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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자료실 종합모음

요나의 기도 (욘 2:1-10)

by 【고동엽】 2022. 9. 29.

요나의 기도  (욘 2:1-10)

오늘은 무릎으로 살았던 요나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요나는 처음부터 기도했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본문 7절 상반 절에서 “내 영혼이 속에서 피곤할 때에...”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3일 동안 있는 동안 영혼이 피곤해지자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요나의 사명은 무엇이었습니까? 요나의 사명은 니느웨 백성들에게 회개의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니느웨로 가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다시스로 도망가기 위해서 배를 탔다가 큰 풍랑을 만났고, 바다에 건지움을 당했고 결국 큰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하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요나의 피곤함은 당연한 결과였던 것입니다.

요나는 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까?
① 길이 멀기 때문입니다. 니느웨로 가는 길은 참으로 멀고 험한 길입니다. 육로로 걸어가는 것도 아니고 배를 타고 가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요나처럼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도망을 쳐서는 안 됩니다. 도망을 칠 수도 없지만 도망을 치면 칠수록 요나처럼 자기의 영혼이 피곤할 뿐입니다.
② 감정 문제입니다. 앗수르는 그 당시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적대 국가였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앗수르가 정말 싫었습니다. 그러기에 요나는 사명을 감당하지 않고 도망을 쳤던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참으로 잘못된 태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은 자기 자신의 감정 따라서 감당할 일이 아닙니다. 내가 좋으면 감당하고, 내가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싫든지 좋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면 아무리 마음이 들지 않아도 해야 하고,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면 아무리 하고 싶어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자기 마음,기분, 감정대로 사명을 감당하고 싶으면 감당하고, 그렇지 아니하면 사명을 감당하지 않는다면 요나처럼 피곤하게 됩니다.
③ 선민사상과 우월감 때문입니다. 요나를 포함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기네만을 선택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요나의 신앙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사명을 감당하지 않고 다시스로 도망을 치다가 큰 환난을 만났고, 그 결과 지금 몹시 피곤한 중에 있었습니다.


요나의 이러한 행동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에 대해서 무지했습니다. “하나님은 선민 이스라엘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지만 다른 민족이라고 할지라도 회개하기만 하면 사랑하시고 구원 하시를 기뻐하신다"라는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보편성(普遍性)에 대해서 깨닫지 못했습니다.

첫째로, 요나가 하나님의 낯을 피해 도망쳤기 때문입니다.(욘 1:3)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하여"(욘 1:3) 사명자가 힘이 든다고 해서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도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발상은 불신앙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윗이 시편 139편에서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서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내가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찌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사람의 낯을 피할 수는 있어도 하나님의 낯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모르면 피곤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나가 풍랑을 만나고, 풍랑의 원인을 찾기 위해 제비뽑기에 뽑힘도, 바다에 건지움 받고, 큰 물고기에게 삼키움을 당한 것도 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환경을 주셨기 때문입니다.(욘 1:4, 1:17)

사명자는 사명자답게 살아야 합니다. 아무리 힘이 들고 어렵다고 해서, 아무리 기분이 나쁘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도망을 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발상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고기 뱃속은 참으로 어두움이 진한 곳입니다. 모든 것이 뒤범벅이 되어있는 곳입니다. 끈적거립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숨쉬기조차 답답한 곳입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곳입니다. 세상의 방법이 통하지 않는 곳입니다. 철저한 고독과 철저한 절망이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곳을 [스올]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스올]이란 [음부]라는 뜻입니다. 즉 사명을 감당하지 않고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는 자는 음부처럼 답답하고 고통스러운 일을 당한다는 말씀이고, 음부에 버려진 영혼들처럼 하나님의 버림을 당한 듯한 단절된 상황에 처해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영혼이 피곤할 때에 요나처럼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의 기도를 드린 것처럼 빨리 깨닫고 철저히 회개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본의 아니게 재난을 당하고 실패하고, 실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순간에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빨리 깨닫고 기도로 딛고 일어서야 합니다.

다윗은 시 143:7에서 “여호와여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내 영혼이 피곤하니이다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을까 두려워하나이다”라고 고백할 정도로 자신의 영혼이 너무 피곤하여 마치 ?무덤?에 내려간 것처럼 피곤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영혼을 편히 쉬게 하시고, 자신의 영혼을 환난에서 끌어낼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음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시 143:11에서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인하여 나를 살리시고 주의 의로 내 영혼을 환난에서 끌어내소서”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요나의 기도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1. 요나는 하나님의 성전을 바라면서 기도했습니다.(7절 하-8절)
본문 4절과 7절 하반 절 그리고 8절에서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나이다. 무릇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요나는 하나님의 성전을 바라보면서 기도했습니다. 요나는 자신의 기도가 하나님의 성전에 이르기를 원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며 사는 자처럼 살았던 것을 회개하고 있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서 헛된 것을 숭상하는 자는 베푸신 은혜를 저버린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린 것을 철저히 회개하면서 기도했습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성전을 바라보겠다”라고 고백한 것은 회개(悔改)를 뜻합니다. 세상을 보고, 물질을 보고, 사람만 바라보며 살던 사람이 [하나님을 바라보겠다]라는 것은 회개(悔改)하고 삶의 방식을 바꾸겠다는 것입니다. 요나는 깜깜한 스올의 뱃속에서 요나는 하나님을 바라보겠다고 기도했습니다.

요나 하나님의 성전을 바라보면서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3일 동안 있으면서 하나님의 성전의 중요성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본문 4절에서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나이다...." 성경을 보면 무수한 사람들이 성전을 통해서 새 힘을 얻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하나같이 성전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했던 사람들입니다. 그 정도로 교회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축복을 주십니다. 우리의 삶의 실패는 교회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실패에서 비롯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중요한 것은 교회를 연인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 정도로 소중히 여기고, 바라만 봐도 흐뭇하고 좋아야 합니다. 교회를 사랑의 대상으로 알고 지극 정성으로 교회를 사모하는 마음!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먼저 회복해야 할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그러면 교회로부터 주어지는 힘과 은총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이사야 6장에는 이사야가 부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언제 부름 받았습니까? 절망 중에 성전을 찾았을 때 부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사야처럼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희망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려운 상황을 이해하는 최선의 지혜와 이해력을 얻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주파수를 맞춤으로 얻어지는 힘과 용기를 받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히스기야가 죽을병에 걸렸을 때에 하나님의 “낯을 벽을 향하여 기도했다”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는 성전을 향하여 기도했다는 말씀입니다.(왕하 20:2) 다니엘도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하여 열린 창으로 기도했습니다.(단 6:10) 성전은 하나님께서 계신 장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 장소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장소입니다.
그러기에 솔로몬은 솔로몬 성전을 봉헌하면서 기도하기를 하나님의 성전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응답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대하 6:19-21) 또한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범죄로 인해서 전쟁에서 패배했을 때 하나님에서 기도할 때에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대하 6:24-25) 하나님께서 심판하심으로 재앙이 찾아왔을 때에 성전에 나아와 기도하기만 하면 들어달라고 기도했습니다.(대하 6:28-31)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기만 해도 그 기도를 응답을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히스기야 왕과 다니엘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심지어 솔로몬은 이방인이 성전에 와서 하나님의 얼굴을 찾을 때에 그 기도를 들어달라고 기도했습니다.(대하 6:32-33절)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요나는 비록 지금 자기가 물고기 뱃속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에게 드리는 기도가 성전에 미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억할 것은 이러한 기도를 드리려면 요나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해 버리고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며 사는 자처럼 살았던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에 나와서 기도하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린 사람들은 결코 성전에 나아와서 기도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세상에 헛된 것들을 숭상하며 살아갑니다.
이 세상에는 헛된 것들이 많습니다. 세상의 정욕도 헛되고 세상의 권세와 명예와 재산과 어떤 우상도 다 헛된 것입니다. 헛된 것들을 숭상하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립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린 자가 바로 자신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애굽에서 해방될 때와 광야에서 헤매며 하나님의 인도를 받은 때를 추억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대로 이어가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가르쳐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라고 당부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서 17:13은 말하기를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 24:20에서는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화를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주님께 받은 모든 은혜를 원수로 갚았습니다. 가룟 유다는 주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제자였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가룟 유다는 돈궤를 맡은 사람이었습니다. 돈궤는 아무에게나 맡기는 것이 아닙니다. 정직성이 있어야 하고, 전문성이 있어야 하고, 신뢰가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유다는 가장 측근이라는 이점을 이용하여 예수님을 팔아 넘겼습니다. 유다가 왜 예수님을 배반했을까요? 헛된 돈을 더 사모하였기 때문입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를 배웠습니다.
기도하면 길이 열립니다. 기도하면 보입니다. 기도하면 문제가 풀리고 해결됩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고 순종하려는 마음이 생겨납니다. 이제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무리 바빠도 기도하겠습니다. 경제가 어려워서 감당하기 힘들어도 시간이 허락되지 않아도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보다 성령보다 앞서지 않겠습니다. 기도보다 앞서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읽으시고, 간구를 항상 기억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기도가 채 끝나기도 전에 요청하고 있는 기도응답이 우리에게 실현되도록 역사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요나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기도했습니다.(7절 상)
본문 7절 상반 절에서 “내 영혼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삽더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이 피곤할지라도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요나의 영혼은 성경이 말씀한 대로 물고기 뱃속에 삼켜져서 죽음과 싸운 3일간 피곤했습니다. 더 이상 싸울 의욕마저 잃어버린 상태를 영혼의 피곤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기도할 의욕마저 사라져버린 그런 경우를 가리켜서 영적 피곤이라고 합니다.
요나는 절대 절명의 위기에서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 구원입니다.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구원의 축복을 얻게 되었습니다. 요나는 영혼이 피곤할 때에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였습니다. 풍랑에 시달리고 물고기 뱃속에서 잠도 잘 수 없었고 피곤한 환경에서 영혼도 탈진한 상태에서 아무 것도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여건 속에서 요나는 외쳤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삽더니” 이것이 바로 축복입니다. 보통사람은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실패를 거듭하고 자신감을 상실한 사람은 도무지 앞길에 대해 아무 것도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머리 속을 채웁니다. 그런데 요나는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할 것은 요나가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3일 동안 있으면서 기도를 배웠기 때문입니다.(1절)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제일 먼저 기도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기도하면서 요나는 무엇을 찾습니까? 자기의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 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불순종의 일을 버리고 순종의 일로 나아갑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이고 결과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는 마음이 생겨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 4:16은 말씀하기를 "겉 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라고 고백하였던 것처럼 고백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피곤할 때에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기도하면 아삽이 시편 73:26에서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고 고백하였던 것처럼 고백할 수 있습니다. 절망의 순간 어두움 속에서도 하나님이 생각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특권입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그것을 믿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위기를 축복의 기회로 바꾸어 주십니다. 요나가 하나님을 생각한 것처럼 하나님을 품고 살아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9절에서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 하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이 피곤할지라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은, 주님이 고난 받으시고 무덤 속에 계신 상징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무덤 속에서 사흘 동안 묻혀 계시면서도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을 믿으셨기에 소망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살아날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기에 비록 기막힌 고난 속에서도 감사하는 목소리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요나의 감사제는 숨이 막히는 고통 속에서 드리는 제사였기에 가치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요나는 목소리로만 감사제를 드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하며 노래했습니다. 이 말씀은 아마도 창세기 28:20에 나와 있는 아곱의 서원을 근거로 한 것 같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 서원하였습니다. 거기에 보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라는 서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서원한 야곱은 라반의 집에 들어가 20년 동안이나 살면서 대가족을 이루고, 거부가 되도록 이 서원을 갚은 일이 없습니다.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라는 서원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요나도 평탄할 때에는 자기가 무엇을 하나님께 서원했는지를 기억조차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다가 실컷 얻어맞고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서 죽을 지경에 이르니, 주님께 서원을 갚겠다고 다시 약속한 것입니다. 우리도 죽을병에 걸리면 "살려만 주시면 ∼게 하겠습니다."고 서원합니다. 직장이 없을 때는 "더도 말고 밥 먹을 자리만 주시면 ∼게 하겠습니다."라고 서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 더 속는 셈치고 서원한 대로 다 허락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요나처럼 어려운 처지가 되어서만 서원을 생각하지 말고, 형편이 좋을 때에 서원을 생각해서 갚아야 합니다. 우리는 요나처럼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요나가 왜 이처럼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기도하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3일 동안 있으면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감사의 중요성을 배웠기 때문입니다.(9절)
그러기에 요나는 본문 9절을 통하여 담대하게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오늘날 우리가 가장 많이 배워야 할 것이 바로 이 감사입니다. 승리를 위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승리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감사함으로 승리를 예비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생각만 조금 바꾸면 똑같은 환경에서도 충분히 감사할 수 있고, 충분히 찬송할 수 있습니다. 특히 어려운 중에 나오는 감사 찬송은 정말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편 22편에는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이여"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우리가 찬송하면 하나님의 그 찬송 중에 거하시고 역사하십니다. 찬송하면 신비한 하나님의 은총이 어디선가 슬그머니 나타나 우리의 필요를 정말로 신기하게 채워줍니다. 물고기 뱃속과 같은 환경에서도 먼저 감사 찬송을 올려야 합니다.

행복의 3가지 요건이 있습니다.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행복하다고 말하고, 행복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불행한 처지에 있어도 행복한 것처럼 말하면 행복이 찾아옵니다. 우리는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물고기 뱃속에서도 감사하는 사람이 있는데 우리는 어떠해야 합니까? 역사 이래로 부정적인 삶을 산 사람의 동상이 세워진 적이 없다고 합니다. 혹시 세워졌다고 해도 얼마 못 가서 무너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삶을 비관적으로만 본 사람으로부터 무엇을 보고 얻겠습니까? 모든 것은 믿음으로 배양된 우리의 마음먹기에 달려 있습니다. 마음이 중요합니다. 열린 마음을 가지면 모든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면 그 상황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것으로 머물지 말고 요나처럼 하나님께 서원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가장 많이 배워야 할 것이 바로 이 감사입니다. 승리를 위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승리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감사함으로 승리를 예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환경과 여건 속에서 찬송하면 하나님이 그 찬송 중에 거하시고 역사 하십니다. 찬송하면 신비한 하나님의 은총이 나타나 우리의 필요를 정말로 신기하게 채워줍니다. 특히 어려운 중에 나오는 감사 찬송은 정말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감사의 기도와 찬송은 감옥도 감당하지 못합니다. 사자 굴도 감당하지 못합니다. 나사로의 무덤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환경이 인생의 행복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각과 태도가 행복을 결정합니다. 그래서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행복하기 때문에만 노래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노래 부르기 때문에 행복한 것입니다." 우리는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범사에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나는 큰 물고기에 뱃속에 있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성전을 하나님을 기도했습니다. 왜냐하면 요나는 하나님의 성전의 중요성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3일 동안 있으면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기도했습니다. 왜냐하면 요나는 기도의 중요성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3일 동안 있으면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기도했습니다. 왜냐하면 요나는 감사의 중요성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요나가 이렇게 기도했더니 본문 10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물고기를 명하여 요나를 육지에 토했습니다.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다시금 사명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주 즉각적인 반응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면 응답해 주십니다. 그래서 시편 18:6에서 “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또한 시편 30:2-3에서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음부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응답받은 후에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면 전혀 예상치 못한 일드이 일어납니다. 요나는 하나님과 약속한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니느웨 성에 증거 하러 떠납니다. 그리고 니느웨에 가서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성이 무너지리라"고 증거 했습니다.(욘 3:4) 그랬더니 외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뜻밖의 일들을 경험합니다. 하나님도 잘 모르고 죄를 많이 범하는 사람들이라 가능성이 없을 줄 알았는데 니느웨성 사람들이 왕으로부터 짐승에 이르기까지 회개를 하는 것입니다.(욘 3:5) 사명을 맡은 자는 자신의 의지로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행할 뿐입니다. 혹 잘못된 생각을 품고 하나님의 뜻과 반대의 길로 갔다할지라도 결국은 하나님께서 그를 연단시켜서라도 하나님의 일을 이루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에게도 요나처럼 이러한 역사가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우리도 요나처럼 하나님의 성전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도 요나처럼 기도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도 요나처럼 감사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함으로 기도를 일으키시고, 교회사랑을 불붙이시고, 범사에 감사함으로 여러분들의 삶에 즐겁고 행복한 노래가 끊이지 않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자세가 바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라도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함으로 피곤한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다시금 사명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요나처럼 영혼이 피곤할지라도 하나님의 성전에 나와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함으로 요나가 다시금 사명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처럼 여러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 가운데서 즐겁고 행복한 승리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한국교회 부흥설교 설교 정보수집 편집위원 협조와 추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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