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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와 복이 넘치는 교회 (슥1:16~17)
하나님의 선택받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고난과 회복의 역사였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며 고난받던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은혜로 저들에게 자유를 허락하셨으며, 바벨론 포로로 고난받던 이스라엘에게 해방을 주셨습니다. 또한 저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하여 나아갈때도 많은 시련과 고난을 당하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고난을 이기게 하셨고 승리하게 도와주셨습니다. 오늘 본문도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로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돌아오게 되자 그들의 최대과업은 무너진 성과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는 일이었습니다. 그일을 앞장서서 추진하거나 이끈 선지자와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에스라·느헤미야·학개·스가랴 등이었습니다. 스가랴는 학개와 동시대를 살면서 예언활동을 폈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70년만에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에 돌아오게 된 이유와 예루살렘 성읍들이 받게 될 복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은 하나님의 긍휼때문이었습니다.
16절을 보면 "내가 긍휼히 여김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은즉" 이라고 했습니다. 주전 586년 예루살렘이 바벨론의 침략으로 함락되면서 유다민족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70년동안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해야했습니다. 포로생활을하는 유대인들의 소망은 하루라도 빨리 바벨론의 포로생활에서 해방되어 조국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의 힘만으로 해방되거나 자유를 얻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벨론은 그 당시 세계 최강국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흥국가로 부상했던 페르시아의 고레스왕이 주전 538년 바벨론을 멸망시키면서 유대인들에게 해방을 주었고 즉시 돌아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도록 허락했습니다.
이 사건을 오늘 본문 16절은 "내가 긍휼히 여겼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남이 해주었을 때와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남이 도와주었을 때의 고마움이나 감동은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바벨론의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민족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상상도 못했던 유대민족의 해방과 자유는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그들을 긍휼히 보셨던 것입니다.
유다민족이 바벨론 생활을 끝내고 고국으로 돌아 올 수 있는 길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바벨론과 싸워 이기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바벨론왕이 특혜를 베풀어 주는 길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페르시아를 일으켜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유다민족을 해방시켜 주신것입니다.
그러한 은혜는 비단 유다민족만이 받는 것이 아닙니다. 저도 받았고 여러분도 받았습니다. 내 힘으로 안되던 일들을 되게 하셨고, 내 노력으로 불가능했던 일들을 하나님은 해결해 주셨습니다. 죄에서 건져주셨고, 위기에서 보호해 주셨고, 시험에서 구해주셨고, 오늘까지 살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흔히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들을 성취했을 때 그것을 성공이나 축복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귀한 것은 내가 하나님의 긍휼을 받으며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그들이 돌아온 것은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기 위해서였습니다. 16절을 보면 "내가 긍휼히 여김으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내집이 그 가운데 건축되리니 예루살렘에 먹줄이 치어지리라"고 했습니다. 그 뜻은 하나님이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예루살렘에 돌아오게 하셨는데, 그 이유는 예루살렘에 먹줄을 치고 무너진 성전을 건축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목적이 보다 거룩한 것이었습니다. 자기 집짓고 돈벌고 자식낳고 70년동안 억눌렸던 욕망을 터트리며 향락을 일삼기위해 돌아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두가지 종류의 망각이 있습니다. 하나는 행복한 망각입니다. 지난날의 불행했던 기억과 불쾌했던 감정들, 다시 말하면 더 이상 기억할 필요가 없는것들을 잊어버리는 것은 행복한 망각입니다. 그러나 다른 하나의 망각은 불행한 망각입니다. 그것은 잊어선 안될것들을 잊어버리는 경우입니다. 예를들면, 지난날 은혜라든지, 하나님과의 약속이라든지, 가난하고 불행했을때의 겸손한 자세라든지, 이런 것들을 잊어버리는 것은 불행한 망각입니다. 그런것들을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내가 오늘 왜, 어떻게 여기에 앉아있는가를 생각해봅시다. 돈벌고, 잘살고, 일하고, 놀고, 먹고, 마시는 것이 내가 존재하는 이유라면 예수를 모르는 사람과 다를게 무어가 있겠습니까?
왜 사는가? 왜 일하는가 의미도 가치도 모르고 살던 나의 삶속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기 때문에 사는 맛이 있고 일하는 맛을 알게 됩니다. 한마디로 신바람나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루야마 시게오박사의 말에 의하면 사람은 뇌에서 분비되는 모르핀의 분비량이 많아야 즐겁고 유쾌하게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자신이 살아가는 사명을 자각했을 때... 다시말하면 나는 무엇을 위해 왜 태어났는가를 깨달았을 때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뇌내에서 모르핀을 분비하게 해주고 지칠줄 모르는 활력과 성실함으로 발전적인 사고를 펼쳐 나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섬기고 찬양하기 위해 피조된 존재입니다. 그 일을 해 나갈 때 인간은 삶의 의미와 보람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루야마 시게오의 말은 인간은 자기가 해야 할 일, 즉 보람되고 가치있는 일을 할 때 모르핀 분비량도 많아지고 건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건강하려면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순종해야 성령받고, 성령 받아야 신바람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는것입니다. 답답한 사람, 현실의 통로가 막힌 사람, 삶의 의미나 가치를 찾지 못한 사람은 성령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신바람나는 삶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70년동안 유대민족이 그토록 애타게 열망했던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도록 인도하신 하나님의 뜻이 성전 건축이었던 것처럼 우리의 존재이유나 생존이유도 보다 높고 신령한데서 찾아야 하는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보다 값지고 귀한 것을 위해 나 자신의 삶을 드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물질과 능력을 바쳐야 합니다. 하나님이 오늘도 나를 살려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심이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그 뜻을 따라 살라는 것입니다. 그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셋째는 넘치도록 다시 풍부하게 될것이라는 것입니다. 17절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이 회복되고 다시 차고 넘치는 복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기억하고 분명히 해야 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차고 넘치는 회복과 복은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복은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임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순수하게 사랑하고 섬기면 하나님은 나에게 성공과 명예와 인기와 물질을 가져다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시는 것들, 돈이나 명예나 인기등을 사랑하면 하나님은 나를 떠나시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를 사랑해야 하겠습니까? 돈이나 명예나 성공 때문에 하나님을 외면하고 산다면 하나님도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복도 나를 언젠가 떠날 것입니다.
본문을 주목합시다.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할 것이라" 여기서 말하는 성읍은 예루살렘과 유다 나라를 뜻합니다. 그리고 내 가정과 교회와 나라를 의미합니다. 어떻게 해야 풍부하게 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감당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맨 끝 순서에 놓고 틈나면 생각하고 여력생기면 감당한다면 하나님도 나의 문제를 맨 끝 순서에 둘 것입니다. 은혜와 복은 준비한만큼 받는 법입니다. 자기 그릇대로 받는 법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나오는 일과 은혜와 복받는 일에 삶의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은혜 못받고 은혜 잊어버리면 되는 일이 없습니다. 사업도, 장사도, 회사도, 가정도 은혜받아야 신장하고, 평안하고, 융성합니다. 교회도 은혜가 넘쳐야 성장하고 발전합니다. 은혜 받기위해 날마다 기도하며 말씀안에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복이 차고 넘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극동방송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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