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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의 기도 (삼상 1:9-18)

by 【고동엽】 2022.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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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의 기도  (삼상 1:9-18)

본문에 언급되고 있는 한 나 의 기도. 한나 는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행복한 여인입니다. 세상에 이렇게 행복한 여인이 없습니다. 한나는 좋은 남편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한나의 남편 엘가나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첫째, 그는 좋은 가문의 사람이었습니다.(1절)
엘가나는 “에브라임 사람으로서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었습니다. "누구의 아들", "누구의 손자", "누구의 현손" ........ 족보가 복잡한 것을 미루어 좋은 가문의 사람입니다.
둘째, 그는 재물이 있는 사람입니다.(2절)
그에게 두 아내가 있었는데 하나는 한나요, 다른 하나는 브닌나입니다. 아내가 둘인 것으로 보아 재물도 있는 사람입니다.
셋째로 그는 신앙이 있는 사람입니다.(3절)
매년마다 제사를 드리러 실로에 갔습니다. 신앙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잘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이만하면 나무랄 데가 없는 신랑입니다. 가문 좋습니다. 재물 많습니다. 신앙도 좋았습니다.
넷째로 그는 한나를 지극히 사랑해주었습니다.(5절)
본문 5절 상반 절에서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한나에게는 재물의 분깃을 갑절이나 주었습니다. 8절에서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뇨?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한나를 지극히 사랑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정도가 되면 한나는 아주 행복한 여인이 아닙니까? 그런데 한나는 정말 행복했습니까? 아닙니다. 한나에게도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한나는 결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한나에게는 기도제목이 있었습니다. 5-6절을 다시 보십시다.(다같이)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저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저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니, 여호와께서 저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므로 그 대적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동게 하여 번민케 하더라"

그렇습니다. 성경은 한나는 브린나로 하여금 심히 격동되었고, 번민하였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주목하여 보면 한나가 자녀를 생산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에 보니 하나님께서 한나로 하여금 성태치 못하게 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그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문제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한 가지 문제에 부딛힙니다. 우리는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아니 사랑의 하나님께서 성태치 못하게 하시다니?"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때때로 문제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사람일수록 시험과 문제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100% 건강, 100% 은혜, 100% 축복을 허락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오히려 부족함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자에게 완전한 만족을 주시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위대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들 나름대로의 어려운 문제, 기도의 문제는 꼭 한 가지씩 있습니다. 다윗에게 골치 덩어리, 압살롬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육신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에게도 천하의 못된 유다가 있었습니다. 다 제거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는 남겨두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딱 가나안 땅에 들이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완벽한 행복, 완벽한 건강, 완벽한 은혜, 완벽한 축복을 허락하시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을 그 지독한 광야에 집어 넣으셨습니까? 그것은 세 가지 의미가 숨겨져 있습니다. 첫째는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고후 12:7)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귀히 쓰시는 종입니다. 이런 바울에게도 한가지 문제는 있었습니다. 육신에 찌르는 가시를 주셨습니다. 가시가 얼마나 아픕니까? 바울은 이 가시를 없애달라고 하나님 앞에 세 번이나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안된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없으면 넌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가시를 통해서 사도 바울을 기도하는 사도로 쓰셨습니다. 더 위대한 종으로 쓰신 것입니다. 고후 12:7에서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처럼 자고하지 않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둘째는 하나님만을 의뢰하시기 위해서입니다.(고후 1:9) 바울은 세계선교를 하면서 생명의 수많은 생명의 위협과 위험을 만났습니다. 이는 하나님만을 의뢰하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후 1:9에서 “우리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하심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셋째는 기도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평안하면 기도하지 않습니다. 물론 평안한 가운데서도 기도하는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 폭풍 전야의 위험 속에 있음에도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어려운 문제 앞에서 결코 좌절만하지 않고 기도하면 부족한 것을 채워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한나에게 어려운 문제를 주신 것은 한나를 미워하신 것이 아니라 어려운 문제 앞에서 결코 낙망하거나 좌절하는 것으로 머물지 않고 기도하는 모습을 통하여 우리에게 어려울 때에 기도할 것을 교훈하시기 위함에 있었던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때때로 문제에 빠지면 기도하라는 신호로 알아야 합니다. 원망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왜 문제 속에 집어넣으십니까? 하나님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방법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우리기 언제 기도합니까? 편할 때에 합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편할 때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이상한 것은 우리가 좋다 할 때는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잘나가면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도 잘하던 사람도 잘 나갈 때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잘나가면 잘 나가느라 기도할 새를 잃어버립니다. 기도 줄을 놓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막히면 다릅니다.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 혼자는 안됩니다" 매달리는 것입니다. 급하면 급할수록 매달리는 것을 봅니다. 기도에는 양반이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가라지는 심지 않아도 납니다. 가꾸지 않아도 자라는 것이 가라지입니다. 원하지 않아도 열매를 맺는 것이 가라지입니다. 실패는 그냥 나는 것입니다. 좌절은 그냥 자라는 것입니다. 낙심은 그냥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원망은 그냥 두어도 씨가 흩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기도하게 하십니다. 문제 속에 밀어 넣으시는 것입니다.

다윗이 언제 범죄 했습니까? 가만히 있을 때에 범죄 했습니다. 아람 군대가 쳐들어 왔습니다. 온 국민이 전시 태세인데, 장군들은 나가서 생사를 걸고 싸우는데 다윗 혼자 왕궁에 남아 있습니다. 저녁까지 침상에 누워 있다가 밧세바를 보았습니다. 밧세바를 범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죄를 짓습니다. 죄지을 생각이 듭니다. 가만히 있으면 걱정이 생깁니다 근심이 생깁니다. 사단이 틈타는 것입니다.
이삭의 아들 에서가 왜 장자권을 빼앗겼습니까? 가만히 있었습니다. 이삭의 아들 야곱은 어떻게 장자권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까?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별미를 만들었습니다. 양털을 온몸에 바르고, 음성을 변조해서 축복해달라고 머리를 디민 것입니다.
우리는 가만히 있으면 빼앗깁니다. 가만히 있으면 다 빼앗깁니다. 가만히 있으면 있는 것도 빼앗기는 법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기도를 빼앗깁니다. 은혜를 빼앗깁니다. 축복을 빼앗깁니다. 하지만 무언가 하는 사람은 없는 것도 만들어 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천국을 만들어 냅니다. 매달리는 사람은 축복을 만들어 냅니다. 이것이 인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크게 두 가지를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한 손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한 손에는 기도를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얼마만큼 할 수 있습니까? 믿는 만큼 할 수 있습니다. 기도한 만큼 하는 것입니다. 믿고 기도하는 만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나는 인생의 어려운 문제를 푸는 열쇠는 기도가 바로 최선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녀는 결코 집에 머물면서 걱정, 근신만 하지 않고 본문 10절 이하에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성전에 나와서 기도했습니다. 한나는 비록 마음은 괴롭고, 슬프고, 원통하였지만 그럴 때마다 기도가 최선임을 알고 기도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왜냐하면 한나는 기도의 위력을 하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한나는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본문 10절에서 "한나가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고"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한나는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눈물의 기도에 약하십니다. 히스기야 왕이 죽을 병에 걸렸지만 하나님의 성전을 향하여 통곡의 기도를 드릴 때에 그의 생명을 15년 연장해 주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사 38:3) 다윗이 비록 하나님께 범죄 하였지만 침상이 젖도록 눈물로 기도하실 때에 용서하여 주셨습니다.(17절) 그래서 다윗은 시 51:17에서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눈물의 기도에 약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문제 앞에서 얼마나 울어봤습니까? 통곡(痛哭)은 아무 때나 나오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아픔이 사무쳐 어찌할 바를 모를 때 통곡이 되는 것입니다. “나의 형편을 모두를 다 아시는 하나님이여! 이 아픔을 보시옵소서. 받으시옵소서. 그리고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그런데 한나는 이런 통곡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한나는 고통과 괴로움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괴로움이었습니다. 그의 남편 엘가나가 그 한나를 위로하며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뇨"라고 위로하였지만 남편의 위로만으로는 감당 할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그러기에 한나는 하나님께 통곡의 기도를 드림으로써 위로를 받고자 했던 것입니다. 한나가 얼마나 처절하게 기도하였던지 엘리 제사장이 보기에는 한나가 취한 것으로 오해할 만큼 열정적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주님께서도 통곡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때에 이를 지켜보는 여인들이 울었습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너와 너희 자녀들을 위하여 울라고 말씀하십니다.(눅 23:28) 우리도 한나처럼 뜨거운 눈물의 기도를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본문 11절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한나는 원망을 할 수 있는 처지와 형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한나가 어디 대적 브닌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것이 나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원망하지 않고 기도할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첫째로 한나는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10절)
한나는 “하나님에 의해 모든 것이 왔고 하나님에 의해 진행되다가 하나님에게로 돌아간다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했습니다.(잠 3:6, 롬 1136) 나는 할 수 없다고 철저하게 자기를 부인하는 겸손한 마음이었습니다. 위로부터 내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기에 합당한 자세였습니다. 그러기에 한나는 비록 마음이 괴로워서 기도하고 통곡하였지만 그것은 원망의 기도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한나는 자신의 고통과 괴로움을 하나님께 가지고 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나는 자신의 어려운 환경이 하나님의 뜻임을 깨달았습니다. 본문 5-6절에서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니라”는 구절을 두 번 반복된 것을 볼 때에 분명히 한나의 고통과 아픔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었음을 말해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한나는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나는 시편 37:1,5절에서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고 말씀처럼 결코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께 맡기면서 기도했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현재 환경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모든 일은 사람에 의해서 온 것이거나, 우연히 온 것이 아니라 더 좋은 것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고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인내해야 할 것입니다. 그 어려움 뒤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원망하며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가지고 문제를 푸는 열쇄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서 왔다고 인정하지 않거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으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삶 속에 문제가 있으면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마시고 하나님께 문제를 가져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둘째로 한나가 원망하지 않고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돌아보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본문 11절 중반 절에서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라고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한나는 자신을 돌아보시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으심을 알았고 이를 굳게 믿었습니다. 여기에서 “돌아본다”라는 말은 ‘지키신다. 보살핀다. 보호한다'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우리를 돌아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지키시고, 보살피시고, 보호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시 121:3-8에서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사람은 졸기도 하고 자기도 해야합니다. 잠을 자지 않으면 견딜 수 없고,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고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주야로 우리를 지켜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 121:6에서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낮에는 햇빛이 너무 뜨겁고 살인적이기 때문에 일사병에 걸리기 쉽습니다. 밤에는 너무 기온이 급강하고 춥기 때문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낮에도 밤에도 하나님이 지켜 주셔합니다. 이 세상은 낮에도 위험이 따르고 밤에도 위험이 따르고 있습니다. 주야로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셔야 우리는 살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의 출입을 영원토록 지켜주십니다. 시 121:8에서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들어와도 지키시고 나가도 지켜주신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스데반을 보십시오. 스데반은 자신을 향해 이를 갈며, 귀를 막고, 돌을 던지는 이들을 향해 어떻게 천사의 얼굴을 할 수 있었습니까?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기도함으로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죽으라고 돌을 던지는 자들을 향해 죽으라고 돌을 던지지 않았습니다. 듣지 않겠다고 귀를 막는 자들을 향해  도 듣지 않겠다고 귀를 막지 않았습니다.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옆에 서신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소리를 지르면 같이 소리를 지릅니다. 저들이 소리를 지르면 같이 소리를 지르는 것입니다. 세상은 저들이 이를 갈면 나도 이를 갑니다. 두고 보자는 것입니다. 세상은 저가 돌을 집으면 나도 돌을 듭니다. 그러나 성도는 달라야 합니다. 세상과 달라야 합니다.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행동하는 양식이 달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성도되는 것입니다.
스펄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콩울 먹고사는 비둘기가 고기 먹는 독수리를 부러워하는 법이 없고, 푸른 초장의 풀을 뜯는 양떼가 육식하는 사자를 부러워하는 법이 없다" 성도는 먹고 사는 다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보다 한 가지 더 먹고 사는 살아갑니다.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먹고 삽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달라야 합니다. 세상과 달라야 합니다. 사는 방법이 달라야 합니다. 성도는 문제를 원망으로 풀지 않습니다. 이것은 이방의 방법입니다. 하나님께로 와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사는 방법인 것입니다. 스데반은 기도해서 이겼습니다. 우리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기도는 할 수 있습니다. 기도가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게 능치 못함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만 우리의 마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기도만이 우리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습니다. 기도만이 우리 마음의 미움을 잠재웁니다. 기도만이 우리의 인격을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찬송이 들어오고, 한숨이 빠져 나갑니다. 기도하면 냄새나는 물은 빠져나가고, 새물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탄식이 빠져 나갑니다. 기도하면 원망은 빠져 나갑니다. 기쁨이 들어옵니다. 감사가 들어오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사랑이 샘솟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려운 문제를 만날때에 환경이나 사람들을 바라보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 11절 상반 절에서 "서원하여 가로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한나는 서원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한나는 브닌나로부터 받은 박해와 모욕 때문에 아들을 구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위해 큰 기도를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의 욕심만을 채우기 위해서 한 기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한나는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기도하였으니 얼마나 위대한 기도입니까?
이와 같은 한나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 20절 말씀에 "한나가 잉태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 고 하였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아들을 얻은 것입니다. 간절히 기도했더니 축복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한나는 서원한대로 아들을 하나님께 드렸다는 것입니다. 한나는 하나님이 주신 아들을 약속한 대로 하나님께 서원한 대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한나는 아들 사무엘이 젖을 뗀 후에 아기를 데리고 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아들과 함께 감사의 예물을 드렸습니다. 수소 세 마리와 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함께 드렸습니다. 아들의 평생을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삼상1:25-28) "그들이 수소를 잡고 아이를 데리고 엘리에게 가서, 한나가 가로되 나의 주여 당신의 사심으로 맹세하나이다 나는 여기서 나의 주 당신 곁에 서서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라.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나의 구하여 기도한 바를 허락하신지라.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 아이는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그리고 한나는 어느 정도 때가 하나님에게 한 서원대로 사무엘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렸습니다. 삼상 2장 11절 하반 절에서 “그 아이는 제사장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나의 신앙이 얼마나 멋있는 믿음입니까? 한나는 기도의 응답을 받은 후에 하나님에게 서원을 지키었습니다.(25-28절) 이것이 한나가 더 큰 축복을 받은 비결입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바친 한나에게 3남 2녀의 축복을 주셨습니다.(삼상2:21) "여호와께서 한나를 권고하사 그로 잉태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한 아들을 드렸더니 하나님은 다섯을 주신 것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도 없어서 한이 맺힌 한나였습니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그 하나를 낳았을 때에 드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나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켜서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리니까 하나님은 더 풍성하게 축복해 주신 것입니다. 한나는 자신의 괴롬과 고통을 오직 하나님께 호소하여서 응답받고 축복받은 여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찾고 모든 것을 다 드린다고 하는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인색합니까? 하나님이 주셨음에도 시간, 물질, 건강, 재능을 주님께 드리기를 너무 인색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한나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보통 여인들이 남편은 없어도 자녀만 있으면 산다는 말은 자주 하듯이 자녀에 대한 어머니의 애착은 굉장합니다. 그러나 한나는 값진 아들을 하나님께 아낌없이 드렸던 것입니다. 받은 은혜로 주님께 감사하며 경배했습니다. 그것뿐입니까?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자신을 향한 값진 사랑을 체험하였던 한나는 하나님께로 향한 마음을 찬양에 담아 올렸습니다. 2:1-9절까지의 한나의 찬양은 구약교회의 송가라고 불리면서 시113편과 신약의 마리아의 찬양에서 재연될 정도로 값진 것이었습니다. 성령의 감화를 받아 올려진 이 찬양은 성경의 구속사를 이해하는데 황금열쇄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의 모습도 이렇듯이 입술의 고백으로, 그 주신 것으로, 찬양으로, 하나님께 올려 드려야 합니다. 나에게 왜 여러 가지 것을 주지 않았냐고 하는 불평으로 일관하기 보다는 이미 주신 은혜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감사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생명(生命)을 주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건강 주신 것을, 예수 믿게 된 것을, 귀한 직분 받았음을, 좋은 교회 만난 것을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매번 “주세요 주세요” 라고 하는 기도를 통해 받기만 원하는 미성숙된 신앙을 보이기보다는 하나님! 나의 이 귀한 것을 받아 달라고 오히려 나의 몸과 마음과 주신 은혜로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기도의 응답을 받은 후에는 하나님과 약속한 것을 지키지 않습니다. 부도수표를 남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함부로 서원하지 말아야 합니다. 함부로 서원하면 그것이 그물이 됩니다.(잠 20:25) 함부로 서원하면 그것 때문에 어려운 일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전 5:6) 한나처럼 정말 확신 중에 서원을 했다면 신속하게 갚아야 합니다. 서원을 해 놓고 더디 하면 그것이 죄가 됩니다.(신 23:21) 서원을 해 놓고 더디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전 5:4) 그러므로 서원을 했으면 반드시 이행해야 합니다. 그래서 민 302에서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마음을 제어하기로 서약하였거든 파약하지 말고 그 입에서 나온 대로 다 행할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 12절 상반 절에서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라는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한나는 간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한나는 기도제목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다 아시지요” 라고 하며 짧게 기도하고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문제를 갖고 기도하는 시간을 많이 갖는 것보다 적당히 기도하고 내 힘으로 뛰어 다니기를 좋아하는 우리 하고는 달랐습니다. 한나가 오래 기도했다는 것은 문제 앞에서 사람들이 해야 될 바가 무엇인가를 아는 모습입니다. 그러기에 한나는 응답을 주실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본문 13절을 보십시오.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동하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무슨 의미입니까? 한나의 기도는 말이 안나올 때까지 진을 빼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한나의 기도는 진을 다 빼는 기도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이렇게 기도한 적이 있습니까? 사람들은 죄를 짓다가 힘을 빼앗깁니다. 세상의 향락을 쫒다가 진을 소모합니다. 하지만 성도는 다릅니다. 성도는 기도하다가 진을 뺄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일을 하다가 진을 뺄 수 있 수 있어야 합니다. 주의 일을 하면서 에너지를 소모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근심을 하면서 힘을 소모합니다. 걱정을 하다가 힘을 소모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다릅니다. 달라야 성도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힘을 다해야 합니다. 찬송을 하면서 힘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방은 미워하면서 힘을 소모합니다. 싸우면서, 원망하면서 힘을 소모합니다. 하지만 성도는 달라야 합니다. 성도는 사랑하면서 힘을 써야 합니다. 감사하는데 힘을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고백을 기억하십니까? 시편 84편 1절의 고백입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전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궁전을 사모하면서 쇠약해졌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힘을 쏟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합니까? 기도하면 해결될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는 데에는 에너지를 쏟지 못하고 쓸데없는 데에 에너지를 쏟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랑하기에도 부족한 세월입니다. 아직도 미워하면서 사십니까? 찬송하기에도 부족한 인생입니다. 아직도 괴로운 마음으로 사십니까? 근심걱정으로 나날을 보내고 계십니까? 감사하기에도 부족한 인생입니다. 사랑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일이 있고, 성도의 일이 있는 법입니다. 기적은 언제 생깁니까? 하나님의 일과 우리의 일이 만날 때 생기는 것입니다. 능력이 언제 생깁니까? 하나님의 일과 우리의 일이 조인 될 때에 생기는 것입니다. 시편 81편 10절에서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말씀처럼 우리의 일은 입을 넓게 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채우시는 것입니다. 입을 넓게 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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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히 기도하는 한나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있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직접 위로하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엘리 제사장을 통하여 위로하셨습니다. 본문 17절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의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사람의 말이 그의 아픔을 얼마나 위로할 수 있겠습니까만 그는 주의 종의 위로를 하나님의 위로로 믿고 감사함으로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아픔 가운데 처해 있는 우리에게 언제나 친히 강림하셔서 말씀하시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주의 종과 우리의 깨어있는 이웃들과 어린아이를 통해서까지도 교훈하고 계십니다.
본문 17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엘리 제사장이 한나의 기도를 들었습니다. 그러자"여자야 평안이 가라. 하나님께서 너의 기도를 들으시기를 원하노라" 했습니다. 이때 한나가 어찌합니까? 18절입니다.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수색이 없으니라"
기도하기 전에는 한나는 번민했습니다(6절). 기도하기 전에는 한나는 격동했습니다(7절). 울고 먹지 아니하였습니다(7절). 슬펐습니다(7절). 마음이 괴로웠습니다.(10절) 하지만 저가 기도하고 난 뒤에는 어찌 되었습니까? 먹고 다시는 얼굴에 수색이 없어졌습니다. 한나는 엘리 제사장의 말이 하나님의 위로와 축복임을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한나는 18절에서 “가로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입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수색이 없었습니다. 이는 기도한 것은 받은 줄로 믿는 믿음입니다. 기도는 그런 것입니다. 기도에는 카타르시스가 있습니다. 변하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한나는 파도처럼 밀려오는 당시의 불신앙의 흐름 속에서 그리고 자신의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 앞에서도 세상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삶의 방법을 가지고 대처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세상을 이기고 있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한나는 보통 신앙이 아니라 성경이 말해 주고 있는 그리고 성경에 뿌리를 박은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나는 무릎으로 살았습니다. 한나의 기도는 단순한 자기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이 기도는 아들을 드려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통치가 나타나기를 구하는 기도였습니다.
그러기에 한나는 하나님이 주신 위로와 축복을 받았습니다. 한나는 한 명의 아들을 구했지만 하나님은 세 아들과 두 딸을 더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드린 사무엘은 점점 자라면서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은총을 받으며 형통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영적 혼란과 암흑으로 구원하는 신실한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미스바에서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신실한 사무엘과 같은 선지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 선지자 뒤에는 바로 한나의 기도가 있었다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힘이 들고 어려운 문제를 만나다고 할지라고 결코 낙망하지 말고 인내하면서 믿음의 경주를 경주하되 믿음의 주가 되시고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축복이 여러분의 삶에 충분하게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출처:한국교회 부흥설교 설교 정보수집 편집위원 협조와 추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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