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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와 지도자 위해서 기도하자 (딤전 2:1-4)

by 【고동엽】 2022.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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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와 지도자 위해서 기도하자  (딤전 2:1-4)

지금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할 때입니다. .
교회가 민족 앞에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1910년 융희황제가 일본의 폭력으로 한일합병에 굴복하자, 뜻있는 인사들은 해외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1918년 세계 제1차 대전 후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민족자결 원칙]을 선언하니 이에 발맞추어 나라와 민족을 잃은 슬픔의 한이 요원의 불꽃처럼 퍼져 나갔습니다.

교회가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지금이야말로 교회가 바로 설 때이고, 교회의 지도자와 성도들이 바로 설 때입니다.

과거 역사에 보시면 교회가 나라를 지배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교회가 나라를 다스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중세기에는 교회가 나라의 왕을 임명 하던 시대였습니다. 또 거꾸로 나라의 지도자들이 교회의 지도자들을 임명하고 교회를 사사건건(事事件件) 간섭하는 그런 역사의 암흑시대도 있었습니다. 이때에는 철저하게 정교분리가 요구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이 결코 그리스도인들이 정치를 외면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어서 안 됩니다. 정치라는 것은 외면할 수도 없고 또 외면해서도 안 됩니다.

그런데 최근에 우리나라는 계속적으로 어려운 역사적 시련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바로 지금은 분명 나라를 생각할 때입니다. 바로 지금은 나라를 위해서 기도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는 당연한 일입니다. 구약 성경의 여러 곳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위기에 봉착했을 때에 기도했던 것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사무엘 선지자를 중심으로 한 미스바의 회개 운동, 에스더와 모르드개를 중심한 금식기도 등은 우리에게도 절실하게 요청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디도데에게 “위정자를 위해서 기도하라”는 권면에 대해서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냥 기도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는 지도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결코 정치나 나라의 역사에 대해서 무관심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어느 도시를 가든지 자기 민족의 회당을 먼저 찾았고 거기서부터 먼저 복음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복음을 받아들인 이방 민족들에게도 그들이 그들의 나라와 역사를 위해 기도해야 할 중요한 책임이 있음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의 이러한 권면은 바로 우리들에게도 적절한 교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국난의 심각한 어려운 징후를 겪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나라를 생각하며 철저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까?

1.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성도의 마땅한 의무이며 책임이기 때문입니다.(1-2절 상)
본문 1절과 2절 상반 절에서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성도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되 특별히 위정자의 위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로"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어떤 논리적 순서를 가르치기 위한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삶의 영역에서 우선순위로 신경을 써야 할 중요한 것이다는 강조하기 위한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선순위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삶의 영역에서 우리가 많은 의무를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리스도인으로 우리가 많은 의무를 가지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의무, 기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 곧 위정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나라와 민족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① 구국 기도의 방법
바울은 본문 1절 하반 절에서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간구, 기도, 도고, 감사로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기도의 여러 형태입니다.
여기에서 ① "간구"라는 것은 "특별한 애원"을 뜻합니다. ② "기도"라는 것은 "성도가 하나님으로 더불어 교통하고 기원하는 모든 행위"를 총칭하는 것을 뜻합니다. ③ "도고"라는 것은 "타인을위해 대신하는 기도"를 뜻합니다. ④ "감사"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 베푸심에 대한 좋은 감정"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이런 기도의 형태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읅 언급한 의도를 파악해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모든 방법으로 동원하여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권면의 말씀입니다. 한마디로할 수 있는 모든 방법. 사용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형태의 기도를 동원하여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는 이처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 당시의 임금들은 네로와 같은 로마의 황제들을 가리킵니다.
그 황제들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황제 밑에서 통치하던 이른 바 헤롯 대제 같은 왕들이나, 헤롯 안티파스나 헤롯 아켈라오 같은 분봉 왕들이나, 빌라도 같은 지방 총독들이나, 기타 높은 지위를 받고 백성을 관장하는 여러 종류의 관리들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사도 바울을 통하여 나타내신 명령은, 교회가 예배 중에 올릴 기도의 내용입니다. 즉 예배의 공중 기도 중에 모든 시대, 모든 지역, 모든 나라들 가운데 백성을 통치하는 여러 류의 관리들을 위하여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그 당시나 지금을 막론하고 지상에 자리 잡은 그리스도의 교회가 소유한 공동 기도의 원리입니다. 그들 중에는 무신론자, 유물론자, 진화론자, 우상숭배자, 더욱이 교회를 박멸하는 박해자들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교회는 그 위정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저들은 택자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영원하신 구속 경륜의 성취를 위한 한 도구요 수단들로서, 하나님이 세웠기 때문입니다. 저들이 받은 여러 류의 권세는 모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들은 일반 은총인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기 위해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사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들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일꾼이라고까지 하였습니다(벧전 2:13-17).

디모데를 향한 사도의 명령과 권면은, 교회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는 중 특별히 위정자를 위하여 기도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초기 교회는, 세상에 통치권을 가진 자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교회가 받은 신성한 필수적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교회는 자신들을 박해하는 자들까지도 은혜의 자리로 인도하기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위정자들을 위해서 기도는 하지 않고 비판만 일삼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우리가 나라의 지도자들을 비판하고 비난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입니다. 비판이나 비난에는 돈이 들지 않아요. 입만 벌리면 됩니다. 우리가 쉽게 비난할 수가 있습니다. 쉽게 비판할 수가 있어요. 그러나 기도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기도는 일종의 노동입니다. 그러나 기도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여러분은 기도의 역사를 믿으십니까? 우리의 기도가 역사를 바꿀 수 있다 이 사실을 참으로 믿는다면 우리가 한나라 역사의 운명을 짊어지고 기도한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그것이 우리가 첫째로 할 중요한 일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이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며 기도할 때라고 생각됩니다. 지금 우리가 처한 역사의 자리야 말로 우리의 기도를 필요로 하는 시간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선적으로 나라와 위정자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만이 우리 민족의 새로운 출구를 열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할 것은 그리스도인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도에 따르는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 합니다.
기도는 언제나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그 기도에 합당한 책임 있는 행동을 요구합니다. 같은 주기도문 가운데 우리는 어떤 기도를 하도록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까? “나라에 임하옵시고 또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 주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나라에 임하옵소서”라는 것은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도 임하여 달라고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뜻이 이 나라에도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기도를 했다면 이제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우리가 행동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독교 역사의식을 갖고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기를 소원하면서 생업에 최선을 다해서 종사해야 합니다. 기도한 만큼 나라와 민족에 유익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는 할 이유는 우리가 경건하고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입니다.(2절 하)

우선적으로 "경건"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관계에서 쓰여 지는 단어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삶의 태도, 하나님을 향한 닮아가는 삶의 덕목을 강조할 때 경건이라는 단어가 쓰여 집니다. 영어로 "경건(敬虔)"이라는 말은 "하나님 같은 혹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을 닮아가는 인격"을 말합니다. 그 다음에 "단정"이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 우리가 이웃들과의 관계에서 질서있는 삶의 모습을 가리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고요. 또 이웃들과 사람들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건강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에 고요하고도 그리고 평안한 삶의 정황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3. 우리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3절)
그래서 3절에서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만한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받으실만한 것이니”라는 말씀은 신약성경에서 이곳과 딤전 5:4에서만 나오는 단어로서 “기쁘게 받아들이다”(아포테코마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중보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며 또한 기뻐받으시는 기도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단지 이기적이고 정욕을 좇아 간구하는 기도를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응답하지 않으시지만(약 43) 교회가 나라와 위정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선히 여기고 기뻐하는 일입니다.
교회가 위정자들을 위하여 기도함은 하나님 자신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제사가 되기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통치자들을 임명하시고, 또 그들을 합당하게 통치하고, 주장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1907년 1월에 전국적인 대 회개 및 부흥운동이 시작되었다. 평양에서 시작된 이 부흥의 불길은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선교사 하디(R.A.Hardie, 한국명:간하베), 져다인(J.L.Gerdine)와 한국인 목사 길선주 등이 전국을 누비면서 사경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이 부흥운동은 수년에 걸쳐서 전국의 교회로 퍼졌으며, 국경을 넘어서 중국으로까지 전파되었습니다. 이 운동은 한국교회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였습니다. 많은 한국인들이 이 운동으로 인해서 기독교 진리를 새롭게 터득하게 하였고, 교회도 급격하게 성장하였습니다.
새벽기도회와 통성기도, 사경회라는 토착적이고 독특한 한국교회의 특징이 확립되었습니다. 한국교회 지도자들과 선교사가 함께 협력하고, 장로교회와 감리교회가 교파를 초월해서 운동을 전개하는 동안에 연합(에큐메니칼) 정신이 구현되었습니다. 이 운동을 통해서 한국교회는 비로소 민족교회 로서의 틀을 잡아나가게 되었습니다. 이 운동은 1910년에 100만 명 구령운동으로 이어져 나아갔습니다.

바로 이러한 정신이 1919년 3월 1일에 정오에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통치에 대해 항거한 3·1 독립만세운동으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3·1 만세운동은 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웠으며 응축된 독립운동의 에너지를 한반도 전역으로 퍼뜨려 독립을 이뤄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삼일절을 맞이하여 기독정신의 계승과 나라와 민족을 위해 적극 나서야 합니다. 3·1 정신이 기독정신에 입각한 애국애족의 정신이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굳게 서서 조국의 번영과 민족복음화 운동에 힘써야 합니다. 또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군사, 종교 등 모든 분야에서 혼란스러운 시기에 각계각층의 지도자들이 3·1정신을 이어받아 국가의 안녕을 위해 최선의 다해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어려운 시기에 먼저 교회 갱신을 통해 교회의 위상을 정립하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4. 우리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평화로운 선교활동을 위해서입니다.
본문 4절에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교회가 외적으로 내적으로 영적 평화를 누림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그 궁극적 목적은 결국 사람을 구원하는 선교적 목적을 이루기 위함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는” 이것이 교회가 영적 평안을 가져야 될 이유요 목적입니다. 물론 여기 '모든 사람의 구원'은 영생 주시기로 작정된 모든 세대, 모든 인종, 모든 나라를 가리킵니다(행 13:48). 말하자면 잃어버린 아브라함의 모든 자손들을 총칭하는 말입니다(눅19:9,10).

그렇습니다. 교회가 위정자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될 이유가 명백해진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추구하기 위함입니다. 나라가 불안하고 동요하면, 교회가 평화로운 선교 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교회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면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점입니다.
성경을 보면 구약시대 이스라엘이 국난을 당할 때마다 전 국민이 한 자리에 모여 금식하고 회개하며 기도했습니다. 남녀노소(男女老少) 모든 백성이 몰수로 모이라 했습니다. 미스바성회(삼상 7:5,6)와 여호사밧왕 시대(대하20:3,4), 요엘 선지시대(욜1:14 2:15,16), 그리고 여호야김왕 때(렘 36:9) 그러했습니다.
이처럼 모이고 힘을 합쳐 국가와 민족과 이웃을 위하여 기도하면 이것이 곧 교회 부흥으로 이어집니다. 1970년대 초 기독교 인구가 270만 명이었을 때 엑스플로 ’74 대회에 등록신자가 323,419명이었습니다. 연인원 250만 명이 여의도광장에 모여 4박 5일 간 철야기도를 드렸습니다. ’77성회,’80세계복음화성회,’84세계기도성회,엑스플로 ’85성회,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성회 등 일련의 초교파적 민족단위의 대성회를 통해 연합함으로써 한국교회가 급성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다시금 구국 기도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물론 한국교회처럼 모이기에 힘쓰는 나라가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차츰 모이는 일이 식어가고 있으며 교회 안팎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일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라"(히 10:25)고 하십니다. 초비상 시기에 절대 필요한 것은 구국기도운동입니다.
우리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면 전도의 문이 열릴 것입니다.(골 4:3 계 3:7, 8, 20 마 7:7).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었더니 문이 열렸습니다. 사도행전의 부흥의 비결은 기도, 특히 마음을 같이하여 함께 모여서 기도한 것이 원동력이었습니다. 그래서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부흥의 비결은 첫째도 기도, 둘째도 기도, 셋째도 기도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기적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애스더와 모르드개가 이스라엘 백성을 말살하려고 하만의 계획 앞에서 “죽으면 죽으리라”는 자세를 가지고 구국 기도를 위한 금식에 들어갔고, 하나님께서 이를 응답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기에서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부림절의 기원입니다.(에스더 4:4-17)
여러분이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다면 애스더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애국하는 길입니다. 오늘날과 같이 우리 사회가 이기주의에 빠지고 나라나 동족보다는 개인의 영리만을 추구하고 모든 것을 돈으로 할 수 있다는 황금만능주의(黃金萬能主義)의 사상이 팽배한 때에 에스더와 같이 모르드개와 같이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기 위해 자신들의 모든 것을 버리는 그런 믿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민족을 위해 간구하고자 한 에스더의 선포의 때와 같이 우리는 지금 금식하며 주님 앞에 부르짖으며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느헤미야처럼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부터 2500년 전에 바사나라에 살았던 유대사람 느헤미야은 바사나라에 포로로 잡혀왔던 유대인 자손중의 한 사람으로서 왕에게 인정을 받았던 술관원이었습니다. 느헤미는 비록 식민지 출신이었지만 비교적 출세를 한 사람으로서 얼마든지 자기 자신과 가정을 위해서 ‘누리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냥 편하게만 지내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자기의 조국이며 하나님의 도성인 예루살렘에 대해 늘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느헤미야는 국가와 민족의 형편에 대해서 매우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슬퍼했습니다.(느 1:4) 뿐만 아니라 느헤미야는 국가 민족을 위해 기도했습니다.((느 1:4`-`5) 느헤미야는 조국의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한 느헤미야는 먼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는 조국의 문제를 자신의 마음속의 안타까움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하나님께 드릴 기도의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한 염려를 기도로 바꾼 예는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모세와 초대교회의 사도인 바울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출 32:32,롬 9:3) 그렇습니다. 바로 지금이 모두가 한 마음으로 겸허히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며 애통하며 금식할 때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애국하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은 어느 때보다 나라와 위정자를 위하여 기도할 때입니다. 우리는 위정자들을 향한 실망과 비판에 하기에 앞서서 기도해야 합니다. 감사하게도 우리 한국 교회는 이런 축복을 받았습니다.
정말 어느 때에는 망하는 나라 같았으나 흥했습니다. 무명한 나라 같았으나 유명했습니다. 없는 나라 같았으나 부유했습니다. 안되는 나라 같았으나 결과적으로는 되었습니다. 정말 오뚝이 같은 나라라는 기분을 느낍니다. 그 분명하고 확실한 이유는 한국과 한국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긍휼 때문입니다. 한국이 받은 기독교적 축복 때문에 이 나라는 살아 왔고, 지금도 살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의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신앙과 예배! 한국 교회의 하나님을 향해 올리는 불타는 구령과 구국의 기도! 그리고 한국교회가 세계영혼을 향하여 하나님께 받은 선교 비전(vision)을 위한 기도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셨기에 이렇게 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새롭게 출범한 참여 정부인 노무현 정부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물론 지금 우리는 매우 심각한 위기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우리 민족의 범죄를 회개하고 우리 자신이 주님 앞에서 모든 잘못된 삶을 다시 고치고 기도로 하나님 앞에 엎드린다면 하나님께서 이 땅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시도록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이 땅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출처:한국교회 부흥설교 설교 정보수집 편집위원 협조와 추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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