놋뱀과 십자가 (민 21:4-9)
"백성이 호르산에서 진행하여 홍해 길로 좇아 에돔 땅을 둘러 행하려 하였다가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 하매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민수기 21:4-9)
이스라엘 민족이 430년 간의 노예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애굽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애굽을 떠나는 날부터 원망을 시작했고 결국은 그 원망 때문에 다치고 죽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불행을 겪게 되었습니다.
1. 저들이 왜 원망하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길이 험하기 때문이었습니다. 4절을 보면 "백성이 호르산에서 진행하여 홍해길로 좇아 에돔 땅을 둘러 행하려하였다가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430년을 애굽에서 살았던 탓으로 여행을 해본 일도 없었고 애굽이외의 나라를 가본 적도 없었고 다른 나라 사람들을 만나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한 그들이 홍해를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 광야를 횡단하며 겪은 일들은 어렵고 힘든 일들의 연속이었습니다. 갈 길은 멀고 기후는 나쁘고 길도 없었습니다. 이정표도 없고 방향도 잘 모릅니다. 제멋대로 갈 수도 없습니다. 가라면 떠나고 서라면 멈춰야 합니다. 거기다 훈련도 제대로 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한마디로 오합지졸입니다. 왜 불평이 안 일어났겠습니까?
그러나 더 문제는 4절 끝의 "마음이 상하니라"였습니다. 길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길이 험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험했던 것입니다. 마음이 편하면 몸도 편하고 길도 편하고 하는 일도 편합니다. 그리고 결과도 편합니다.
어떤 주인이 두 종을 불러 각각 집을 지으라고 했습니다. 집 지을 대지, 건축비를 똑같이 주었습니다. 한 사람은 주인이 살집이라 생각하며 정성을 다해 지었습니다. 자재도 가장 좋은 것을 골라 쓰고 건축비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2년쯤 지난 후 걸작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사람은 평소 마음이 편치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평소 주인이 하는 일도 마땅치 않았고 자신이 종이라는 것도 싫었습니다. 늘 불평스럽고 짜증스런 사람이었습니다. 주인이 집을 지으라고 하자 그는 속으로 주인이 살 별장으로 생각했습니다. 사는 집 한 채면 됐지 돈푼이나 있다고 별채까지 짓는다며 불평했습니다.
건축자재도 제일 싼 것으로, 건축비용도 3분의 2는 제주머니에 챙기고 3분의 1만으로 집을 지었습니다. 한마디로 형편없는 졸작이 된 것입니다. 건축이 끝나자 주인이 두 종을 불렀습니다.
"집 짓느라 수고들이 많았다. 그동안 너희들이 나를 위해 충성을 다 한 보답으로 집을 한 채씩 선물로 주고자 한다. 너희들이 지은 집은 너희들이 살집이다. 선물로 받아주기 바란다"라며 한 채씩 선물로 주었다는 이 이야기는 이미 우리가 알고 들은 이야기입니다. 누가 기뻐했고 누가 후회했을 것인가 하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의 경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불평스럽고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상하고 원망이 들끓었던 것입니다.
둘째, 먹고 마시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민수기 20:2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마시는 물 때문에 모세와 아론을 공박하고 다투었다고 했고, 21:5을 보면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 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고 했습니다.
민수기 20:5을 보면 "이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라며 원망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모세를 향한 그들의 불평과 원망이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었다는 점입니다.
출애굽기 17:2을 보면 "백성이 모세와 다투었다"고 했고,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17:7을 보면 "그 곳 이름을 맛사라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하였음이더라"고 했습니다.
민수기 20:13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와 다투었으므로"라고 했고, 21:5을 보면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했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간 광야생활을 했지만 단 한 명도 목말라 죽거나 배고파 죽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40년 동안 만나를 먹었고 메추라기를 먹었습니다. 그들의 요구는 그것말고 정력에 좋은 것들, 스테미너 식, 군것질할 것들이 없다며 원망한 것입니다. 식도락도 혐오식품을 찾아다니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상한 것 먹으러 태국, 필리핀, 중국 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기독교인들은 그런데 끼면 안됩니다.
환경연구전문가인 유미호 씨가 쓴 글에 의하면 잘못된 음식을 먹기 때문에 아이들의 경우 정신이 산만해지고 욕구불만이 쌓이고 성급하고 폭력적이고 발육에 이상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일회용품 그릇은 대개 멜라민 용기인데 거기서 독성물질이 나오고 화학조미료나 패스트 푸드등도 건강을 해친다고 합니다. 실험 결과 유전자 조작 옥수수를 먹인 닭들이 보통 옥수수를 먹인 닭들보다 2배 이상 많이 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굶어서 생기는 병보다 너무 잘 먹어서 생기는 병이 훨씬 더 많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경우 하나님이 주신 식물에 실증을 느끼고 원망하다가 결국 그들의 영혼까지 병들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유미호씨는 다음과 같이 글을 끝맺었습니다. "을 먹을 땐 입안에서 적어도 30번씩 씹어보자. 꼭꼭 씹으며 이 먹거리가 어디서 왔을까, 내 입으로 들어간 먹거리들이 결국 어디로 갈까, 나는 이 음식을 먹을 만하게 정성껏 살았는가, 천천히 공손하게 먹자"고 했습니다.
나쁜 것은 먹지 맙시다. 감사하며 먹읍시다.
셋째, 하나님을 불신했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20:12을 보면 "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고 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의 문제는 지도자였던 모세와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문제였습니다. 모세에게 대들고 모세에게 덤비고 원망하고 시비를 건 것은 하나님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14을 보면 "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했습니다. 그 뜻은 "나는 나다"라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0:3을 보면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했습니다. 하나님만 섬기라는 뜻입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시편 136:2을 보면 "모든 신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했고 3절에서는 "모든 주에 뛰어나신 주께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그 뜻은 비교할 신이 없으신 하나님, 오직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이 신앙이 무너지면 다 무너집니다. 구원도 무너지고 기도도 무너지고 축복도 무너져 버립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신앙이 무너지는 바람에 다 무너진 것입니다.
2.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본문 6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고 했습니다. 원망, 불신, 배신의 결과는 저주, 재앙, 죽음입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결과는 같습니다. 감사하면 살고 원망하면 죽습니다. 믿으면 되고 안 믿으면 안됩니다.
3.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이 위기를 수습했는가 입니다.
7-9을 보면 백성들이 원망하므로 범죄했다며 기도해 살길을 열어 달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이 참담한 상황을 놓고 하나님께 회개와 용서의 기도를 드렸고 하나님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다음 사건이 중요합니다.
9절을 보면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 즉 살더라"고 했습니다. 주목할 것은 놋으로 만든 뱀은 아무런 힘도 신통력도 치유능력도 없는 무생명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제시하신 방법이었기 때문에 쳐다본 사람들은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3:14-15에서 이 사건을 설명하셨다는 점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바라보라 그러면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 약속을 믿고 바라보는 것은 믿음입니다. 예수를 믿으라 그러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 약속입니다. 그 약속을 그대로 믿으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무슨 소리, 뱀독이 퍼져 가는데 구리뱀 바라보면 산다고? 허튼 소리, 병원에 가야 할지. 독을 빼야 살지, 응급처치를 해야 살지"라며 그 날 거기서 놋뱀을 바라보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죽었습니다. 십자가 믿고 구원받는 것도 같습니다.
"2천년 전에 죽은 예수를 믿어야 산다니 허튼 소리야 그건 말도 안 된다. 현대의학이나 과학이 있는데 무슨 미신 같은 소리야"라며 믿지 않으면 누구라도 구원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어린아이처럼 그대로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단순사고라야 성립됩니다.
놋뱀을 몇 분 이상 바라보아야 하느냐? 어떤 쪽에서 바라보아야 하느냐? 각도는 어느 정도라야 하느냐? 바라보는 눈의 크기는 어느 정도라야 하느냐? 바라볼 때 곁에 누가 있어야 하느냐 등을 생각하고 따지면 바라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놋뱀을 바라보라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는 그 말씀을 믿고 십자가 바라보고 예수 믿으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장대에 매단 놋뱀을 바라보는데 뭐가 필요합니까? 과학도 철학도 문학도 예술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죽기 일보 전에, 독이 퍼지기 전에, 숨이 끊기기 전에 빨리 바라보아야 합니다. 회의를 할 필요도 없고, 다수결로 결의를 할 필요도 없습니다. 예수 믿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여기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따지고 사색하고 연구하고 미루지 마십시오.지금 여기가 중요합니다.
주님! 내가 주를 바라옵니다. 나를 구원하여 주소서. 아멘!
출처/박종순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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