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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길 (왕상 3:3-13)

by 【고동엽】 2022. 9. 22.

 솔로몬의 길   (왕상 3:3-13)  

교육,  교육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이희승  사전에는 "가르치어 길음이라. 가르치어 지식을 준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숙한 사람이 아직 성숙하지 못한 사람에게 심신의  모든 성능을 발육시킬 목적으로 일정한 방법에 의하여  일정한  기간동안  계속하여 미치는  영향을  교육이라 하고 있습니다. 생활을 발전시키며 인격을 형성하는 인간의 육성과정이 교육의 목적이고 그 뜻인  것입니다.  

오늘  이 사회가 이렇게 교육에 엄청난 비용을  들이고 모든 개인가정  전체의 힘을 모아서 교육에 온정성과  국력을  쏟지마는 오늘의 교육이 이렇게  사회의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임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교육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아리스토텔레스는 국가의 운명은 청년의 교육에  달려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교육이어야  하느냐? 이제 말하는 대로  인간의 육성과정이  바로  교육이냐,  무엇을 가르치느냐? 지식을 주는 것만이  교육이냐, 하나의 기술자로 하나의 전문가로 기르기  위해서 우리가 교육을  시키느냐?   유대인의 교육은  그렇지 않습니다. 탈무드에는  유대에는  유대의  교육의 목적은 교육이 지식이  목적이 아니고 지혜가  목적입니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지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육을 시키는  장소가 가정과 사회와  국가라고 하는 이러한  울타리 속에서 공부를 하는데  유대인의 교육, 유대인의 가정교육, 학교교육,  사회국가교육은  지혜에  있습니다.    

  사람은 지혜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지혜가 얼마나 하다고  했습니까?  
오늘 교독문에도 읽어드린대로 지혜가 귀합니다. 잠언  3장 13장에서부터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느니라.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좌편 손에는 무기가 있나니 그 길을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   지혜는 그   얻는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다 복되도다.   그러면 우리교육의 효과, 모든 교육을 다 마쳐서  우리가 무엇을 얻습니까?  지혜를 얻는 것과 비교할 수 있습니까? 지혜는 장수도 있고 부귀도 있고 생명도  있고 모든 영광과 축복이  지혜를 통해서 온다고  했습니다.  

   오늘의 가정교육에는 사회교육이나 모든 학교교육이 지혜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지혜는 중요하게 다루지를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다 교육을 받는데도 본인도 사회도 고통을을 당하고있습니다. 많은   어려움을 받고 있는 것이지요.  

  잠언 1장 7절에는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말했습니다.  지식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을 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무슨 필요냐?" 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사람을  창조하신 분을 만나야 되고 그  품안에 안기어야 그분을  알아야  모든 것을 앎니다. 그분을 알기 전에는 나를 알 수가 없습니다.  인생이라고 하는 이 문제는 지식으로 인한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만남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근본이란 이 히브리어  말은 출발점이라는  말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인생의 출발점, 교육의 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과학의  출발점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그 과학이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사람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정치의 출발점도,  왜 정치합니까? 왜 이번에 나오셨어요? 하나님께서  나를 불렀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출발점이 여호와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출발점이  없습니다.  개인도 정치도 교육도 경제도 출발점이  없습니다. 그냥 붕 떠있습니다. 자기의 뿌리가 없습니다. 근거가 없습니다. 기초가 없습니다. 그래서 출발점이 있다면 내가 출발이요.

  내가 하고  싶어서 이거 했고 내가 결정합니다. 그러니깐 내가 무너지면  다 무너져, 내가 무너지면 정치도 무너지는 겁니다. 내가 무너져도 하나님의  가정은 나아가야 하고  내가 무너져도 정치는 바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현대인들은 내가  출발점이고  내가  주인이고 내가 안되면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성경은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식의 근본이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출발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그  길을 인도하시지요.  인간은 연약합니다.  부족합니다.

  오늘우리 찬송가 불러주신대로 내 진정 사모하는 친구가 되시고, 내  길을 인도하실 때 천지만물을  지으신 절대자가 우리의  길을  인도하실  때 우리가 낙심하지  않고  실족하지 않고 이 세상 모든 어려움에 우리는 승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솔로몬이 가는 길을 따라갑시다. 솔로몬은 어떤 길이였습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면 안돼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모든  것을 얻었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함으로 출발하여 그의 나라는  복을 받았습니다.

  솔로몬 시대에  이스라엘은 군사 강대국이  되었고 경제  강대국이  되었습니다. 경제와 군사를  다 잡고 있었습니다.  열왕기상 4장에 보면 솔로몬이 사는 동안  유다와  이스라엘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아래서 안연히 살았더라.  단에서 브엘세바라고  하는  것은 이스라엘 제일 북쪽을  단이라고 하고 남쪽을  다네셀이라고 합니다.  브엘세바 밑에는 살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거기는 사막이에요, 또 단  위에는 못살아요 단 위에는 단지파가 열두지파가 제일 북쪽지역을 맡았어요. 단   위에는 그 헐몬산이라는  그  산밖에 없어요.
레바론 그쪽밖에 없어요, 그래서 단이 제일 끝이고 부엘세바가 끝이에요.  

  우리나라는 백두산에서 한라산이 끝이죠. 물론 끝에 조금 더 있어도 그렇게 말 안하지요. 백두산  한라산 보면 다 들어가는 거예요. 브엘세바 밑에 한두 명이 살아도 그것은 치는 것이 아니예요 그냥  브엘세바 하면  그게 다예요.  이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화가 나무 아래와 포도나무 아래서 안연히  알았더라 경제적인 안정, 정치적인 안정이 도대체  누구로부터 옵니까?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높일 때에  온다는 거예요. 솔로몬이 그러면 자기는 안돼느냐? 얼마나 축복을 받았는지요. 솔로몬 왕의 지혜와 부가 천하 열 왕보다도 큰지라 천하가 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신 그 지혜와 그 얼굴을 보기 위하여  각기 예물을 가지고 왔으니  곧 은그릇과 금그릇과 은  옷과 갑옷과 향유와 말과 노새라 해마다 정한 수가 없었더라. 솔로몬 시대에 백향목을 뽕나무 같이  쓰고 은을 돌같이 흔하게  쓰더라. 은이 돌이야. 금이 얼마나 많은지 전부  군인들이 쓰는 방패도 다 금으로 만들었어요. 그러니  얼마나 부유함을  얻었습니까? 축복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지식으로 얻는 것입니까? 오늘 우리가 엄청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점점  우리의 먹을 것 찾기에  급급해지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여  지혜를 얻는 자에게는  위로부터 하늘  문이 열리어  질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축복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모든 출발점을 하나님께로부터 출발해야합니다.  현대인들의 가정이 왜 무너집니까? 사랑을  나에게서부터 출발합니다. 내 사랑이 끊어지면 집도  끊어지고 너와 나와의  만남이 끊어지는 거예요.  하나님과 손잡고 영원히. 새롭게 하시는 사랑의 자원을  공급받을  것을  벗어버리고 내 혼자 사랑하려고  하기 때문에  현대인의  사랑은 속히도  메마르고  속히도 끊어지고  핍절하게  되는 것입니다.  

  과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명한 근대 과학의  기초 아버지라고 하는 코페르니쿠스는 얼마나 신앙적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는 태양이 지구를 돈다는  천동설을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다는 지동설로 바꾼  몇 천년 동안의 인간의  생각과 인간의 지식을  바꾸어 놓은 분입니다.   이 분에 의해서 갈릴레이가 나왔고 그 이후로 뉴턴이나  예를 들면 아인슈타인 이런  위대한 과학자들이 그  뒤를 잇는 것입니다.  갈릴레이는 어떤  삶이  었습니까?  지식으로 이걸 많이  배워서 이걸  배운  것입니까? 아닙니다. 갈릴레이는  여호와를 참 경외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우주는 가장 선하시며 질서  정연하신 창조주의께서 우리를 위해 만드셨다 라고  창조자를 믿으며 창조자를  경외하며 섬기어 이  놀라운 지혜의 눈이 열리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의 묘비에는 이렇게 씌어져 있습니다.  "주님 저는 베드로에게 주신  은혜나 바울에게 주신  은혜를 고하지 않습니다. 다만 십자가의 곁에 매어 달린 강도의 은혜를 구합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강도와 같이 나는 잘못한  죄인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주님과 함께 낙원에 이르게 해달라고 하는  이런 신앙의   사람, 이렇게 주님을 철저하게 믿고  높이고 자기를 죄인으로  아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위대한 일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우상 숭배하는  것은  다릅니다. 우상은 이기적인 목적으로 나아갑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자기  유익으로  나아갑니다  우상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우상을 찬양하고 우상을  경배하고 우상을 받들기  위해서 우상을 만드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수 천년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우상을 만들어  섬겼지만 목적은 다 다섯 가지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이에요. 넘는 것이  거의 없어요.

  잘살고, 건강하고,  자식 잘되고, 남편 잘되고, 복받고. 이거예요. 다 모두 그런 목적으로 우상을  숭배해 가지고 내가 뭐 양심대로 살려고 인격대로  살고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살려고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인류의 조상들이  오늘날까지  섬긴 우상은 다 그런  개인적인 이기적인 목적이에요.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전지전능하신 창조자를 영화롭게 하고 기쁘시게 하고 찬양과 기도와 경배로  그의 이름의 높이기 위해서  우리는 주님 앞에 나오는 줄로 믿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모를 때에는 그래   나와도 설령, 아들 때문에 나오고  건강 때문에 나왔을 지라도  그 생각은 바꾸는  것입니다. 당신을 알고 당신의 그 능력 앞에서 내 어리석은 생각을  회개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화롭게  하는 그 자세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믿으며 그를 기쁘시게 하고 또 그에게서 받은 은혜를 받아 좋은 성품을 가지고  인품을 가지고 무엇보다도 물질이나 땅에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는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을 받아서  내 인격이 새로워지고 성격이 새로워지고  우리의 용기와 자신과 소망을 가질 수 있고 인류를 위해서  봉사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서 우리의 삶을 보람되게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 나오는 목적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이렇게 묻는 것은 꼭 은혜되서 묻는 것이 아니고 잠깨라! 이제 그런 말이예요. 혹시 조는 분 계시면,  그럴 때는 졸던  분이 빨리  아멘 대답해야되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솔로몬은  하나님을 잘 경외하는  분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본문을 다같이 한번, 열왕기상 3장 3절을 다같이 한 번 보겠습니다.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부친 다윗의 법도를 행하매, 오히려 산간에서 제사하며  분양하더라. 이에  솔로몬은 첫째여호와를  사랑했다고 했어요. 여호와의  이름을 여호와의 계신 곳을  여호와의 영광을 여호와의  그 보좌를 바라보며 그  보좌를 향하여 솔로몬은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우리가 누구를  사랑하고 무엇을 먼저 사랑해야  합니까? 우리가 솔로몬 같이 나라도 잘되고 나  자신도 잘되는 길은 첫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거예요. 두번째는 부친 다윗의  법도를 행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부친  다윗의 법도를 행하게 했습니다.

  저를 잘  보세요. 사람이 다 성공하면 다 자기만 잘라고 자기만 다 아는 줄로 아는   분들이  많습니다.  착하다가도 올라가면 교만해지고 강팍해지고 겸손하다가도 잘만 되면, 성공하면, 뭔가 잡으면 안하무인으로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솔로몬은 그런 사람이 아니였어요. 왕이 되면서 자기보다는  자기  아버지를 더 크게 보는  거예요. 우리 아버지가 믿었던  우리 하나님 우리 아버지  걸어온 길이 얼마나  훌륭하신 지 아버지를 본받고  존경했어요. 오늘 많은 사람들이 선배를 무시하고  어른을 무시하고 부모를  무시하고  전임자를  무시하고 오늘 얼마나 이 사회가 자기 자신 이외에는 모든 것을 인정하지 아니하는  이런 시대를 우리가  맞이했습니다. 열왕기상 2장 3절에 보면은 다윗이  솔로몬을 향하여 분부한  하나님의 계명을 솔로몬은 잘 지켰어요. 여호와의 말을 지켜 그 길로 행하며 율법과 그 계명과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증거한대로  지켜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형통하리라고 그  부왕 다윗이 솔로몬에게  일러주었습니다.  아버지의 가르침을  귀히 여기고 아버지를 존경하고 아버지를 따라가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복 주시고  그자신도 행복하고 그  집도 잘되는 것입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결혼하고 살림꾸미면 전부  새것 지것만 갖다놓고  부모가 남겨 준 것은 전혀  무시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여러분 우리 방안에  부모님이  남겨주신  가구들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정신을  마음에 품어야되고 부모님이 걸어온 길을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되고 부모님을  휼륭하게  보고 부모님이  가졌던  소유를 소중히  여기면서  가정에 이어 내려가야 합니다. 우리는 혈통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그 가문에 하나님 주신  축복을 이어가는  가정이  되어야 그 나라가 잘되고 그 가정이 귀한 것입니다.

  저도 우리 아버님이 가지신 것, 요만한  것 하나라도 가지려고 제가  너무너무 그랬는데 서울  올라오실 때 몽땅 다 팔아 버렸어요. 하나도  안 가졌어요. 애가 뭐 이런 거 필요하겠냐. 저는 항아리 하나라도 가지려고 했어요. 시골 가서 혹시라도 남은 거 있나보니깐 없어요.  너무너무 안타까웠어요. 갖고  싶어요. 내가 어찌 잘날 수 있어요. 내가 어찌  모든 것을 잘할 수 있어요?  아버지는 다 잘못하고 나만 잘할 수  있어요?  전임자는 다 못하고. 나만  잘할 수 있어요?  

  우리는 이걸 고쳐야 합니다  우리는 권력만 하나만 잡으면 전임자를 먼저  죽입니다. 전임자를  죽여야 내가 살기 때문에. 그래서 전에도  대통령을  해외로 쫓아 버렸고 그 다음 죽여 버렸고, 백담사로  쫓아버렸고 지금은 또 어디로 쫓아  버렸습니다.
몇 년 동안 모든  하는 일이  모든 것을  동원해서  전임자를 향해 포문을 열고  공격하고 그 나쁘다고  이야기해버리고 그거 이야기하다가 다 끝나는   거예요. 지금 똑같이 그런 일이 벌어지잖아요.   지금 입후보한 후보들 다 똑같이 그러잖아요.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보완을 해야지...  이제는 우리가  여기에서 머물러  있어서 강물처럼 흘러가는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온 국민이 증오하고 미워하고 이것을 언제까지 계속하려고 합니까

  가정이든 사회든  국가든 그렇게 살면 안됩니다. 다 지나놓고  보면  부족합니다.
그래서 영원히 부모는 부족하고 영원히 지도자는 부족합니다.

  그래서 논문을 쓸때 어떻게 씁니까?  다  되었다고 논문을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내가 이  정도밖에 연구를 못했기 때문에  이 다음 사람이 또 다른  분야로 발전하기를 요구하도록 겸손하게 실어야  합니다.  "나 이외에는  알파요. 오메가니 천하에 손을  대면 안되니라..." 그런 논문을 쓰면 안됩니다. 모든  논문은  부족하고, 모든  발걸음은  부족하기 때문에 그 발걸음을  이어 가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전임자는 다  부족합니다. 그러나 좋은 것을  들춰내서 박수를 해주고  잘한 것 을 축하해 주는 것이  후임자의 할 일임을 믿습니다.   우리는 이제 여기에서 솔로몬의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여로보암의 길로 가서는 안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켜야 합니다. 우리 아버지가 섬긴 하나님을 나도 잘 섬겨야 합니다. 가정은 만대의 축복이  임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고 다스리시는 절대자이십니다. 절대자, 창조자의 법이 있어요. 나라마다 법이 있듯이  하나님의 법이 있습니다. 그것을 율법이라 하고 그 율법 가운데 십계명을 우리가  외워서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적어도  십계명을  지키면 전체 율법을 지키는  이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 계명을 옛날 법이라고  무시하면 안   됩니다. 지금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나라의 법을   안 지키는 분을 위해서, 나라에선 그 법을 집행하는 그런  사람을 두어 감독하게 하고 구속하게  하는 것이지요.   하나님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의 법을 만들어  놓고 안 지키는 분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세상 모든  장애물들을  다  동원하시고 이 모든 만물을 하나님 사용하셔서 그 길을  막습니다.   이 땅의 질병이라는 것 얼마나 많이 있기 때문에 이 질병을 하나님께서는 파송해서  이 많은 사고 이 많은 재난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떠나가는 이를  막습니다.
또 하나님이 뿌리는 천사가 얼마나  많은데요. 천사를 보내 반드시  구속시키고 그래서 어떤  학자가 말하기를 "세상의 법망은 피할 수 있어도 하나님의 법망은 못 피한다." 라고 말합니다. 바다의 그물을 피하는 고기는  있어도 하나님의 법망은 피할 수가 없어요. 우리는   하나님 뜻대로, 법대로  순종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축복이예요.  안식일은  왜  지킵니까?

  주일을 왜 지킵니까?  복받고 은혜받기 위해서  지킵니까. 그것은 셋째, 네째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지키라고 명령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었으니까  이제  아버지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날을  지킨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은  세상의 법보다 더 중요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이  안식일을 높이 올려놓고 건들지  말아야 합니다. 조금 바쁘다고 안 나가서는 안됩니다.

  그 전에 우리 집에서  보면, 좋은 것은  우리 부모님이 그 안에 담아서 함속에 올려 놓습니다.  그 올린걸 '선반'이라고 하지요. 중요한건 거기 올려놓습니다. 아이들이  못 꺼내게
하려고.. 그러나, 어머니 아버지가 나가시면 올라갑니다.  동생을 엎드려 놓고도  올라갑니다. 화상도 있고,과일도 있고..  적어도 주일을 그런데 올려놓고 꺼내먹도록 해야 합니다. 여호아의 날을 높은 곳에 두어야 합니다. 이 날은  땅의 사람의 날이 아니라  하나님의 날, 여호와의 날입니다.왕의 날이 아니라  전능하신 창조주의 날입니다.  우리 인간은 그와 만나야  합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은 창조자를 만나지 않아서  이렇게  허무하고  절망가운데 빠져 있습니다. 우리 행복이 어찌 행복입니까?  아니지요.   우리 해외 입양가 있는 많은 아이들이 잘 살고 잘 먹지고 타락하고 인생을 절망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를 나은 자를 못 만나는 괴로움은 아무 것으로도  채울 수가 없습니다.   주일을 건드리면  안됩니다. 지난 중에도 모집사님 테니스치러 교회 안  나오고 테니스치러 가 있어요.   건강이  어디  사람에게서 옵니까  하나님에게서  오지. 그대로 심장마비로 직사했어요.  주일날 교회 안나오고 차 몰고 가다가  사고납니다.

  주일날 교회 안 나오고 스키타러 교회갔다가 아직까지 휠체어로 교회  나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하면..  하나님의 천사가 스키장에도 다 있습니다.

  주일날 어떤 교인은 낚시하러 갔다가 교통사고  만났어요.  교통사고 만나서

낚시를 던진 오른손을  다쳤어요. 기부스를 했는대,  가는 사람마다 기도  못하고 웃는 거에요.  하나님께서 몇 달동안 완전히 계명을 어기고  주일날 낚시하러  가는거, 늘 자신이 보면서 깨닫게  되는 거에요.   성경은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기본으로 가서 왕이 된 다음에 하나님앞에 일천번제를 쌓았습니다. 소 한  마리를 하나님께 드리는 일도  대단한 일인데, 일천마리를  하나님앞에  정성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솔로몬의 길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왕이 된 다음에  하나님에게 드리는 제사를  기본으로 한 겁니다.

  예배는 정성을 다해 드려야 합니다.   쉽게 예배를 드릴 수는 없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정한  장소로 가야합니다. 왕이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예배는 집에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정한 장소로 가야합니다.  TV 보고 드리는  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예배는 몸과 마음과 시간과 정성까지 드려야  합니다. 어려워도  하나님이  정한 장소로 기본으로 가서  하나님 앞에 일천번제를  쌓을 때 하나님이  솔로몬을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우리의 축복은 예배를 통해 옵니다.   하나님 앞에 바쳐지는  것이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받으시고  솔로몬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천번제를 다 받으신  다음에 솔로몬에게 "네 소원이 뭐냐".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정성을 다해 드리세요. 하나님의 응답이 올  줄로 믿습니다.  '내 소원이 뭐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솔로몬은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서 '내 소원이 뭐냐'라고 말씀하실   때 그는 겸손했습니다.  "내 아버지를 복 주신  여호와여, 내게도 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나는 어린아이입니다.  나는 왕이지만  이렇게  어립니다. 이 많은  백성을 인도할 자신이 없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은혜를 내려 달라고,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리로 돌아갑니다.   여러분 기도나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는 자세는 솔로몬같이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국가의 평안이요, 개인의 평안입니다. 내가  어리다고  부족하다고 생각해야 늘 우리가  성공하고 잘  될 줄로  믿습니다. 앞으로 이  나라의 대통령은 어떤 분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겸손한  분을 뽑아야 됩니다.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분을  뽑아야 합니다. 그래야  대통령이 된 다음에 안  휘젓습니다 .하나 하나를 겸손하게 할 때, 복은 사람에게로 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거예요.  한 가정의 문패에는 부족한  집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내 잘못이라는 문패가 걸려있는 집이 있습니다.  한 집은 전쟁의 집입니다. 그 문패가 교만의 집으로  되어있습니다. 내가  잘났다라는 겁니다. 집안에 들어갔습니다.
행복한집, 내가 부족한  집에  들어갔더니 얼마나 행복하고 웃고  감사하며 사랑하는지요.  며느리가 와서 물을 딱 부으니깐 물을  떨어뜨리니깐, '아이고, 시아버님'  '아이고 애야, 내 잘못이다 내가 가서 먹으면 되는데'  시어머니께서 '아니다.내 잘못이다. 아가야,내가 가면 되는데, 애야  나 때문이다' 모두가 부족해요. 이 집은 다 부족한 분들 이였어요.  그러나 전쟁이  일어나는 집, 그 집은  어떤 집이에요? 전부 내 잘하고 니 못한다고 무너뜨렸는데,  그 문이 없어, 그럴 수 있냐? 이래 가지고 온 가정이 날마다 날마다,  잘난 집은 날마다  전쟁이  일어나고 못난 집은 날마다  날마다 사랑이 넘치고 행복한  거예요. 딸을 아직도 결혼시키지  못한 분은 꼭 기억하세요. 딸을 어디에 보내야 하는지 알아요? 한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교만한 집에 보내면 안됩니다. 부잣집에 보내 가지고  아주 어마어마하게 잘사는 그런 집으로 보내지 마세요  그거는 그날부터 가서  죽는 거예요. 그날부터 그 집에 가서 걸리는 거예요.  어른들이 먹으면서 '애야 너는, 너희 집엔  이런 거 없지?' 그래봐요. 이건 안돼는 겁니다. 누구든지 그 애를 낮추어 보는 거예요. 전부다 그 애를  하인같이 보는 거예요.  그런 집에 가서 어떻게 가서  살라고 보내는 겁니까? 또 큰집을 밤마다 지킬래면 귀신  나옵니다. 안됩니다  그런거는요. 잘난 집으로 보내면 안됩니다.  시집을  보낼 때 귀하게 여기는  집으로 보내요. "아휴, 우리 집은 너무 부족한데 귀한 네가 왔구나. 너 우리  집에 와서 고생하겠구나. 그건 내가 할께.' 물론 우리 집에도 며느리  오면 제가  꼭 그렇게 할겁니다.  '아 참 나는 네가 고맙다. 착하다 그건 내가 할게.  내가 밥해줄께.'우리가 부족한 집이여야 그 집이 행복한 거예요. 사람이 올라가고 한사람을 낮추는 그 집은 한사람만 낮추어 지는  것이 아니고 그 집 전체의 아픔이고 전체가 불안이  되는 거예요.

  오늘 우리나라 전체가 고통을 당하고 어려운  이유는 간단합니다.  전부 내 잘났다는 겁니다. 못난 사람이 이  나라에 한  명도 없습니다. 전부다 내 모든 걸  주장하려는데  문제가 있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구할 것은  언제나 지혜입니다. 여호와여 저는 부족합니다. 제게 지혜를 주시옵소서. 이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그렇습니다. 지혜는 있는 사람은 잘 다스립니다. 지혜 있는 자의 길은  멸망과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지혜가 다 그걸 이겨내고 막아내고 감당하고 예비하는 것입니다. 슬기롭고 지혜 있는 다섯 처녀가  주님을  맞이하듯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하나님 나라 지혜인 줄로 믿습니다.

  솔로몬은 부귀 영광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원수의 생명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혜를 구하는 사람에게는  다 주겠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지혜인 것입니다. 오늘 이 나라 많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권력만  구하고 명예만  구하고 있습니다. 그보다 몇 만배 귀한 것이 지혜입니다. 지혜보다  더 귀한 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에 가면 양 가운데 스프링 복이라는 양이  있습니다. 이 양은 오늘날까지  번성하지 못합니다.   이 양은 조금 번성했다가는 몰락하고 조금 번성했다가는  몰락하고 합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하면  조금 번성하기 시작하면 초원에서 풀을  뜯습니다.   한 마리가 가서 다 풀을 뜯으면 곧 뒤에 있는 양들이 '아이고 내가 앞서가야지' 하고 앞서가서 풀을  뜯습니다. 그러면 또 앞서깁니다. 나중에는요 풀 뜯지도 못하고 한 번 뜯고  앞서가기 때문에 또  앞서가고 놓치면 안되기 때문에  또 뛰어갑니다. 나중에는  한 번도 뜯지도 못하고  네앞에 뛰나  내앞에 뛰나  막 뛰다가 전부 뛰어  가다가 오백마리가 낭떠러지에 떨어집니다. 다 죽는 거예요.  그리고 병든 몇 마리가 남아 가지고 또 7년, 10년

지나 가지고 또 무리를 이루면 또 뛰어가고  몰락하고 그러는   거예요. 오늘 이 세상에 욕심을  가지고 무엇을 먹을까?  남보다 앞서려고 이렇게 나아가는 경쟁은 꼭 다 침몰하고 맙니다. 우리 나라  경제 문제도 여기에 있습니다. 대기업들이 전체 혼자서  다 가지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문어발이라고 하잖아요? 전부다 수백 개의  발로 잡으려고 하는 거예요. 다 잡으려고 해요  우유고 뭐고.  

  내가 몇 일전 신문에  보니깐  유통시장이  네개가 다 점령을  해 가지고  한 회사가 일년에 2조원씩 하겠다고, '아 그러면 이 나라  끝나겠구나.'  마지막 이런 소매 이런 것은 일반 사람들에게 맡겨야하는 건데, 방방곡곡 전부 저렇게 해버리면, 적은 시장은 작은 시장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  우리 나라 대기업은 혼자서 다해 먹으려고,  다하려고 그러는 거예요.  전 세계 제일  큰 회사가  여러분, 코카콜라 회사입니다. 코카콜라보다 더 큰  회사는 지상에 없습니다.

  우리 나라 대기업 다해도 한 회사 몇 백개 해도 이  회사 못 따라옵니다.  어마어마한 이 코카콜라회사가  여러개를 해서 된 것이 아닙니다. 코카콜라건설이  있는 게 아니예요, 코카콜라정유가 있는 게 아니에요, 코카콜라우유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코카콜라는  코카콜라 하나만 하는  거예요. 그런데 보세요. 세계를 지배합니다.   보세요 우리 나라. 나는 이번에 자동차도 이래  보면서 아니, 있는 자동차를 두고 안 뛰어들면 되는 거예요. 전부 대기업이예요. 한 나라 미국도 자동차 회사가 몇 개  없는데, 작은 나라가 자동차를 다  하겠대요. 자동차가 안되지요. 제철회사, 포항  제철회사 있으면 그만 두어야지  또 뛰어들어요.  제철, 제철, 소철, 소철   전부다 하는 거예요, 전부다.  다 잡을 려고 하는 거예요.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 거예요.

  이사야 5장   8절에 보면 가옥에 가옥을 연하며, 정토에 정토를 다하여  빈틈이 없도록 하며 이 땅  안에서 홀로 거하려는 그들은  화가   있을 지언져.    누구든지  혼자  다하려고 하면   화예요.  하나님께    심판 받는 거예요. 하나님 이외에는 다 잡으려고  해서는 안돼는 거예요. 저보고, 교회도 그렇습니다, 명성교회도 새로 짓겠느냐고, 안 짓습니다. 이거 뜯고 다시 지으라고. 무슨 소리냐고.  우리교회는 여기에 주신 이  은혜만으로도 족합니다.   여기에 못 오는 분은 또 다른 교회로 가고 다같이 사는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또 나누어주면서 나  혼자 행복  나 혼자 만족 내 혼자 부유함은 안됩니다.   우리 합께 웃으며 살아가는  이 솔로몬의 시대가 이 나라에 오기를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 경외하는 마음을  주시고  하나님을 최고로 알고 그 앞에 엎드려 기도하며 그에게  지혜를 구하는 우리 복된 성도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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