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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자료실 종합모음

아이성의 싸움 (수7:1-7)

by 【고동엽】 2022. 9. 20.

 아이성의 싸움  (수7:1-7)

오늘은 아이성 싸움에서의 실패에 대하여 생각하고자 한다. 본문의 아이성은 높다란 산꼭대기에 있었다. 따라서 이 아이성을 점령해야 가나안 전체를 보면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그러니까 아이성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우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이다. 우리가 아는 대로 여리고 성은 큰 성이요, 매우 튼튼한 성이다. 이에 비해서 아이성은 작다. 영어 발음 그대로 아이는 Child, 그러니까 작은 성이요, 보잘것없는 아이와 같은 성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싸움에서는 성공을 거두었으나 아이성 싸움에서는 참패를 하고 말았습니다. 본문 말씀 중심해서 이스라엘이 왜 실패했는가를 두 가지 내용으로 살피려고 한다.

첫째 실패의 원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상상치 못했던 어이없는 실패의 원인이 무엇인가? 본문에서 보면 알 수 없는 그 한 사람의 범죄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 장본인이 과연 누구일까? 아간이다. 여호수아는 19절에서 보면 "네 행한 일을 내게 고하라" 다시 말하면 "네 죄를 상세하게 내게 고백하라"고 아간에게 말했다. 아간이 범죄의 사실을 토설하는 내용이 21절이다.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 중의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취하였나이다 보소서 이제 그 물건들을 내 장막 가운데 땅속에 감추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나이다"라는 고백이다.
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고 했다. 아간의 죄가 하나님을 분노케 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실패하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간이 범죄할 때 누가 보았으며 아간의 죄를 누가 고발했는가? 아무도 모르게 죄를 범했다. 죄를 범할 때 보는 사람도 없었고 그 죄를 고발하는 사람도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부스러기 죄라도 보신다. 죄만 아니라 충성도 열심도 사랑도 보신다.
한 사람의 죄 때문에 이스라엘이 괴로움을 당하고, 아이성 싸움에서 실패를 했다. 물론 거기에는 간접적인 원인도 있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교만한 마음이다. 수6:27에 보면"여호와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니 그 명성이 그 온 땅에 퍼지니라"라는 말씀은 대단한 승리였다는 것을 알게 한다. 그런데 바로 직후에 실패의 수렁으로 굴러 떨어졌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우리가 부흥되었을 때, 은혜를 받았을 때, 삶이 넉넉했을 때 이러한 때 조심하라는 교훈이다. 본문을 보면 여호수아가 성을 공격하기 전에 정탐꾼을 보냈다. 2절에 "그 땅을 정탐하라"고 했다. 그런데 그들의 보고는 3절 "백성을 다 올라가게 말고 이 삼 천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마소서"라는 보고였다. 얼마나 달콤한 보고인가? 그러나 이 말은 마귀가 교만을 부추기는 말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저 큰 여리고 성을 무너뜨렸는데 이 작은 아이쯤이야 군대를 다 보낼 필요가 없다고 자만에 빠진 것이다. 여리고 싸움을 생각해 보자. 그 때 그들은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을 신뢰했고,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했다. 성을 돌라면 돌았고, 궤를 앞세우라고 하면 앞세웠고, 나팔을 불라면 나팔을 불었고, 소리를 지르라고 하면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본문에서 보면 그들이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기록이 없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준행 했다는 글도 없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도 않았다. 왜 그랬는가? 아이싸움에서는 그들이 심히 교만해졌다. 이러한 교만은 어디에서 오는가? "우리는 엄청난 일도 해 냈는데 이 아이성 쯤이야" 하는 생각에서 온다. 여리고 성을 자기들의 힘으로 무너뜨렸다고 착각하는 데서 온다. 그래서 아이성 싸움에서는 하나님을 멀리하고 사람들이 앞장서 있음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이 서실 자리에 사람이 서서 싸우려다가 실패한 싸움이 아이성의 싸움다. 이 순간부터 아이성은 무너지지 않고 자기네들이 무너지기를 시작했다.
사랑하는 성도여! 승리이후를 조심하라. 축복이후를 조심하라. 성공이후를 조심하라. 마귀의 작전은 우리가 승리했을 때 마귀는 "바로 이때다"라고 하고 덤벼온다. 그래서 바울이 고전10:12에서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했다. 성경을 보면 선 줄로 생각했다가 넘어진 사람이 많다. 대표적으로 삼손을 들 수 있다. 그는 블레셋 군사 일 천 여명을 타작마당에서 타작하듯이 넘어뜨렸다. 그리고 식후에 들릴라 무릎에 누워 "에라 이제는 편안히 쉬자"그러다가 눈 빼임을 받는 낭패를 당했다. 사랑하는 성도여! 승리했을 때, 성공했을 때 보다 겸손하게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을 지녀야 한다.

둘째 실패의 회복.
아이성 싸움에서의 실패의 원인은 "하나님을 분노케 하시매"에 있다. 따라서 실패를 회복하는 방법은 하나님의 분노하심을 풀어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24절에 아간을 끌고 그 은과 외투와 금 덩어리와 아간의 아들들과 딸들을 끌고 또한 소들과 나귀들과 양들과 그의 모든 것들을 끌고 아골 골짜기로 갔다. 그리고 25절에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선언하고 그것들을 돌로 치고 돌무덤을 만들었다. 그후 26절을 보니까 "여호와께서 그 극렬한 분노를 그치시니"라고 했다.
범죄한 요나가 하나님의 낮을 피하여 다시스로 도망하려다가 잔잔한 바다에 광풍이 대작하는 것을 만났다. 이 문제를 회복하는 것은 요나를 바다에 던지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여호수아도 도적질을 한 아간을 즉결처분한 것이다. 그리고 여호수아 자신도 6절에 보니까 옷을 찢고 장로들과 함께 그의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무릎쓰고 저물도록 하나님께 기도를 했다. 그렇다. 실패했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가? 기도해야 한다. 범죄 했을 때 무엇보다도 기도해야 한다. 기도는 범죄 했을 때, 실패 했을 때 뚫고 나가는 능력이 있다. 기도는 실패의 회복이며, 회개의 방편이다. 그래서 기도하면 돌이킬 수 있고, 용서받을 수 있다. 기도하면 넘어졌다가도 재기할 수 있고, 기도하면 슬픔이 기쁨으로, 기도하면 낙망이 소망으로 바뀐다. 기도하면 없었던 이적이 일어날 수 있고, 가난한 살림에 축복의 소낙비가 내릴 수 있다. 아간 한 사람 때문에 아이성 싸움에서 실패를 했다. 한 사람이 너무도 소중하다. 모임에서도 한 사람이 문제될 때가 있다. 한 사람이 가정에서 문제일 수 있고, 교회에서 한 사람이 문제가 될 수 있다. 무엇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가? 한 사람 그 아간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그러기 전에 내가 바로 범죄한 아간이 아닌가 물어야 하고, 내가 바로 하나님의 물건을 훔친 아간은 아닌가 물어야 한다.
① 성공했을 때 조심하라고 말씀한다. 인생은 누구나 성공했을 때 자만하기 쉽다. 실패의 잔은 언제나 성공 뒤에 가만히 나타난다. 그러므로 성공했을 때, 승리했을 때, 부자 되었을 때, 행복해 졌을 때에 겸손하게 그렇게 해 주신 하나님 앞에 감사, 찬송, 기도해야 한다.
②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라고 한다. 죄 라는 헬라어 단어가 몇이 있다. 그 중에 "하마르티아"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 이 말은 "과녘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를 말한다. 화살을 쏠 때 과녘을 맞추어야 되는데 화살이 벗어났을 때 사용하는 말이 하마르티아이다. 죄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여러분! 승리하고 성공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수8:8을 기억하라.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라" 즉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일이다.
③ 다시 일어나 전진하라는 것이다. 수8장을 보면 일어나라는 말이 반복해서 나온다. 과거가 없는 인생은 없다. 또 실패 없는 인생도 없다. 그래서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나는 죄인 중에 괴수로다"라고 고백 했다. 죄 많은 수가성 여인도 다섯 남편을 청산하고 ♬늘 울어도 눈물로서 못 갚을 줄 알아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라고 고백 할 수 있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했던 그 죄를 아골 골짜기에 묻어버리고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할 수가 있었다. 실패한 성도가 계신가? 그러나 낙망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야 한다. 새 출발 해야한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새 출발하게 될 때 우리 주님께서는 그 머리 위에 승리의 면류관을 씌워 주신다. 미국의 한 청년 이야기가 있다. 1831년에 그는 사업에 실패를 했다. 그 이듬해에 주 의원에 출마를 했으나 낙선했다. 다시 여력을 모아 1843년 공화당 국회의원에 도전했다. 그러나 공천도 못 받았다. 상원의원에 도전했다. 또 선거에서 떨어졌다. 그는 다시 46세 되던 1855년에 또 한 번 실패를 했다. 그리고 1858년에도 재도전했으나 낙선했다. 그는 실패를 한 번만 한 것 아니다. 그러나 낙망하지 않았다.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서고,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섰다. 그는 드디어 1860년 미국의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가 바로 아브라함 링컨이다. 링컨이 좋아하는 성구는 잠24:16이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
사랑하는 성도여! 실패에서 성공하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13절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여 내일을 기다리라" 여기 내일은 성공의 내일을 뜻한다. "스스로 성결케 하라" 우선적인 과제이다. 이 말은 각자가 마음속에 있는 아간을 잡아내라는 뜻이다. 탐욕의 아간이 있는가? 정욕의 아간이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신다. Try Again 다시 한 번 시도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회개하고 내일을 기다리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 내일이 있는가?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만 내일이 있다. 최선이 없는 인생에게는 소망의 내일이 없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서 성공의 내일을 기다리는 것은 망상이다.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라는 말은 마귀의 속삭이는 말이다. 다섯 달란트 받은 종처럼 바로 가서 그것으로 최선을 다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는 이 최선이 성공의 열쇠, 바탕, 비결입니다.
결론으로 말씀을 마치려고 한다. 어떤 사람에게 성공의 내일이 기다리고 있는가? 계속적으로 도전하는 사람이다. 성공한 대부분의 사람들을 실패를 실패로 여기지 않고 그것을 발판 삼아 다시 도전하는 사람인 것을 역사가 증언한다. 성공은 실패를 하지 않는 사람이 거두는 것이 아니다. 계속해서 도전하는 사람이 거두는 것이 성공이다. 여호수아가 그렇게 했다. 여호수아는 아이성 싸움에서 실패했다. 그러나 이겨냈다. 도전했다. "이제 아이성을 향하여 다시 진군하자"하면서 새 출발했다. 결국 아이성을 무너뜨린 것이다. 여호수아의 용기, 결단을 우리가 배워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제는 탐심을 물리치라". 즉, 재도전 할 때는 이전의 탐심을 물리치라는 것이다.
노르웨이의 들오리 떼가 겨울이 다가올 때에 덜 추운 덴마크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한 마리 오리가 먹을 것이 너무 많은지라 탐심 곧 욕심을 부려서 주저앉았다.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몸이 무거워서 날 수 없을 만큼 비대해졌다. 결국 날씨가 꽁꽁 얼어붙을 만큼 추워졌는데도 날지를 못하고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본향이 어디인가?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이다. 그런데 제물 때문에 비대해지지 않았는지. 명예나 권력 때문에 비대해 지지는 않았는지?
사랑하는 성도여! 내일의 성공을 향하여 겸손해질 수 있기 원한다. 마음을 비울 수 있기를 원한다. 그리고 주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원한다. 한번 실패로 인생을 포기할 수 없다. 그 실패를 발판 삼고 다시 일어나 성공의 내일을 향하여 전진하고 또 전진하는 그래서 마침내는 성공을 거두어서 아이성의 싸움을 이기고 가나안 젖과 꿀이 흐르는 복지에 들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출처/박종갑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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