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감을 가진 교사 (요21:15-17)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전에 우리 교회에 40대 초반의 부부가 등록을 하여 제가 그 가정을 심방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집에 들어가 보니 집안에는 고만 고만한 아이들이 열댓 명 모여 놀고 있었습니다. 집안에 웬 아이들이 이렇게 많은지 놀랐는데, 알고 보니 이 아이들은 고아들이 아니라 그 부부가 낳은 친자녀들이었습니다. 이들 부부가 계속해서 생기는 대로 연년생으로 애를 낳다보니 이렇게 아이들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요즘 보기 드문 특이한 가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때는 겨울인지라 날씨가 추웠음에도 불구하고 방안이 별로 따뜻하지 않았고, 아이들이 입고 있는 옷조차도 변변치를 못했습니다. 더구나 남편의 돈벌이가 신통치를 않아서 부인이 닥치는 대로 남의 집 허드레 일을 해서 생계를 꾸려나가는 어려운 형편이었기에 우리 교회가 도움을 주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 가정을 심방하며 저는 이 부부에게 묻고 싶은 말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부인이 건강했으면 이렇게 많은 아이들을 계속해서 낳을 수 있었는지? 그리고 지금 있는 아이들도 제대로 먹이지도 입히지도 못하면서 무슨 생각으로 아이를 그렇게 많이 낳았는지? 매우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차마 묻지 못하고 그 집을 나왔습니다.
남편의 몸은 좀 허약해 보였으나 그 부인이 남달리 아이 낳는 재주가 있는 것 같아보였고, 더구나 많은 아이들 때문에 근심하거나 불편해하는 기색이 없는 것을 보니 아이들을 기르는 즐거움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 가정이 그곳에서 오래 살지를 못하고 이사를 갔습니다. 아마 이사올 때 주인집에 아이들이 많다는 것을 숨기고 세를 얻었던 것 같습니다. 그후 이들 부부가 어디로 이사를 갔는지 소식을 알 수 없었습니다.
유명한 요한 웨슬레를 낳은 부모도 19명의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이들 중에 훌륭한 인물들이 많이 나온 것을 보면 참으로 웨슬레의 부모는 훌륭한 부모임에 틀림없습니다. 저는 아이를 낳은 부모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식을 낳기만 하면 저절로 사람이 되는 줄 알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람으로 만들어야 사람노릇을 하지 내버려두면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교육을 통해서 사람다운 사람이 됩니다.
오늘날 전세계는 교육의 위기가 왔다고 아우성입니다. 사람다운 사람을 만드는 교육에 실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어나 수학의 지식을 잘 가르쳐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을 만드는 교육인 줄 믿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이제 더 이상 자녀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곳은 교회와 예수님을 믿는 가정밖에는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교육은 하나님이 바라는 인간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우리의 자녀들을 하나님이 바라는 인간으로 만들겠습니까? 이제는 교회가 이 일에 책임을 져야할 줄 믿습니다. 더불어 예수 믿는 가정이 자신의 자녀들을 하나님이 바라시는 아이들로 키우는 일에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주일학교 교사들의 사명이 얼마나 큰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에베소서 4:11-12을 보면 좬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좭고 했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교사의 사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 하는 봉사가 다 귀한 것이지만, 특별히 교사의 직분을 맡으신 분들이야말로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철없는 아이들을 하나님이 바라시는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말씀으로 가르치고 기도하는 수고는 참으로 소중한 일입니다.
가장 훌륭한 교사는 예수님이십니다.
무덤에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하고 물으셨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답했습니다. 주님께서 “내 어린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다시 주님께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물으셨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답했습니다. 주님께서 “내 양을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세 번째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주님이 같은 질문을 세 번씩이나 반복하시자 베드로는 근심이 되어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답했습니다. 주님께서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주님께서 이렇게 같은 질문을 세 번씩이나 반복하여 말씀하셨을까요? 네가 정말 나를 사랑한다고 하면, 너만 잘 믿고 천국에 오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이 땅에 사는 동안 내 양들을 잘 돌봐달라고 부탁하시는, 어찌보면 안타까운 애원에 가까운 말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의 간절한 이 말씀은 베드로 한 사람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니라 저와 여러분에게도 똑같이 하시는 말씀인줄 믿습니다. 이는 이땅에서의 교회의 존폐가 가르치는 자들에게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이 바라는 사람을 만드는 일에 성공한다면 교회에 일군들이 많이 일어나 교회가 번창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교회가 하나님이 바라시는 사람을 만드는 일에 힘쓰지 않는다면 교회는 머지 않은 장래에 문을 닫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교사들이 얼마나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느냐에 따라 교회가 번창할 수도 있고 문을 닫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목사와 교사의 직분은 교회의 존폐를 좌우하는 커다란 책임을 지닌 소중한 직분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첫날 첫 시간에 교실에 들어오시자마자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다워야 사람이지”라고 큰 글씨로 칠판에 쓰시고 나서 소리내어 읽게 하셨습니다. 이 글은 아이들의 마음판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목표는 경기중학교”라고 쓰시고 이를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선생님은 부잣집 아이들을 따로 모아 과외도 하셨지만(그 시대에는 허용되었음), 빈부를 차별하지 아니하시고 저같이 공납금도 제때 내지 못하는 가난한 학생도 반장으로 임명해주셨습니다. 참으로 잊을 수 없는 좋은 선생님입니다.
중학교에 입학하였을 때 담임선생님은 수학선생님이셨습니다. 각 가정을 방문하시는 중에 저의 집도 가정방문을 오시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경기중학교는 우리나라 최고의 일류 중학교로 장관, 재벌, 사장 등등 내노라는 분들의 자제들이 많이 입학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판잣집에 사는 저를 보시고 너무나 기가 막히셨는지 큰 충격을 받으셨던 것 같습니다.
저는 장학생으로 장학금을 받아 분기별로 석 달에 한번씩 공납금을 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돈을 내러 서무실에 갔더니 이미 제 공납금이 내어져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월급이 그리 많지 않았던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시고 어렵게 사는 학생의 학비를 대신 내어주신 것입니다. 그외에도 얼마나 좋으신 선생님들이 많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참으로 훌륭한 교사는 교회에서 만났습니다. 친구의 전도로 교회에 나가보니 바로 그 친구의 형님이 주일학교 교사셨습니다. 서울대학에 재학중인 학생으로 얼마나 겸손하고 점잖고 성실한 분인지, 무엇보다도 성령충만한 모습으로 성품 또한 얼마나 좋으셨든지 어린 제 마음에도 목사님보다도 더 훌륭해 보였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처음부터 제게 이런 성령충만하고 훌륭한 선생님을 붙여주시므로 해서 하나님이 바라시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셨습니다. 그 선생님을 통해 교육받은 아이들은 모두가 다 공부도 열심히 했고 나중에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이 되었으며, 사회적으로도 얼마나 훌륭한 인물들이 많이 나왔는지 모릅니다. 그 선생님의 가정은 6남매로 어머니가 훌륭하신 전도사님이셨는데, 그의 형제들이 하나같이 교회적으로나 사회적으로도 존경받는 훌륭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교회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하나님께서 훌륭한 교사를 붙여주시는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성경을 보면, 가장 훌륭한 교사는 예수님이셨습니다. 사람들은 그 예수님을 랍비라고 불렀습니다. 랍비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존경받는 선생님을 부르는 호칭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는 자격이 없으면서 랍비라 칭함을 받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의 행위는 본받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말만 뻔지르르하게 했지 도무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 말씀대로 살면서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5:19에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말만하고 행함이 없는 사람들로 심지어 천국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자신들보다 배나 더 지옥자식이 되게 하는 고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더러운 것으로 가득한 회칠한 무덤과 같았기에 예수님으로부터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는 무서운 책망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을뿐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라는 권면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딤전 4;12).
그렇습니다! 훌륭한 교사는 잘 가르치기 이전에 아이들에게 본을 보이는 좋은 교사입니다. 아이들은 어떤 선생님을 만나느냐에 얼마나 큰 영향을 받는지 모릅니다. 만약 선생님이 눈을 자주 깜빡거리면 아이들 전체가 영향을 받아 눈을 깜빡거립니다. 또 앉았을 때 다리를 점잖지 못하게 후둘 후둘 떠는 선생님을 만나면 그 모습도 그대로 따라합니다. 아이들은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도 모르고 그저 재미삼아 흉내를 내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 목사님은 축구 야구를 비롯한 운동경기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주일예배를 끝내고 점심식사 후에는 으례이 사찰 집사님 사택에 들어가 TV로 중계되는 운동경기를 구경한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장로님 집사님까지 슬금슬금 모여 저녁 예배시간이 될 때까지 보게 되었습니다. 어느새 교인들이 담임목사님을 닮아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또 어느 날은 마지막 끝내기 경기를 보기 위해 정작 저녁예배가 늦어지기도 하고, 저녁에 큰 경기가 있는 날은 예배시간을 단축하겠으니 저녁 예배에 빠지지 말고 다 나오라는 광고까지 있다고 합니다. 이럴 경우 저녁예배가 형식적인 예배가 되기 쉽습니다.
모범적인 교사는 본을 보여주는 교사입니다. 아이들에게 예배의 좋은 교훈을 주려고 하면 먼저 교사 자신이 예배의 본을 보여야 합니다. 기도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에 힘쓰는 것은 물론 기도를 통해 어떤 응답을 받았고 어떻게 축복을 받았는지 간증하면 아이들에게 기도하라고 하지 않아도 열심히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 봉사도, 헌금생활도 본을 보여줘야 합니다. 선생님은 하나님 앞에 이렇게 십일조를 드리고, 선교비는 이렇게 하고 구제비는 이렇게 한단다. 그러니 너희들도 이렇게 하라고 일러주면 저절로 따라하게 될 것입니다. 전도도 성경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주일학교 교사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입니다. 어떤 분이 그가 출석하는 교회를 방문하고 쓴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지미 카터가 출석하는 교회는 미국의 애틀랜타공항에서 자동차로 3시간 정도 떨어진 작은 농촌마을인 플레인스로 인구 700여명 정도의 아주 작은 마을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지미 카터는 아무리 바빠도 주일이면 어김없이 이곳을 찾아 성실하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였다고 합니다. 사실 이분처럼 바쁜 사람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이 한 사람이 사명감을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쳤으니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영광을 받으셨겠습니까?
이곳을 방문한 어떤 사람이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대통령의 고향에 찾아오신 분을 환영합니다.’라는 입간판을 보는 순간 이곳이 세계의 눈길이 모아지는 범상치 않은 곳임을 실감케 했다. 지난 달 28일 오전 10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81년부터 출석하고 있는 마라나타 침례교회의 주일학교에 참석했다. 이날 예배당에는 20대에서 80대까지 300여명의 사람들로 꽉 채워졌다. 그동안 80여 개국 이상의 나라에서 이 교회의 주일학교를 찾았다고 교회측에서 설명했다. 사전에 교회측에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입장할 때 박수를 치지 말라고 광고했지만 너나할것없이 그의 얼굴이 보이자마자 박수를 치고 말았다.”
저는 우리교회 교사들도 지미 카터와 같이 사명감을 가지고 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일도 중요하지만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어린 양떼들을 돌보며 하나님이 바라시는 인물로 만드는 일을 귀하게 여기고 충성하는 교사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 교회 안에 봉사의 일이 많이 있지만 특별히 하나님이 바라시는 인간을 만드는 교사 일에 충성하는 모든 주일학교 선생님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성도들 또한 교사들을 위해 기도하며 감사하며 격려하며 협력해 줄 수 있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장차 이 교회와 이 민족 앞에 큰 인물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출처/정필도목사 설교 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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