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지 사백삼십 년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백삼십 년이 마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다고 하였습니다(출 12:40-41).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하나님 앞으로 나가는 모습입니다.

2. 여호와의 권능으로 나왔습니다.
민수기 33장 3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모든 사람의 목전에서 큰 권능으로 나왔으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의 모든 장자들을 죽이심으로 전 애굽에 절망의 곡성이 진동케 하고, 애굽의 신들에게도 벌을 주었습니다(민 33:4). 애굽의 바로왕과 백성들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에게 항복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숙곳에서 출발하여 광야 끝 에담에 진을 칠 때, 하나님이 그곳에서 저들에게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이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40년 동안 떠나지 아니하시고 이스라엘의 인도와 방패(보호)가 되셨습니다(출 13:20-22). 40년 광야길에 주식으로 만나를 주셨습니다. 바위를 터뜨려 생수를 공급하셨습니다. 메추라기를 보내어 고기를 대신하게 하셨습니다. 길쌈하지 않고, 농사짓지 않아도 되게 하셨습니다. 아무런 질병에 걸리지 않게 하셨습니다. 저들의 발이 부르트지 않게 하셨습니다. 대적들의 침략에서 구원하셨습니다. 홍해를 기적으로 건너게 하셨습니다. 실로 하나님의 권능으로 충만해버린 40년이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보장하시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보여주는 진리입니다.

3. 조금씩 조금씩 점진적으로 나아갔습니다.

민수기 33장에 주류를 이루고 있는 말씀이 「…진쳤고」, 「…진쳤다」라고 하는 말입니다. 저들이 40년 동안 장막을 쳤던 장소를 열거하는 것입니다. 출발지인 라암셋과 도착지인 모압평지를 제하면 꼭 40처가 됩니다. 40년 동안 40처를 통과한 것입니다.

이 어간에 저들은 무수한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스라엘은 연약함과 실수를 연발하였습니다. 실로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의 기간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40이란 숫자는 고난의 상징도 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권능 속에 살면서도 저들의 범죄로 인하여 광야길이 고난으로 점철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애굽에서 점점 멀어지고 가나안이 가까워져서, 마침내 가나안에 이르고야 마는 점진적인 진행이었습니다. 바로 이 세상에서 하늘로 가는 우리 신자들의 점진적 나그네 여로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4. 공동체의 진행이었습니다.

민수기 33장 1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와 아론의 관할 하에 그 항오 대로 애굽 땅에서 나오던 때…」라고 하였습니다. 저들의 광야 여정은 ‘모세의 관할 하에’ 되어졌다고 하였습니다. 또 ‘항오 대로’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질서 있는 군대 행렬을 가리킵니다. 그 다음 2절에는 「모세가 여호와의 명대로…」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에게 광야교회의 행진을 명령하셨고, 그 명령을 받은 모세와 아론은 백성들을 지도했다는 말입니다. 그 위에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권능들이 모세와 아론의 지도를 보장해 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광야 역사는 무질서나 혼란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말하자면 공동체의 엄격한 조직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저들이 그 공동체 조직의 질서를 파괴시키고 문란하게 만들 때, 하나님은 진노하셔서 저들을 심판하셨습니다. 반역하는 고라와 그 일당들을 불로 태우고 염병으로 치셨습니다(민 16: ). 바로 오늘 천성을 향하는 지상교회의 공동체 행군을 알려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역사는 결코 운명의 계교일 수는 없습니다. 존재하는 역사는 하나님의 계획하신 목적적 명령을 따라 착오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정확하신 하나님 자신의 명령을 따라 역사는 흥망성쇠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왕(통치자)들은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심부름꾼들입니다.

성령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광야 역사 40년을 회고하게 하였습니다. 그 역사는 우연이나 인간의 산물이 아닌, 하나님 자신이 계획하시고 진행하신 역사였습니다. 그 역사는 여호와의 명대로, 여호와께서 정하여 놓으신 노정을 따라 진행된 역사였습니다. 가나안을 향하는 광야 역사는 결코 유월절 없이는 불가능했다고 하였습니다. 바로 예수 속죄가 없이는 교회운동이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광야 역사는 본질적으로 애굽을 떠나는 역사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광명정대하게, 여호와의 권능으로, 점진적으로 그리고 철두철미하게 공동체 의식을 가진 행진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지상 교회(광야 교회)의 운동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예표였습니다. 우리의 교회 운동은 하나님께로 말미암았습니다. 우리의 교회 운동은 예수 십자가의 속죄에다가 그 뿌리를 둡니다. 우리의 교회 운동은 본질적으로 이 세상(애굽)을 떠나 가나안 곧 천성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만인 앞에서 광명정대하게 걸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산다는 자체가 하나님의 권능의 은혜입니다. 한 걸음씩 진을 치면서 나아갑니다. 나 혼자가 아닌 구속인의 무리로서 나아가는 교회 운동입니다.

희망은 역사보다 더 앞서고 위대합니다. 역사가 희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희망이 역사를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허물과 죄로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던 죄인들에게 결정적인 희망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죽지 않고 산다는 생명의 소식입니다. 바로 이것은 하나님이 죄인들에게 주신 희망입니다. 그 놀라운 구원의 희망이 찬란한 기독교 2000년의 역사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바로 그 영광스러운 구원의 희망, 영생의 희망이 지난 2000년 한해의 경향교회의 역사를 기록한 것입니다. 아니 27년 경향의 역사를 기록한 것입니다.

광야 교회 40년의 회고! 아니 경향 27년의 회고! 아니 지난 2000년 1년의 회고!
여기에는 하나님만이 남아 있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의 명령(말씀), 하나님의 정하신 노정만이 남기를 기원합니다.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값없이 받은 속죄은총(유월절)만이 남기를 기원합니다. 세상(애굽)을 점점 떠나 교회로 가까워지고, 하나님께로 점점 가까워진 영의 진보만이 남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30배, 60배, 100배의 축복들이 변함없이 진행되기를 축원합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2000년 속에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뿐입니다!”라고 하는(고전 15:10) 감사의 잔이 넘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출처/석원태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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