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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누구냐?. (요1 : 19 ~ 28)

by 【고동엽】 2022. 9. 16.

네가 누구냐?.  (요1 : 19 ~ 28)


사람이 동물과 다른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내가 누구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존재인지를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확신하고 시쳇말로 ‘주제파악’하면서 사람답게 사는 우리들이 다 되시기를 먼저 축원합니다.

1.이 말씀을 하게 된 배경

조금 전에 봉독한 말씀은 주님의 공생애 첫날에 일어난 일입니다. 예루살렘의 산헤드린에서 대표단을 구성해서 세례요한에게 보내었습니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들은 ‘제사장들의 종’들을 말합니다)로 구성된 대표단인데 일종의 조사위원회의 성격을 가진 것입니다. 그들의 목적은 세례 요한이 누구인지를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에서 그렇게 하는 이유는 모세의 율법 책을 해석한 [미쉬나]에 보면 산헤드린 공회의 임무 가운데 하나가 메시아인가 아닌가를 확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던 문제를 털어놓았습니다.

(1) 첫 번째 질문은 당신이 메시아인가?

즉, 로마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킬 자인가 하고 물었습니다. 이 때 세례 요한이 분명하게 “아니다”라고 하자 다음 문제를 내놓았습니다.

왜 유대인들은 세례 요한을 메시야가 아닌가하고 생각했을까요? 그것은 메시야가 오시면 그가 세례를 베풀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메시야이신 주님이 오셨을 때에 그는 물세례를 베풀지 않고, 성령의 세례를 베풀었을 뿐입니다. 참으로 메시아는 성령의 세례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이 성령의 세례를 받지 않고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왜 당시 유대인들이 세례 요한을 메시야로 생각했을까요?
그것은 그가 세례를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의 명성은 예루살렘을 떠들썩하게 하였고, 그래서 심지어 세례요한에게 물세례를 받으려고 광야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을 정도였습니다.

(2) 두 번째 질문은 그렇다면 엘리야인가?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이들이 세례 요한을 엘리야로 생각한 것은 그의 옷(약대 털)이나 금욕적인 생활, 또 회개를 선포하는 메시자나 헤롯의 비리(동생의 아내인 헤로디아를 빼앗은 것은 당시의 율법으로도 불법이었습니다) 등을 신랄하게 비판 하였는데,
그런 모든 모습이 불의 선지자인 엘리야를 연상케 하였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제자들도 말라기 4:5절의 말씀에 대해서 질문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러자 예수님은 이미 왔다고 하면서 세례 요한을 예로 든 적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 구절을 오해해서 기독교적 윤회설이란 이단적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것은 신학을 전혀 모르는 무지의 소치입니다.
이것은 엘리야와 같은 성격을 가진 선지자가 올 것이란 뜻이고, 그가 다름 아닌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결코 엘리야가 윤회하여 온 것은 아닙니다.

(3) 세 번째 질문은, “그러면 네가 그 선지자냐?”하면서 모세가 예언한 그 선지자인가? 하고 물었습니다.

왜냐하면 신18:15절에 보면 모세가 하나님의 날이 올 때에 “나와 같은 한 선지자”가 올 것이라고 예언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세례 요한은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혹시나 메시야로 오해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세례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입니다.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는 선구자입니다. 그러나 겸손한 세례 요한은 자신을 낮출 대로 낮춘 것입니다.

2. 인생에 있어서 먼저 내가 누구인가를 깨달을 때까지는 우리는 방황하게 되고,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모릅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죽을 때까지 방황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게 될 때에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하는 사명감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발견한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네가 누구인가? 좀 더 정확하게는 내가 누구인가를 발견하고 깨닫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발견하는 사람에게 사명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경우:“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리이까?”(출3:11)

이사야의 경우:“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6:5).

베드로의 경우:“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5:8).

그러면 나는 누구입니까? 여러분들은 누구입니까? 언제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게 됩니까? 그것은 진리 되신 주님을 만날 때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는 주님의 빛 속에서만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님을 떠나서는 참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입니까?

(1) 무엇보다도 나는 모든 죄에서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된(계3:5) 하나님의 자녀입니다(요1:12). 천국의 영생을 소유한 사람이다(요일5:13).

(2) 나를 속박하고 있던 원수 사탄의 손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벗어난 참 자유인입니다(107:2).

(3) 이제 나는 의인이 되었습니다(롬5:1).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고후5:17).율법의 저주에서 해방된 사람입니다(갈3:13). 이제 나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입니다(롬8:14).

(4) 지금은 하나님께서 나의 가는 모든 길에서 지켜주십니다(시91:11).

(5) 또 하나님은 나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모든 일에 승리케 해주십니다(빌4:13,19).

(6) 나는 이제 하나님의 영광을 이어받을 후사입니다(롬8:17).

(7) 나는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습니다(신28:6).

(8) 나에게는 원수 마귀의 모든 권세를 제어할 권세가 있습니다(눅10:19.약4;7).

(9) 나는 모든 일에 넉넉히 이기는 승리자입니다(롬8:37).

(10) 나는 하나님이 세상에 보낸 빛으로 삽니다(마5:14). 어두움이 나를 방해할 수 없습니다. 믿습니까?

3.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해야 할 임무는 무엇입니까?

세례 요한이 했던 세 가지의 일이 바로 저와 여러분들의 임무입니다.

(1) 첫째는 주의 길을 곧게 하는 예비자입니다.

옛날이나 심지어 지금도 국가의 원수가 어디를 갈 때에는 전령이 앞서가서 “임금님 납시오!” 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뿐 아니라 보안을 위해서 경호팀들이 앞서 와서 준비를 합니다.
바로 세례 요한의 역할은 ‘메시아의 준비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마음에는 물론 가정과 직장에 주님이 오셔서 다스릴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 합니다.높은 곳은 낮게, 굽은 곳은 바르게 해서 왕이신 주님이 오시기에 편리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2) 둘째로 우리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에 불과합니다.

[소리]는 의미가 있습니다. 내용이 있습니다.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소리를 누구나 다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귀가 있어야 합니다. 농아가 아닌 귀머거리가 아닌 사람만이 들을 수 있습니다.
계시록에 보면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라고 했습니다. 귀는 있는데 듣지 못하는 귀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소리의 특징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세례요한의 겸손을 보여줍니다. 사람에게 자신을 나타내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자기 피알(PR:public relation)의 시대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참 성도의 특징은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처럼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일하는 것입니다. 나타난다면 오직 주님만이 나타나야 합니다. 나는 가려지고 숨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 삶의 중심은 오직 주님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세례 요한이 외쳐야 할 소리는 어떤 소리입니까?

그것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어떤 준비를 해야 할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도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여야 합니다. 소리는 들려야 하고, 무슨 뜻인지 분명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람들이 많은 경우 마이크를 사용하는 것은 바로 들려야 하고 분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3)셋째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세례 요한처럼 물로 세례를 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세례 요한은 자신은 성령으로 세례를 줄 수 없는 자요, 다만 물로 세례를 주어서 주님을 영접할 수 있는 준비자임을 말씀한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세례에는 여러 가지의 종류가 있습니다. 물세례, 불세례(마3:5-6),성령 세례(마3:11),고난 세례(마20:22-23)등등.

그러나 고난세례는 비유적으로 하신 말씀이고, 불세례란 말은 성령 세례를 또 다른 말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에는 두 가지의 종류만 있습니다.

그런데 물세례와 성령 세례는 로마서 6장을 보면 함께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이것은 서로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성령의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천주교에서는 물세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고 해서 강조합니다만,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 우편의 강도는 물세례를 받지 않았지만" 네가 오늘날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시면서 구원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절대조건은 성령 세례입니다.

그러면 성령세례는 무엇입니까? 일반적으로는 중생할 때 성령을 받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계통에서는 중생한 후 받는 제이의 축복으로 말합니다. 오늘은 시간이 없기 때문에 이 논쟁은 여기서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어떤 사람은 물세례를 받을 때 성령 세례를 받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먼저 혹은 나중에 받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시간은 어떻게 되었든지 간에 우리 모두가 다 성령의 세례를 받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혹시나 우리 중에 아직 물세례를 받지 않은 분이 계시면 물세례를 꼭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주님도 받으셨는데 왜 우리가 거절을 해야 합니까? 왜 우리가 미루어야 합니까?

주님을 믿기만 하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기만 하면 누구나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관한 문답은 우리의 신앙의 성숙을 위해서 가지는 것일 뿐 중요한 것은 믿느냐 영접하느냐 입니다.

우리 자신이 물세례를 받을 뿐 아니라 주님이 주신 지상명령의 하나가 바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는 말씀이기 때문에 부지런히 많은 사람들에게 물세례를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물로 세례를 주는 자의 자세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의 신 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당시 노예 중에 가장 낮은 노예는 손님이 오면 샌달을 풀어주고, 메어주고 발을 씻기는 일을 하였습니다. 즉 자신을 천한 종으로 말한 것입니다.

즉, 우리는 주님의 종일뿐입니다. 인권이 보장된 미국에 살면서 종이란 말을 하면, 아니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노예를 해방했는데 왜 종이란 말을 쓰느냐 하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참 자유인이 되려면 주님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참 봉사자가 되려면 주님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역리(paradox)입니다.

맺는말

오늘 우리는 내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가를 살펴보았습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진리 되신 주님 앞에 올 때에 비로써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사죄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그의 능력의 도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신분에 맞도록 빛과 소금이 되어 이 광야 같은 세상에서 외치는 소리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 정체성을 깨달을 때까지 우리는 방황하게 되고 참 기쁨을 소유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자신의 정체성을 다 깨닫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고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하는 사명자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출처/신성종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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