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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자료실 종합모음

야베스의 기도 (대상 4:9-10)

by 【고동엽】 2022. 9. 25.

야베스의 기도  (대상 4:9-10)

본문에 야베스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 야베스는 미국의 브루스 윌킨스가 “야베스의 기도”라는 책을 쓴 이후로 아주 유명해졌습니다. 이 야베스에 대해서 성경은 아주 짤막하게 유다 자손임을 간단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단 두절뿐입니다. 그래서 이 야베스가 어떤 사람인지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알 수 있는 것은 그의 이름과 그의 어머니의 증언을 통해서 야베스는 태어날 때 아주 고통스럽게 낳았다는 것만 알 수 있습니다. 야베스라는 뜻은 고통, 슬픔이라는 뜻입니다. 그 어머니가 야베스를 낳을 때 난산해서 죽을 뻔하며 낳았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을 고통이라는 뜻으로 야베스라고 지었다고 했습니다.

옛날에는 이름을 지을 때 의미나 뜻을 부여해서 지었습니다. 딸을 많이 낳는 집에서는 이제 딸은 그만 낳으라는 뜻에서 말순이, 끝순 이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어느 돈에 집착하는 아버지는 아들을 낳아놓고 이름을 “돈”이라고 지은 아버지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름을 지을 때 뜻을 부여해서 짓습니다. 성경을 보면 대부분 그렇게 나타납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은 원래 이름은 아브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이라고 고쳐서 지어주셨습니다. 아브람은 그냥 “아버지”인데 “아브라함”은 “많은 사람들의 아버지“ “열국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이 장차 아브라함을 사용하시는데 개인적인 차원에서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고 민족의 아버지로 사용하시려고 그의 이름을 개인적 차원에서 공적차원의 이름으로 고쳐주십니다.

또 그 아내 사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래 이름은 사래였습니다. “여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래도 “사라”라고 고쳐 주셨습니다. “많은 사람의 여주인”이라는 뜻입니다. 거기에도 공적인 뜻이 부여된 이름입니다. 또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곱”은 “발꿈치를 잡다“는 뜻입니다. 야곱은 태어 날 때 먼저 나오는 형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다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런데 후에 하나님은 그의 이름도 고쳐 주십니다. “발꿈치를 잡다”라는 명예스럽지 못한 이름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하십니다. “하나님과 겨룬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이 야곱을 민족을 위해서 사용하실 계획을 가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적어도 민족적인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사기꾼이라는 뜻의 야곱이라는 이름으로는 안 된다고 보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름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이름은 이렇게 중요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 야베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야베스라는 이름은 고통, 아픔, 슬픔이라는 뜻입니다.  그의 어머니가 그를 낳을 때 아주 고통스럽게 낳았다 해서 그 이름을 고통이라는 뜻으로 야베스라고 이름을 지은 것입니다. 그런데 야베스가 태어날 때 뿐 아니고 그가 자랄 때도 아주 고통스런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그 말은 아주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자랐다는 말입니다. 아주 초라하게 자랐다는 말입니다. 야베스는 그 많은 백성들 중에서 가장 빈약하고 초라하고 가난하게 자랐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후에 야베스는 크게 성공한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야베스는 “그 형제들 보다 귀한 자”라고 했습니다. 이 야베스가 후에 크게 성공했다는 말입니다. 그 말은 야베스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서 마침내 성공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야베스는 오늘 성공을 바라는 현대인들의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는 아주 열악한 환경에서 스스로 미래를 개척해서 드디어 크게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야베스는 어떻게 해서 그렇게 성공했습니까. 이 야베스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금년 한해를 살아가면서 이 특징을 기억하고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기  대

첫째는 미래에 대한 분명한 기대입니다. 10절을 보면 야베스가 이렇게 기도합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혀 주십시오. 하고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기대이고 희망이고 비전입니다. 현재 환경은 고통스럽고 불만족스럽고 어려움이 있고 초라하고 빈약하지만 그런데 야베스는 그런 환경을 보지 않고 미래를 보고 먼 훗날을 보고 앞으로의 시간을 내다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내 지역을 넓혀 주십시오..

사람은 이 같은 미래에 대한 꿈과 계획과 기대가 있어야 합니다. 이 같은 생각이나 마음 그리고 기대와 뜻이 있으면 기도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은 미래를 위해서 이런 기대나 꿈이나 소망을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기도하게 됩니다. 킬케골이라는 철학자는 사람으로 하여금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은 다름 아닌 “절망“이라고 했습니다. 절망은 비전이 없는 삶이고 기대도 꿈도 희망도 없는 삶을 말합니다. 사람에게 이 같은 기대나 비전이 없으면 희망도 없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때로 삶을 포기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두 아이를 강에 내다 버린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의 마음을 열어보면 분명 그 마음속에는 절망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입니다. 그 마음 어디에도 희망의 싹이라고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아이들을 강에 던져 버렸을 것입니다. 또 근래에 와서 자살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지난해에는 1만 3천명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어 삶을 포기했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어딜 봐도 희망이 없으니까 에라 모르겠다 하고 약을 먹고 불을 질러 죽고 철길에 떨어져 죽고 아파트에서 떨어져 죽었을 것입니다. 이 무소망이 문제입니다. 절망이 문제입니다. 내년은 경제가 더 어렵다고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지금 지레 겁을 먹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새해가 되었는데도 별로 반가운 것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이 기대와 믿음과 소망과 비전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은 미래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야베스는 꿈과 기대와 소망과 비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내게 복을 주시려면 내 지역을 넓혀 주십시오.” 이 꿈이 있으면 현재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모두 극복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살아가는데는 반드시 이 희망과 꿈과 비전과 기대와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야베스에게는 이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야베스는 그 꿈을 이루어 형제들 가운데서 가장 유력한 자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꿈과 기대와 비전이 있습니까. 씨를 심으면 반드시 싹이 나듯이 기대가 있는 사람은 반드시 뜻을 이루게 되어 있습니다. 새해에는 이런 꿈과 기대를 가지고 시작하시길 기원합니다.

기  도

10절을 보면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하고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지금 야베스가 처한 환경은 어려움과 고난과 힘든 환경이었습니다. 환경이 어려우면 살아가기가 참 힘듭니다. 배고픔의 고난, 열악한 환경에서 자랄 때의 아픔, 추위, 더위는 상당히 무섭습니다. 여러분, 자랄 때 방학이 얼마나 반가웠습니까. 여름방학, 겨울방학 얼마나 신나게 기다려집니까. 그런데 오늘 가난한 아이들은 방학이 두렵습니다. 방학이 되면 학교에서 먹던 점심을 굶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난은 그렇게 아픈 것입니다. 오늘 고시원, 하숙집, 셋방으로 전전하면서 살아가는 기댈 곳 없는 젊은이들은 남들의 평안함을 보게 되면 자신의 모습은 더욱 초라하게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삶에는 먼 훗날이 잘 안보입니다. 오늘 현재가 너무 힘겹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낙심하게 되고 도중에서 삶을 포기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야베스는 참 대견합니다. 그가 처한 환경은 열악하고 가난하고 고통스럽고 낙심의 요소들만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꿈이 있었고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야베스는 그때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를 도우사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소서”. 야베스는 환경을 탓하지 않고 꿈을 이루려고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신앙인에게는 이런 기도하는 복이 주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생각해 보면 참으로 굉장한 복입니다. 고아의 아버지라고 일컫는 조지 뮬러는 고아를 양육하다가 먹을 것이 떨어지면 얻으러 가지 않고 기도 굴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교섭하고 보조청원을 해야 하는데 그는 기도 굴로 들어갔습니다. 기도하고 나오면 먹을 것을 실은 마차가 왔다는 것입니다.  

어느 건축가의 아내는 남편이 집을 짓는데 지어놓은 집이 팔리지 않으면 남편은 아내에게 빨리 산에 갔다 오라고 안달했습니다. 그러면 아내는 짐을 싸들고 산으로 가서 기도했습니다. “집이 팔리게 하옵소서, 이 집이 팔려야 선교지에 보내던 선교비를 제때 보낼 수 있습니다. 팔리지 않으면 선교지에 보낼 돈이 없습니다, 그러면 모두 굶습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내려오면 집이 팔렸다고 합니다. 그 기도에 명분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매사 선교비 보낸다고 거짓말하고 기도하면 안 됩니다.

다윗은 어려울 때 마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기쁠 때 하나님께 기도했고 감사할 때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예수님도 가장 힘들 때 산으로 가서 기도하였습니다. 십자가 지기 전날 밤에도 산에 올라가 밤새 철야기도를 했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던 때도 먼저 산으로 올라가 40일 금식기도하고 사역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복이고 은혜이고 특권입니다. 어떤 때는 답답할 때 골방에 들어가 조용히 기도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조용히 들려오는 하나님의 격려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때는 조용히 기도해서는 시원찮을 때가 있습니다. 그 때는 산에 가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소리를 높여서 주여, 여호와여, 아버지여 하고 기도하면 마음이 시원해집니다. 자신감이 생겨납니다. 확신도 주어집니다. 우리들이 그렇게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기도할 수 있다는 것도 복입니다. 우리들이 어디 가서 누굴 붙잡고 그렇게 부르짖을 수 있습니까. 성경은 “네 입을 크게 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부르짖으면 응답하겠다는 메시지입니다. 야베스는 그 어려운 환경에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야베스가 그 상황에서 기도할 때 조용조용히 기도했겠습니까. 아마 그는 큰소리로 부르짖어 기도했을 것입니다.

어느 시부모가 며느리 자랑을 했습니다. 아들집에 가느라 미국엘 갔습니다. 며느리가 참 잘하더라고 합니다. 방문을 마치고 오는데 며느리가 편지 한통을 주면서 비행기 안에서 보라고 하더라고 합니다. 그래서 비행기를 타고 편지를 뜯어보니까 그렇게 써 있더라고 합니다. “저는 부모님을 만나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저희들을 찾아주셔서 저희들에게는 상당한 용기가 되었습니다, 부모님을 만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하고 써 있습니다. 그 며느리가 얼마나 사랑스러웠겠습니까. 그 며느리가 결혼 전에 결혼을 위해서 상당기간동안 기도했다고 합니다. 기도 내용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권사 시어머니가 아닌 집사 시어머니를 만나게 해 주시고, 둘째는 가슴이 넓은 남편을 만나게 해 주시고, 세 번째는 가능하면 미국에 가서 살게 해 주십시오“하고 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기도내용이 그대로 이루진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그 마음이 만족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 신앙인에게 이렇게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복이고 은혜입니다. 그래서 야베스는 지금 처한 환경을 원망하고 탓하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근심에서 벗어나 평안하게 해 주십시오.”이것이 희망과 꿈과 비전의 근거이고 소망입니다. 이것이 있는 사람은 오늘 살아가는데 문제가 없습니다. 다 이길 수가 있습니다. 장래를 바라보며 비전이 있고 꿈이 있고 기대가 있는 사람은 기도하게 됩니다. 새해는 여러분의 가슴에, 입술에 이 기도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응   답

야베스의 기도는 마침내 응답을 받습니다. 9절을 보면 “야베스는 그의 형제들보다 귀중한 자라”고 했습니다. 10절을 보면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하나님이 그로 하여금 응답하셔서 만족하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뜻과 기대를 이루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야베스는 아주 초라하던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형제들 가운데서 가장 귀중한 자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신앙인은 무엇보다도 이 응답받는 복을 받아야 합니다. 이사야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 나라를 걱정하면서 성전에서 뜨겁게 기도를 합니다. “이 백성을 기억하소서”. 그때 환상 속에서 하늘 문이 열립니다. 그리고 하늘 보좌가 나타납니다. 그 보좌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옷자락이 자신이 앉아있는 성전지붕을 덮은 것을 보았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그 뜻은 “걱정하지 마라, 내가 이렇게 지키고 있다" 그 말입니다. 그것이 응답의 생활입니다. 기도생활에는 이런 응답받는 생활이 주어져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한나라는 여인이 나옵니다. 이 여인은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성전에 나가 “나에게 아들을 주세요, 주시면 나실 인으로 바치겠습니다”하고 기도했습니다. 여기 나실인이라는 말은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나실인이 되면 평생 독주를 마시면 안 되고 몸에 병들어도 약을 먹어서도 안 됩니다. 그리고 죽은 시체를 보거나 만져도 안 됩니다. 그 말은 어머니가 죽어도 갈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한나는 그래도 내 몸으로 아이를 낳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절실하고 간절한 기도는 아이없는 부인이 아이를 달라고 기도하는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그 기도가 얼마나 간절하고 절실하겠습니까. 한나가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했으면 음성도 없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상태로 기도했겠습니까. 그러니까 엘리 제사장이 그 모습을 보고 오늘도 술 취했구나 하고 제발 술을 끊으라고 큰소리로 책망을 했을 정도입니다. 그때 한나의 심정을 이해한 엘리가 이렇게 말합니다.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17). 그러고 나서 얼마 있다가 아들 사무엘을 낳지 않습니까. 그것이 응답의 생활입니다.

이제 새해가 되었습니다. 새해에 우리 모두 야베스 처럼 분명한 꿈과 기대가 있어야 합니다. 환경을 탓하고 원망하고 현실만 바라보면 가지고 있던 꿈도 상실되기 쉽습니다. 현실만 보면 그 어디에도 희망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꿈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꿈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기대와 꿈을 갖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또 모든 기도에는 하나님이 이루어 주시는 응답의 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응답해 주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새해에는 이렇게 응답받고 꿈을 이루고 성취하며 살아가는 축복의 해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출처/이정익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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